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셸 오토니엘의 우아한 세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장-미셸 오토니엘의 우아한 세계

유리 작품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동안 닿게 될 장-미셸 오토니엘의 세계, 미래를 향한 그의 예술적 비전은 새로운 미(美)란 곧 새로운 질서임을 공표하며 우리를 위안한다.

BAZAAR BY BAZAAR 2021.01.20
 

우아한

각성의 세계 

내게 아름다움이란 영혼을 일깨우는 거룩한 여정입니다. 아름다움은 어느 문화에서나 공통적으로 존재하기에, 우리가 서로를 평화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은 파리 외곽 몽트뢰유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스튜디오의 맨 꼭대기 층에 주로 머문다. 고요히 스튜디오 전반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듯 고즈넉한 동네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 예술가들의 존재 흔적까지 풍경으로 품은 공간이다. 유례없는 시대를 온 생으로 겪어내는 것이 남은 자들의 공통의 몫이 되었지만, 예술가들은 멈출 수 없다. 여기서 그는 장미(〈La Rose du Louvre〉)를 그리고 또 그렸다.
오토니엘이 주로 회화 작업을 해온 스튜디오 공간. 이번에 서울에서 선보일 〈루브르의 장미(La Rose du Louvre)〉 회화 연작은 2019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진행된 유리 피라미드 건축 30주년 전시 때 소개 및 영구 소장된 작품들과 연장선에 있다. 당시에 전시된 작품들과 크기, 형태, 재료 면에서 모두 동일하다.

오토니엘이 주로 회화 작업을 해온 스튜디오 공간. 이번에 서울에서 선보일 〈루브르의 장미(La Rose du Louvre)〉 회화 연작은 2019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진행된 유리 피라미드 건축 30주년 전시 때 소개 및 영구 소장된 작품들과 연장선에 있다. 당시에 전시된 작품들과 크기, 형태, 재료 면에서 모두 동일하다.

지난해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리 피라미드 30주년 기념전을 위해 제작, 전시된 후 현대미술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영구소장된 이 회화는 꽃을 좋아하던 소년 오토니엘의 미래이자 인간의 오랜 열망을 예술로 구현하는 작가 오토니엘의 현재다. 이 고립의 도시에서 스튜디오를 심적, 물리적, 예술적 좌표로 삼은 오토니엘은 서울로 보낼 신작 작업에 몰두함으로써 모든 시간 경계를 뛰어넘어 꿈꿀 수 있었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오토니엘의 개인전 «New Works»(2020년 12월 17일부터 2021년 1월 31일까지)는 세계 혹은 현실과 연결되는 방법을 찾고자 분투하던 작가가 불가항력적 변화 한가운데서도 아름다움의 본질에 골몰하며 펼쳐 보이는 희망의 풍경이다. 
유리 벽돌 작업 〈Precious Stonewall〉과 〈Stairs to Paradise〉, 유리 구슬 작품이 어우러진 스튜디오 전경.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유리 벽돌 작품은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압박과 스트레스에 대한 답일 겁니다. 공통의 꿈으로 향하는 제단 혹은 사색의 지지대 같은 작업이에요.”

유리 벽돌 작업 〈Precious Stonewall〉과 〈Stairs to Paradise〉, 유리 구슬 작품이 어우러진 스튜디오 전경.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유리 벽돌 작품은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압박과 스트레스에 대한 답일 겁니다. 공통의 꿈으로 향하는 제단 혹은 사색의 지지대 같은 작업이에요.”

현대미술가 오토니엘은 1980년대 후반부터 조각, 사진, 회화 등을 통해 존재와 실재, 관념과 상징의 문제를 다뤄왔다. 이번에도 그는 다양한 색감과 재료, 드로잉과 회화의 섬세함, 인도와 유럽을 오가는 유리 조각 등을 통해 명상의 순간을 구현한다. 창을 통해 소격동 길을 면한 전시 공간은 루브르에서 선보인 회화 〈La Rose du Louvre〉를 비롯해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한 조각으로 구성되고, 대조를 이루는 다른 공간에는 예측불가한 현세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유리 벽돌 작품 〈Precious Stonewall〉 연작 등이 배치된다. 전시의 시작점이기도 한 전자의 공간을 자연에 대한 사유와 환희, 평온함이 채운다면, 후자는 벽돌 벽 형태의 작품들이 오히려 어떻게 희망의 통로 혹은 새 창이 될 수 있을지 제시하는 대안적 공간이다.
 
오토니엘의 유리 작품은 ‘완전한 소통’을 희망했기에 언제 어디서든 의연하게 찬란했다. 반짝이는 유리는 세상 모습을 반영하거나 사연을 품어 안되 그 안에 존재한다. 혁신적 아름다움은 늘 그 자리에 있음을 새로운 시선으로 경험하게끔 하는 이른바 장-미셸 오토니엘식 ‘우아한 각성의 세계’가 이윽고 우리 앞에 펼쳐진다.
“예술이 다사다난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 지난해 가을, 당신이 내게 건넨 이 말이 무시로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모든 게 멈춰버린 현재를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처음엔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제 작업에 연관된 많은 이들을 우선 챙겨야 했죠. 하지만 적응한 후엔 오히려 내부로 침잠하며 서울 전시에 관한 주요한 작업들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맨 처음 자가격리 땐 드로잉 작업에, 그 다음엔 조각과 회화 연작 제작에 몰두하는 식이었죠. 이번 서울 전시에서 선보일 순 없지만, 1만 개의 유리 벽돌로 이뤄진 대형 조각 〈Big Wave〉 설치도 했어요. 2년 전 미술관 전시 때 제작한 검은 파도를 다루자니, 이 거대한 벽의 형상이 우리를 짓누르는 현 상황처럼 다가오더군요. 반면 유리 벽돌 작품은 현재 우리가 받고 있는 압박과 스트레스에 대한 답일겁니다. 공통의 꿈으로 향하는 제단 혹은 사색의 지지대 같은 작업이에요. 예술이야말로 마음 깊은 곳의 공포까지도 승화시킬 수 있다고 새삼 믿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내게 예술을 일깨워준 도널드 저드와 칼 앙드레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해요.
그 제목은 1969년 뉴욕 동성애 커뮤니티가 경찰에 저항한 ‘스톤월 항쟁’에서 차용한 거죠. ‘프레셔스’라는 형용사는 급진적 사건과 작품 모두에 영예를 부여해요. 삶의 시적 부분과 정치적인 지점이 만나는 곳에서 고유의 힘이 느껴집니다.
벽돌만큼 인류보편적인 재료도 없을 거예요. 혁명의 상징이기도 하고, 바벨 타워에 사용되기도 했죠. 무엇보다 자유를 향한 발걸음은 중요해요. 우리는 인권의 기반을 형성하는 요소들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해야 합니다. 당신이 누구든, 오늘날 닫혀버린 세상에서 벽을 문으로 변형, 확장시켜야 해요. 〈Precious Stonewall〉을 미래를 향한 통로 같은 개념으로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당신 말대로, 내 작업은 시 그리고 정치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으니까요.
벽돌이라는 소재의 시적, 정치적 의미를 눈여겨보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수십 년 전 인도 여행길에 도로 주변에 쌓인 엄청난 양의 벽돌을 봤어요. 인도에서는 건축 과정 중 벽돌을 가장 고귀한 요소로 간주한다더군요. 이들은 언젠가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벽돌을 쌓아둡니다. 벽돌은 어떤 인생의 화룡점정이 되기 위해 기다림을 견디는 희망의 재료인 거예요.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염원과 강렬한 에너지에 감동받은 나는 급기야 인도 장인들과 유리 벽돌을 만들게 되었어요. 계단 형태 작품 〈Stairs to Paradise〉 역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을 의미합니다. 하늘에 닿을 것 같은 계단은 각자가 처한 현실을 막론하고 누구나 더 좋은 상황을 희망할 수 있다는 점을 시적으로 전해요.
한결 다채로워진 유리 벽돌 색은 그런 작가 의도에 현재성을 불어넣어요.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푸른색이 두 가지 이상으로 변주되면서 아름다움의 스펙트럼도 넓어졌죠. 이는 특정 색을 도출하는 기술과 의미의 증폭까지 기대하게 하는데, 어떻습니까?
평소 제가 꿈꿔왔던 색의 계열입니다. 함께 어우러졌을 때, 예컨대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리듬감을 생성하죠. 색은 시적 감수성과 몽환적 해석을 야기하는 중요한 요소예요. 두 가지 색이 어우러진 〈Precious Stonewall〉 신작들과 이들이 설치된 방식이 공간 내에서 일종의 음악적 여정을 일궈낼 거라 봐요.
유리 구슬이든 유리 벽돌이든 자가 증식하는 유기적인 세포 같습니다. 예컨대 샤토 라 코스테에 설치된 작품 〈Îles Singulières〉는 신비로운 섬 혹은 완결된 세상처럼 느껴졌어요. 유리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식 중 ‘반복’ ‘적층’ ‘축적’을 택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유리나 철로 만든 벽돌 조각을 불안정한 형태로 쌓아둔 건 보는 이들이 사유하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나는 바람이나 물 같은 자연 요소에 의해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변화에 관심을 가져왔어요. 시간을 조각칼 삼아 자연스럽게 침식, 변형된 자연에 번번이 매료되곤 했죠. 게다가 이런 거대한 벽돌 구조는 이렇게나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이고 괴기스러운 세상의 보물 같은 존재를 상징합니다.
구슬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 당신은 1990년대 초부터 유리를 활용해왔어요. 특히 유리와 벽돌의 대비가 흥미로워요. 벽돌은 안정성, 불변성, 일상성 등을 의미하는 반면 유리는 취약하고 액체와 고체의 경계 어디쯤 있으며 궁극의 화려함으로 통하죠. 유리 재료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나요?
유리와의 관계 혹은 특성은 나를 끊임없이 일깨웁니다. 유리는 견고함과 연약함, 가벼움과 예민함을 상징해요. 이런 이중성은 나의 감정은 물론 상반되는 존재가 만났을 때의 긴장감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반영하죠. 유리는 환상적인 기분을 선사하는 동시에, 극한의 아름다움을 통해 일종의 공포심을 느끼게도 합니다. 게다가 연금술의 대표 재료이기도 하잖아요. 초기에는 용암이 식으면서 생성되는 검고 불투명한 흑요석을 활용하다가, 이후에는 무라노 섬에서 제작한 다채롭고 투명한 유리를 사용해왔어요. 어두운 것부터 밝은 것까지, 유리 활용의 변화는 내가 바라보는 삶과 관점의 변화, 이 모든 것을 일깨우는 자연한 과정을 말해주죠. 
예전 작업은 확실히 슬픔과 상처, 위안과 위로 등을 통해 끝없이 침잠하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현재는 진취적이고, 희망차며, 생동감이 넘치죠. 재료나 주제가 아니라 작가 자체가 변화한 느낌인데, 어떤 전환의 계기가 있었나요?
변화하는 세계의 현실을 살아내면서 나도, 작품도 서서히 변한 것 같아요. 나 자신을 열어 보이며 예술적 비전을 공유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하지만 세계를 여행하며 진실된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많은 이들과 교류해왔고, 지금의 저는 제 작품을 통해 다른 이들을 잇고자 하는 소망을 갖고 있어요. 세상에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사명감은 내게 매우 중요해요. 게다가 작업을 통해 나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기 때문에, 모든 작품이 일종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죠.
지난해 루브르에서 본 〈La Rose du Louvre〉야말로 당신의 자화상이었어요. 미술관 아르바이트를 했던 예술학교 재학생이 수십 년 후 바로 그곳에서 전시하는 경우는 흔치는 않으니까요. 어쨌든 회화가 유의미한 전환점이 되었을 거라 짐작해요. 예컨대 회화는 조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과 관계 맺지 않나요?
보통 회화는 조각의 그림자 같은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 작업의 시작점이에요. 금박을 칠한 캔버스에 장미를 그리는 순간, 내 안을 가득 채웠던 에너지에 영감을 얻어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거든요. 공간에 그려진 캘리그래피처럼, 미완성 상태의 움직임이랄까요. 회화는 제한된 면적에서 생각과 감정을 집약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매체라, 그만큼 강렬하지만 다루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장인들의 손길을 요하는 조각보다 아무래도 더 큰 자유를 내게 선사해요. 퐁피두 센터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린 «My Way»전에서 캔버스 작업을 처음 선보이긴 했지만, 사실 회화는 오래전부터 내 작업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어요.
언젠가 다시 열린 세상이 오면, 궁극적으로 이 공간에서 어떤 예술적 사건이 일어나길 고대합니까?
음악, 연극, 춤, 미술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교류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Big Wave〉를 선보였을 때 발레무용가 마리-아녜스 지요(Marie-Agnes Gillot)와 춤을 포함한 퍼포먼스를 기획했는데, 향후에도 이곳이 이런 흥미로운 실험을 도모하는 플랫폼이 되었으면 해요. 지금껏 꿈꿔온 건축물을 짓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사람을 품는 건축이야말로 예술을 매개로 한 완전한 소통을 시도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유토피아적인 세상을 짓는다는 가정 하에, 아시아가 ‘네버랜드’ 같은 최적의 환경을 제공할 것 같은 본능적인 느낌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전시 제목 ‘New Works’는 꽤 의미심장해요. 신작이라는 공표를 넘어 작가 혹은 작업의 새로운 국면을 암시하기 때문이죠.
‘New’는 아주 오래전부터 날 매혹시킨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미래를 향한 비전을 보여주는 신작을 가리켜요.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아름다움과 혁신, 두 가지의 공존과 상생이 이뤄내는 긍정적인 내일, 즉 우아하고도 깨어 있는 세계를 공유하고자 하는 나만의 방식입니다.
시간이 박제된 도시, 스튜디오에 칩거하며 회화 작업에 몰두했던 작가의 흔적.파리에서 기차로 4시간 거리에 위치한 유명 와이너리 샤토 라 코스테, 그곳의 렌조 피아노 건축물에 설치되어 있던 유리 벽돌 작업 〈Îles Singulières〉은 작가의 건축적 호기심을 보여준다.2019년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소장된 회화 〈La Rose du Louvre〉는 또 다른 조각 〈Rose of the Louvre〉의 탄생으로 이어졌다.오토니엘과의 협업 아래, 유리 벽돌 작품을 무대 삼아 펼쳐졌던 발레무용가 마리-아녜스 지요의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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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글/ 윤혜정(국제갤러리 디렉터)
    사진/ Alexandre Tabaste
    웹디자이너/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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