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듀오 이네즈&비누드가 정의하는 사진의 가능성
스스로를 패션과 예술,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사진가라 정의하는 두 사람에게 사진은 어떤 것까지 가능한 매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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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너머의 사랑에 대하여
Can Love Be a Photograph. 네덜란드 쿤스트 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사진가 듀오 이네즈와 비누드(Inez & Vinoodh)의 전시 제목에는 물음표가 없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수십 장의 사진은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두 사람이 쌓아온 40년간의 업적이자 보고 만질 수 있는 형태의 사랑이다.
Inez & Vinoodh, <Think Love>, 2025.
«Can Love Be a Photograph»는 두 사람이 함께한 지난 40년의 작업을 아우르는 전시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연대기식 구성 대신 16개의 키워드로 작품을 다시 분류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어떤 의도였나요?
이네즈 이 전시는 우리의 40년을 회고하는 역사적인 자리예요. 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사진에서 시간 개념을 떼어내는 것이었어요. 1986년 작업이든 2026년 작업이든, 같은 주제와 맥락을 공유한다면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죠. 이러한 구성을 위해 지난 40년 동안 반복적으로 등장한 주제가 무엇인지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했고요. 모든 사진을 추리고 정리하는 데만 1년 반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선별된 이 모든 작품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계속해서 건드리는 동시에, 앞으로의 작업을 위한 단서가 되어주는 이미지들이에요.
Inez & Vinoodh, <Kate Moss – YSL Campaign>, 2008.
함께 작업을 시작한 1986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중 사진을 고르기 위해 유독 오래 머물러야 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비누드 1986년부터 1996년까지, 작업 초기 10년이죠. 누구든 자신의 고유한 필체를 만드는 데에는 적어도 10년은 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도 가장 중요했던 시간이었어요.
이네즈 동의해요.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누구든 어떤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자신이 어떤 것을 하는 사람인지 진정으로 이해하고 체화하기까지 족히 10년은 걸린다고 봐요. 일종의 탐색기죠. 그 시간 동안 엄청난 이미지가 쌓입니다. 단순히 자신이 만든 작업뿐 아니라 영화와 회화, 광고, 스트리트 이미지, 풍경 등 다양한 레퍼런스를 포함해서요. 그 모든 것이 내 작업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기준이 생겨요. 이후의 작업은 그 기준을 바탕으로 전개되고요. 실제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그 다음의 10년 사이 우리는 정말 많은 작업을 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있는 것을 완벽히 인식하고 있는 상태였고, 자연스레 함께할 협업자들을 확립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죠.
Inez & Vinoodh, <Can Love Be A Photograph>, 2025.
매달 사진가와 협업해야 하는 에디터로서 매거진 작업을 모아둔 ‘In Print’ 섹션을 기대하고 있어요. 사진가에게 매거진 촬영은 상업적 이익을 염두에 둔 클라이언트 일인 동시에 예술 사진과의 교집합도 갖고 있는 독특한 영역일 거라 짐작합니다. 이 일을 할 때 두 사람은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비누드 저희는 매거진 촬영 현장을 일종의 실험실이라고 생각해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되거든요. 거의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작업하는 현장이기에 해본 적 없던 방식과 기술을 쓰기도 하죠. 우리 팀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으로 에너지와 창의성이 집약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에요. 이네즈 한마디로 사진 위에 텍스트를 얹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바로 이것이 우리가 좋아하는 지점이에요. 커버 라인과 캡션이 올라가는 순간 이미지는 더 아이코닉해져요. 비누드가 말한 것처럼 이건 낯선 형태의 협업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다른 작업자가 만든 드로잉 작업이나 AI 이미지가 더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죠. 우린 이런 형태의 협업을 아주 즐기는 사람들이에요. 새로운 아이디어는 언제나 우리를 나아가도록 만드니까요. 그 과정에서 달갑지 않은 상황을 마주할 때도 있지만, 해결책을 찾는 과정은 항상 도움이 돼요. 매거진 작업에서는 원하는 것만을 고집할 수 없어요. 우리와 같은 여러 창작자들과의 교류로 이루어지는 일이니까요.
Inez & Vinoodh, <Melia Marden for Balenciaga>, 2011.
가장 이질적인 작업을 고르자면 근작 <Think Love> 시리즈가 아닐까 싶어요. 처음으로 아이폰을 활용해 촬영한 사진이자 두 사람의 사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보정이나 합성, 콜라주 같은 변형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사진이니까요.
이네즈 이 작업에 대해 질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폰17 출시를 앞둔 애플의 의뢰로 시작한 작업이지만, 우리에겐 꼭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던 오랜 꿈과 같은 작업이거든요. 특히 저와 비누드가 키스하는 모습을 담은 1999년작 <Me Kissing Vinoodh (Lovingly)>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아이폰17 프로 맥스로 촬영한 <Think Human> <Think Love> <Think Nature> 세 작품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의 아들 찰스(Charles Matadin)와 그의 파트너 나탈리(Natalie Brumley)를 피사체로 세웠어요. 두 사람은 붉은 베일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주변은 텍사스주 마파(Marfa)의 광활한 사막이에요. <Think Love>를 보면 두 사람의 뒤로 길이 나 있는데, 우리는 이것이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라 생각했어요. 우리로부터 시작해 다음 세대를 지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 미래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죠. 비누드 같은 방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작품, <Can Love Be a Photograph>도 마찬가지예요. 전시의 마지막 동선에 배치되어 있는 이 작업은 결국 관대함에 대해 말하는 사진들이에요. 서로 다른 세대가 관계를 맺을 때, 무언가를 물려주고 이어받을 때, 나아가 자연을 대할 때까지. 더 너그러운 태도로 세상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로 ‘과거의 이미지’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습니다. 구형 아이폰이나 저화질 디지털 카메라, 필름 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유행이 됐고, 매거진 에디토리얼에도 아이폰 사진처럼 후보정을 거의 하지 않은 듯한 이미지가 많아졌죠. 모든 디지털 개입을 없앤, 완전한 아날로그 사진에 갈증을 느껴본 적은 없나요?
이네즈 중요한 건 언제나 형식이 아니라 개념이에요. 어떤 작업은 디지털 조작이 필요해 리터치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개입이 전혀 필요 없을 수도 있죠.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작품이 요구하는 바에 따르는 것이지, 규칙을 정해두지는 않아요. 비누드 설령 아무런 디지털 개입이 없는 사진이라 할지라도 어떤 프레임 안에 있는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이미 조작이에요.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배제할지를 결정하는 순간, 상황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진 것이니까요. 오히려 이 지점이 더 본질적인 문제죠. 이네즈 프랑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말한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 사진에서 구도와 의미, 타이밍이 완벽하게 떨어지는 단 한 번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그렇죠. 모든 요소가 딱 맞아떨어지는 찰나를 ‘선택’해서 찍는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어요. 저희가 하려는 건, 결정적 순간을 교란하는 일이에요. 사진을 찍은 다음 배경을 바꾸거나, 신체 일부나 형태를 변형하는 식으로 다시 개입하는 거죠. 우리에게 중요한 건, 결정적 순간 이후에도 이미지가 무엇이 될지를 다시 한번 결정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있다는 점이에요. 그게 핵심이에요.
Inez & Vinoodh, <Chappell Roan for Rolling Stone Magazine>, 2024.
예술계든 패션계든, 그 안을 움직이되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겠다는 말을 자주 해왔어요. 작업하는 데 있어 스스로 외부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왜 필요한가요?
이네즈 두 세계의 작동 방식은 엄연히 다릅니다. 패션계는 구조가 명확해요. 브랜드가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판매하기 위해 이미지를 의뢰하고, 우리는 그에 맞는 결과물을 만든 뒤 대가를 받죠. 각 과정에서의 목적과 역할이 분명해요. 예술계는 비슷해 보이지만 훨씬 더 취약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계에서의 작업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것, 즉 작가 자신에게서 출발하기 때문이에요. “가방을 더 크게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식의 외부 기준이 없어요. 전적으로 작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에서 출발하죠. 그렇게 만들어진 작업은 판매가 되고, 갤러리는 작업을 유통하는 공간이 되는데 바로 이 지점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개인적인 예술의 영역 안에 상업성이 깊이 개입할 때의 긴장감은 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사이에 머무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번 전시가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유와도 연결되겠군요. 듣고 보니 사진의 가능성을 묻고 있는 질문이라 생각했던 전시의 제목이 일종의 선언처럼 읽힙니다.
이네즈 말씀하신 것처럼, ‘Can Love Be a Photograph’라는 제목은 우리 관점에서 질문이 아닌 선언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사진 작업은 결국 사랑에서 출발한다고 믿거든요. 서로에 대한 사랑, 피사체에 대한 사랑, 함께 일하는 팀에 대한 사랑, 그리고 렌즈 앞에 앉은 사람과 카메라 뒤에 있는 우리 사이의 신뢰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 대한 사랑까지 포함하죠. “관심(attention)을 기울이는 일은 가장 희귀하고도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이라는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의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타인에게 집중하는 행위는 우리 작업의 기반이며, 그렇게 쏟은 사랑은 이미지에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사진의 본질이자 40년 가까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 이네즈&비누드의 «Can Love Be a Photograph»는 9월 6일까지 네덜란드 쿤스트 뮤지엄에서 개최된다.
고영진은 <바자> 피처 에디터다. 인터뷰가 끝난 뒤, 언젠가 두 사람이 “모든 사진은 사랑하는 것을 가까이 붙잡아두고자 한 시도”라고 한 말을 떠올렸다.
Credit
- 사진/ 이네즈 & 비누드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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