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지구를 병들게 하는 주범 중 하나인 패션 재고. 그 해결책은?

사실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한 것은 기후변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소리 소문 없이 지구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 이상징후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신호다.

BYBAZAAR2020.09.14


지구를 병들게 하는 주범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놀랍게도 패션 산업은 석유 다음으로 환경을 파괴시키는 분야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패션 산업은 전체 탄소 배출량의 10%, 폐수 배출량의 20%를 차지한다고. 
즉 옷을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환경적 비용을 발생케 한다는 사실. 전염병의 시대와 기후변화, 디스토피아행 급행열차에 탑승한 듯 지구촌의 급격한 위기를 몸소 느낀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당연할 수밖에.  
 
작년 파리에서 열린 G7 정상회담. 이 곳에서 패션계의 미래를 위한 고군분투를 포착할 수 있었다. 
구찌, 발렌시아가, 샤넬, 랄프 로렌 등 32개 회사, 1백50개의 브랜드가 동참한 ‘패션 팩트(Fashion Fact)’ 협약이 체결된 것. 이들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노력을 약속하며 이를 세계에 공표했다. 또 프랑스 정부는 세계 최초로 ‘폐기 방지와 순환경제법안’을 입법화했다. 이는 아마존이 소비자들이 반품한 수백만 개의 제품을 소각하는 행위를 고발한 TV 다큐멘터리 〈Capital〉이 방영된 후 벌어진 일이다. 비윤리적이고 환경파괴적인 재고 소각에 분노한 사람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 이것은 비단 아마존만의 문제가 아니다. 패션계도 마찬가지. 하이패션 브랜드들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게 파느니 버린다”라는 지침이 있다. 버버리는 지난 2018년, 4백억원이 넘는 대규모 재고를 소각했던 일로 몰매를 맞은 바 있다. 소비자와 환경단체들로부터 비난이 쇄도하자 2022년까지 친환경 보증 기준을 세운다고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과연 버버리 사건 이후 패션계는 얼마나 변했을까? 
 
많은 브랜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 소각이란 관행은 여전했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최근 상하이에서 공개된 2021 S/S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을 통해 확연히 찾을 수 있다. “내게 책임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그것에 대해 설교하기보단 모범을 보이며 다음 세대를 위한 문을 열고자 한다.”라고 말한 버질 아블로. 이번 쇼에는 ‘재활용’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다. 전체 쇼에서 단 두 개의 룩만 새로운 소재로 제작됐을 뿐. 25개의 룩은 과거 패션쇼에서 사용되었던 아이템을, 또 나머지는 재활용 소재를 활용했다. 
 
존 갈리아노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2020 F/W 컬렉션을 통해 빈티지 제품의 복제를 뜻하는 ‘레플리카(Replica)’를 확장한 개념, ‘레시클라(Recicla, 재활용과 가능성의 합성어)’를 새롭게 소개했다. 쉽게 말해 빈티지 아카이브 재활용을 통한 업사이클링이다. 
그는 이것을 패션 유산의 ‘복원’으로 설명한다. 이 라벨을 부착한 아이템들 모두 한정판으로 공개된다. 디젤은 2020 F/W 밀라노 남성 패션위크 기간에 ‘책임감 있는 삶을 위하여(For Responsible Living)’ 전략을 발표했다. 오래된 재고와 샘플들을 새롭게 재구성한 ‘업사이클링 포’ 컬렉션을 선보인 것. “어떤 것도 버리지 않습니다.”라는 알렉산더 맥퀸 하우스 역시 아카이브에 보관하고 있던 옷감을 컬렉션에 재사용한다. 
특히 쓰다 남은 원단을 패션 전공 학생들에게 기부하는 제도를 신설, 뜻깊은 나눔도 실천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인 슈즈 브랜드 올버즈도 기부를 선택했다. 자선 단체 ‘Soles4Souls’와 손잡고, 상태가 좋은 중고나 재고로 남은 신발을 모아 기부한다. 환경 메시지에 목소리를 높여온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잔여 패브릭과 재고, 폐기물을 관리하는 그린 로지스틱 허브(Green Logistics Hub) 시설을 통해 낭비를 줄이고 있다. 또 10주년을 맞은 재활용 소재 ‘아프리카 백’의 안감은 재고로 남은 셔츠를 주재료로 쓴다.
 
대한민국 패션계의 움직임도 놓칠 수 없다.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는 나이키와 손잡았다. 최근 공개된 ‘래코드 바이 나이키’ 프로젝트가 그것. 
이 프로젝트는 이천에 있는 나이키 물류센터에서 재고를 고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에 래코드가 속한 코오롱 그룹의 재고와 원단이 더해졌다. 래코드가 추구하는 정체성인 ‘해체와 재구성’ 콘셉트 아래 3천여 개의 재고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가방이 베스트가 되고, 스니커즈 밑창은 슬리퍼로, 남자 셔츠가 키즈용 점프수트가 되는 방식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편 100%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헬싱킹 패션위크에 참여하고 있는 오픈 플랜의 디자이너 이옥선의 재고 처리 방식은 최소한의 생산이다. “모든 브랜드가 그렇겠지만 수량 맞추기가 가장 힘듭니다. 개인적으로 재고 최소화에 있어서, 한국 시장의 전망은 밝다고 생각해요. 생산에 있어서 최적화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죠. 누구나 쉽고 빠르게, 또 소량으로 옷을 만들 수 있죠. 이로 인한 문제점도 분명 있지만, 장점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르 917의 신은혜 역시 지난해 〈바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선주문-후제작 시스템으로 ‘한정판’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품질 유지는 물론, 재고를 제로로 만드는 그녀만의 방식인 셈.  
 
 
한편 아트 워크나 가구 등 새로운 창조물로 재고 소진에 나선 브랜드들도 있다. 
발렌시아가와 가구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해리 누리에프(Harry Nuriev)가 협업하고 디자인 마이애미 2019를 통해 공개한 ‘발렌시아가표’ 리클라이너 소파가 바로 그것. 또 덴마크 브랜드 가니도 재고로 런던의 첫 매장 디스플레이를 꾸몄다. 재고는 카펫부터 알록달록한 소파, 트레이로 완성되었다. 얼마 전 공개된 리바이스와의 협업 캡슐 컬렉션도 주목할 만하다. ‘러브레터’ 컬렉션으로 모두 빈티지 리바이스와 재활용 데님을 업사이클링했다. 포인트는? 모두 ‘렌털’ 전용이라는 것! 최대 3주 동안 대여가 가능하다.
 
재고 처리를 위한 패션 브랜드들의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환경보호단체 그린 피스의 관계자는 결국 재고를 ‘과잉생산’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브랜드는 상품과 자연을 존중하지 않아요. 무척 고가임에도 불구하구요. 과잉재고는 과잉생산을 의미하죠. 근데 생산량을 줄일 생각은 않고 그냥 소각해버려요. 패션계 더러운 비밀이죠.” 결론인즉, 대량생산 이전으로 돌아가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밀레니얼 세대 75% 이상은 “더 비싼 값을 주고도 지속가능한 패션 아이템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라는 통계를 발표했다. 오늘날 젊은 소비자들은 의식 있는 소비를 통해 스스로 만족감을 얻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얘기다. 
 
필 환경의 시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또 의류 쓰레기 최소화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간단하다. 
적게 사고, 잘 고르고, 오래 입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