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거장 칸디다 회퍼가 말하는 공간

사진가 칸디다 회퍼는 공적 공간의 표정을 담는다. 과거 도서관이었던 독일 글라드베크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Libraries : The Return(도서관: 복귀)»는 그에게 필연과 같다. 지난 일 년간 이 전시를 준비한 기획자 최진희와 칸디다 회퍼가 나눈 대화.

BYBAZAAR2020.10.14

Candida Space

독일의 글라드베크 시에서 운영하는 노이에 갤러리 글라드베크(Neue Galerie Gladbeck)는 루르 지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중 하나다. 이 미술관은 1954년 도시를 대표하는 광산산업에 종사하던 탄광 노동자들을 위해 건립된 도서관에서 출발했다. 건립 당시 도시의 다수 구성원이었던 노동자 계층에게 도서관은 사치라는 여론도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글라드베크 시민의 문화와 관계하는 소중한 장소가 되었다. 미술관의 관장인 베글은 이 멋진 공간에 세계 유수 건축물의 내부 공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칸디다 회퍼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고, 평소 작가로서 그를 매우 존경하고 우정을 쌓아온 나는 기꺼이 그의 개인전 기획을 맡게 되었다.
2019년 화창한 5월 어느 날 우리는 함께 미술관을 찾아 구석구석을 들여다보았다. 칸디다 회퍼는 이 독특한 공간에 대해 “사실 밖에서 볼 때는 매우 평범한 건물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안에 들어서니 거대한 시멘트 벽으로 구성된 사각형의 통 구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정확한 대칭 구조가 아닌 의식적으로 확인하게 만드는 다소 불안정해 보이는 구도에 매력을 느꼈다. 한쪽 벽 전면의 꽤 오래되어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굴절되어 알록달록하게 투영되는 빛도 참 아름다웠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전시 제의를 수락했다. 뿐만 아니라 미술관이 시립도서관으로 쓰이던 당시 독서실이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공간을 작품으로 만들어 도서관 시리즈에 추가하고 이번 전시에 새로이 선보이기로 했다.
과거 도서관으로 쓰였던 글라드베크 미술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의미에서 전시의 제목을 «Libraries : The Return»으로 정하고 회퍼의 가장 잘 알려진 도서관 시리즈를 주된 전시 작품으로 꾸미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서로 다른 장소에 존재하는 도서관들과 글라드베크 미술관의 깊은 역사를 한 장소로 소환하게 된 것이다. 관람객에게 공간들이 지닌 유형 혹은 무형의 역사를 상상하게 하고, 동시에 반세기 동안 사진예술가로서 고유의 역사를 만들어온 칸디다 회퍼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정을 준비했다. 전시를 기획하면서 그와 나눈 수많은 대화 중 일부를 공유하고자 한다.
 
〈Biblioteca dei Girolamini Napoli I〉, 2009, C-Print, 200x252.5cm. Copyright Candida Hofer/ VG Bild-Kunst Bonn

〈Biblioteca dei Girolamini Napoli I〉, 2009, C-Print, 200x252.5cm. Copyright Candida Hofer/ VG Bild-Kunst Bonn

작가님이 포착한 공간들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웅장하고 화려한 오페라 하우스의 객석은 텅 비어 있고 거대한 시립도서관 독서실엔 책 읽는 이 하나 없죠. 화려한 바로크식 왕실극장의 무대엔 연기를 하는 배우가 없고요. 작품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시는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불가피한 경우 사람이 들어간 작품도 있지만 내게 사람이 없는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존재를 더 강하게 느끼게 해줘요.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는 일단 건축 자체에 관심을 갖다가 서서히 공간 안의 수많은 디테일에 주목하기 시작해요. 이러한 디테일들은 만약 공간이 사람으로 꽉 차 있다면 쉽게 간과해버릴 수 있어요. 그리고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감상하다 보면 구석구석에 인간의 흔적과 그 존재의 증거가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음을 느끼게 될 거예요. 쉽게 비유를 하자면 우리가 파티에 갔을 때 사실 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렇군요. 더 나아가 감상자는 공간이 존재했던 과거, 그리고 공간이 존재하게 될 미래를 생각하게 되고 결국 시간을 초월한 공간과 홀로 마주하고 있는 나의 존재를 자각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내 작품을 감상할 때 많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마치 돋보기로 지도를 구석구석 살펴보듯이 감상하면서 공간 안에서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1970년 독일의 터키 이민자의 생활상을 담은 프로젝트를 6년 동안 하셨어요. 그 프로젝트의 중심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내겐 독일 문화 속에 자리 잡은 터키인들의 사는 방식과 그들만의 공간, 거실이나 가게의 진열대, 공원에서의 피크닉 등이 인상적이었어요. 결국 인간과 공간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타인의 사적 공간을 침해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이후 빈 공간을 촬영하게 되었어요. 얼마 전 당시 사진을 찍었던 한 터키 가족이 현재의 가족 사진(대가족이 되어 있는)을 보내면서 자신들의 사는 소식을 전해주어 감동한 일이 있었습니다.
 
〈Bibliotheque de la Sorbonne Paris I〉, 2007, C-Print, 200x289.3cm. Copyright Candida Hofer/ VG Bild-Kunst Bonn

〈Bibliotheque de la Sorbonne Paris I〉, 2007, C-Print, 200x289.3cm. Copyright Candida Hofer/ VG Bild-Kunst Bonn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의인화를 하곤 하십니다. 
사람도 개개인이 성격이 다르듯이 공간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거만한 공간, 겸소한 공간, 친절한 공간, 수줍은 공간, 착한 공간 등 내게 공간은 모두 다른 성격으로 다가오죠. 예를 들어 처음 간 장소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편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다면 각 공간의 성격을 형성하는 요소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건축양식, 형태, 색감, 구조, 디테일의 정렬 형태 등이 모두 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빛이죠. 같은 공간이라도 해 뜰 무렵과 해 질 무렵의 빛은 각기 다른 색감과 분위기를 연출하잖아요. 또한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다른 인상을 풍기듯이 오랜 세월의 흔적을 축적한 공간은 다른 오라를 발산합니다. 지난 시간의 흔적, 사용의 흔적,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공간의 얼굴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보여줄 뿐이에요.
사진을 찍고 싶은 피사체는 어떤 식으로 선택하시는지요? 
특별한 계획은 없고 다만 열린 마음으로 임합니다.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장소나 친구들의 추천, 리서치를 하다가, 또는 기관들의 요청 등으로 결정할 때가 많아요. 난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아서 어떤 공간이든 그 공간의 역사가 궁금하고 그 공간의 얼굴이 보고 싶어져요. 물론 내가 꼭 방문하고 싶은 장소도 리스트에 추가합니다. 작년 한국에 갔을 때 국제갤러리 관장님이 추천한 경복궁과 당신이 추천한 한국의 해인사도 언젠가 꼭 답사해보고 싶어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소를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길 바랍니다.
 
디자이너?질 산더(Jil Sander) 의 외투를 입고 자신의 작품이 걸려있는 사옥 응접실에서 포즈를 취한 칸디다 회퍼.

디자이너?질 산더(Jil Sander) 의 외투를 입고 자신의 작품이 걸려있는 사옥 응접실에서 포즈를 취한 칸디다 회퍼.

피사체를 정한 이후 작업 과정은 어떤가요? 
피사체를 정하는 과정과 달리 일단 모티프를 정하면 철저히 계획에 따라 움직입니다. 처음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가 전시장에 걸리기까지는 참 많은 중간 과정을 거치죠. 여행 스케줄을 짜고, 때론 관공서에 촬영허가신청서를 제출하고, 촬영 후 이미지를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 인쇄를 해요. 처음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 이미지와 프린트가 되어 나온 이미지의 느낌이 많이 다르기도 하죠. 완성된 작품의 액자를 고르고 운송을 어레인지하는 등의 일련의 일들이 내겐 결국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은 플래시나 스포트라이트 없이, 일광이든 인공조명이든 실내에 주어진 빛만 이용하여 사진을 찍는다는 것인데 이는 공간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반면에 작업에 일종의 제한을 주지 않을까요? 
그래요. 특히 자연광을 선호하죠. 그런데 사람이 드나드는 공공 건물의 내부를 사람 없이 찍기 위해 주로 개장 전이나 후에 작업을 하는데 이는 일광이 있는 시간 안에 신속하게 작업을 마쳐야 함을 의미하죠. 다행히 그간 경험으로 카메라의 위치를 빠르게 결정할 수가 있어요. 건축물에 존재하는 대칭 구조나 기하학적 배열, 또는 소실점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주로 정면 중앙 구도나 대각선 구도를 선택합니다. 실내에 일광이 매우 적었던 한 공간을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삼각대에 고정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여유롭게 점심식사를 하고 온 적도 있었어요.
 
Biblioteca do Palacio e Convento de Mafra I 2006 C-Print 200x247.7cm Copyright Candida Hofer/ VG Bild-Kunst Bonn.

Biblioteca do Palacio e Convento de Mafra I 2006 C-Print 200x247.7cm Copyright Candida Hofer/ VG Bild-Kunst Bonn.

사진을 예술의 확고한 분야로 정착시킨 사진예술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계신데요. 저에겐 하셀블라트 카메라를 들고 리버풀 시인들의 발자취를 찾아 리버풀의 풍경을 자유로이 카메라에 담던 젊은 칸디다 회퍼의 모습이나 많은 것을 이룬 지금의 칸디다 회퍼나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티스트로서의 성공이란 작가님께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난 단지 사진을 찍는 일상을 사랑할 뿐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란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그 어떤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에요.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이 순간, 이 일상이 내겐 행복이며 성공입니다.
코로나 이후로 작업이 다소 제한되었는데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가장 아쉬운 건 여행이에요. 일 년 동안 쾰른의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내 남편이자 평생의 조력자인 헤버트 부어카트와 작업 때문에 혹은 휴가를 위해 밖에서 보낸 시간들이 더 많았어요. 요즘은 그동안 돌아다니느라 돌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는데 특히 아카이브 정리를 체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로 남아 있는 작업들을 디지털화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고요. 쾰른의 친구들을 만나 전시도 방문하고 맛집에서의 외식도 즐기고 있어요. 하지만 다시 여행이 허락되면 바로 가방을 챙겨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요. 9월에 상하이(9월 5일~10월 31일, 메튜 리우 파인 아트)와 한국의 국제갤러리 부산(9월 18일~11월 8일)에서 개인전이 열리는데 아쉽게도 코로나 상황으로 참석할 수가 없게 되었네요. 내년에라도 한국 방문의 기회가 있길 소망합니다.
 
※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 «Libraries : The Return»은 독일 글라드베크 미술관에서 10월 30일까지 열린다.

최진희 관장은 갤러리 문을 닫은 후 온전히 혼자가 되었을 때, 작품들이 살아나와 말을 건네는 마술과도 같은 순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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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최진희(초이앤라거 갤러리 쾰른/서울 관장)
  • 사진/ 남달라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