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추운 날이었다. 정작 이 집엔 햇살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인상이었다. 서울에서는 채광 좋은 집에 살고 싶어서 대로변으로 이사했다가 너무 시끄러워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채광은 좋은데 창문이 창문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이었지. 그런데 이 집은 채광이 좋다. 더불어 새소리가 넘쳐났다. 창밖에 들판이 있으니까 멍 때리기 좋을 것 같았고. 결정적으로는 가격이 쌌다. 물론 다 은행돈이지만.(웃음) 그래도 이 집이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망해도 집은 남을 것이고, 집이 망한다 한들 땅이라도 남을 테니까.
설계는 아는 분을 통해 진행하고 현지 인력으로 시공했다. 공사할 때는 나도 현장에 상주했다. 귀촌하는 집은 공사도 서울의 시공 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던데, 그렇게 하면 서울에서 정복자가 내려와 뒤집어 엎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 현지 인력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이런 우여곡절이 다 콘텐츠가 될 것 같았다. 단, 좋은 것에 대한 개념이 다르니까 주의해야 한다. 나는 마당에 있는 오래된 나무가 예쁜데 그분들은 치워야 된다고 하시고.(웃음) 잠깐 자리를 비우면 그런 ‘좋은 것’들이 사라져 있기도 했다. 마당에 있는 항아리들도 버리려고 하셨는데 다 쓸 거라고 말씀드리고 사수했다.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서, 이야기가 있는 집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둔 것 같다. 여기 분들은 익숙해서 그런지 이곳 풍경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시더라. 공사비를 들여가며 현대식의 개량된 집을 지으시는데 그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많이 들지 않았다. 지붕재도 제일 싼 걸 올렸고, 직접 짠 가구들도 합판이라 자재 자체는 저렴하다.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요소도 있다. 채광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햇볕이 잘 들도록 곳곳에 창문을 많이 냈고, 평소 로망이었던 조적욕조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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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을 리모델링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하는 점은?
도시에 있는 집들은 변수가 많지 않다. 도면도 어느 정도 비슷하고. 보통 20년 안짝이다. 반면 시골집은 뜯어봐야 아는 경우가 많다. 이 집도 합판으로 천장 마감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멋진 서까래가 숨겨져 있는지 몰랐다. 운이 좋았지. 이사 오고 나서 자연재해도 몸소 체험했다. 서울에 살 때 태풍 피해 소식을 들으면 남일처럼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시골에 살아보니 자연재해의 급이 다르더라. 집을 지을 때도 재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옛말에 “귀한 건 시골에서 먹고 버릴 건 서울로 보낸다”고. 이곳 어르신분들을 보면 여유롭고 뭐랄까… 다들 부자 같다.(웃음) 그리고 되게 쿨하시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땐 선뜻 나타나 도와주시는데 그러고는 쓱 사라지신다. 지난번엔 옆집 이여사님하고 쑥떡을 만들었다. 당연히 함께 먹을 생각으로 방앗간 심부름에 다녀왔더니 여사님은 이미 친구분들과 놀러나가셨더라고. 흔히 “귀농했더니 외지인이라고 따돌리더라” 같은 얘기는 글쎄. 도시생활이 힘들어서 도망치듯이 귀농을 했다면,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이만큼이나 했는데, 왜 나를 받아주지 않지?” 같은 서운함이 생길 것 같다.
부엌 한쪽, 싱싱한 식재료가 소쿠리에 소담스레 담겨 있다.
시골살이에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귀촌을 꿈꾸는 이유는 보통 도시생활이 바쁘고 힘들기 때문에 여유를 찾고 싶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여유로움이 무턱대고 쉬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길. 시골에 살면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걸 다 하고 나야 비로소 여유롭다. 그저 도시생활에 지쳐 도망치듯이 온다면 환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감을 발견할 것이다. 도시든 서울이든 사람이 어느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체력과 정신 모두 건강한 상태가 담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사 오기 전에 나 역시 도시생활과 조직생활에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고 심리상담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때 스스로를 객관화하며 돌아본 것이 지금 이곳에서 적응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이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단단해져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삶을 살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를 잘 돌아봐야 한다.
시골살이는 용기와 배짱이 두둑한 사람만 할 수 있을까?
‘용감하다’ ‘대단하다’ 이런 말을 자주 듣는데, 진심으로 나는 그냥 생각이 짧았던 것뿐이다. 구독자분들이 “앞으로 이건 어떻게 할 거예요?” “저건 어떻게 대비하세요?” 질문들 하시는데 내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 없어요.”다. 그날그날 해야 할 것들을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가더라.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그동안 너무 빡빡하게 살았구나, 그래서 계획대로 안 되면 내 성질에 못 이겨서 그렇게 성격이 더러웠구나 싶고.(웃음) 오히려 무계획으로 지내다 보니 새로운 이벤트가 들어올 공간이 생긴달까. 서울에서 가끔 우울했던 점이, 우연히 생기는 사건이 조금도 없다는 거였다. ‘나도 똑같이 버스 타고 서점 가는데 왜 남들 같은 특별한 사건이 안 생기지?’ 여기서는 우연히 생기는 일이 참 많다. 처음엔 그저 낯선 곳에 왔기 때문에, 아직 내가 뭘 몰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게 아니더라. 하루를 비워놓았기 때문이더라. 그 빈 공간에 무언가 들어올 여유가 있어서.
볕이 좋은 오후엔 됫마루에 나와서 커피를 마신다.
사는 공간을 바꾸는 것만큼 좋은 리프레시가 없다.
귀촌은 내가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충격요법이었다. 정말 서울생활이 안 맞는다면 다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올 수도 있고, 일시적인 권태라면 재충전해서 다시 돌아가면 된다. 그런 측면에서 내 또래의 사람들이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게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아무나 낼 수 있지만 여유는 만들어야만 얻을 수 있다. 대한민국 시골에 남아도는 게 빈집이다. 이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집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것이 있다면?
나와 같아야 한다. 나는 이 집을 날 닮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편안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므로 이 집도 그렇게 꾸몄다. 이 집에서 가장 비싼 자재가 원목마루인 것도 그런 이유다. 이미 여기저기 까지고 난리가 났지만.(웃음)
결국 공간을 만드는 건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은데.
자기 취향이 무엇인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생각해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시골살이를 시작하고 나서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이 공간을 내 것으로 채우고, 그 과정을 브이로그라는 일종의 일기로 담아내면서 정리가 되는 면이 있다. 진작 이럴 걸. 그동안 왜 시간을 허비했는지.(웃음)
여기서 처음 맞이하는 겨울은 어떤 풍경이었으면 좋겠나?
들판에 눈이 하얗게 쌓이길. 나는 거실 창문에서 그 풍경을 구경할 거다. 코타츠 안에서 발을 꼼지락거리면서 귤을 까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