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역할을 찾는 미술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박찬경은 ‘바로 지금 여기’의 역사를 미학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시 보고’, ‘다시 쓰기’를 요청한다. 미술과 역사의 결합을 통해 과거의 희생자를 위무하고, 미래의 무고한 희생자를 줄여나가는 것에서 예술가의 역할을찾는 미술가, 박찬경이 오래간만에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 박찬경,시민의 숲,만신,파란만장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끈 풀린 갓 하나가 비행선처럼 떠다닌다. 박찬경 작가의 2011년 작품인 ‘파란만장 Night Fishing’의 한 장면이다. 그가 2014년 만든 영화 에서는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무당이 굿을 할 때 쓰는 빨간 고깔이 그 역할을 떠맡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어딘가 기이한 느낌이 든다. 갓과 고깔이 주는 생경함이 일차적 이유일 것이다. 이 두 대상은 근대의 풍경에서 지워졌거나 지워져가는 존재들이니까. 다음은 왜 하필 하늘을 날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하늘에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의문은 이렇게 옮겨간다. 그럼 갓과 고깔은 무엇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일까?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기이한 이미지들이 언뜻언뜻 끼어들어 작품의 층을 두껍게 쌓아나간다. 기이함은 박찬경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통로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그가 제시하는 이미지는 기이하더라도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소 분명하다는 것이다. 갓과 고깔은 전통과 무속신앙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둘은 하늘 위에서 역사가 펼쳐지는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1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하늘과 달리 지상은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박찬경 작가는 전통과 무속신앙을 대표하는 상징물인 갓과 고깔을 매개로 ‘바로 지금 여기’의 역사를 미학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시 보고’, ‘다시 쓰기’를 요청하고 있다.그런데 왜 다시 보고, 다시 써야 할까? 근대의 역사는 인간의 욕망을 동력으로 앞으로 그리고 또 앞으로 내달렸다. 빨리 내달리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재빨리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한다. 선택과 배제, 그리고 집중이 근대의 역사를 쌓은 벽돌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뒤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정해진 트랙 위를 달려왔다고 생각하지만 도착해보면 엉뚱한 곳에 서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살벌한 풍경이 이를 증거한다. 우리가 원하고 바랐던 미래는 적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이렇게 된 원인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작가는 한국 사회의 모순이 전통과 무속신앙, 분단과 그로 인한 반공주의와 노동자 탄압처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가 배제시키고, 희생시켜왔던 것들에 그 원인이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배제되고 희생된 것들의 머리 위로 조명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담론은 생산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술가는 인류학자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역사학자가 될 수는 있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역사를 알아야 되는 이유에 대해 역사를 모르면 역사의 희생자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조금 비틀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역사는 희생자가 제외된 역사라고. 박찬경 작가는 미술과 역사의 결합을 통해 과거의 희생자를 위무하고, 미래의 무고한 희생자를 줄여나가는 것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찾고 있다.박찬경 작가는 오는 5월 국제갤러리에서 오랜만에 국내 개인전을 갖는다. 지난 작업들을 종합하고, “또 다른 가능성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전시”다. 다른 작가들과 함께 쓰고 있는 청운동의 작업실 문을 두드리자 아침 첫 커피를 내리고 있었던 작가와의 대화를 전한다.굉장히 오랜만에 하는 국내 전시이다. 이번 전시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내가 오랫동안 다뤄온 주제가 전통, 민간신앙, 한국 근대의 특수한 여러 트라우마, 분단 이런 것들이다. 이런 파편적인 작업들을 종합하는 자리이다. 이번 전시를 하고 나면 다음 스텝으로 발을 디딜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상업 화랑 전시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첫 번째 전시는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로서의 생존도 중요하다는 점을 각성한 후 갖는 전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웃음) ‘박찬경 같은 사람이 그런 상업 화랑에서 전시하면 어떡하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이 해야지 후배 작가들이 좀 더 희망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전은 아무래도 신작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내가 작품 활동이 활발한 작가가 아니다 보니 부담도 크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다행히도 ‘시민의 숲’이라는 영상작품을 메인으로 그 작품을 확장시키기도 하고 보강해주기도 하는 작품과 독립적인 작품들이 몇 개 더 들어간다.지난해 타이베이 비엔날레(2016.9.10~2017.2.5)에서 ‘시민의 숲’을 먼저 선보였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상 작업이라고 알고 있다.형식적인 면에서는 알레고리를 섞은 비디오 작품이다.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정작 따지고 보면 뭔지 알기 어려운 게 알레고리인데, 그래서 그것에 대한 일종의 시각적인 설명을 더 해줄 소스를 같이 제공했다. 한국이나 동양이나 다른 지역의 미술사에 관한 얘기가 많이 들어 있는데, 그런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시민의 숲’은 숲이나 산 같은 한국의 자연 공간이 나오는데 흑백 영상이라 디테일이나 색감이 잘 살아나지 않는 측면이 있어서 사진으로 화려함을 더했다.세월호 사건과 같이 시간차가 적은 역사적 문제를 다룰 때 오는 부담이 크지는 않나?당연히 부담이 크다. 해석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고, 또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 되니까. 그러나 굉장히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위험하더라도 계속 시도를 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사실 이번 작품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나도 궁금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시민의 숲’을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완성했다는 것이다. 지금 보면 꼭 그 사태를 겪고 나서 만든 것 같다. 대선이 걸려 있을 수도 있는 5월에 전시를 하는데(이 인터뷰는 탄핵 인용 발표가 나기 전인 3월 초 이뤄졌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잘 예상이 안 된다. 그렇지만 그 시점이 어떤 면에서는 최적의 시기일 수도 있다.(웃음)개인전 이전에 4월에는 독일 베를린 세계 문화의집에서 열리는 그룹전이 있다. 큐레이터 안젤름 프랑케와 김현진이 기획하고 임흥순, 임민욱 등 8명 작가가 참가한다고 들었는데, 제목부터도 매우 흥미롭다.아시아 지역이 중요한 주제를 이루는 전시라서 태국, 싱가포르, 일본 등의 작가들이 참가한다. 안젤름 프랑케가 원래 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고 관련된 전시도 많이 했다. 고대의 문화, 전통이라든가 종교적인 신념에 관심이 많았고, 또 동물이나 자연에 대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한 ‘애니미즘’ 전시로 유명해졌다. 그런 끊임없는 관심이 호랑이로 이어진 것 같다. 호랑이라는 게 굉장히 신성시되는 동물이기도 하고 또 맹수인데 현대에는 길들여져 있다. 그런 것으로 아시아를 표상하고 싶은 것 같다.근현대사의 여러 문제들을 작품 주제로 다루면서 무속신앙과 전통의 잔재처럼 비합리적 영역이라 할 만한 것들을 빼놓지 않는다. 작가가 근대를 보는 관점이 이렇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다.‘한국적 근대성’이란 것은 역사와 정치, 문화사 등 여러 가지 방면에서 많이 얘기돼왔다. 그러나 종교는 좀 비워져 있다.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종교적인 사회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론적 체계나 학문적 체계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다. 그래서 굉장히 창조적으로 봐야 되는데 그것의 중요한 실마리가 종교사, 정신사적인 면이다. 근데 종교 얘기를 하면 ‘그게 중요한 거야?’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나는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종교를 갖고 있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정치적 흐름 속에서 종교가 움직이는지,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 관심을 갖는다는 게 어떤 건지, 그런 것을 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나 환상은 리얼리티에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다.작품에 텍스트가 많다.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함인가?한국에서의 신화랄까, 미술에 대한 신화 중의 하나가 작품은 꼭 시각적이어야 되고 문학적이면 안 된다라는 매우 협소한 모더니즘적 태도다. 그리고 글은 소통에 있어서 굉장히 본질적인 것인데 미술작가가 글을 쓴다는 걸 터부시하는 현실이 못마땅하고 답답하다. 작가라는 것은, 현대미술이라는 것은 다양한 매체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왜 쓰면 안 돼?’ 이런 식의 얘기를 하고 싶어서 더 쓰게 되는 측면도 있다.(웃음) 그리고 특히 사진이나 비디오 같은 그림이 아닌 기계적인 이미지는 대개 맥락에서 분리되어 보이기 쉽기 때문에 글은 그런 맥락을 잡아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글이 의미를 축소한다고 생각하지만 거꾸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고 소통을 풍부하게 할 수도 있다. 이미지와 글이 만날 때 일어나는 증폭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 쓰는 게 좋다. 마음도 편안해지고.(웃음)이번 전시에는 조각도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다. 설치는 많이 했지만 조각은 처음인 것 같은데?전통적인 작가들은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나는 그런 작가가 아니다. 어떤 얘기를 하는데 이 매체가 좋다고 하면 별다른 고민 없이 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평면 작업이나 비디오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근래 내가 관심 가지는 주제가 소위 전통인데, 전통을 보여주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우리에게 친근하면서도 먼 전통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그러면서도 친근한, 일종의 잃어버린 고향 같은 느낌. 고향에 오랫만에 가면 매우 이상한 것처럼, 전시장에 온 관객에게 그런 느낌을 전하고 싶은데 이미지로는 불충분한 점이 있었다. 실체성 같은 것을 환기하고 싶어서 조각적인 걸 좀 해보려 한다.작품을 보면 과거와 현재,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 동아시아와 다른 문명권 등 서로 떨어져 있는 것들을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보인다.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된 어떤 지점이 아닐까 싶다. 가치나 중요성만큼 문화적인 산물로 나타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걸 꺼내서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않을까?소외되고 주목 받지 못하는 것의 발생은 근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에 ‘중층 근대성’ ‘대안적 근대성’이라는 개념처럼 근대를 비판적 시각에서 보려는 노력들이 있다. 역사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은 근대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듯한데?나는 근대성 전체가 다 의문이다. 물론 세월호 사건이나 국정농단 사태에서 알 수 있듯 민주주의와 평등, 자유 같은 근대적 개념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결국 그것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문명적 차원에서 근대성 전체를 다 의심해야 된다. 30~40대에는 누가 문명 얘기 하면 짜증나고 할아버지들의 얘기구나 싶었는데 요즘은 몸으로 느낀다. 사회주의도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근대성 가지고는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을 것 같다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 일단 미술이나 예술계에서 필요한 건 근대성의 잘잘못이나 오류를 따지기 이전에 근대성 자체를 상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거리를 두고 보는 것. 예술가들은 그 속에 매몰되지 않고 밖으로 나와서 근대성 자체를 다시 조망하는 작업을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마지막 질문이다. 평론가 입장에서 봤을 때 박찬경이라는 작가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나는 사실 직업적 평론가는 아니다. 좋은 작품이 있는데 이걸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고 이해를 못하는 게 답답하니까 자연스럽게 쓰게 됐다. 그래서 내 작품에 대해서는 평론가적인 입장이 될 수가 없다. 누가 좀 잘 써주면 좋겠다.(웃음) 결국 중요한 건 방법이고 미학적인 태도인데, 평론가들은 나의 작업에서 그런 미학적인 태도가 전면에 드러나길 기대한다. 스스로도 그런 점이 부족한 게 좀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