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없이 행복한 정선 하루여행 #진주의바깥생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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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이 행복한 정선 하루여행 #진주의바깥생활

어지러운 현실을 떠나고 싶을 땐, 정선으로 떠나보자.

BAZAAR BY BAZAAR 2020.12.02
 

#진주의바깥생활  
ep 5. 정선 하루 여행 시나리오 
 
오전 8시 34분, 청량리역을 출발한 정선아리랑열차가 제천과 영월, 민둥산을 지나 오후 12시 15분에 정선역에 도착한다. 종착지인 아우라지역에서 오후 5시 22분에 하루 딱 1번의 상행선이 출발하므로 당일치기 여행자에게 약 5시간의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기차를 놓쳐도 좋다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돌아본 정선의 정서.
 
 
 

12:35pm 정선역

정선역 전경

정선역 전경

 
매월 2, 7이 들어가는 오일장날과 주말이면 기차는 오로지 산촌 장터를 목적지로 한 여행자들로 북적거린다. 이들 가운데에는 봇짐을 진 이들도 보인다. 봄나물을 쌓아두고 베자루에 담아내는 4~5월이면 풍경은 더 극적일 것이다. 여행자 대부분은 약속처럼 정선역에서 하차한다. 민둥산 억새 숲을 걷거나 레일바이크 페달을 밟으려는 이들은 각각 민둥산역과 종착지인 아우라지역에서 사라진다. 코로나 시대의 기차 안은 무척 고요하지만, 기쁜 기대는 마스크 너머로 드러난다. 탄광 산업 호황 시기에는 옆 동네인 고한, 사북, 증산에서 기차를 타고 정선역으로 모였다. 보부상과 상인들, 그리고 호황기를 좇아 전국에서 온 사람들로 역 주변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더는 당시 풍경을 떠올리기 힘들지만 여전히 역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난 골목에는 여인숙과 주막 간판이 꼿꼿하다. 
 
정선역 근처에 위치한 은혜식당. 손칼국수와 메밀국죽이 일품이다.

정선역 근처에 위치한 은혜식당. 손칼국수와 메밀국죽이 일품이다.

그 한편에 은혜식당이 있다. 정선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손수 제분해 요리하는 손칼국수와 메밀국죽을 친절하게 내던 작은 밥집이 30년 한 자리에 있다. 은혜식당의 메밀국죽을 꼭 먹어보라는 한 선배의 추천이 있었지만, 메밀을 쑤려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메밀국죽은 메밀쌀에 무잎 배춧잎 질경이 능쟁이 있는 대로 넣고 장을 풀고 끓여 온 식구 끼니를 때우던 정선의 음식이다. 강원도의 척박한 땅을 버티던 슬픈 음식이자 식구끼리 정 나누던 그리움의 맛인 것이다. 오래된 식당을 지키는 할머니는 요즘 힘에 부쳐 마음에 내킬 때만 문을 연다고 말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일장터로 향한다. 동강의 지류인 조양강을 가로지르는 제2정선교를 지나면 정선아리랑시장이 있는 읍내로 들어선 것이다.
 
 
은혜식당 강원 정선군 정선읍 녹송8길 49 손칼국수 5천 원, 메밀국죽 6천 원, 감자옹심이 6천 원
 
 
 

1pm 정선아리랑시장

1957년에 설립한 정선성당

1957년에 설립한 정선성당

 
정선성당 내부

정선성당 내부

정선을 신속하게 구경하기 위해 정선아라리시장과 주변 볼거리를 연계한 정선시티투어버스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찬찬히 걸었을 때 발견하는 시간성이 분명 있다. 숲이 되어 버린 텅 빈 여인숙에 들렀다가 붉은 벽돌의 목욕탕 건물, 정선아리랑 음반과 LP를 판매하는 뮤직아트 그리고 1965년에 처음 문을 연 백양다방을 차례로 만난다. 정선군청 사잇길에 숨은 듯 자리한 정선성당은 1957년 설립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정선아리랑시장을 향한다. 먼 곳에서도 애써 찾아 오는 장터로 유명해진 까닭은 1999년부터 운행한 정선아리랑열차 덕분이지만, 산골과 바다 사이라는 지리적 위치 덕에 많은 보부상을 불러들였고 정선에서 가장 큰 장터로 유명했다. 
 
정선의 수제맥주, 아리비어

정선의 수제맥주, 아리비어

먹자골목에 위치한 황기막국수. 정선주민이 즐겨 찾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먹자골목에 위치한 황기막국수. 정선주민이 즐겨 찾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솥뚜껑을 뒤집은 것 같은 팬 위로 얇게 메밀전 부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지글거린다. 메밀전과 전병, 수수부꾸미를 부치는 식당들 옆에는 곰취, 곤드레, 다래, 취나물 말린 더미가 잔뜩 탑을 쌓았다. 말린 나물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은 각종 약재와 약초들이다. 특히 소나무 뿌리에 나는 송근봉과 작은 벌레처럼 보이는 도꼬마리는 무척 생소하고 신기한 볼 거리다. 아리랑공연장에는 공연 구경에 빠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진동하고 소문난 식당에는 줄이 늘어서 있다. 먹자골목에 자리한 황기막국수(033-563-0563)는 정선 주민이 더 즐겨 찾는 식당. 모듬전과 곤드레밥, 콧등치기, 올챙이국수를 다양하게 주문해보자. 어떤 메뉴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청아랑몰에서 정선에 정주한 청년들의 새로운 아이템도 만난다. 곤드레로 만든 쿠키(곤디), 정선 고랭지 사과로 만든 동결건조 사과칩(트리앤팜), 정선에만 있다는 돌인 운기석(운기석&라이프) 그리고 정선의 수제맥주 아리비어를 맛볼 수 있는 청아랑펍까지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흐른다.
 
 
정선아리랑시장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 349-20
 
 
 

4pm 북평면

북평면 번영슈퍼

북평면 번영슈퍼

 
오후 4시 정선공영버스 와와버스에 올라 나전역이 자리한 북평면에 이른다. 정선역에서 조양강 물길을 따라 조성한 아리바우길로 걸어간다면 약 17km,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정선읍사무소 사거리에 있는 원주쌀상회에서 달큰한 커피를 내어준 차미숙 사장님은 40kg를 훌쩍 넘긴 쌀 포대를 자전거에 싣고 이 북평면까지 매일 배달을 나갔다고 했다. 종종 자전거를 타고 느릿하게 지나가는 어르신만 눈에 띌 뿐 정적만 흐르는 작은 마을에 가장 기운 생동한 곳이 있다. 오랜 시간 슈퍼였고, 10년 전부터 가겟방을 활용해 토속음식을 내는 번영식당슈퍼다. 조용한 주택가와 밭길 사이에서 만난 가게는 평범한 시골 슈퍼처럼 보이는데,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간다. 한 사람 겨우 들어갈 비좁은 선반엔 라면과 과자, 생필품들이 있고, 그 반대편에 테이블을 놓았다. 가게 안쪽으로 난 부엌을 가운데 두고 사방의 크고 작은 방에서 사람들이 묵묵하게 밥을 먹고 있다. 장성한 4남매 대학 졸업 사진과 메달, 근속표창장이 인테리어다. 북평고등학교와 나전중학교 졸업앨범 옆에는 가족 앨범이 나란히 꽂혀 있다. 김인자, 최승옥 부부가 운영하는 번영식당은 이미 입소문이 나 바쁜 일손을 딸 최성미 씨가 돕는 중이다. 보리비빔밥을 주문하자 찬과 국을 15가지 낸다. 양도 어찌나 푸짐한지, 강된장을 넣고 수북하게 찬을 올려 비비면 두 사람은 든든하게 먹을 만하다. 배가 고프지 않아 두 사람이 보리밥 1개를 주문했는데, 밥을 먹어야 든든하다며 두 그릇 가득 준다. 촬영한다고 밥이 식으니, 어느새 뜨끈한 밥으로 바꿔 놓는다. 더욱이 이 모든 것이 5천 원에 불과하니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친절하고 다정한 노부부의 환대와 푸짐한 인심에 정선의 하루가 따뜻해진다.
 
* 정선 공연버스인 ‘와와버스’가 정선터미널과 북평면을 잇는다. 북평을 지나 정선선의 종착지인 아우라지역(여량)을 향하는 버스가 하루 9회 출발하니 미리 배차 시간을 확인하자.
 
번영슈퍼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북평3길 58-6(북평마을회관 뒷편) 보리밥, 가수기, 콧등치기 등 모든 식사 메뉴 5천 원, 라면 3천 원
 
 
 

5pm 나전역카페

 
나전역카페

나전역카페

석탄산업이 한창이던 1969년 ‘보통역’으로 문을 연 나전역은 증산에서 구절리까지 달리는 정선선 완행열차가 지나던 길이었다. 외관은 한때 그림 벽화로 꾸며져 있었고, 지금은 1960년대 옛 모습으로 복원한 상태. 하루에 2번, 상행선과 하행선이 오가는 간이역으로 남아 있다. 선로 옆에 전시한 흑백 사진 속에는 온갖 짐을 안고 열차에 오른 사람들의 분주한 표정이 생생하다. 하루 1천 명의 승객이 이용하던 정선선은 이제 지나간 역사가 되었지만, 공간은 여전히 시간을 품고 있다. 






카페로 탈바꿈한 나전역.

카페로 탈바꿈한 나전역.



11월 21일에 카페로 오픈한 기차역은 역무실, 대합실의 구조를 살리고 내부를 현대적으로 꾸몄다. 목조 건물의 빛바랜 창문틀과 기다란 벤치, 승차권함, 추운 대합실을 데우던 난로 등이 남아 있어 옛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청랑리행 기차를 기다리며 곤드레라떼와 곤드레아란치니를 먹어 보자. 한켠에 열차 시간표가 있지만 더는 개표하지 않는다. 아우라지역에서 출발한 청량리행 무궁화호에 올라 기차 안에서 기차표를 사면 된다. 겨울 해의 낙하를 바라보며 산촌을 떠나기로 한다. 나전역에서 오후 5시 30분에 출발한 무궁화호는 저녁 9시 30분 청량리역에 도착한다.
 
나전역카페의 주인공, 곤드레라떼와 곤드레아란치니

나전역카페의 주인공, 곤드레라떼와 곤드레아란치니

나전역카페 강원 정선군 북평면 북평8길 38 나전역, 곤드레아란치니 4천 원, 곤라떼 5천5백 원, 나전역크림커피 6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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