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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가기 좋은 우리나라 순례길 #진주의바깥생활

걷고, 기도하고, 새해를 시작하기 좋은 곳. 따뜻한 남쪽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힐링을.

BYBAZAAR2021.01.13
#진주의바깥생활
ep. 7 걷고, 기도하고, 시작하기 좋은 이곳, 전라남도 신안의 12사도 순례길을 다녀왔다. 
호수 위에 떠있는 바르톨로메오, 감사의 집

호수 위에 떠있는 바르톨로메오, 감사의 집

 
 
 ‘천사의 섬’이라 불리는 이유는 1,004개의 섬을 상징하기 때문이지만, 실은 1,02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외딴 섬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더할 것이다. 흩어진 섬들의 마을, ‘신안군도’ 얘기다. 
 
 
뱃길도 드물게 열리는 이 수많은 섬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이곳에서 국내외 건축가와 설치미술가들이 정주하여 특별한 건축물을 짓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부터 호기심이 발동한 이유다. 혹은 관광객을 확 끌어들이기 위해 뚝딱 쌓았다가 이내 쓸쓸하게 허물어지는 전시용 벽화일 수 있겠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너른 갯벌과 노두길을 배경으로 제모습을 드러낸 건축물 사진을 보고 일찍부터 반하고 말았다. 인도의 황금사원과 지중해의 외딴 등대, 알프스 능선에서 보던 귀여운 채플이 신안의 작은 섬으로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작고 아름다운 조각품은 섬의 일부가 되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은 자연스레 압해도 송공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이끌었다.
 
12사도 순례길 중 하나인, 소악도 솔숲에 있는 시몬의 집

12사도 순례길 중 하나인, 소악도 솔숲에 있는 시몬의 집

 
 
‘12사도 순례길’은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와 작은 섬 2곳 등 섬 5개를 잇는다. 이곳에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출발지는 압해도 송공선착장. 천사아일랜드호를 타고 1시간가량 배를 타면 순례길의 시작점인 대기점도에 도착한다. 차량이 진입할 수 있으나 섬과 섬을 잇는 노두길이 협소해 몸만 홀연하게 배에 오르는 편이 낫다. 선착장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한 바퀴 돌아도 한나절이면 충분한 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다리로 느릿느릿 걸으며 12km의 순례길을 탐험하는 것이다. 새 지저귐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북촌마을의 돌담을 따라, 갯벌의 김 양식장과 바다를 쫓다 보면 오히려 섬의 길이 짧게 느껴질 것이다.  
 
베드로의 집에 있는 작은 종

베드로의 집에 있는 작은 종

대기점도에 도착하니 ‘베드로의 집’을 가장 먼저 만난다. 그리스의 새하얀 회벽과 짙푸른 지중해를 닮은 둥근 지붕의 예배당에는 순례길 시작을 알리는 작은 종이 달려 있다. 누구라도 자유롭게 소리내고, 드나들고, 머물 수 있다. 종교적 공간보다는 이방인에게 낯선 길을 안내하는 쉼터에 가깝고, 마음을 위로하는 명상터를 닮았다. 고요히 앉아 작은 염원이라도 바라게 된다. 
 
소악도 노두길 삼거리에서 만난 유다 다대오

소악도 노두길 삼거리에서 만난 유다 다대오

 
 
작가에 따라 고유의 특색을 발산하는 예배당의 외관도 지극히 아름답지만, 우아하고 섬세한 내부 디자인에 더욱 마음이 흔들거린다. 예를 들어, 오색 빛이 내리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천창(안드레아의 집)이나 아줄레주 세라믹 타일로 장식한 염소(요한의 집), 별들이 내려와 박힌 듯한 구슬 바닥(토마스의 집), 우아한 곡선의 스테인드글라스 물고기 창(작은 야고보의 집), 오리엔탈 타일 바닥과 청동 촛대(유다 다대오의 집) 같은.
 
갯벌 한 가운데 위치한 마태오의 집

갯벌 한 가운데 위치한 마태오의 집

 
 이 아름답고 상징적인 12개의 채플을 모두 둘러보려면 마음이 무척 급해진다. 밀물 때 물이 들면 섬을 잇는 노두길이 바닷속으로 잠기기 때문이다. 특히 밀물 때에 소악도 갯벌 정중앙에 있는 마태오의 집은 그야말로 섬이 된다. 수 시간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오히려 물때를 기다려 타인으로부터 기꺼이 고립되고 싶어 하는 여행자도 보인다. 물때는 매일 변하기 때문에 매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예측 불가한 상황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극복하는 것이 여행의 속성이라면, 12사도 순례길은 그런 여행의 묘미를 선물한다. 조금 외로운 여행길일지는 몰라도 기꺼이 즐기게 된다.




순례길의 마지막에서 만난 가롯 유다의 집

순례길의 마지막에서 만난 가롯 유다의 집

 
소악도에 속한 ‘딴섬’은 작은 마을과 대나무 숲, 해변을 가로질러 걸어 들어가야 하는 순례길의 마지막 코스. 딴섬의 암반 언덕 위에서 둥근 첨탑이 인상적인 붉은 벽돌 건물, 가롯 유다의 집을 만난다. 딴섬으로 가는 길은 끝내주고, 가로지르는 해변에서 신안 특유의 김 양식 풍경을 마주한다. 소악도에서는 여전히 대나무와 참나무 가지를 바다에 꽂는 17세기 방식의 섶양식으로 김을 기른다. 해안에는 널부러진 청정 해초도 많은데, 바닷물에 쓱 씻어 라면에 넣어 먹으면 된다. 소기점도에 있는 마을 게스트하우스에서 내는 평범한 백반에서도 김전은 늘 융숭하게 올라온다. 물때를 놓치면 이 아름다운 풍경을 멀리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곳까지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가롯 유다의 집 내부의 쿠루

가롯 유다의 집 내부의 쿠루

 
 
걷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년을 시작하고 싶다면, 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보내길 추천한다. 마을 홈페이지에 순례길이 ‘한겨울에 걸어도, 무진장 걸어도 힘들지 않은 길’이라 적혀 있는데 정말 그렇다.
 
찾아가는 길 신안 압해도 송공여객선터미널에서 대기점도로 향하는 여객선이 하루 4회 운항한다. 대기점도, 소악도 선착장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으며 이용 요금은 1일 1만 원.
 
숙박 소기점도에 마을 게스트하우스(061-246-1245, 식당 운영)가 있으며, 소악도 민박, 노두길 민박, 북촌 민박 등 민박집 5곳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문의 기점소악도.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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