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불멸의 패션 아이콘이자 진정한 페미니스트 다이애나의 스타일 연대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영원불멸의 패션 아이콘이자 진정한 페미니스트 다이애나의 스타일 연대기

1980년대를 상징하는 패션 아이콘 다이애나.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내며 소명을 찾아 실현한 진정한 페미니스트였다.

BAZAAR BY BAZAAR 2021.02.03
 

AGAIN, DIANA

 
개성 넘치고 미묘하면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외면만큼 내면도 아름다웠던 다이애나는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겁니다.
(고 다이애나비의 추모사 中.) 변화하는 세계의 한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 여전히 기억되며 커다란 영감을 주고 있는 프린세스 다이애나. 바이러스와 기후이상이 난무하는 격동의 2021년을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역경의 시기를 이겨내고 영향력, 자율성, 위엄까지 갖춘 여성으로 거듭난 그녀의 이야기가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더 크라운〉 〈프린세스 다이애나〉 〈다이애나 그녀 자신의 목소리〉 등의 프로그램이 그것을 입증한다. 세상을 떠난 지 23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패션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몇 시즌 전부터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1980~90년대 스타일 중심에는 다이애나가 있다.
영국 왕실과 가까운 스펜서 가문에서 태어난 다이애나는 6살 때 어머니가 외도로 집을 나가고 우울증에 걸린 아버지와 외롭고 슬픈 유년 시절을 보냈다. 찰스 윈저 왕자는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내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 찾아낸 다이애나와 단 12번 만나고 결혼을 약속한다. 귀족 가문 출신에 착하고 건강한 다이애나가 왕세자비로 제격이었던 것. 당시 19세였던 그녀는 파파라치 사진 속에서도 소박하지만 단정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로 빛이 난다. 하이넥 러플 블라우스나 셔츠에 카디건을 걸치고 진주 목걸이와 귀고리를 한 모습에서 그녀의 기품과 감각을 알아챌 수 있다. 작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전형적인 미인인 데다 187cm의 큰 키도 한몫했지만. 1981년 7월, 세기의 결혼식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신혼여행 길에 입었던 도널드 캠벨이 디자인한 빈티지한 플라워 프린트의 랩 드레스였다. 초커 스타일의 진주 목걸이와 그녀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오버사이즈 재킷을 어깨에 걸친 모습은 지금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신혼 초기에는 퍼프, 러플, 레이스, 리본 등을 활용해 동화 속 낭만을 꿈꾸는 듯한 공주풍 스타일을 주로 선보였다. 이번 시즌 유행하고 있는 와이드한 러플 칼라 아이템 역시 다이애나의 룩에서 스타일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1983년, 그녀가 폴로 경기장에 입고 등장한 일명 ‘검은 양 스웨터’가 최근 다시 주목을 받았다. 바로 영국 브랜드 웜 앤드 원더풀이 미국의 로잉 블레이저와 함께 26년 만에 제작해 판매를 시작한 것. 빨간색 니트웨어에 가득한 흰 양 패턴 속에 단 하나의 검은 양이 자리한 디자인. 당시 다이애나비가 영국 왕실에서 의지할 곳 없이 문제아 취급을 받는 자신의 처지를 이 스웨터의 검은 양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이 스웨터는 1983년에도 지금도 여전히 화제몰이 중이다.(현재 솔드 아웃으로 프리 오더만 가능한 상황.) 이때부터 직접 말하기보다 패션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법을 터득했던 것 같다. 결혼생활 초반부터 찰스 왕세자는 옛 연인 카밀라와 관계를 유지했고 다이애나는 고립되고 외로운 왕실 생활을 한다. 섭식장애와 언론의 도가 넘는 취재로 고통받기 시작했지만, 20대 초반 그녀의 스타일은 가장 영국적인 매력으로 풋풋하고도 낭만적이었다.
 
“난 불길 속으로 떠밀렸다.”라고 직접 말할 정도로 삶이 힘겨웠던 다이애나. 얌전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장난기 넘치는 눈을 가졌고, 노골적인 말에는 금세 얼굴이 붉어졌는데 그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1984년 이후, 사진 속 그녀는 눈에 띄게 말라가는 모습이었다. 마치 무성영화 배우 같은 모습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하는 드레스 룩은 우아와 파격을 넘나들었다. 클리비지가 들어날 정도로 깊게 파인 네크라인, 과감하게 어깨를 드러낸 튜브톱이나 원 숄더 디자인, 등이 파인 백리스, 비비드부터 메탈릭한 컬러까지 과감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어떤 자리에서건 당당하고 사랑스러웠던 그녀는 왕가에 강요되어온 보수적인 규율에서 벗어나 개성과 취향을 패션으로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친구였던 베르사체가 디자인한 블루 컬러의 원 숄더 드레스는 아름답고 섹시한 스타일을 완성하며 세기의 룩으로 남았다. 다이애나가 가장 사랑한 디자이너는 캐서린 워커로 왕실 생활 16년간 다이애나의 수많은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윌리엄 왕자를 낳고 취재진 앞에 섰던 그린 폴카 도트 드레스, 1989년 화이트와 핑크가 배색된 우아한 롱앤린 실루엣의 드레스가 유명하다. 그러나 단지 옷이 아름답다는 것이 그녀가 사랑받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다이애나는 우아하고 품격 있는 애티튜드로 자신이 연출하는 아이템을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것으로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가장 큰 예가 바로 레이디 디올. 당시 탄생한 지 20년도 안 된 핸드백이었는데 프랑스 영부인에게 선물로 받으면서 즐겨 들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슈슈’라는 본명에서 ‘레이디 디올’로 이름마저 바뀌게 된 것. 페라가모의 ‘레이디-D’와 토즈의 ‘D’ 핸드백 역시 마찬가지. 한 시대를 완전히 매혹시킨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다이애나였기에 가능했을 터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삶이 자신을 바닥으로 끌어내릴 때마다 꿋꿋하게 일어서 앞으로 나아갔던 용기 있는 여성이었다.
힐러리 로뎀 클린턴의 말처럼 공식석상에서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자신감 넘치고, 자주적이고 자제력 있는 다이애나 자신이었다. 1986년 짧은 금발은 더욱 짧고 세련되어졌으며 그녀의 스타일 또한 현대적으로 변했다. 화이트 룩을 즐겨 입었던 그녀는 평상복 또한 눈부셨다. 팬츠에 담백한 오버사이즈 재킷은 자신의 상징적인 룩이 되었고, 운동복 차림으로 입은 바이커 쇼츠와 스웨트셔츠는 지금의 빅 트렌드로 다시 돌아왔다. 다이애나만큼 바이커 쇼츠를 완벽하고 멋지게 소화하는 여성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없이 회자되고 있다.
 
1990년대 그녀의 스타일은 지극히 모던함을 추구한다. 영화 〈다이애나〉의 의상 디자이너 줄리언 데이는 다이애나의 의상에 대해 “다이애나가 죽기 전 몇 년간의 의상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심플했다. 우아하면서도 클래식하게 입었고 절제된 컬러와 콘셉트를 선택했다.”라고 설명한다. 모노톤의 미니 드레스로 보디라인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단아한 앙상블 수트로 왕세자비의 지위를 드러냈다. 1996년 결국 이혼을 선택한 다이애나는 더욱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에이즈, 암, 심장병 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봉사활동에 나서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에이즈 환자와 장갑을 끼지 않고 손을 맞잡는 모습은 편견을 깨고 사회에 공감을 주기 충분했다. 자신의 드레스 79벌을 경매에 내놓아 5백76만 달러(약 60억원)의 수익을 에이즈와 유방암 환자를 위해 지원한 일화도 유명하다. 또 대인지뢰 추방 등 국제 캠페인에 적극 관여해 대인지뢰 금지 협약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슬리브리스 셔츠와 치노 팬츠 차림으로 지뢰밭을 걷는 모습은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답다. 자신의 길을 찾은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1997년,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36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다이애나. 영국 로열 패밀리는 다이애나비 이전과 이후로 극명히 나뉜다. 국민의 왕세자비로 불리며 전 세계를 매료시켰던 그녀의 이야기에 감동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역경과 고난을 딛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갔던 이 현실적이고도 매혹적인 인물에게 누구든 자신을 투영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1980년대는 물론, 당대 패션을 상징하는 대체불가의 완벽한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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