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예요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우리에게 그럴싸한 취미가 왜 필요한 것일까? | 남노아,취미

점심을 먹고 잠시 들른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젊은 여자 세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은 이 장소에서 금방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것처럼 “테이크아웃 잔으로 주세요.”라며 다급하게 외치지만 그날따라 뜨거운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잠시나마 점심 시간이라는 특정한 시간 안에 있고 싶어졌기에 그 여자들이 앉은 테이블과 두 테이블 거리를 두고 시선이 마주치질 않을 정도의 자리에 앉았다. 그녀들은 요즘 서로의 관심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엿들으려던 것은 아니다. 내 쪽에선 말이 없으니 당연 내 귀는 그 자리로 가고 만다. 그리고 그 카페는 알맞은 음량의 클래식을 틀어놓아서 다른 테이블의 대화를 원치 않더라도 들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몇 마디 주고받는 것이 또렷하게 들리더니 대화의 주제가 ‘트렌디한 취미생활’에 관한 수다란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분명히 ‘트렌디’란 단어를 선택했고 거기에 취미란 단어도 함께 있었는데 나는 그 두 단어가 붙은 ‘트렌디한 취미생활’이란 말은 처음 들어봤기 때문에 잠시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에 빠졌다. 네일 숍을 일주일에 두어 번은 다닐 듯하게 생긴(외모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한 여성이 호들갑스럽게 꺼낸 얘기는 요리를 배우러 다닐까 하며 학원을 알아보고 있고 요즘 어디 어디 요리학원에 누가 다닌다던데(대부분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인) 그곳 웨이팅이 너무 오래 걸린다든지, 재료비가 너무 비싸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나머지 두 여성은 자신들에게도 그 정보를 공유해달라며 몹시 분주하게 입에서 입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요리하는 것은 일종의 취미생활이 될 수도 있고 최근 TV만 틀면 요리 프로그램이 나오는 것처럼 요리가 트렌드이니 트렌디한 취미생활이라는 것이 바로 요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취미와는 의미가 달랐지만 트렌디가 붙었으니 그건 다른 류의 취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그중의 한 여성이 내가 생각하는 취미와 부합된 말을 꺼냈고 다른 친구들은 바로 대답했다. “독서나 영화 감상, 음악 감상 이런 대답은 너무 고전적이야.” 소개팅에 나가서는 그런 식상한 답은 해선 안된다는 친구들의 조언이다. 결국 소개팅 얘기로 이어졌고 나는 비로소 그녀들의 대화 주제는 취미가 아닌 소개팅에서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날은 종일 ‘트렌디한 취미’란 말만 머릿속에 동동 떠다녔다. 우리에게 남들에게 얘기하기 좋은 그럴싸한 취미가 필요하긴 한 것일까? 하지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마 전 디자이너의 하루 일과라는 인터뷰 질문 중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몹시 당혹스러운 나머지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카페의 그녀들의 영향이었을까? 그런 뻔한 질문에 당황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기에 어떤 말로라도 무마시키려 나는 무엇인가를 서둘러 말했다. 그리고 그 말만으로는 부족한 듯하여 뭐라도 한마디 덧붙여야겠다고 말을 이어갔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나 분명 음악 감상이나 독서 같은 뻔한 대답은 피하려 했을 것이다. 내가 대답하고 싶은 취미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 인터뷰의 의도상 디자이너란 직업의 취향을 반영해야 했기에 순간 거창한 의미를 두었거나 “어머 그건 뭐예요?”라는 식의 답변을 받기 위해 있지도 않는 취미를 말해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그리곤 그 후 취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기에까지 이르렀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나는 이 사전적 의미에 부합하는 취미가 있는 것일까? 내가 요즘 일 외에 하는 것이라곤 얼마 전부터 잠시 돌봐주기로 한 친구의 개와 놀아주거나 밥을 주는 것밖엔 없다. 개는 에너지가 넘치고 내가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정열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내 앞에 두곤 빤히 쳐다보기를 반복한다. 만약 놀아주지 않는다면 내 옷을 물고 이방 저방 돌아다닐 수 있으니 나는 TV에서 본 강아지 훈련사가 내는 소리를 흉내 내며(‘호이호이’ ‘뾰로룡’ 같은 하이 톤으로 강아지와 대화할 수 있는 언어) 놀아주는 것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강아지 밥을 주는 것에도 꽤 시간을 할애하는데, 세상의 모든 개가 그런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 개는 특히 아주 필사적으로 식사를 좋아해서 냉장고 문을 열거나 쓰레기봉투의 바스락 소리만 나도 잠에서 깨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거나 내가 밥그릇에 사료를 담을 때면 자발적으로 앉아 자세를 취하는 동시에 (간혹 침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먹어.”라고 하면 단박에 얼굴을 그릇에 박고 ‘아그작 아그작’ 씹는 소리를 내며 그야말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을 개에게 선물하는 조물주라도 된 양 행세하며 그것을 즐긴다. 아, 이건 취미 중에서도 악취미라고 해야 하는 건가.하루를 보내면서 일 외에 즐기는 것이 이것밖에 없으니 취미가 뭐냐고 묻는 말에 번듯한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던 나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개를 돌보는 것이 비생산적이거나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스스로가 활기차게 지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니 다른 취미가 필요한 듯하다. 이 정도 상황이 되면 카페 그녀들의 대화처럼 누군가에게 말하기 위해서라도 취미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속물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무기력한 상태이니 무엇 하나 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고, 취미가 없으니 무기력해지는 것일 거다. 사전적 의미처럼 취미란 꼭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부담감도 없다. 그것을 즐길 때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새로움, 그것으로부터 오는 오늘의 윤택함, 그것으로 충분히 취미생활이란 것은 충족되고 있는 것일 테니까.작년에 바쁘다는 핑계로 그만두었던 필라테스라든지 파리에 가서 우아하게 식사 주문을 해보겠다는 다짐에서 시작했던 프랑스어 수업을 다시 끄집어내어 시작해야겠다. 지금이라도 나에게 필요한 건 트렌디한 취미생활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카페에서 내가 잠시 갸우뚱했던 그녀들의 대화처럼 남들에게 대답하기 위한 것이 아닌, 나의 생활을 기름칠 해줄 취미생활 말이다. 요즘 그쪽 취미는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