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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파의 특별한 점? 매그넘포토스의 디렉터가 말하는 마틴 파 사진의 미덕

마틴 파 사진전 보기 전에 알아두고 가면 좋은 것들.

프로필 by 손안나 2026.07.24

사진에 대하여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마틴 파(Martin Parr)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에서 열린다. 만약 그를 만난다면 줄곧 건네고 싶었던 질문들을, 매그넘 포토스의 디렉터 안드레아 홀츠헤어(Andrea Holzherr)에게 대신 물었다.


마틴 파, <New Brighton, England>, 1983-85. © Martin Parr / Magnum Photos 마틴 파, , 1996. © Martin Parr / Magnum Photos

하퍼스 바자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전시가 개최됩니다. 생전에 작가가 이번 전시에 대해 남긴 말이 있나요?

안드레아 홀츠헤어(이하 안드레아) 2025년 4월 마틴과 제가 손현정 사진미술관 학예연구사와 함께 이 전시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한국의 주요 미술관이 자신의 작업을 이처럼 본격적인 전시로 다룬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진이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어떻게 소개되고 읽히는지에 언제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진이 영국과 서구 문화에 뿌리를 둔 이미지이지만 인간 행동의 보편적인 면을 다루는 만큼, 한국 관객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해 했죠.

하퍼스 바자 제목에서 전시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듯 모두가 이미지로 자신을 기록하고 드러내는 시대입니다. 이번 전시가 오늘날 관객에게 어떻게 공명할 거라 기대합니까?

안드레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그는 이미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자기 이미지와 스펙터클의 문화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뿐만 아니라, 소비하고 여행하고 기념하고 먹고 쇼핑하며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까지 꾸준히 기록했죠. 그는 우리의 습관, 그중에서도 때로는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습관들, 유행과 집착, 모순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의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특정한 장소와 시대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인간 행동의 보편적인 면을 다룬다는 데 있습니다. 1980년대 영국에서 찍은 사진이나 1990년대 스페인에서 찍은 사진이 오늘날에도 놀라울 만큼 동시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바탕에 놓인 행동 양식이 여전히 같기 때문입니다. 마틴은 사회적 비판을 강렬한 색채와 유머, 시각적 즐거움 속에 녹여내는 데 탁월했습니다. 관객에게 메시지를 직접 가르치거나 설교하지 않았지만, 대신 우리가 웃을 수 있도록 때로는 우리 자신을 향해 웃을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유머와 통찰 사이의 이 균형이야말로 그의 작업이 세대를 넘어 계속 사랑받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처음 그의 사진을 접하는 젊은 관객부터 수십 년 동안 그의 작업을 따라온 이들까지, 모두가 그의 사진에 반응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퍼스 바자 이번 전시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남한과 북한에서 촬영한 사진들도 선보입니다. 당시 서양의 많은 작가들이 범했던 ‘오리엔탈리즘’을 느낄 수 없는 작품들입니다. 당신의 말대로 ‘인간 행동의 보편적인 면’에 집중했기 때문이겠죠.

안드레아 마틴은 장기 프로젝트였던 <Small World>와 <Common Sense>를 작업하는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다른 곳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선입견 없이 일상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갔습니다. 마틴은 종종 자신을 이야기꾼이라기보다 수집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진행 중인 작업을 완성하거나 더 풍부하게 만들어줄 이미지를 ‘수집’하기 위해 여러 장소를 여행했습니다. 그의 관심은 전통적인 여행기나 정치적 에세이를 만드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한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평범한 순간들 그리고 시각적으로 독특한 장면들을 찾아냈습니다. 그가 브라이튼을 찍든, 도쿄를 찍든, 서울이나 평양을 찍든, 그의 접근 방식은 놀라울 만큼 일관되어 있었습니다.


하퍼스 바자 저널리스트였던 로버트 카파와 스스로를 예술가로 칭했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매그넘의 두 가지 DNA일 것입니다. 마틴 파는 그 사이 어디쯤 위치한다고 보나요?

안드레아 저는 마틴을 그 둘 사이에 놓지 않습니다. 그는 매그넘의 역사 안에서 완전히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도 그 점을 알아보았고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태양계’에서 왔다고 마틴에게 말한 것은 유명합니다. 저는 그 표현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카르티에 브레송이 우아함, 기하학적 구성, 조화, 그리고 그가 말한 ‘결정적 순간’을 추구했다면, 마틴은 색채와 과잉, 유머와 아이러니, 동시대 삶에 넘쳐나는 시각적 자극을 받아들였습니다. 매그넘이 특별한 이유는 하나의 사진적 접근 방식으로만 규정된 적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마틴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정의를 확장했습니다. 그는 전쟁이나 결정적인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대신, 일상의 행동 양식을 기록했습니다.


하퍼스 바자 마틴은 1994년 정회원으로 매그넘에 합류했습니다. 선정 과정에서 지난한 논쟁이 있었을 거라 예상됩니다.

안드레아 그가 후보에 오른 일은 매그넘 역사상 가장 치열한 회원 선출 논의 중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일부 사진가들은 그의 컬러풀하고 아이러니한 시선이 매그넘이 지켜온 다큐멘터리 전통에서 지나치게 벗어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다른 이들은 다큐멘터리 사진 역시 변화해야 하며, 마틴이 그러한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마틴 없는 매그넘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합류는 결국 매그넘이 세계를 기록한다는 본래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관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하퍼스 바자 말한 대로 컬러풀한 시선은 마틴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1970년대 영국에서 진지한 사진작가라면 흑백으로 촬영해야 했다죠. 컬러는 스냅숏과 상업 사진의 영역으로 여겨졌고요. 그는 1982년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른 건가요?

안드레아 마틴이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조엘 메이어로위츠(Joel Meyerowitz)의 컬러 사진을 접한 것은 1970년대였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컬러 사진은 제대로 된 사진 매체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위에 언급한 사진가들이 이미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었습니다. 마틴은 1982년 첫 컬러 카메라를 구입했고, 컬러 필름과 낮 시간대 플래시를 활용한 촬영을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 소비문화는 점점 더 화려하고 강렬하며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광고, 포장, 관광, 대중문화는 모두 색채에 크게 기대고 있었고, 그는 이 세계를 흑백으로 찍는 순간 그 핵심이 흐려진다고 보았거든요. 따라서 색채는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색채는 그가 다루는 주제의 일부였습니다. 소비사회의 현란한 색들은 그 자체로 그가 기록하고자 했던 문화의 증거였으니까요.


마틴 파, <Benidorm, Spain>, 1997. © Martin Parr / Magnum Photos 마틴 파, , 1983-85. © Martin Parr / Magnum Photos 마틴 파, , 1997. © Martin Parr / Magnum Photos

하퍼스 바자 매그넘 합류 당시의 논쟁으로부터 30여 년이 지났습니다. 개인적으론 토마스 베스키(Thomas Weski)의 “우리 시대의 기록자(chronicler of our time)”라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당신은 오늘날 마틴 파를 어떤 사진가라고 요약하고 싶습니까?

안드레아 저도 토마스 베스키의 그 표현은 마틴의 성취를 완벽하게 짚어낸 말이라고 생각해요.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의 사회를 이토록 일관되고 폭넓게 포착한 사진가는 매우 드뭅니다. 마틴은 우리가 ‘세계화’라는 말을 흔히 쓰기 전부터 이미 세계화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50년에 걸쳐 대중 관광, 소비문화, 여가, 음식, 패션, 국가 정체성, 사회적 의례를 놀라운 일관성으로 촬영했습니다.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점은 특별한 순간을 찍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평범한 것 안에서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그의 사진은 역사가 전쟁이나 정치적 사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고 소비하고 서로 관계 맺는 사소해 보이는 방식 속에서도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바로 그 점에서 그의 작업은 우리 시대의 매우 귀중한 시각적 아카이브입니다.


하퍼스 바자 1995년부터 마틴은 의료 사진 촬영에 사용되는 매크로 렌즈와 링 플래시를 사용했고 덕분에 원색적이고 과장되며 적나라한 표현이 마틴 파의 스타일로 자리매김했죠. 그러다가 2007년 이후 눈에 띌 만큼 색상이 차분해집니다. 2014년 이후엔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선 다소 밋밋해 보이는 망원 렌즈를 사용했고요.

안드레아 매크로 렌즈와 링 플래시를 사용하면서 그의 시각언어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뚜렷해졌지만, 그는 어떤 사진적 기법이든 유효한 시간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스타일이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그것은 공식처럼 굳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카메라가 발전하면서 마틴도 점차 자신의 접근 방식을 바꾸어 갔습니다. 후기 작업은 이전보다 색채가 덜 강렬하고 시각적으로도 덜 공격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색채에 대한 관심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주제와 다른 보는 방식에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망원렌즈로의 전환은 그가 더 먼 거리에서 상황을 관찰하고, 여러 행위가 겹쳐 있는 보다 복합적인 구성을 만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많은 사진가들이 평생 하나의 시각적 공식을 완성하는 데 몰두하는 반면, 마틴은 자신의 작업 방식을 끊임없이 다듬고 조정했습니다. 그에게 사진은 특정한 카메라나 렌즈에 얽매이는 일이 아니라, 결국 사진을 찍는 일이었으니까요.


하퍼스 바자 마틴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안드레아 같은 세대의 일부 사진가들과 달리, 그는 아날로그 작업 방식에 향수를 느끼거나 디지털 기술을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디지털 사진은 오히려 실질적인 이점을 가져다 주었으니까요. 특히 여러 지역을 오가며 작업할 때 훨씬 효율적이었죠. 하지만 그것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마틴의 실용주의적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이 열어주는 가능성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기술과 창의성을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진을 계속 이끌어간 것은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리한 이해였습니다.


하퍼스 바자 사진가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마틴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안드레아 제가 늘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틴의 대단한 호기심이었습니다. 미술관장을 만나든, 택시기사를 만나든, 젊은 사진학도를 만나든, 그는 누구에게나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지고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훌륭하면서도 담백한 유머 감각이 있었는데, 일부러 보여주려는 유머가 아니라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 가까웠죠. 국제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마틴은 놀라울 만큼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사진가들에게 아낌없이 조언했고, 사진집에 대해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으며, 새로운 작업을 발견하는 일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계속 질문하고, 계속 바라보고, 계속해서 시각적 인상을 모아갔습니다. 호기심은 사진가로서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도 마틴을 가장 잘 설명하는 특징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작업이 수십 년 동안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마틴의 부모님은 조류 관찰자였고, 이 때문에 어렸을 때 해변 휴가를 가지 못하고 조류학적으로 흥미로운 장소를 방문해야 했다죠. 작가는 이것이 본인이 해변에 끌리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여러 시리즈를 작업했지만 대중에겐 해변의 이미지로 유명합니다. 해변이 그의 대표적 키워드라는 데 동의합니까?

안드레아 해변은 분명 마틴의 가장 상징적인 주제 중 하나입니다만 그가 해변에 매료된 이유는 그곳이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시험해볼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낼 때가 있고, 해변은 그런 사회적 관습이 일시적으로 느슨해지는 몇 안 되는 공공장소죠.


마틴 파, <Benidorm, Spain>, 1997. © Martin Parr / Magnum Photos 마틴 파, , 1991. © Martin Parr / Magnum Photos 마틴 파, , 2004. © Martin Parr / Magnum Photos

하퍼스 바자 마틴은 처음엔 대상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다가 나중엔 대상에서 점점 더 멀어지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요? 이것이 매그넘의 홈페이지에 기술되어 있듯 “카파가 오래전에 말했듯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가까이 갔기 때문에 사진이 충분히 좋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관점과 연결될까요?

안드레아 저는 이 변화를 단순히 피사체에 더 가까워졌거나 멀어졌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마틴은 언제나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맞는 적절한 거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초기 작업, 특히 <The Last Resort>에서 물리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은 강력한 친밀감과 대면의 감각을 만들어냈습니다. 관객은 거의 그 장면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죠. 이후 마틴은 공공의 삶이 움직이는 방식, 즉 하나의 공간 안에서 여러 사람이 서로 관계 맺고 움직이는 장면을 관찰하는 데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이전과는 다른 물리적 거리가 필요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하퍼스 바자 사진계 종사자이자 한 명의 관객으로서, 마틴의 사진에서 어떤 미덕을 발견합니까?

안드레아 그의 사진이 지닌 놀라운 명료함을 높이 평가합니다. 마틴에게는 누구나 바로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여러 겹의 의미와 지적인 깊이를 지닌 사진을 만들어내는 드문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사진은 유머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오래 들여다보면 계급, 정치, 경제, 정체성, 인간 행동에 관한 세부적인 것들이 점점 더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바꾸면서도 한눈에 그 사람의 작업임을 알아볼 수 있는 스타일을 만들어낸 사진가는 매우 드뭅니다. 마틴은 바로 그것을 해낸 사진가이고요.


하퍼스 바자 마틴은 1만2천 권이 넘는 포토북 컬렉션을 테이트에 기증한 포토북 컬렉터이자 게리 배저(Gerry Badger)와 <The Photobook: A History>를 집필하며 포토북을 독립적인 예술 매체로 조명한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생전 작가가 사진 출판에 가지고 있던 신념은 무엇인가요? 또한, 출판 시장이 쇠퇴하고 소셜미디어가 대두되는 작금의 상황에 어떤 의견을 갖고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안드레아 마틴은 사진집이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 형식 중 하나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잘 만들어진 사진집은 사진가가 하나의 서사를 만들고 리듬을 세우고 이미지 사이의 연결을 만들며, 하나의 작업 세계를 따라 관객을 이끌 수 있게 해줍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간 개별 사진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죠. 1만2천 권이 넘는 그의 사진집 컬렉션은 이러한 믿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사진집을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진사의 중요한 일부로 보았습니다. 동시에 마틴은 소셜미디어에 적대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셜미디어가 전 세계 관객에게 즉각적으로 닿을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그 한계 역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끝없는 스크롤과 개별 이미지의 빠른 소비를 부추긴다면, 사진집은 시간과 집중과 지속적인 몰입을 요구합니다.


하퍼스 바자 동시대 사진가들을 위해 <바자> 같은 출판 매거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보나요?

안드레아 무엇보다 잡지는 새로운 사진 작업을 의뢰해야 합니다. 기존 이미지를 단순히 다시 싣는 데 그치지 않고, 사진가에게 새로운 작업을 만들 기회를 주는 것만큼 큰 지원은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잡지에는 중요한 편집적 책임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진가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사진 프로젝트가 놓인 맥락을 짚어주며, 단순히 트렌드나 알고리즘을 따라가는 대신 사려 깊은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오늘날에 신중한 편집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당신은 “소셜미디어는 사진가들의 표현 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어떤 점이 긍정적이고 어떤 점이 부정적입니까?

안드레아 소셜미디어가 사진을 더 민주적인 매체로 만든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사진가들은 출판사나 갤러리, 에이전시에 기대지 않고도 전 세계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젊은 사진가들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공유하며 전 세계 관객으로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놀라운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요구는 인내와 사유가 필요한 이미지가 아니라 온라인에서 잘 반응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알고리즘은 새롭거나 빠르거나 시각적 강도가 높은 이미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죠. 수년에 걸쳐 완성되는 장기 다큐멘터리 작업은 그런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요. 또 사진가들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진가들에게 보이기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할 위험도 있고요.

하퍼스 바자 인공지능에 대한 매그넘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안드레아 매그넘은 인공지능 자체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AI는 오늘날 기술 환경의 일부이며, 그 흐름을 현실적으로 되돌릴 방법은 없습니다. 모든 중요한 기술 혁신이 그렇듯, AI 역시 기회와 과제를 동시에 가져옵니다. 매그넘이 1947년 창립 이후 지켜온 것은 작가성의 원칙입니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사진가들이 자신의 작업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고 정당한 크레디트를 받으며 AI 학습을 포함해 이미지가 사용될 때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법적 체계는 아직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저작권에 대한 존중을 보장하기 위해 명확한 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AI 자체가 우리의 적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창작자의 권리가 계속 보호될 수 있느냐입니다.


하퍼스 바자 당신은 “사진은 미래의 세상을 기록하는 매체로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어쩌면 회화가 살아남은 방식이 참고가 될 듯합니다. 미래의 사진은 어떤 형태일 거라 예상합니까?

안드레아 회화는 흥미로운 역사적 비교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의 발명은 회화를 사라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회화의 역할을 바꾸어 놓았죠. 이와 마찬가지로 인공지능도 분명 사진을 변화시키겠지만, 사진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삶과 가족, 공동체,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자 하는 오래된 욕구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진에 가치를 두는 이유는 사진이 실제로 일어난 순간을 간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록의 기능은 전문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든 휴대전화로 찍은 이미지든 여전히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앞으로는 합성 이미지, 즉 AI가 전적으로 생성하거나 조작이 많이 가미된 이미지도 점점 더 늘어나겠지만 그것은 사진을 대체하기보다 사진과 나란히 존재하는 또 하나의 시각언어가 될 것입니다. 사진가와 기관, 관객에게 주어진 과제는 ‘현실을 기록한 이미지’와 ‘현실을 만들어낸 이미지’를 구별하는 일이 될 것이고요. 저는 실제 세계에 기반한 사진이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결국 믿을 만한 시각적 기록 위에 쌓입니다. 기술은 계속 바뀌겠지만, 무언가를 목격하고 그것을 기억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 «마틴 파 : We Are Martin Parr»는 10월 18일까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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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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