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서른 살을 맞은 ‘바자’가 소설의 주인공이 될 때, 작가 이희주

콤플렉스를 끌어 안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녀의 이야기.

프로필 by 안서경 2026.07.31

A WOMAN’S STORY


서른 살을 맞은 <바자>가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여성 소설가 5인이 쓴 ‘바자’라는 여자의 이야기.


닮은 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식한테 한 마디를 안 해?

지금 영서는 화를 내지 않고 있다. 단순하게 묻고 있을 뿐이지만 하늘 높이 쪽 찢어진 눈 탓에 표독스러워 보인다. 남몰래 한숨을 삼키며 생각했다. 역시, 손해 보는 외모다. 다른 건 몰라도 눈만은 나를 닮게 하지 말라고 빌었는데 하늘도 무심하다.

어려서부터 작은 눈이 콤플렉스였다. 그 시절은 뭐, 부모가 낳아준 몸에 칼을 대면 큰일이 나는 줄 아는 때라 얼굴을 고치고 싶다든가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대신 쌍커풀이 있는 남자를 골랐다. 다른 조건을 빼고 자식에게는 이런 눈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의에서 한 결혼은 갓 태어난 영서를 안은 순간 실패로 돌아갔다. 둘은 있어야 외롭지 않지 않겠냐는 남편의 말, 결혼 전엔 동의했던 그 말을 거부한 건 어쩌면 영서의 얼굴을 보고 적잖이 놀란 탓도 있는지 모른다.

한 가지 희망은 시대가 바뀌어 성형수술이 훨씬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면 성형을 시켜주겠다는 제안에 영서는 길길이 날뛰며 내 얼굴에 손을 대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게 도화선이 되어 원래대로라면 가까운 사범대를 갈 예정이었던 영서는 서울로 상경, 거기서 지금의 사위를 만나 결혼했고 내 눈을 쏙 빼닮은 손녀를 앞에 두고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내게 엄마, 서아한테도 성형하라는 소리 했다간 봐. 그러면 두 번 다시 엄마 안 볼 거야, 라며 몇 년도 더 된 얘기를 꺼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얘, 어쩜 말을 그렇게 하니. 첫 손녀라 감격한 거야. 웅얼거렸지만 그날 내내 영서의 의심 어린 눈길을 피하느라 애를 썼다. 그것도 벌써 삼 년 전 일로, 지금 영서는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나는 일주일 전 삼십오 년 산 남편과 도장을 찍었다.

찻집을 나와 영서의 아파트로 갔다. 퇴근한 사위가 소고기를 사 왔다. 그는 갑작스러운 장모의 방문에도 서글서글하게 굴었다. 천천히 쉬다가 가세요. 내일은 주말이니 춘천에 당일치기라도 다녀올까요? 좀 멀지 않아? 자기는 집에서 쉬어 내가 장모님이랑 서아랑 셋이 다녀올게……. 나는 남매라고 해도 좋게 꼭 닮은 두 사람이 떠드는 것을 보다 피곤해서 일찍 쉰다고 방으로 들어갔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자 언제 들어왔는지 옆자리에 누워 있던 영서가 입을 뗐다.

엄마. 왜 안 자?

너는.

이 시간엔 원래 못 자. 애가 야행성이라.

만져볼래? 영서가 내 손을 부른 자기 배에 갖다 댔다. 영국에서 축구를 할 생각인가 봐. 저 사람 프리미어 리그 팬이잖아.

영서가 한창 활약 중인 선수를 언급했다. 선수의 빠른 발보다도 쌍커풀 없는 눈이 생각나 조금 울적해 있는데 영서가 입을 뗐다.

엄마 그거 알아? 나 중학교 삼학년 때 못생겼다고 따돌림당한 거?

…….

아주 잠깐이었지만 진짜 너무 속상했어. 아침에 세수하려고 거울을 볼 때면 얼굴을 아예 뜯어버리고 싶었어. 그래도 견딜 수 있던 건 내 얼굴이 엄마를 닮았기 때문이었어. 부모님이 주신 거니까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엄마가 성형수술을 하라고 했을 때 충격을 받은 거야. 아, 우리 엄마가, 배아파서 나를 낳은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까지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은 눈으로 나를 보는구나, 싶어서.

어느 여름, 엄마와 버스를 타고 아빠의 출장지로 간 적이 있다. 낯선 여자가 아버지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있었고, 그 뒤로 이따금 엄마는 아빠와 꼭 닮은 내 얼굴을 이상한 동물이라도 되는 듯 쳐다보았다. 이 나이에 남편의 바람기를 용서하지 않은 건 남편의 팔을 부여잡고 있던 여자가 엄마와 꼭 닮은, 퉁방울처럼 커다란 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조그만 눈동자가 반짝였다.

다 지난 얘기야 엄마.

…….

나는 내 눈 좋아. 엄마 닮아서. 엄마 예쁘잖아.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해서 귀염성 있거든.

웃는 딸의 눈가에 조글조글 잔주름이 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애가 이렇게 나이를 먹은 것은. 영서의 말대로 이제는 모두 지난 얘기다. 그래도……. 내 머릿속엔 서아와 새로 태어날 아이, 둘이 함께 병원에 간다면 더 싸게 해주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이희주

소설집 <크리미(널) 러브>, 연작소설 <사랑의 세계>, 장편소설 <환상통> <성소년> <나의 천사> 등을 냈다.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관련기사

Credit

  • 에디터/ 고영진
  • 일러스트/ 진주희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