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루이스 부르주아와 '거미 부모'

평생 제 안의 지독한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해 예술을 했던 루이즈 부르주아의 생은 예술가가 아닌 모두에게도 적용된다.

BYBAZAAR2020.05.30
 〈Maman〉, 1999, Bronze, stainless steel, and marble 927.1x891.5x1023.6cm Collection The Easton Foundation. «Louise Bourgeois - To Unravel a Torment» Installation view museum Voorlinden Photo: Antoine van Kaam Glenstone Museum, Potomac, Maryland Louise Bourgeois ⓒ The Easton Foundation/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ARS), NY/Pictoright, Amsterdam 2019.

〈Maman〉, 1999, Bronze, stainless steel, and marble 927.1x891.5x1023.6cm Collection The Easton Foundation. «Louise Bourgeois - To Unravel a Torment» Installation view museum Voorlinden Photo: Antoine van Kaam Glenstone Museum, Potomac, Maryland Louise Bourgeois ⓒ The Easton Foundation/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ARS), NY/Pictoright, Amsterdam 2019.

1911년 크리스마스 날 태어난 루이즈 부르주아는 세상을 구원하러 온 예수처럼, 예술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하는 데 온 생을 바쳤다. 그녀에게 예술은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정화하고 치유하며 복원하기 위한 투쟁의 행위였다. 또 정신분석의 도구이자 상처를 대면할 수 있도록 하는 거울 같은 계기였다. 예술만큼 더 좋은 사람이자 더 좋은 아내, 더 좋은 친구가 되고 싶도록 독려한 대상도 없었다. “개인적인 것이 곧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문장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부르주아에게 개인적인 것은 작가적 생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신념이자 방식이었다. 인생은 비극, 하루하루가 고난이었다고 회고하던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100살까지 살았다.
 
“루이즈는 강과 함께 자랐어요.” 논픽션 동화책 〈거미 엄마, 마망〉은 엄마의 양탄자 복원 작업을 돕곤 하던 소녀가 어떻게 현대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유명한 작가가 되었는지를 서정적인 필체로 풀어낸다. 이를테면 그녀가 엄마를 매우 사랑했고, 엄마에게 배운 바느질을 작업에 활용했으며, 종일 실을 만지던 엄마를 떠올리며 ‘마망(엄마)’이라는 거미 조각을 만들었고, 거미가 성실함과 배려, 존경과 연민의 상징이라는 이야기는 누구라도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하지만 그녀 작업을 언급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삼류 막장 드라마적 내용은 (꿈과 희망을 먹고 살아야 하는 독자들 보호 차원에서) 다뤄지지 못한다. 가정교사 겸 보모와 아버지의 불륜, 병약한 어머니의 묵인과 방관, 절망과 상실감으로 방치된 아이들(성적으로 문란한 언니, 포악하고 괴팍한 남동생), 그리하여 차마 버리지 못해 감당해야 했던 가족과 함께 산 그녀의 트라우마. “내 모든 작품들, 내 모든 대상들은 모두 나의 어린 시절에서 영감받은 것들이다”라는 작가의 고백은 복숭아색 성장기가 아니라 핏빛 잔혹동화에서 기인했다.
 
“삶에서 나는 스스로를 희생자라고 본다. 그게 내가 예술을 하게 된 이유다. 내 예술에서만큼은, 나는 킬러니까.” 지난 2008년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회고전에서 부르주아가 말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위의 동화책에서는 ‘강둑을 따라 포플러 나무를 심은’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단언컨대 그에 대한 가장 낭만적인 표현일 것이다. 많은 인터뷰에서 부르주아는 딸인 자신에게도 모욕과 절망을 안긴 대상으로 그를 기억한다. 수학을 전공한 그녀가 미술을 한 것도 예술가를 경멸한 아버지를 향한 의도치 않은 저항이었다. 실제 부르주아의 초기 작품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이고, 폭력적이거나 날 선 에로티시즘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이 살던 집 형태의 조각을 철창 안에 가두고는 단두대를 설치한다거나, 뱀이 똬리를 튼 듯 성기를 포함한 상체를 감싸 다리만 남은 조각을 매단다거나, 한 남자와 일곱 여자가 침대에 누운 식의 일련의 작업에서는 증오와 복수심, 그리고 방어적인 퇴행성이 느껴진다.
 
특히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1974)는 그 분노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동굴 형태의 공간 안에는 라텍스와 석고 등을 재료 삼아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유방들과 남근 형상의 조각이 있다. 문제는 테이블 위에 절단된 채 널브러진 조각들, 즉 아버지의 절단된 사지다. 세 남매가 아버지의 팔다리를 찢고, 물어뜯고, 마침내 성공적으로 먹어버린다는 무시무시한 근친살육의 상상이 전제된 작업이다. ‘바람을 필 것 같지 않아’ 결혼했다는 남편 로버트 골드워터가 사망한 이듬해에 제작된 이 작품은(결혼 후 부르주아의 가정사는 문제가 없던 걸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과 반란의 욕망을 담은 작품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동화책이 말하지 못한 건 부르주아 가(家)의 비극만이 아니었다. 예컨대 모두가 〈마망〉을 알고 있는 데 비해, 그 작품이 탄생하는 데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드로잉으로만 존재하던 거미를 9미터에 이르는 거대 조각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건 그녀의 작가적 위상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드높아졌다는 사실의 방증이었다. 부르주아는 40대가 다 되어서야 미술가로 본격 활동했고, 60대 때 비로소 주류 미술계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70살이 넘어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여성 작가 최초로 회고전을 열었고(1982년), 82살 때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작가로 참가하여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1993년). 급기야 그녀는 95세의 나이에도 매주 자기 집에 미대생, 작가, 시인 등을 불러 모아 대화를 나누는 ‘선데이 살롱’을 열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예술계에서도 손꼽히는 대기만성형 작가다.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으며 사적 역사를 구축할 만큼 오래 살고, 끝까지 작업한 여성 작가가 드물기도 하거니와, 1960년대 말이 되어서야 근대성을 떨쳐내려는 혁명의 분위기가 본격화됐다. 이에 성(性), 페미니즘, 몸의 정치학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부르주아에 대한 재평가도 뒤따랐다. 물론 같은 이유로 그녀는 시대적 흐름과 운에 편승한 작가라는 혐의를 받기도 한다. 어쨌든 분명한 건 현대미술답지 않게 직관적인 작업임에도, 혹은 때문에 당시 현대미술을 대하는 태도 혹은 해석의 방식으로는 파악하기 힘들었고, 모두를 곤란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부르주아는 어떤 유파에 속해본 적이 없었다. ‘여성미술’의 대표주자로 거론되지만 정작 당사자는 부조리한 단어라 생각했고,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어울렸지만 그들을 믿지 않았다. 부르주아가 믿은 건 오로지 자기 경험과 감정뿐이었다. 그녀 작업의 독창성은 경험과 감정이 이끈 연대와 공감의 순간, 폐부에서 공명하던 기억과 상처가 살갗을 뚫고 나올 때의 통렬함, 그리고 미술이 사람을 울리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산산이 부서지는 그 지점에서 만개한다.
 
지난 2000년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에 〈마망〉과 함께 설치된 탑 형태의 작품 〈I Do, I Undo, I Redo〉(1999)는 모성을 성찰하고 나를 관조하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다른 차원의 세계로 향한 듯한 나선형 계단을 한 칸씩 딛고 올라가 자궁 속 태아를 대면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과 세상을 만나는 그 시간은, 다름아닌 부르주아 자신에게 가장 먼저 적용되었다. 말년에 이르러 어린 시절의 수수께끼와 비밀, 그리고 마법을 천에 수놓아 헝겊 책의 형태로 만들거나, 꽃 그림을 그리고는 ‘보내지 못한 편지’라 일컬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꽃은 아버지의 부정을 용서해주고, 나를 버린 어머니를 용서해준다. 또한 아버지를 향한 나의 적개심도 사그라들게 한다. 꽃은 나에게 있어 사과의 편지이고, 부활과 보상을 이야기한다.”(2010년, 국제갤러리 «Les Fleurs»전 中)
 
어쩌면 부르주아가 아버지를 그토록 증오했기에, 이후 이렇게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을 초월하는 모성을 고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분노해야 진정으로 슬퍼할 수 있고, 그래야 비로소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매일 느끼며 산다. 분노와 슬픔 사이의 진심을 방해하고 마비시키는 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다. 부르주아를 괴롭힌 대상도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는 조각을 통해,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직면하지 못한 시간, 이해하지 못해 지옥이었던 타자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미술은 복원이다. 그 목적이란 삶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 개인의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파편화된 대상을 완전한 무엇으로 만드는 일이다”라던 그녀의 말처럼, 그렇게 다시 살아내고(undo), 원형으로 돌아간(redo) 후에야 한밤중에 깨어 우는 것 이외에 무엇도 할 수 없었던 어린 부르주아와 결별할 수 있었다.
 
나는 종종 루이즈 부르주아의 드로잉, 남근을 가진 인간이 자궁에 아이를 품은 붉은 그림 〈The Maternal Man〉(2008)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앞에서 마찬가지로 부모이자 자식이었던 부르주아가 여성성, 남성성을 떠나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 것이라 확신하곤 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아이로서의 두려움뿐만 아니라 부모의 두려움을 목격하는 일이 잦아진다는 의미다. 자식은 두려움의 정체를 몰라서 이불 속에서 울고, 부모는 두려움을 감추려고 홀로 흐느낀다. 자식은 알고 싶은 부모의 속마음을 몰라서 슬프고, 부모는 모르고 싶은 자식의 속마음이 선명해서 슬프다. 자식은 제 부모의 과오를 똑똑히 기억하지만, 부모는 본능적으로 제 자식의 그것을 망각하려 애쓴다. 제 자신이 아니라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다. 늙은 부모가 아이만큼이나 취약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많이 기억하고, 더 오래 사랑했기 때문이다.
 
‘I love you. Do you love me?’라고 강박적으로 써 내려간 동명의 작품은 슬프기까지 하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와 “당신은 나를 사랑해?” 사이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태생적 불안이 숨겨져 있고, 그래서 부모는 감히 이토록 두려운 질문을 할 수 없다. 부모로서의 마음과 자식으로서의 마음이 다르지 않은 상태가 인간 된 도리건만, 간혹 둘은 속수무책으로 어긋나 나를 이율배반성과 죄책감에 몸 둘 바 모르는 지경으로 몰아넣는다. 따뜻함을 빙자한 속내 모를 이벤트로 북적거리는 작금의 시기는 역설적으로 이 간극을 새삼 상기시킨다. 며칠 전 나는 아이들과 함께 〈거미 엄마, 마망〉을 읽으며, 마망의 부러질 듯 강인한 다리를 대면했을 때처럼, 새삼 모두를 향한 지독한 연민이 엄습하는 통에 한참이나 눈을 깜빡깜빡 해야 했다.  

Keyword

Credit

  • 글/ 윤혜정(국제갤러리 디렉터)
  • 사진/ 국제갤러리 제공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