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바깥생활
ep 5. 정선 하루 여행 시나리오
오전 8시 34분, 청량리역을 출발한 정선아리랑열차가 제천과 영월, 민둥산을 지나 오후 12시 15분에 정선역에 도착한다. 종착지인 아우라지역에서 오후 5시 22분에 하루 딱 1번의 상행선이 출발하므로 당일치기 여행자에게 약 5시간의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기차를 놓쳐도 좋다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돌아본 정선의 정서.
12:35pm 정선역

정선역 전경
매월 2, 7이 들어가는 오일장날과 주말이면 기차는 오로지 산촌 장터를 목적지로 한 여행자들로 북적거린다. 이들 가운데에는 봇짐을 진 이들도 보인다. 봄나물을 쌓아두고 베자루에 담아내는 4~5월이면 풍경은 더 극적일 것이다. 여행자 대부분은 약속처럼 정선역에서 하차한다. 민둥산 억새 숲을 걷거나 레일바이크 페달을 밟으려는 이들은 각각 민둥산역과 종착지인 아우라지역에서 사라진다. 코로나 시대의 기차 안은 무척 고요하지만, 기쁜 기대는 마스크 너머로 드러난다. 탄광 산업 호황 시기에는 옆 동네인 고한, 사북, 증산에서 기차를 타고 정선역으로 모였다. 보부상과 상인들, 그리고 호황기를 좇아 전국에서 온 사람들로 역 주변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더는 당시 풍경을 떠올리기 힘들지만 여전히 역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난 골목에는 여인숙과 주막 간판이 꼿꼿하다.

정선역 근처에 위치한 은혜식당. 손칼국수와 메밀국죽이 일품이다.
은혜식당 강원 정선군 정선읍 녹송8길 49 손칼국수 5천 원, 메밀국죽 6천 원, 감자옹심이 6천 원
1pm 정선아리랑시장

1957년에 설립한 정선성당

정선성당 내부

정선의 수제맥주, 아리비어

먹자골목에 위치한 황기막국수. 정선주민이 즐겨 찾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정선아리랑시장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 349-20
4pm 북평면

북평면 번영슈퍼
오후 4시 정선공영버스 와와버스에 올라 나전역이 자리한 북평면에 이른다. 정선역에서 조양강 물길을 따라 조성한 아리바우길로 걸어간다면 약 17km,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정선읍사무소 사거리에 있는 원주쌀상회에서 달큰한 커피를 내어준 차미숙 사장님은 40kg를 훌쩍 넘긴 쌀 포대를 자전거에 싣고 이 북평면까지 매일 배달을 나갔다고 했다. 종종 자전거를 타고 느릿하게 지나가는 어르신만 눈에 띌 뿐 정적만 흐르는 작은 마을에 가장 기운 생동한 곳이 있다. 오랜 시간 슈퍼였고, 10년 전부터 가겟방을 활용해 토속음식을 내는 번영식당슈퍼다. 조용한 주택가와 밭길 사이에서 만난 가게는 평범한 시골 슈퍼처럼 보이는데,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간다. 한 사람 겨우 들어갈 비좁은 선반엔 라면과 과자, 생필품들이 있고, 그 반대편에 테이블을 놓았다. 가게 안쪽으로 난 부엌을 가운데 두고 사방의 크고 작은 방에서 사람들이 묵묵하게 밥을 먹고 있다. 장성한 4남매 대학 졸업 사진과 메달, 근속표창장이 인테리어다. 북평고등학교와 나전중학교 졸업앨범 옆에는 가족 앨범이 나란히 꽂혀 있다. 김인자, 최승옥 부부가 운영하는 번영식당은 이미 입소문이 나 바쁜 일손을 딸 최성미 씨가 돕는 중이다. 보리비빔밥을 주문하자 찬과 국을 15가지 낸다. 양도 어찌나 푸짐한지, 강된장을 넣고 수북하게 찬을 올려 비비면 두 사람은 든든하게 먹을 만하다. 배가 고프지 않아 두 사람이 보리밥 1개를 주문했는데, 밥을 먹어야 든든하다며 두 그릇 가득 준다. 촬영한다고 밥이 식으니, 어느새 뜨끈한 밥으로 바꿔 놓는다. 더욱이 이 모든 것이 5천 원에 불과하니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친절하고 다정한 노부부의 환대와 푸짐한 인심에 정선의 하루가 따뜻해진다.
* 정선 공연버스인 ‘와와버스’가 정선터미널과 북평면을 잇는다. 북평을 지나 정선선의 종착지인 아우라지역(여량)을 향하는 버스가 하루 9회 출발하니 미리 배차 시간을 확인하자.
번영슈퍼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북평3길 58-6(북평마을회관 뒷편) 보리밥, 가수기, 콧등치기 등 모든 식사 메뉴 5천 원, 라면 3천 원
5pm 나전역카페

나전역카페

카페로 탈바꿈한 나전역.
11월 21일에 카페로 오픈한 기차역은 역무실, 대합실의 구조를 살리고 내부를 현대적으로 꾸몄다. 목조 건물의 빛바랜 창문틀과 기다란 벤치, 승차권함, 추운 대합실을 데우던 난로 등이 남아 있어 옛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청랑리행 기차를 기다리며 곤드레라떼와 곤드레아란치니를 먹어 보자. 한켠에 열차 시간표가 있지만 더는 개표하지 않는다. 아우라지역에서 출발한 청량리행 무궁화호에 올라 기차 안에서 기차표를 사면 된다. 겨울 해의 낙하를 바라보며 산촌을 떠나기로 한다. 나전역에서 오후 5시 30분에 출발한 무궁화호는 저녁 9시 30분 청량리역에 도착한다.

나전역카페의 주인공, 곤드레라떼와 곤드레아란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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