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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을까

‘없이’라는 커다란 포부를 안고 시작했지만 ‘덜기’라는 미약한 결과를 얻었다. 그러면 어떠한가! 지구를 5mm만큼은 지켰을지도 모르는데.

BYBAZAAR2020.07.20
 “죽을 때까지 음식을 하나만 먹어야 한다면 뭘 먹을 거야?” “라면이랑 김밥 중에서 평생 하나는 먹을 수 없다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가끔씩 이상한 화제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있지도 않을 일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곤 한다. 친구들과의 내기와는 상관없이 환경 오염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건 아보카도 덜 먹기다. 아보카도를 기르기 위해 드는 어마어마한 용수와 그로 인한 가뭄, 아보카도 농장이 몰려 있는 남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카르텔의 폭정을 낱낱이 밝힌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축산업과 멀어지지 못한 건 육류와 유제품을 아직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지만 두 달에 한 번 먹어도 참을 수 있을 만한 아보카도부터 시작한 것이다. 올해 들어 〈바자〉에서는 매달 ‘Sustainable Edit’ 페이지를 통해 환경 이슈에 대한 글을 싣고 있다. 동료들은 각각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제품과 제로 웨이스트 카페를 취재해 기사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반나절 만에 플라스틱은 당질 제한이나 곡기를 끊는 것처럼 무 자르듯 잘라낼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아보카도를 참는 마음으로 플라스틱을 참아보기로 슬쩍 노선을 변경했다.
 
마침 얼마 전 인적이 드문 언덕배기에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대형 슈퍼마켓에 가려면 왕복 40분은 걸어야 하고 두 블록 아래 편의점이 있지만 물건을 사서 언덕을 오르는 수고를 견뎌야 한다. 게다가 우리 집은 2층이고 1층에는 다른 가구가 사는데 택배함이 없어 휴일에만 택배를 받을 수 있다. 이삿짐과 딸려온(이사 오기 전 인터넷 장보기로 받아둔) 생수가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1인 가구에서 배출하는 플라스틱 중 가장 많은 것은 배달 포장재와 생수병이며 그 양이 다인 가족보다 많다고 한다. 나 역시 철저하게 통계를 따르고 있었다. 그제야 주변에서 많이들 사용하는 셀프케어 정수기에 눈을 돌렸다. 수돗물을 받아 필터로 걸러주는 간단한 과정은 1.5리터 생수 한 병을 만드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틀에 한 번꼴로 나오던 플라스틱 생수통이 사라지자 쓰레기의 부피가 거짓말처럼 줄었고 마음도 한 뼘만큼은 홀가분해졌다. 플라스틱을 줄여나가는 첫걸음이었다.
 
생활 반경에 편리함이 사라진 만큼 플라스틱 줄이기에는 어쩐지 더 나은 환경이 되었다. 택배를 끊고 필요한 것들은 직접 사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필요한 식료품은 근처 시장에 가 일주일치를 한꺼번에 사 왔다. 직접 상인들과 거래하니 포장에 대한 자유도가 높았다. 과일과 채소는 비닐봉지에 담지 않고 바로 장바구니에 넣고, 두부나 고기도 가져간 유리 그릇에 받아 왔다. 쓰고 남은 재료는 그대로 뚜껑을 닫아 보관하면서 플라스틱 포장재가 간편하지만 대체재가 없는 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상인들은 익숙지 않은 요구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이내 친절하게 새로 포장해 건네주었다. 마트와 배달 시스템에서는 이용할 수 없는 옵션이다.
 
겨우 두 가지를 바꿔보고 뿌듯함에 부풀어올랐던 마음은 집 안 이곳저곳에 놓인 플라스틱 제품을 보고 다시금 수그러들었다. 욕실에 놓인 세정제와 화장품은 거의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었고, 부엌과 세탁실 또한 같았다. 냉장고 안에 있는 소스와 조미료 역시. 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된 것이다.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싹 다 쓸어서 갖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바꿔가야 할 일이라는 점이다. 
 
이미 있는 용기를 쓰는 대신 리필 제품을 사용하고 재활용 포장재를 사용한 공산품을 쓸 수밖에 없다. 회사에 도시락을 싸 온 날 숟가락과 젓가락을 깜빡해 결국 나무젓가락을 쓰면서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괜찮은가?’ ‘조금 더 나은 대체재를 쓰는 것밖에 없을까?’라는 또 다른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떠났을 때 플라스틱을 피하는 어려움은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다. 당연하게 세면도구를 챙기고 플라스틱 소분 용기를 쓰지 않기 위해 화장품 등을 병째로 챙겼다. 텀블러도 배낭 옆구리에 끼고 의기양양하게 여행을 떠났다. 점심을 먹은 가게도 차를 마신 카페도 일회용품 줄이기에 동참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없는 여행도 어렵지 않네, 라며 안도했지만 저녁이 되자 편의점 안주와 맥주가 간절히 생각났다. 맛있는 저녁과 반주를 걸쳤어도 여행의 의례이자 마무리인 편맥을 할 수 없다니! 내가 참고 견딜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구별되는 순간 자랑스러운 다짐은 그렇게 무너져버렸다. 아보카도 가끔 먹기와 고기와 유제품 덜 먹기의 차이가 된 것이다.
 
그후에도 플라스틱을 멀리하면서 대체가 되지 않는 것들은 배제해야 하는 상황에 심심치 않게 부딪혔다. 식물로 만든 수세미나 나무 칫솔, 사탕수수로 만든 에코랩처럼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편리함으로 포장한 유혹적인 물건이 주변에 널려 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모든 생활 범위에 적용 가능한 바이오 플라스틱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는 것. 종이와 나무보다 더 친환경적인 바이오 플라스틱은 기존 플라스틱을 만들 때보다 탄소가 70%나 덜 배출된다. 플라스틱의 가장 큰 문제점인 잘 썩지 않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녹조류와 새우 껍질을 이용한 기술도 개발되었다. 생분해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제품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그때까지 마뜩잖지만 쓸 건 쓰기로 했다. 다만 뭐가 더 나은 소비인지 기억하고 따져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로 정했다. 무언가를 멀리하고 끊어내는 일은 다소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이다. 그래도 이 알량한 마음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면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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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의령
  • 사진/ Getty Images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