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파울라 레구가 전하는 파묻힌 진실에 대한 이야기

타고난 아티스트 파울라 레구. 그만의 방식으로 전하는 파묻힌 진실에 대한 이야기.

BYBAZAAR2020.05.16

Paula Rego

파울라 레구

자신의 캠든(Camden) 스튜디오에서 파울라 레구.

자신의 캠든(Camden) 스튜디오에서 파울라 레구.

오래전, 캠든 타운(Camden Town)에 있는 파울라 레구의 스튜디오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빛으로 가득 찬 거대한 방 사이를 걷자 마치 극장의 백스테이지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그의 옷과 테이블 위에 가득 쌓인 소품들을 샅샅이 살펴보고 싶었다. 물론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와 악수를 나눈 후 이 특별한 기회를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것처럼 웃었다. 레구의 두 눈은 매우 빛나는 동시에 매우 어두웠다. 그 눈이 그의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연극을 보러 갈 땐 연극이 끝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레구의 스튜디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의 퍼포먼스를 그곳에 보관하고 있다. 현재 84세인 레구가 설명한다. “제가 만든 캐릭터는 각기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 같아요. 그들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휴식을 취하죠.” 대부분은 판타지와 연극을 향한 그의 애정에서 탄생되었다. 레구는 인생의 가장 약한 부분을 순수한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초월적 상상력(transcendental imagination)’이라 부른다.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스토리를 전달하지만, 그 어떤 그림도 단순한 플롯으로 짜여 있지 않다. 레구는 현실을 통제함으로써 진실을 보여주려 한다. 이 작업을 수년 동안 해왔다. “전 진실을 파헤치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진실을 그대로 묻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란 걸 알게 되었죠. 숨기기보다는 표현하는 게 더 낫잖아요. 진실에는 황홀한 에너지가 있어요.”
 
파울라 레구, 〈The Policeman’s Daughter〉, 1987.

파울라 레구, 〈The Policeman’s Daughter〉, 1987.

레구의 작품은 20년 동안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책에서 본 그의 그림이 시작이었다. 자신의 팔을 경찰관의 부츠에 집어 넣고 있는 냉정한 표정의 소녀가 그려져 있었다. 여름 원피스를 입은 채 강아지처럼 쪼그려 앉아 으르렁거리는 여성의 그림도 있었다. 잔인한 게임을 하고 있는 어린 소녀들, 백설공주가 뾰족구두를 신은 계모의 도움을 받아 속바지를 입고 있는 장면 등.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그림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모호했고, 그림 속 여성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외형을 갖추지 않았다. 레구의 작품이 나를 사로잡은 이유는 여성의 육체와 내면에 내재된 파워, 에로티시즘, 위험을 표출해내고 싶어하는 그의 의지 혹은 충동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러한 요소들을 표출해낼 때 얻는 황홀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저는 완전히 뒤집어서 생각하고 싶어요. 언더독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거죠. 그래서 괴팍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어요.”
레구는 독재 정권 시절 포르투갈의 자유로운 중산층 가정에서 외동으로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작품 활동을 해왔다. 9살 무렵, 그는 바느질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렸다. 늙었지만 우아한 손과 시력이 좋지 않은 노부인이 대상을 바라보는 모습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데생 위주로 그림을 연습하는 그는 “파스텔을 사용하는 걸 좋아해요. 붓처럼 느슨하지 않고 단단하고 뚜렷하죠.” 라고 말한다.
 
파울라 레구, 〈Angel〉, 1988.

파울라 레구, 〈Angel〉, 1988.

그의 아버지는 영국 예찬론자였다. 1951년, 그는 레구가 아티스트로서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영국에서 교육을 이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1952년, 17살이 된 레구는 정해진 소수만이 갈 수 있는 슬레이드 미술대학(Slade School of Fine Art)에 합격했다. 후에 그는 여름학기 상까지 수상하게 된다.(지금까지도 그는 당시 받았던 화환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일찍이 영국에서 성공했음에도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1957년 포르투갈로 돌아와 빅터 윌링(Victor Willing)을 만나 결혼에 이른다. 그 후 1970년대까지 포르투갈에서 계속 살던 그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게 된다.    
중년이 된 레구는 놀랄 만한 커미션과 영예를 즐기게 되었지만 그런 그마저 20세기의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비껴갈 순 없었다.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죠. 여성 아티스트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갤러리나 쇼에 전시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 포트폴리오도 제대로 봐주지 않았죠. 여자들은 결국 아이를 갖고 작업을 그만둘 것이라는 편견으로 가득했어요.” 그는 50세에 가까운 1980년대까지 런던의 갤러리에서 전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현재 레구는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고, 고향에는 그의 작품을 영구적으로 전시하는 미술관이 있으며, 대통령궁의 벽화 또한 그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레구에게 요즘의 작업 루틴을 물었다. 먼저 어시스턴트이자 모델 릴라(Lila)가 아침에 스튜디오에 온다고 답했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눠요. 점심 전까지 작업을 하죠. 저는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은 후 잠시 쉬었다가 6시까지 다시 일을 한 뒤 집으로 가요. 그게 전부예요.”
 
샌드위치를 먹는다는 부분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들렸고, “그게 전부예요.”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나를 사로잡았다. 아티스트가 아닌 이들은 아티스트의 삶은 어떨지 궁금해하지만, 신비로움 뒤에 마주한 진실은 그저 육체적인 작업과 샌드위치였다. 그 외의 것을 파헤치기 위한 시도는 의미가 없었다. “가끔은 작업을 마치자마자 그것이 가진 의미를 발견할 때도 있어요. 어쩔 땐 한참 후에 발견하기도 하고요.” 수년 동안 창의적인 활동을 해온 레구는 더 이상 이러한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레구는 도발적인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낙태, 전쟁, 독재. 그는 언제나 정치적인 화가인 동시에 개인의 정신을 탐구하는 탐구자였다. 나이가 들면서 관심사가 바뀌지는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망할 브렉시트가 일어났고, 지구는 점점 파괴되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나이가 든다는 사실은 느껴지지 않아요.” 그가 가진 놀라운 잠재력을 마주하며 그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힘들죠.” 레구가 인정한다. 그가 스튜디오에 있던 모습을 생각한다. 먹고 남긴 샌드위치 조각이 놓여 있는 채로 파스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을 잇는다. 그의 마지막 말은 타고난 아티스트의 답변이었다. “예술이 아니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시 버튼(Jessie Burton)은 영국의 작가 겸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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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Jessie Burton
  • 사진/ Linda Brownlee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