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맥퀸의 사진집 ‘Bounty’에 담긴 이중성
인간의 존엄성과 역사적 트라우마를 탐구하는 영국 출신의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스티브 맥퀸은 새 사진집에서 인간의 비극적 역사와 자연의 생명력을 함께 직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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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 아래의 풍경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영화감독이자 터너상을 수상한 작가 스티브 맥퀸. 최근 출간한 사진집 <Bounty>에서도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 세계는 유효하다. 카리브해 그레나다 섬의 눈부신 자연과 참혹한 식민 역사가 충돌하는 신간을 사이에 두고 그를 만났다.
1999년 11월 30일 영국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에서 열린 터너상 시상식에 참석한 스티브 맥퀸. 버스터 키튼의 무성 코미디 영화 <스팀보트 빌 주니어>의 한 스턴트 장면을 재현한 단편 <데드팬(Deadpan)>으로 이 상을 수상했다. 사진: Dave Benett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스티브 맥퀸은 지난 20여 년의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다. 영화 <노예 12년>으로 2014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그는 인종 문제와 노예제의 참혹함을 서사의 중심에 정면으로 내세우며 현대 문화에 깊은 충격을 안겼다. 세 번째 장편영화인 이 작품에서 그는 인간의 신체를 타락시키고, 억압하며, 산산조각 내고, 굴욕을 주고, 결국 인간성까지 박탈하는 악행의 모습을 카메라에 생생히 담아냈다. 그보다 몇 해 전에는 데뷔작 <헝거>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출연한 이 작품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활동가 보비 샌즈의 고통스러운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보다 최근에는 미니시리즈 <스몰 액스(Small Axe)>를 통해 1960년대부터 고향인 카리브해를 떠나 런던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정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1948년 전쟁으로 황폐해진 영국 본토에 처음 도착한 서인도제도 출신 노동자들이 탔던 선박 윈드러시호에서 유래한, 이른바 ‘윈드러시 세대(Windrush Generation)’의 후손들이다.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서인도제도 공동체의 유산과 투쟁을 기렸다.
스티브 맥퀸은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역사책이 외면해온 사실들을 조명하며 지워진 진실들을 길어 올린다. 그렇게 30년 동안 그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정확히 비추는 데 필수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사실 맥퀸만큼 할리우드를 화려하게 장악한 비주얼 아티스트는 흔치 않다. 영화 작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무엇보다 최정상급 창작자다. 모마(MoMA)를 비롯한 세계 주요 기관에 작품이 전시되며 높은 평가를 받아온 맥퀸은 1999년 터너상을 수상했다. 문제작 <My Bed>로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력한 후보 트레이시 에민을 제치고 거머쥔 수상이었다. 이후로도 그의 창작력은 결코 쇠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이야기꾼이라 정의하는 그는 현재 네덜란드에서 8월 말까지 전시 «Atlas»를 선보인다. 전시와 함께 출간된 사진집 <Bounty>는 맥퀸의 뿌리인 그레나다 섬의 식물을 명상적으로 포착한 사진을 통해 식민 역사를 탐구해온 그의 작업 세계를 확장한다.
그를 마주하고 가장 먼저 눈길이 간 곳은 시선이었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그의 총기 어린 시선을 잡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서재 선반에 꽂힌 예술 서적들의 제목도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럴 틈은 없었다. 주의를 놓칠세라 재빨리 그를 붙잡아야 했으니까. 짧고 간결한 대화 몇 마디가 오간 뒤, 점차 풍부하고 깊이 있는 답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Bounty> 작업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랬다. 그는 불편한 이중성을 품은 단어 ‘Bounty’를 두고 “섬의 풍요로운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노예로 전락한 아프리카인을 붙잡거나 죽이는 데 걸었던 현상금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안에 실린 사진들을 “생살이 드러난 상처”라 불렀다. 나는 그의 말로부터 지안 파올로 바르비에리의 작업을 떠올렸다. 패션 사진의 거장으로 알려진 그는 작업 <Flowers>에서 꽃을 연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공간이자 내밀한 기억의 자리로 변모시켰다. 스티브 맥퀸 역시 이를 긍정했다. “예로부터 예술사는 회화를 비롯한 수많은 표현 형식 속에서 꽃을 다뤄왔어요. 꽃은 흔히 장례식, 기념행사뿐 아니라 축하의 자리 등 잠시 멈춰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순간과 연결되죠. 그렇게 꽃은 기억에서 기쁨까지, 인간 경험의 모든 범위에 함께합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Bounty>를 통해 제가 이루고 싶었던 것은, 꽃을 현재의 눈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수세기의 역사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었어요. 그레나다 섬의 식물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요.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쓸모는 없습니다. 하나의 예술 작품과도 같죠. 이 식물들은 식민주의와 노예제의 트라우마가 새겨진 땅 위에서 피어난 경이로움 그 자체인 것입니다. 때로는 가장 낙원 같은 곳에서 가장 끔찍한 일들이 벌어져요. 일종의 뒤틀린 현실이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을 이었다. “제가 올해로 쉰여섯인데요. 오랫동안 바라봐온 그림들이 지금도 여전히 제게 질문을 던져요. 제가 변한 것처럼, 그림도 변화하는 것 같아요. 혹은 새로운 의미가 생겨났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저에게는 이 그림들이 마르지 않는 생각의 원천입니다.”
저는 예술이 언제나 우리의 인간다움을 가늠하는 척도였다고 믿어요.
스티브 맥퀸의 예리한 관찰력은 어린 시절부터 길러온 것이다. 그레나다 출신의 아버지와 트리니다드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그림에 흥미를 붙였다. 펜 한 자루와 종이 한 장만으로도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자신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최초의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주저없이 답했다. “장 비고의 <품행제로(Zéro de Conduite)>예요. 엄격한 규율과 제한된 틀 안에 갇혀 있는 아이들이 절대적 자유를 가지고 반항하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죠. 처음으로 감동받은 작품은 아닐지 몰라도,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저를 진정으로 사로잡은 첫 번째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듣고 보니 정해진 규범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 형식을 창조하려는 의지를 따라온 그의 다채롭고도 자유로운 행보가 떠올랐다. 영화 이야기를 꺼낸 김에, 현대미술가로서의 감각을 영화 안에 녹여내며 익숙한 영화 문법에 새로움을 더해온 그에게 가장 선호하는 매체가 무엇인지 물었다. “글쎄요. 사실 특별히 그런 고민을 하지는 않아요. 중요한 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지, 그것을 어떤 범주 안에 가두는 것은 아니니까요. 모든 것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작품 그 자체만이 중요하죠. 작품이 어떤 모습으로 탄생하는지 말이에요.”
그는 어떻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할 수 있는 걸까? 어떻게 눈 닿는 거의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냐는 말이다. “보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그가 답했다. “어떤 사람들은 귀와 눈이 완전히 먼 채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외면하기로 선택하는 거죠. 결국 모든 것은 권력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사회란 원래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법이죠. 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대개 우리 눈앞에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아름다움을 찾아 세상을 헤맬 필요가 없다는 거죠. 늘 주의를 기울이고, 발견할 줄 알아야 해요. 저는 예술이 언제나 우리의 인간다움을 가늠하는 척도였다고 믿어요.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나침반이죠.” 혼란한 세계를 마주한 동시대의 예술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보냐는 마지막 물음에는 담백한 답을 내놨다. “쓸모 있는 존재요. 저는 제가 쓸모가 있다고 느껴요.”
Credit
- 글/ Florine Delcourt
- 사진/ Steve McQueen, Thomas Dane Gallery, Marian Goodman Gallery,Getty Images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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