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2025년 도쿄 겐다이 리포트

일본의 미술 시장 판도가 궁금하다면 주목하자.

프로필 by 손안나 2025.10.29

The Meeting Point


2025년 도쿄 겐다이는 지금 일본의 미술시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무대였다.


한국 갤러리 조현화랑이 도쿄 겐다이 2025 사토 메도우 섹션에서 선보인 김택상의 새로운 연작 <Flow>. Courtesy of the Artist and Johyun Gallery.

한국 갤러리 조현화랑이 도쿄 겐다이 2025 사토 메도우 섹션에서 선보인 김택상의 새로운 연작 <Flow>. Courtesy of the Artist and Johyun Gallery.


Installation view of Tokyo Gendai 2025 at Pacifico Yokohama. Courtesy Tokyo Gendai.

Installation view of Tokyo Gendai 2025 at Pacifico Yokohama. Courtesy Tokyo Gendai.


스페이스 운이 출품한 바르텔레미 투구오의 세라믹 조각들. Courtesy Tokyo Gendai.

스페이스 운이 출품한 바르텔레미 투구오의 세라믹 조각들. Courtesy Tokyo Gendai.

미술경제학자 클레어 맥앤드루(Clare McAndrew)의 보고서(‘The Japanese Art Market 2024’)에 따르면, 일본 미술시장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11% 성장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성장률이 1%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수치다. 또 다른 보고서(‘Art Basel & UBS의 The Art Market 2025’)는 지난 해, 전 세계 미술품 거래 규모가 12% 줄었지만 일본은 예외적으로 2% 성장했고, 그중 갤러리 부문은 7%나 차지한다고 밝혔다. 도쿄 현대미술관의 리노베이션과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 개관 같은 인프라 확충, 그리고 기관과 갤러리를 하나의 도시적 네트워크로 묶은 아트 위크 도쿄(Art Week Tokyo)나 아트 컬래버레이션 교토(Art Collaboration Kyoto) 같은 플랫폼의 등장도 물론 도움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팬데믹 이후 새로 유입된 젊은 컬렉터의 등장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일본 컬렉터들이라면 여전히 현대미술보다 고미술을 선호할 것이란 나의 편견에 대해 도쿄 겐다이의 페어 디렉터 에리 다카네(Eri Takane)는 고개를 저었다. “팬데믹 이후 젊은 창업가나 2세 경영인 같은 젊은 컬렉터들이 나타났어요. 지난 몇 년 사이 이들의 구매력이 눈에 띄게 상승했고요. 지금은 이들이 시장의 방향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전통 문화는 여전히 중요하죠. 다도나 서예처럼요. 하지만 이들은 동시대 작가에게 관심이 있어요.”

1995년 니카프(NICAF) 이후 30년 만에 일본에서 부활한 국제 규모의 아트페어 도쿄 겐다이가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지난 2년간 놀라울 정도로 무더웠던 7월 초에 열렸던 도쿄 겐다이는 올해 9월 12일부터 14일까지로 개막 일정을 조정했다. 직전 주에 문을 여는 프리즈 서울과의 연계를 꾀한 전략이다. “9월로 옮긴 건 아주 좋은 결정이었어요. 같은 시기 도쿄의 국립신미술관(NACT)과 홍콩 M+가 공동 기획한 전시 «Prism of the Real: Making Art in Japan 1989-2010»이 열렸고, 아이치 트리엔날레도 개막했거든요. 도쿄 전체가 예술 축제처럼 움직이는 시기라 자연스레 관람 동선이 만들어졌죠. 많은 해외 컬렉터가 프리즈 서울을 보고 바로 도쿄로 넘어와 아시아 투어를 완성하더군요. 저희가 원하는 건, 경쟁이 아니라 협업입니다.”

도쿄 겐다이는 아트부산과의 협업 ‘CONNECT’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9개, 중국 2개의 갤러리를 이번 페어에 초청했다. 단순히 부스를 나란히 세우는 식의 겉핥기 협업은 아니었다. “테라다 아트 콤플렉스에서 이들 갤러리를 위한 위성 전시를 병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이 확보되면서 협업의 실질적인 기반도 마련됐죠. 단순한 초청이라기보다, 양국의 갤러리와 컬렉터의 네트워크를 실제로 연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도쿄 겐다이와 아트부산은 서로를 잘 아는 ‘페어 프렌즈’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예요.”

아시아 미술 신을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하는 리듬을 만들고자 했다면, 이들의 전략은 꽤 성공적이다. 프리즈 서울과 함께 뜨거웠던 예술 주간을 끝내고 다소 후련한 마음으로 도쿄 겐다이 출장길에 오른 나는 테라다 아트 콤플렉스에서 익숙한 이름들을 발견하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조현화랑, 갤러리 바톤, 가나아트, 갤러리 엠, 띠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의 축제는 고스란히 이곳 도쿄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도쿄 겐다이 페어 현장 곳곳에 12개의 대규모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큐레토리얼 성격의 사토 메도우 섹션은 그 리듬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공간이었다. 단연 돋보인 것은 조현화랑 소속 김택상의 새로운 연작 <Flow>였다. 작가는 물에 미량의 안료를 섞어 캔버스에 붓고, 자연 건조를 반복하는 ‘담화(淡畵)’ 기법을 통해 시간과 물성의 결을 기록한다. 그 옆에선 얼마 전 도쿄에 아시아 분점을 낸 프랑스 갤러리 세이송 앤 베네티에르(Ceysson & Benetiere) 소속의 개념미술가 베르나르 브네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페인트를 묻힌 커다란 금속 막대를 든 작가가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벽면 위에 흔적을 남겼다. 선과 금속, 형태와 힘, 이성과 질서 사이의 긴장을 탐구하는 브네와 물과 빛, 우연과 반복, 그 사이의 가능성을 그리는 김택상이라. 절묘한 만남이었다. 다카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저 혼자 이 공간을 ‘사토 로드(Sato Road)’로 부르고 있답니다. 이어서 카이키키 갤러리의 오타니 워크숍 청동 조각까지 서로 다른 재료가 대화하듯 연결되어 있죠.”

아무리 미술품을 사고 파는 아트페어일지라도 관객 체험과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큐레토리얼 섹션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년엔 조용히 관람만 하던 분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올해는 작품에 대해 직접 질문하는 관객이 많았어요. 그만큼 관람객의 관심이 커졌다는 뜻이겠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경험이 관객을 더 능동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카네가 그리는 도쿄 겐다이의 정체성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향하는 건 ‘미팅 포인트(meeting point)’예요. 일본의 도시 자체가 컬렉터들에게 매력적인 목적지입니다. 올해는 도쿄를 넘어 교토, 나오시마, 나스시오바라의 스가 기시오 미술관 투어까지 포함했죠. 또 참가 갤러리의 절반은 일본, 나머지 절반은 해외 갤러리예요. 일본 관객은 국제 작가를, 해외 컬렉터는 일본 작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차점이 바로 도쿄 겐다이의 정체성이에요. 우리의 모든 프로그램이 그 방향을 향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 문화, 시장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소요.” 아시아 아트 네트워크가 모이는 만남의 광장. 올해는 분명 그 가능성을 본 자리였다.


손안나는 <바자 아트>의 편집장이다. 다음 달 폐막하는 아이치 트리엔날레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충동적으로 나고야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마감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다.)

Credit

  • 글/ 손안나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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