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함윤이와 김채원이 박완서의 책장에서 발견한 문장들
함윤이와 김채원, 두 명의 젊은 소설가가 박완서의 책장에서 고른 책은 무엇일까?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박완서의 문장들
일기 한 줄, 원고 한 장. 작은 서재에서 써내려 간 문장들은 퇴색되지 않은 채 빛을 발한다. 세 명의 소설가가 작가의 책장에서 발견한 문장들.
<휘청거리는 오후>
1976년 동아일보에 첫 연재를 시작한 장편소설. 자영업자 ‘허성’과 그의 아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딸 초희, 우희, 말희의 이야기다. 세 딸이 안정적인 직업, 훌륭한 평판을 가진 남자와 결혼해 가문의 체면을 높이길 바라는 허성의 기대에 자꾸만 어긋나면서 그가 붙잡고 있던 서울 중산층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난 또 누구라고, 바로 나였구나.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를 처음 읽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그때 당시 나의 오후도 자주 휘청거렸던 것 같다. 이 소설은 총 두 권으로 된 장편소설로 허성 씨의 가정사를 담고 있다. 가정사라고 해야 하나, 가족사라고 해야 하나, 결혼사라고 해야 하나, 인생사라고 해야 하나? 무엇이어도 상관없으려나? 아무튼 허성 씨는 외자인 이름과 송편 크기만큼 잘린 왼손을 가졌고 그의 곁에는 아내 민 여사와 세 딸 초희, 우희, 말희가 있다.
첫 장면에서 허성 씨는 양품점 쇼윈도 너머 거울에 비친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서 이렇게 생각한다. “난 또 누구라고, 바로 나였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완서의 문장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이 문장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감히 우기고 싶어질 만큼.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휘청거리는 오후>의 인물들은 자기자신의 허영과 실망과 서투름과 안간힘 그러니까 ‘사람됨’을 피하지 않고 모조리 겪어내고 있으니까. 세상만사에 몸과 마음이 휘청이다가도 그래, 이게 나구나, 여기 이러고 있는 게 바로 나였구나, 하고.
허성 씨는 초희와 우희와 말희를 시집보내는 동안 돈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 매번 돈이 모자란다. 돈이 모자란 이유는 이들의 결혼이 제 몸에 꼭 맞는 결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딸들은 저마다의 까닭으로 자신과 맞지 않는 결혼을 꿈꾼다. 허성 씨는 그런 딸들에게 번번이 화가 나면서도 번번이 지고 만다. 무리해서 돈을 마련하고야 만다. 그리고 결국 그 무리한 선택으로 인해 궁지에 몰려 자살하게 된다. 그는 울음을 숨기려고 서둘러 웃어버려 표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이고, 자주 혼자이며, 촌스럽고 요령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혼 후 약물중독에 시달리는 초희가 약을 달라며 허성 씨에게 매달릴 때, 아빠는 자신의 고통을 모르기에 약을 숨길 수 있는 거라며 비굴한 얼굴로 악을 쓸 때 허성 씨는 그 얼굴을 외면하고서 혼잣말하듯 묻는다. “아무도 남의 고통에 대해 알 수는 없단다. 그러니까 고통만큼 확실한 자기 것도 없지 않겠니?”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그러고는 고통이라는 단어를 불행이라는 단어로 바꾸어서도 읽는다. 불행만큼 확실한 자기 것도 없지 않겠니? 이만큼 확실한 나의 것, 나의 불행. 소설에서 세 딸이 경험하는 각자의 불행은 그들이 똑똑하게 셈했다고 생각한 것들이 도리어 그들을 배반하고 넘어뜨린다는 점에서 가혹하다. 그러니까 어설퍼서. 빈틈없이 못되고 싶은데 하필 조금씩 착해서. 이러한 성정은 허성 씨와 민 여사의 것이기도 하다. 세 딸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어설픔을 스스로에게서 발견할 때마다 고통스러워한다. 서로가 애틋하고 지겨운 악몽이 된다. 허성 씨는 과연 그 어설픔을 누구에게서 물려받았을까? 자기 부모에게서? 그런 것은 소설에 나타나지 않는다. 허성 씨는 그 자체로 존재해 여기 서 있고 계속해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청거릴 뿐이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 소설을 신문에 연재할 당시 독자들에게 상당한 간섭을 받았다고 말한다. ‘여자들을 왜 불행하게 하느냐’, ‘허성 씨를 너무 가엾게 하지 마라’ 등등. 그러나 작가는 작중 인물을 창조하며 자신이 그들에게 지워준 운명대로 살게 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허성 씨에게 운명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으며 바꿀 수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의 자살이 나에게 슬픔이 되는 이유는 그가 스스로 죽어서가 아니라, 죽어가면서 자신의 마지막 선택이 실수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허성 씨는 막내 말희의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소주에 약을 타 마시고서 곤히 잠든 아내의 옆에 눕는다. 그는 또 한 번 분수에 넘치는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큰 사기를 쳤고 그것을 들켜 이제 쇠고랑을 차야 하는 상황이다. 허성 씨는 생각한다. “어찌 감당하랴 그 불명예를.” 그리하여 불명예가 아닌 죽음을 선택한 “그의 깜박이는 의식이 아주 사그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찬란하고 강렬하게 타오른다. 어떤 치욕도, 불명예도 죽음보다는 나으리라는 의식이었다.”
잘해보려고 하는데 뭔가 잘 안되는 인물들에게 나는 언제나 마음을 빼앗긴다. 가만히 넋을 놓고 그들을 지켜보곤 한다.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멈춰 서는 순간을, 잘못한 선택을, 실수를, 이게 왜 이렇게까지 된 거야? 하고 마치 불행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휘청거리는 오후>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잘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잘해보려고 그런 건데…. 소설을 읽는 동안 불쑥불쑥 이와 같은 말소리가 끼어들면 나는 그 말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잘해보려고 한 것일 텐데 잘 안됐네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어쩌면 매일매일요. 그러고는 다 읽고 나서 허성 씨처럼 바닥에 누워 잠들어 보았다. 꿈도 없이 다만 깊은 잠이었다. 글/ 김채원
<친절한 복희씨>
작가가 70대에 접어든 2007년 발표한 단편집. 노년의 시선에서 인간관계의 아이러니,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잔혹함을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9편의 글을 모았다. 표제작 ‘친절한 복희씨’는 여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과도 같은 ‘친절’이 어떻게 사회적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 포착했다.
구슬 같은 눈동자, 구슬 같은 눈물, 구슬 같은 이슬, 구슬 같은 물결…… 어디다 그걸 붙여도 그 말은 빛났다.
지난가을 나는 ‘한 달 살기’에 최적화된 곳으로 유명한 해외의 한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 그러니까 좀 더 기운찬(이상한 말인가? 그럼 좀 더 “깊은”) 글쓰기를 위해, 더불어 듣기에도 근사한 ‘워케이션’이란 행위에 한 발을 걸쳐보기 위해 향한 곳이었다.
그렇게 들른 도시는 열대기후에 걸맞은 눈부신 순간을 여럿 보여주었지만, 나는 자주 지루했고 또 쓸쓸했다. 워케이션 또는 한 달 살기를 위해 찾은 이들이 주로 머무는 도심의 장소들은 대개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느낌을 주었고, 원주민보다는 나처럼 도시 배경의 특정한 편의성을 탐내며 온 사람들을 위해 꾸며진 양 보였다. 도시 그 자체보다는 도시의 특성을 적당히 떼어내 만든 그림 속에서 지내는 기분이었다. 도시를 만들고 이끄는 이들의 형상은 희미해지고, 매혹적인 이미지만을 전면에 세운 그림. 교외 지역에 가서야 젠트리피케이션에 휩쓸리지 않은, 어쩌면 ‘시장’ 바깥이라 할 만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지만…. 내가 그곳에 가는 일 자체가 ‘시장’을 끌고 들어간다는 기분이 들어 풀이 죽기도 했다. 2주 남짓한 기간 동안 그 도시의 일부만을 겪었을 뿐이니, 오만한 감상임은 잘 알고 있다.
그 도시에 머물던 중 출판사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박완서 작가의 타계 15주기를 앞두고 국내의 여러 소설가에게 몇 개의 단편을 추천받아 책으로 엮으려 한다는 메일이었다.(이 책은 올해 초 <쥬디 할머니>(문학동네, 2026)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총 97편이 실린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추천해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 뒤따랐다. 나는 커다란 문 뒤편을 엿보고 싶은 욕심에 얼른 그러겠다고 답했다.
이후 몇 달간 박완서 작가의 단편을 따라 읽으며 여러 번 절망했고(“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그보다 더 자주 환호했다.(“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야!”) 그의 소설들은 매번 삶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충돌의 순간을 명료하게 그려냈다. 그 장면을 구성하는 선 너머에 숨겨진 세부적인 질감과 형상들 역시 끄집어냈다. 일견 시선을 빼앗기기 쉬운 매혹적인 이미지뿐 아니라 ‘교외’로 밀려나기 쉬운 삶의 흔적들까지 말이다.
물론 그의 글자들이 나를 쥐고 흔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몇 해 전, 지금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글을 읽고 싶다는 마음에 <친절한 복희씨>(문학과지성사, 2007)를 펼쳤다가 책장에서 펄펄 끓는 현재성에 놀라 주위 사람들한테 수선을 떤 적도 있다. 그야말로 장인이 쓴 글이라고, 마술처럼 언어를 고르고 다듬어 자신만의 것으로 바꾸는 솜씨가 무시무시하다면서.
그 호들갑에는 오늘날 자주 만나지 못하는 입말과 옛말의 너른 세계를 엿본 흥분, 현재와 사뭇 다른 시절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지금의 독자가 흠뻑 빠질 만한 서사와 인물을 그리는 방식에 매료된 마음이 두루 담겨 있었다.
“그는 나를 구슬 같다고 했다. 애인한테보다는 막내 여동생한테나 어울릴 찬사였다. 성에 차지 않았지만 나도 곧 그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구슬 같은 눈동자, 구슬 같은 눈물, 구슬 같은 이슬, 구슬 같은 물결…… 어디다 그걸 붙여도 그 말은 빛났다.” “그해 겨울은 내 생애의 구슬 같은 겨울이었다.” - 박완서, <그 남자네 집>, <친절한 복희씨> 중.
나는 종종 글쓰기 수업에 이 문단을 가져와 화면에 띄워놓았다. 이런 글을 찬탄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자, 보세요. 처음에는 “구슬 같다”라는 말이 보편적이고 정통적인 비유인 양 쓰이지만, 몇 번의 반복 후에 등장한 “생애의 구슬 같은 겨울”은 이 소설만의 묘사로 자리매김하고, 이 인물의 속내와 기억에 아로새겨진 특별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와 닿지요. 어때요, 기술적으로도 탁월하고 심리적으로도 ‘콱’ 박히지 않나요….
한데 출판사의 이번 제안을 받고 다시금 박완서 작가의 단편들을 따라 읽었을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장인다운 글솜씨보다 작가의 언어에서 계속하여 드러나는 어떤 절박함이었다. 인생의 가장 얇고 취약한 순간을 가장 진실되게, 누구도 요청한 적 없으나 어떤 명령을 받은 양 처절하게 파헤치고 쓰려는 태도. 매끈한 이미지만을 이어 붙일 수 있는 순간에도 기어코 이야기의 가장자리까지 떠내려가 그 장을 구성하는 사사롭고 추저분한 요소들까지 발굴하는 몸짓 같은 것.
박완서의 인물들은 20~21세기의 한국을 통과하며 삶의 모순과 그로 인해 금이 간 마음을 가감 없이 내보인다. 각기 다른 모양의 고통과 고독 그리고 절망과 희망은 전후(戰後)의 세계와 마주한 이들, 가난과 병을 앓는 동시에 이를 자긍심으로 소화하는 이들, 삶의 징그러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는 이들의 얼굴로 전해진다. 그 안에서는 작가 자신의 상실과 두려움까지 푸들푸들 떨리는 살갗처럼 드러나 있다.
이러한 진실됨은 박완서의 소설을 계속하여 끓게 하고 또 날카롭게 만든다. 그의 글자들은 뜨겁게 벼린 뿔로 읽는 이를 여러 번 들이받는다. 아름다운 형상만을 떼어내 만든 그림들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 혹은 상처 너머의 풍경을 펼쳐낸다. 그는 낯선 도시에서도 지루해하거나 쓸쓸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벽과 길을 더듬어가며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받았는지, 또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받았는지 관찰한다.
박완서 작가의 그림과 구멍, 그 너머의 세계는 고로 여전히 다채롭다. 인생을 ‘콱’ 들이받는 충돌과 그 순간 생긴 구멍에서 삐져나오는 상실, 희로애락의 시간을 도르르 도르르 굴리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는 움직임이 그곳에 있다. 언제든 이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는 일은 그야말로 구슬 같은 행운이라 할 수 있겠다. 글/ 함윤이
Credit
- 에디터/ 고영진
- 사진/ 표기식(공간), 호원숙(인물)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2026 봄 패션 트렌드
#자켓, #스타일링, #봄, #셔츠, #액세서리, #트렌드, #청바지, #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