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피어 오브 갓(Fear of God)의 디자이너 제리 로렌조(Jerry Lorenzo)는 패션의 계절을 무시하는 듯한 도전적이고도 절제된 룩으로 유명하다. 그러니까 그는 떠들썩하고 화려함을 내세우는 다른 컨템퍼러리 브랜드와는 조금 다른 패턴으로 살고 있다. 자신의 개인적인 스타일에 기반한 로렌조의 조용하고도 럭셔리한 룩은 표면적으로는 남성들을 위한 디자인이지만 동시에 여성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의상은 모두 Fear of God. 액세서리는 로렌조 본인의 것.
패션의 덧없는 테두리 밖에 존재하려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2년 레이블을 시작한 로렌조는 전성기를 맞았다. 피어 오브 갓의 일곱 번째 컬렉션(2년에 걸쳐 제작한 나른한 분위기의 럭셔리 룩으로 지난 8월 공개됐다)은 “매일 입는 스웨트는 귀엽게 연출할 것”이라는 새로운 정설을 미리 예고했으며, 그를 아메리칸 패션의 구세주로 만들었다. 사회적·인종차별적인 문제, 상업적·정신적으로 타격을 가한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모든 문제로부터 패션의 돌파구를 찾는 시기에 마흔세 살의 로렌조는 패션을 독학한 신예에서 코로나19 시대의 비판적인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고, 랄프 로렌 이후 미국 패션계의 새로운 황태자로 떠올랐다.
다소 배타적이고 주로 남성들이 지배하는 스트리트웨어 신에서 먼저 알려진 브랜드이긴 하지만, 로렌조의 최근 컬렉션은 보다 폭넓은 계층의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오타쿠적인 스트리트웨어 수집가는 말할 것도 없고 피비 파일로 시대의 올드 셀린의 심플 럭셔리를 추구하는 여성들에게도 어필하고 있는 것. “이건 좀 믿을 수가 없네요.” L.A 다운타운의 아트 디스트릭트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줌(zoom)을 통해 만난 로렌조는 이렇게 말했다.
제 레이블이 왜 지금처럼 반향을 일으키는지 정확히 안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예요. 하지만 어떤 면에 있어서는 패션을 정직한 방식으로 대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유명 파티 기획자이자 카니에 웨스트(Kanye West)의 디자인 컨설턴트로 일한 로렌조의 이 말이 세련된 아메리칸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선구자가 아닌 전문 사업가의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연코 그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레이 컬러의 와플로 짠 크롭트 후드(그의 말에 따르면, ‘편안하고 정제된’ 것이라 표현하는 다음 컬렉션의 일부를 여유 있게 커팅해 만든 샘플이다)를 입고 바톤 페레이라(Barton Perreira)와 컬래버레이션한 토프와 샴페인 컬러의 안경을 쓰고 있다. 헤어스타일은 따서 동그랗게 말아 묶었다.
보통은 편하게 풀어 뒤로 넘겨요. 그런데 오늘은 새로운 헤어스타일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최근 로렌조는 여러 가지를 실험 중에 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와의 컬래버레이션에서 자극을 받은 그는 작년에만 무려 6번이나 이탈리아 출장을 다녀왔고, 새로운 아틀리에와 공장을 소개받았다. 그 결과 현재 피어 오브 갓은 편안한 스웨트류와 니트웨어를 넘어 하이엔드 테일러링, 수트, 액세서리로 확장하게 됐다. 스트리트웨어에서 변화를 준 모토크로스(오토바이를 타고 하는 크로스컨트리 경주) 팬츠와 티셔츠는 사라지고 대신 이탤리언 버진 울 코트로 대체되었다. “이제 우리는 더 나은 자원을 가지게 됐어요. 그러니 더 나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죠.” 그가 말한다.
물론 같은 얘기이긴 하겠지만 새로운 단어로 하는 거예요. 수트 팬츠에 집중하는 것만큼이나 스웨트팬츠에도 커팅과 주름에 많은 애정을 쏟거든요. 새로운 피스에 같은 관점을 대입시킬 뿐입니다.
그가 오래된 보스와 공유하는 건 까다로울 정도로 집착하는 세부 디테일에 관한 것이다. “카니에가 저의 첫 번째 컬렉션을 봤을 때 아무것도 없는 심플한 티셔츠를 들고는 ‘이 티셔츠에 들어간 네 생각이 다 보이는걸.’ 하고 말했다니까요.” 로렌조가 지난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에게 있어 스타일의 본질은 어디에 있든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다. “럭셔리란 피부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가 강조한다. 세상의 흐름이 일시 정지된 지금을 의식하고 있단 얘기다.
하지만 어떤 장소와 상황에 맞게 드레스업해야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때 보여지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실루엣을 고르죠. 그러니까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거고, 그 불편함은 결국 다른 사람들도 다 느끼게 되죠. 그래서 피어 오브 갓은 편안하면서 실용적이고, 동시에 우아하면서 세련될 수 있도록 한 사람의 옷장에 삶의 모든 순간을 잘 섞어 보여주려고 합니다.
오랜 고객이자 친구인 가수 존 메이어에 따르면, 로렌조가 능숙하게 해낸 것은 균형 잡힌 행동의 결과였다고 말한다. “제리의 스타일은 매 시즌 정말 좋아서 계속 사게 만들어요. 큰 무리를 한다고 느껴지지 않거든요.” 시계와 스니커즈라면 사족을 못 쓰는 컬렉터인 그는 로렌조의 ‘나이키 에어 피어 오브 갓 1’을 지금 세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남자 슈즈라고 평가할 정도다. “훌륭한 밴드가 그렇듯이 어떤 앨범에서 노래 하나만 골라 들어도 완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피어 오브 갓 시즌 6에서 뭔가를 하나 고른 뒤, 지금 나오는 것(이를테면 제냐와 협업한 아이템)들과 섞어 입어도 정말 일관성 있는 룩이 될 거예요.”
저스틴 비버의 콘서트 투어를 위해 로렌조와 함께 커스텀 룩을 제작한 바 있는 스타일리스트 칼라 웰치(Karla Welch)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의 옷은 패션이나 트렌드를 외치기보단 어떠한 느낌을 제안해요. 감이 좋은 다른 선구자들이 그렇듯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순간을 잘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이죠. 그가 참고하는 것들은 다양하지만 동시에 그만의 독특한 것이 있어요.
최근 컬렉션의 경우 청키한 니트를 입은 줄리아 로버츠(특히 영화 〈펠리칸 브리프〉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오버사이즈 재킷, 혹은 젊은 시절의 톰 크루즈나 마이클 조던 같은 농구선수들처럼 티셔츠를 데님 진에 넣어 입고 오버사이즈 재킷을 걸치곤 했던 여행 룩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공식적으로 로렌조의 레이블은 남성 웨어로 분류되어 있지만, 그가 참고하는 폭넓은 자료에서 알 수 있듯 디자인할 땐 모든 성별을 마음속에 그리는 편이라고.
그는 럭셔리의 의미, 그리고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친구이자 극작가, 프로듀서인 레나 와이스(Lena Waithe)의 말이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싶을 때 전통적인 패션 하우스를 찾기보다 당신과 비슷하고 당신을 이해하는,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누군가에게서 옷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더불어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여성을 다르게 대하지 않아요. 그리고 모든 면에서 남성처럼 강하고 대담하다고 느껴지게끔 해주죠. 우리는 같은 것을 향해서 경쟁하는 거예요. 같은 트렌치코트를 입고요. 그러니까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고 안 될 건 없겠죠?
물론 로렌조 또한 여성들 사이에서의 피어 오브 갓의 인기를 잘 알고 있고 광고 캠페인에도 여성을 계속해서 등장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맞추는 전략은 경계하고 있다. “남성 비율에 맞게 디자인한 의상을 여성이 입었을 때 분명 무언가 섹시한 데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말한다. “그리고 그걸 항상 염두에 두거든요. 아내가 제 옷장에서 뭔가를 몰래 입으려 할 때 저는 그녀에게 그 옷이 어떻게 보여질까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이에서 제 의상을 정착시키고 싶다는 얘긴 아니에요. 남성과 여성의 몸에 똑같이 맞게 제작하려고 한다면 그 어떤 사람에게도 맞지 않는 이상한 모양이 돼버리고 말 테니까요.”
로렌조는 그의 시그너처인 피어 오브 갓 컬렉션과 파생 레이블인 에센셜, 진행중인 제냐 프로젝트를 거론하며 자신에겐 이미 충분히 생각할 것이 많다고 했다. “전 아이가 셋이 있어요.” 쌍둥이 딸 리브(Liv)와 머시(Mercy), 그리고 아들 제리 로렌조 마누엘 III(Jerry Lorenzo Manuel III)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물론 아내 디지레(Desiree)도 포함된다.
그들이 제 모든 남는 시간을 차지하고 있어요. 특히 요즘은 홈 스쿨이 있잖아요. 그것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