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예술가들의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기록

펜과 종이로 마음을 전하던 시절, 예술가들이 주고받은 사적이고도 은밀한 편지 안에 담긴 사랑과 우정, 유머와 정성.

BYBAZAAR2020.11.11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 루치안 프로이트가 스티븐 스펜더에게 보낸 편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 루치안 프로이트가 스티븐 스펜더에게 보낸 편지.

얼마 전 한 통의 편지를 썼다. 아마도 이번 해 작성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그 편지는 네 번의 수정 끝에 완성되었지만 결국 상대에게 전하지는 못했다. 솔직한 감정을 전하는 데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앞섰고 그것이 내 손을 떠나 타인의 품에 평생 남는다는 생각이 들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에게 보낸 편지.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에게 보낸 편지.

부치지 못한 편지가 마음에 남아서일까,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책 〈예술가의 편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책(혹은 편지)의 한 구절이지만. “26일 목요일 오후 내 생일파티에 참석해 주기를 바라/ 이번엔 나도 진탕 마실 거야.”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이 메시지는 두 가지 이유로 나를 놀라게 했다. 이 편지의 발신인이 날카롭고 풍자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조지 그로스라는 점(그가 술을 ‘진탕’ 마실 줄 아는 유쾌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과 오늘날 모바일 메신저로나 주고받을 법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이런 손글씨로 전해진다는 사실 말이다.
 
앤디 워홀이 러셀 라인즈에게 보낸 편지.

앤디 워홀이 러셀 라인즈에게 보낸 편지.

어쩌면 내가 편지에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천천히 예술가들이 부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되던, 대면 외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편지였던 시절 그들의 이야깃거리는 무엇이었을까. 편지의 목적은 그 수신인만큼이나 다양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어떤 분야든 누구 못지않게 잘할 수 있”다며 자신의 온갖 재능을 어필하는가 하면(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루도비코 스포르차에게), “제 인생은 관제엽서 한 장 분량도 안 됩니다. 1928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났습니다. 카네기 공과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뉴욕 시의 바퀴벌레가 들끓는 아파트에서 다른 아파트로 이사 중입니다.”라며 위트 있게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기도 한다(앤디 워홀이 당시 〈하퍼스 바자〉의 보조 편집자 러셀 라인즈에게). 노년의 세잔이 에밀에게 보낸 편지에선 인생에 대한 고뇌 또한 엿볼 수 있다. “내가 그토록 오랜 세월 노력했던 목적을 언젠가 이루게 될까? 그러면 좋겠는데, 그 전엔 어슴푸레한 불쾌감을 떨칠 수 없을 것 같네. 항구에 당도해야, 그러니까 지난날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전되는 무언가를 깨닫고, 그에 따라 이론을 증명했을 때 비로소 사라질 테지.” 예술가다우면서도 공감 가는 그의 글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쓰인 편지들은 한 권의 문학작품을 읽은 듯한 깊은 울림을 남겼다.
 
요코 오노와 존 레논이 조셉 코넬에게 보낸 편지.

요코 오노와 존 레논이 조셉 코넬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도로시아 태닝은 조셉 코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말한다. “때때로 사랑하는 이들과 만나는 단 하나의 진실하고 만족스러운 통로는 말보다는 글 같아요. 제가 보기엔, 우리가 주고받는 편지들이 뉴욕에서 잠깐 만나 많은 말을 했던 순간들보다 우리 감정을 더욱 진실되게 전달하는 통로가 돼요.” 수많은 디지털 대안이 있어도 꾹꾹 눌러담은 손글씨가 여전히 존재하는 까닭을 증명해내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전에 썼던 편지를 조만간 상대에게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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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컨트리뷰팅 에디터/ 문혜준
  • 사진/ 미술문화 출판사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