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첫 펜디 오트 쿠튀르
펜디의 2026 F/W 오뜨 쿠튀르 컬렉션은 옷이 이미지가 아니라 물질임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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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ATTER OF DESIRE
옷을 만져보지 않고 사는 시대다. 그러나 옷은 피부에 닿는 무게와 몸 사이의 간격, 그것을 욕망하는 몸 위에서 비로소 존재한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첫 펜디 쿠튀르, 2026 가을/겨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옷이 이미지가 아니라 물질임을 증언한다.
펜디 2026 가을/겨울 쿠튀르 컬렉션의 서막을 여는 발레리아 골리노의 오리지널 필름.
옷이 화면 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우리는 손바닥만 한 스크린을 넘기며 옷을 고르고, 장바구니에 담고, 입어보지 않은 채 구매한다. 그사이 옷은 조금씩 이미지가 되어갔고, 옷을 소유한다는 일은 시각의 영역으로 납작해졌다. 그러나 옷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소매에 팔을 꿰는 순간 피부의 솜털 하나까지 일으켜 세우는 촉감, 어깨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무게, 옷감과 몸 사이를 흐르는 공기의 간격, 그리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의 움직임을 따라 매번 다시 그려지는 실루엣. 만든 이의 손끝에서 시작된 감각이 입체적인 감각으로 부풀어 입는 이의 몸에 건너가는 그 과정 안에서 옷은 비로소 존재감을 얻는다. 쿠튀르는 이 과정을 가장 순도 높은 형태로 지켜온 패션의 마지막 영토다. 모든 것이 이미지로 소비되는 시대에 우리가 여전히 쿠튀르를 보고 또 입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6년 7월, 로마에서 공개된 펜디 2026 가을/겨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그 이유를 새삼 선명하게 만든다. 펜디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선보이는 첫 쿠튀르 컬렉션의 주제는 ‘욕망’이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이 컬렉션이 단순히 옷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물질이자 감정과 의도, 태도가 얽혀 있는 존재인 몸에 다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패션은 우리가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임을 일깨우고,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그 욕망이라는 단어에 관능과 에로티시즘, 자유를 겹쳐놓은 뒤 마침내 쾌락을 더한다. 옷을 시각의 대상이 아니라 몸의 사건으로 되돌려놓겠다는 의지에 가깝다. 그래서 이번 컬렉션의 옷들은 몸을 조형하려 들지 않고 몸의 움직임과 본성을 따라간다. 흑백 스트라이프 인레이를 더한 시폰은 몸 위를 미끄러지듯 흐르고, 벨벳과 그랭 드 푸드르로 지은 기모노 형태의 재킷과 오버코트는 억지로 형태를 세우는 대신 유연하게 몸을 감싼다. 코르셋 없이 드레이핑만으로 몸의 선을 조각해내는 드레스는 구속이 아니라 경청의 결과물이고, ‘덜어냄’의 미학 속에서 퍼는 깃털이 되고 블랙과 화이트의 스트라이프는 튤에 기대어 형태를 유지한다. 튤로 구조를 세운 망토와 케이프 위에는 아라베스크 자수가 잎사귀와 깃털로, 가죽과 퍼와 패브릭으로 빚은 꽃으로 피어나는데, 남성의 어깨 위에서 그것은 담요가 되고 피난처가 되고 작은 오두막이 된다. 손으로 만든 것만이 가질 수 있는 이 밀도는 서로 다른 아틀리에를 하나의 대화 속으로 불러들인 결과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게 아틀리에는 다양한 관점이 모여드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고, 그 안에서 지식과 기술이 부딪히며 쿠튀르라는 매혹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언어가 끊임없이 다시 쓰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컬렉션이 하나의 이미지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1970년대 후반의 로마를 가로지르는 한 독일 소녀, 순수하면서도 관능적인 자유의 표상. 이 장면의 원형은 1977년 자크 드 바셰가 연출한 필름 <Histoire d’eau>다. 폴린 레아주의 소설 <Histoire d’O>를 익살스럽게 비튼 제목의 이 작품은 칼 라거펠트가 펜디에서 자신의 첫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선보이며 제작을 의뢰한 것으로, 패션 필름이라는 장르의 고고학적 기록이라 부를 만하다. 룩북과 화보가 패션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던 시절, 칼 라거펠트는 옷을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로 보여주고자 했다. 옷은 입는 사람의 시간과 도시, 감정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것을 그는 반세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방향이다. 오늘의 패션 영상이 옷을 화면 안에 가두는 쪽으로 진화해왔다면, 칼 라거펠트의 첫 필름은 옷에 삶의 서사를 불어넣어 화면 밖의 몸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첫 쿠튀르의 뮤즈를 이 필름 속에서 찾아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반세기 전의 그 실험은 이번 시즌 로마에서 되풀이됐다. 컬렉션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전 세계에 공개되기 직전, 펜디는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하고 <미엘레>로 감독으로도 데뷔한 이탈리아 배우 발레리아 골리노가 연출한 오리지널 단편영화 <러브 몬스터(Love Monster)>를 최초로 상영하며 서막을 열었다. 배우 그레타 스카키와 빈센트 도노프리오의 딸인 레일라 조지, 이탈리아의 명배우 세르조 카스텔리토의 아들이자 그 자신도 영화를 연출하는 피에트로 카스텔리토가 주연을 맡은 이 필름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머무는 욕망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빌라 보르게세의 정원과 프레젠테이션이 열린 로마 국립근현대미술관(GNAMC)의 폐관 후 공간에서 촬영됐다. “키스와 어루만짐, 친밀함과 나른함의 순간에는 느리게 흐르다가, 도망치고 싶은 욕망 앞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발레리아 골리노의 말처럼, 영화는 컬렉션 전반에 흐르는 관능과 자유, 쾌락에 대한 탐구를 스크린 위로 확장한다. 1977년의 칼 라거펠트가 그랬듯,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역시 옷의 이야기를 필름으로 먼저 들려준 것이다.
오트 쿠튀르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디테일들, 그리고 그 서사를 담아낸 패션 필름의 비하인드 신(흑백 컷).
그 실험의 기원을 실물로 마주할 기회도 함께 열린다. 컬렉션과 나란히 로마 국립근현대미술관(GNAMC)에서는 전시 «After un percorso di lavoro. Fendi / Karl Lagerfeld 1985»가 7월 10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이어진다. 1985년 10월, GNAMC에서는 펜디와 칼 라거펠트의 협업 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개막했다. 훗날 미술 전문지 <아트포럼>의 편집장이 되는 큐레이터 이다 파니첼리가 기획하고 라거펠트가 직접 동선을 설계한 이 전시는 이탈리아에서 패션 브랜드를 주제로 미술관에서 연 최초의 전시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 내용이 지금 보아도 급진적이다. 완성된 옷을 진열하는 대신, 퍼를 소재로 구상되고 디자인되고 제작되는 전 과정을 관람객이 직접 경험하게 한 것이다. 옷의 가치는 결과물의 광택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는 믿음, 40여 년 전의 이 전시가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2026년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충분히 연구된 적 없던 이 전시를 같은 미술관에서 다시 깨워낸다. 베네치아 IUAV 대학 교수이자 이탈리아 패션 큐레이팅을 대표하는 이론가 마리아 루이사 프리사가 큐레이션을 맡은 «After un percorso di lavoro. Fendi / Karl Lagerfeld 1985»는 종이 패턴 모형과 샘플 보드, 180점의 스케치와 25점의 퍼 작품, 그리고 <Histoire d’eau>까지 당시의 구성을 충실히 복원하되, 소실된 작품들은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다시 제작해 채워 넣었다. 제목 앞에 붙은 ‘After’는 원전시 이후 오늘이라는 맥락 속에서 오브제와 이미지를 재맥락화해 또 다른 창조의 가능성을 열겠다는 의미다. 과거의 전시를 다시 활성화하는 일은 패션의 본질적 속성인 ‘영원한 현재성’을 다시 사유하는 일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이 전시가 약속하는 것은 실제 공간에서 작품과 몸으로 마주하는 경험이다. 화면 너머로는 결코 건너오지 않는 것, 퍼 한 올의 결과 캔버스의 질감과 스케치 위 연필 선의 압력 같은 것들 말이다. 같은 시기 펜디가 마련한 전시 «A Fairy Tale of the Future»가 칼 라거펠트와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킴 존스로 이어진 지난 10년의 쿠튀르(2015~2025년)를 아틀리에의 문법으로 조망한다는 점까지 겹쳐 보면, 이번 시즌의 로마는 하나의 질문을 향해 정렬되어 있다. 옷이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이 시대의 섬세한 탐미주의자,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시선이 담긴 첫 펜디 쿠튀르. 쇼가 끝난 뒤 모델들과 특별한 순간을 기록했다.
1977년의 필름과 1985년의 전시, 그리고 2026년의 쿠튀르. 반세기에 걸친 세 개의 장면을 관통하는 것은 옷을 이미지가 아닌 경험으로 대하는 태도다. 칼 라거펠트는 옷에 이야기를 담았고,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그 이야기를 이어받아 몸에게 돌려주었다. 오트 쿠튀르가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가락으로 넘기는 무한한 이미지의 물살 속에서, 쿠튀르는 옷이란 결국 한 사람의 몸과 만나 완성되는 물질이라는 사실을 붙들고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다. 아틀리에의 재봉사가 튤 위에 꽃 한 송이를 수놓는 데 들인 시간은 화면으로 전송되지 않는다. 그것은 옷을 입은 몸이 움직일 때, 옷과 피부 사이의 그 미세한 간격에서만 감지된다. 우리가 옷을 입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감각이 통과해 간 물질을 제 몸으로 다시 살아내는 일이고, 펜디의 이번 컬렉션은 그 오래된 진실을 로마의 빛 아래 다시 세워 보였다. 옷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이다.
Credit
-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Fendi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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