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가 박찬경의 낮은 목소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시공간의 역사적 맥락을 꾸준히 통찰해온 자만의 날 선 문제의식으로, 현대미술가 박찬경은 동시대 미술과 그 너머 삶에 관한 유의미한 질문과 답, ‘모임’을 제안한다. | 국립현대미술관,미술,예술,현대미술,현대미술가

  국립현대미술관 5전시실 중앙, 일종의 ‘마당’인 <해인>(2019)에 앉은 박찬경 작가. 16개의 시멘트에 물결 무늬를 새긴 작업으로, 세계의 만물이 도장으로 찍은 듯 바닷물에 뚜렷하게 비쳐 보인다는 불교 개념을 육중하고 단단한 시멘트 덩어리로 표현했다. 지금껏 박찬경이 발언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영상과 사진을 다루는 현대미술가로 활동하기 전부터 각종 비평공동체의 일원으로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해왔다. 글과 작업을 관통하는 그의 관심사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필연처럼 불거진 식민주의, 분단, 냉전, 남북문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외된 대상(사람), 개념(미술사/미술제도), 정신(전통)을 ‘실재-현재’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의 현실주의 발언으로서의 작업은 ‘정치적’ ‘선동적’이라는 혐의를 받지만, 이는 전부가 아니거나, 일상에서 정치를 배제하는 이분법적 태도에서 기인한 오해다. 내게 박찬경의 작업은, 세상을 대하는 수만 가지 방식 중 얼마나 단순화된 몇 가지에 스스로를 결박한 채 살고 있는지를 통각에 가까운 인식으로 일깨우는 지적 장치다. 이념이나 사상에 앞서는 삶의 조건, 인간의 본질이라 해도 좋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내년 2월 23일까지)은 박찬경의 또 다른 발언의 장이다. 그간 이불, 김수자, 안규철, 임흥순, 최정화 등 현대차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의미심장한 전시를 열어왔지만, 그는 “미술작품에 고유한 미적 가치가 있다는 건 신화에 불과”하고 “작품의 의미는 그것이 놓인 맥락 속에서 생겨날 뿐”이라는 문제의식을 전제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스스로를 차별화한다. 그리고 2년 반 전 국제갤러리 개인전을 통해 과거와 현재, 시대와 시대인들 모두의 ‘안녕’을 기원했던 데 이어 이번에는 ‘모임’을 제안한다. 이 정체 모를 ‘모임’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숙지해야 할 질문이 있다. 오늘날 미술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미술이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전시 초입에서 관객을 반기는 <작은 미술관>(2019)은 ‘미술’과 ‘우리’의 가교 격인 ‘미술관’의 무의식적 이상향을 의식적으로 환기시키며 미술관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오랫동안 한국미술의 자생적 방법론에 골몰하며 “미술사 자체가 결국 상상의 제도에 불과한 것”이라 의심해온 박찬경이 쓴, 엉뚱하고 엉성하며 주관적인 미술관 역사. 일당 1원에 산신도를 그려주었다는 이응노의 일화, 산신당 사진, 한복 차림 학생들이 작품을 ‘올려다보는’ 1920년대 사료, 조선의 생활용품을 민예품이라 ‘올려 부르며’ 작품처럼 다룬 야나기 무네요시의 초상 등을 거쳐 전선택, 박이소, 정서영, 김범, 백승우 등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가 닿을 무렵, 전작 <작은 미술사>에서 표현한 바 “식민적 맥락 없음과 단절하는 ‘연결의 제스처’”가 미술사에서 미술제도로 구체화되었음이 확연해진다. “미술관이 절이나 교회처럼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근대식 미술관이 형성되기 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그림 등의 작품이 절이나 사당 같은 데만 있었던 건 사실이죠. 당시 산신당은 공적인 장소이면서도 사적인 기원이 모이는 공간이었고, 그림은 개인과 공동체, 성과 속의 세계를 결속했어요. 지금의 미술관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했을 때, 사당 안에 있던 그림들을 현대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겠나 한 겁니다. 이건 종교적 메시지가 아니라 유대의 이야기예요. 유대를 형성하는 매개이기도 하고, 초점이기도 하죠.”   22점의 이미지와 1점의 유화작품으로 구성된 <작은 미술관>(2019)은 작가가 주관적으로 재해석한 미술관의 역사다. 특히 낮은 담, 창, 회랑, 병풍 등 전통 건축의 요소를 추상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 작업을 완성한다. <작은 미술관>의 한 중간에서 만나는 이응노의 <군상>(1982)은 ‘박찬경식 유대’의 원형이다. 그림 속 군상들은 저마다의 몸짓으로 춤을 추는 것 같기도, 어디론가 뛰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름, 성별, 계급 모두 생략한 인간들의 움직임은 더할 나위없이 간결하고, 자유분방하고, 가볍고, 성숙하며, 생명력이 넘친다. 이를 두고 유럽인들은 68혁명을, 한국인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연상했다. “이름 없는 이들을 민중 혹은 대중이라 부르죠. 하위주체라는 의미의 서발턴(subaltern), 소수자, 김수영의 시에 등장하는 ‘풀’이라 일컫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범주화가 힘들어요. 그러려면 커뮤니티를 가정해야 하는데, 작금의 공동체에서 가능한가 싶어요. 어떤 커뮤니티가 가능한가 묻기 전, 기본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오히려 목적 없는 어떤 모임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봤어요. 그냥 같이 있는 거죠. 이를테면 68혁명 때 이들은 모르는 사람들과 거리를 함께 걸었을 뿐, 정치적 아젠다도, 서로 바라는 것도 없었다고 해요. 진정 자유로운 무위의 공동체죠.” 아무 이익도, 목적도 없는 모임이라니, 당최 낯설 수밖에 없다. 목적 없는 유대가 곧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거라면, 이를 알고는 있되 경험한 적 없는 기형적인 상황에서 온 무지다. 강력하게 관리되는 사회, 치열해지는 삶, 존재보다 생존에 목숨 거는 사회에서 이런 유대란 형성되기 곤란할 뿐 아니라 필요조차 없을지 모른다. 55분짜리 영상 <늦게 온 보살>(2019)과 그 ‘확장이자 출처’인 설치작 <모임> <맨발>(2019) 등이 모두 석가모니의 열반으로 상징되는 ‘누군가의 죽음’에서 출발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격변의 근현대사에서 희생된 이름 없는 이들을 기리는 사진 <세 개의 묘지>(2009)나 이들을 원귀로든, 원혼으로든 숲으로 불러내 함께 행진하는 영상 <시민의 숲>(2016) 등 그의 작업은 늘 애도의 정서를 전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누군가의 죽음조차 애도할 수 없는 ‘애도의 상실의 시대에 대한 애도’에 가깝다.   평소 사찰을 자주 찾아 다니는 박찬경은 화계사에서 ‘쌍림열반도’라는 그림을 본다. 석가모니의 열반을 지키는 제자들과 동물들이 함께 ‘모여’ ‘슬퍼하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마침 늦게 도착한 애제자 가섭존자를 향해 열반에 든 석가모니가 양발을 내밀었다는 ‘곽시쌍부’ 설화가 녹아 있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죠. 하지만 순진하게 희망을 갖고 연대하자,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깨닫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거죠. 그 불가능함에 대해 우리가 함께 슬퍼할 수 있다면 오히려 희망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문제가 그것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거니까요.” 그의 말을 빌리자면 “절망은 어떤 의미에서 희망의 깊이”다. <늦게 온 보살>에는 방사능 측정기를 들고 산을 다니는 가혜, 무슨 이유인지 산행을 계속하는 중년 여성 보살, 그림을 그리거나 부처의 두 발을 기계로 만드는 청년들 등이 등장한다. 대사라곤 “피할 곳이 어디입니까?” 뿐인데, 그마저도 선문답이라 의중을 파악하긴 쉽지 않다. 다만 작가는 일본 원자로의 이름이 하나같이 보살 이름을 땄다는 점을 일러바치고, 신의 권능을 과학으로 모방하려는 현대인류의 욕망이 내재되었음을 일깨우며,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를 위풍당당한 컨테이너를 등장시킴으로써, 이 이야기가 결국 후쿠시마 쓰나미, 세월호 참사 등 국경을 초월한 재난의 시대를 사는 이들을 향해 있음을 암시한다. 네거티브 필름으로 찍은 영상이라 어두운 곳은 밝게, 밝은 곳은 어둡게 보이는데, 반전의 효과는 꽤 신선할 뿐 아니라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개연성이 없음에도 모두 연결되는 이 이상한 여정에 동행하도록 독려한다.     후쿠시마 지역에서 채취한 다양한 생물 및 사물을 ‘오토래디오그래피’로 만든 이미지 작업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2019)와 세트장, 촬영소 등의 풍경을 찍은 사진 작업 <세트>(2000)가 제각각의 리듬으로 연속상영되며 묘한 대구를 이룬다. 얼마 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후쿠시마의 방사능 수치가 여전히 얼마나 높은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그들 정부를 ‘고발’하는 뉴스를 봤다. 측정기를 들고 다닌 건 기자나 작가나 마찬가지겠지만, 박찬경은 고발이 아니라 ‘공유’함으로써 ‘애도의 공동체’를 제안한다. “방사능에 오염된 후쿠시마의 자연은 너무 아름다웠다”고 고백하는 그는 직접 찍은 사진과 식물학자 모리 사토시, 사진가 카가야 마사미치와 같은 지역에서 채취한 생물 및 사물로 만든 ‘오토래디오그래피’ 이미지를 교차시키는데, 방사능 수치가 높은 부분이 더 환히 빛난다. “왜 후쿠시마로 작업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왜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걸까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원전이 얼마나 많은데….” 그가 적나라하게 의도한 ‘재난의 현실’은 촬영장, 세트를 찍은 허구의 도시풍경 사진 <세트>(2000)와 나란히 배치되어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기묘한 혼돈을 야기한다. 이번 전시에서 박찬경은 전과 달리 “공간 구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작은 미술관>을 구성한 낮은 담, 회랑, 벽에 창을 내서 차경을 가져오는 등의 시도는 ‘셀프 오리엔탈리즘’을 피해 전통건축을 추상화한 결과다. 특히 <작은 미술관>과 <늦게 온 보살> 사이에는 일종의 ‘마당’이 있는데, 전시 기간 다양한 토크 프로그램이 모임처럼 열릴 곳이다. 그 중심에는 16개의 시멘트 판에 다양한 무늬의 물결을 그려 넣은 작업 <해인>(2019)이 미동 없는 연못처럼 놓여 있다. 바다에 삼라만상을 담고자 한 불교 개념을 시멘트의 육중하고도 단절된 상태로 표현한 작품인데, 웃길 것 없는 이 풍경이 지독한 풍자로 다가온다.   골동품 가게에서 샀을 법한 마루에 앉아 둘러보니 두 개의 상반된 문구가 쓰인 <주련>(2019)이 눈에 든다. “지옥은 텅 비었다. 모든 악마들이 여기 와 있으니” 그리고 “지혜의 눈으로 보면 지옥은 텅 비어 있다”. 결국 지옥은 없거나 ‘여기’가 지옥이란 얘기겠지만, 공교롭게도 이 문구는 <늦게 온 보살> 전시장 입구를 장식한다. 그뿐인가. <늦게 온 보살>의 구원은 인위적이고, 이들의 제의는 코믹하다. 재난의 땅은 속수무책으로 아름답고, 이응노의 유명작은 당연히 가짜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숨은 역설을 모른 채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모든 역사가 그렇듯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건립 과정 영상에는 당시 화재로 숨진 4명의 건설노동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굿 장면이 등장한다. 어쩌면 모두들 어떻게든 잊고자 애썼을 이 작은 역사 역시 내가 얼마간 이 전시장에 있었다는 사실만큼이나 명백하다. “미술관이 완성되기 전, <플랫폼>이라는 전시가 열렸어요. 그때 어느 노년의 남자가 와서는 한참을 울었다는 거예요. 고문 받았던 기억이 나서 그런다고.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어요? 여기서 전시를 하는데 과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죠. 군사시설이 단 몇 년 만에 미술관으로 바뀐다는 것, 구금과 취조의 장소가 정신적 자유의 장소로 정변되는 데에 우리는 정말 아무런 느낌이 없는 걸까요? 물론 이곳이 기여하는 바는 커요. 하지만 이토록 자연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변화인가에 대한 질문은 누구도 하지 않아요. 어쩌면 그걸 이해하는 게 내 작업을 걸어두는 것보다 백배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작가 뒤편에 자리한 이응노의 역작 <군상>(1982)은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표현하는 ‘유대’와 ‘모임’의 원형인 셈이다. 자기 이름을 단 대규모 전시보다 현실이 더 중요함을 순순히 인정하는 박찬경의 목소리는 침묵을 삼킨 듯 낮다. 현실을 관망하는 게 아니라 감히 직시하고 발언하는 이의 침묵이다. 이번 전시에서 비판정신과 비애감, 무참함과 해학이 동시다발로 읽히는 건, 우리가 ‘현재’라는 격변의 시대를 일구는 주체라는 증거일 것이며, 과거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이 미래지향적인 이유다. 질문과 답이 공존하는 미술관을 나서는 길, 징과 꽹과리로 구성된 북두칠성이 나를 배웅했다. 코를 처박고 ‘소확행’에 일희일비하던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나” 자문하며 문득 고개를 든 그날 이후, 나는 고요함 가운데 깨어 있는 이른바 ‘적적성성(寂寂惺惺)’의 상태에 있다.    사실 이런 순진한 이야기는 거의 예술에서만 가능하고, 그래서 때로 따옴표 친 ‘미술관’은 어쩌면 현대에 거의 몇 남지 않은 희망의 장소라 생각되기도 한다. - 박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