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까르띠에가 주얼리로 표현하는 '균형'의 모습은?

절제와 대담함, 정밀함과 감정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 까르띠에의 새로운 하이주얼리 컬렉션 ‘앙 에킬리브르(En Equilibre)’.

프로필 by 황인애 2025.06.24

IN PERFECT BALANCE


까르띠에가 북유럽의 중심, 스톡홀름에서 새로운 하이주얼리 컬렉션 ‘앙 에킬리브르(En Equilibre)’를 공개했다. 절제와 대담함, 정밀함과 감정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를 통해 까르띠에는 보석이라는 언어로 균형의 의미를 다시 썼다.


이 시대에 균형이란 무엇일까. 빠르게 기울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동시에 모호해졌다. 매 순간 쏟아지는 과잉된 정보 속에서 감정은 분주히 소진되고, 물리적 현실과 디지털 현실, 외면과 내면, 과거의 전통과 미래의 속도 사이에서 우리는 매일 그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애쓴다. 그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에 가깝다. “질서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이 아니라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균형이다.”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말처럼, 균형은 누군가 정해놓은 형태가 아니라 내면에서 끊임없이 조율해가는 유기적인 상태다. 까르띠에는 이번 ‘앙 에킬리브르’ 컬렉션을 통해 이 유기적 균형의 감각을 보석이라는 언어로 번역해냈다.

프랑스어로 ‘균형 잡힌’이라는 뜻을 지닌 이번 컬렉션은 정지된 조형이 아니라 지속적인 긴장과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정제된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다. 까르띠에는 이 복잡하고 다층적인 철학을 시적으로 구현할 장소로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을 택했다. 도시와 자연, 전통과 실험이 경계 없이 공존하는 이곳은 외적인 질서보다는 내적인 리듬이 살아 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 정서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가 ‘라곰(Lagom)’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의 삶. 까르띠에는 라곰의 철학을 주얼리로 치환했다.

5월 26일, 이번 컬렉션을 소개하는 자리가 나카 스트란드메산(Nacka Strandsmässan)이라는 스톡홀름 외곽의 해안가에서 열렸다. 스웨덴 산업 디자인의 간결한 선과 광활한 수평선이 어우러진 공간. 그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관람객들은 절제된 미학과 감정의 조율이 흐르는 까르띠에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끌렸다. 하이주얼리 크리에이션 디렉터 재클린 카라치(Jacqueline Karachi)는 “절제를 통해 독특한 라인을 창조하는 것은 정교한 단순함이 지니고 있는 역설입니다. 이는 사물을 새로운 시작으로 바라보는 예술이자 정밀한 균형을 만들어내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실행하는 창의적 접근의 중심에는 균형의 예술이 자리하며, 그것이 까르띠에의 조화를 보여줍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까르띠에는 이번 컬렉션에서 중심을 ‘잡는 것’보다 ‘찾는 과정’ 그 자체를 보석으로 형상화했다.

까르띠에의 새로운 하이주얼리 컬렉션 앙 에킬리브르는 이름 그대로, 조형과 감정, 질감과 구조, 색채와 여백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실험의 연속이다. 이 컬렉션은 완벽한 중심을 고정하려는 시도보다는 유연한 긴장 속에서 만들어지는 역동적인 조화를 보여준다. 선의 흐름, 빛의 굴절, 스톤 간의 간격, 구조의 레이어링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된 이 컬렉션의 세계는 관객에게 균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느끼게’ 만든다.

베름되의 아트 갤러리 아티펠라그에서 열린 갈라 디너.  까르띠에의 균형감이 드러나는 전시 공간. 까르띠에 프렌즈인 스웨덴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앙 에킬리브르 컬렉션을 착용한 배우 조 샐다나.  까르띠에의 균형감이 드러나는 전시 공간.

앙 에킬리브르 컬렉션의 대표적인 네크리스 중 하나인 ‘팬더 덩틀레(Panthère Dentelée)’는 오닉스로 표현된 팬더의 검은 반점과 다이아몬드, 오픈워크 골드가 마치 레이스처럼 팬더의 형상에 입체감을 더한다. 팬더의 우아함과 포식자의 긴장감,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섬세함이 한 피스 안에 공존한다. 콜롬비아산 에메랄드는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정교하게 세공된 파셋은 마치 조각처럼 완성도를 높인다. ‘히알라(Hyala)’ 네크리스는 피부 위에 스며들듯 가볍게 내려앉는다. 정교한 핑크 골드 세공 위에 다이아몬드와 컬러 사파이어가 얹히며, 스톤을 목에 바로 올려놓은 듯한 생생한 밀착감을 연출한다. 신비롭고 경이롭게 비치는 투명함 속에 5.71캐럿의 오벌 컷 다이아몬드 펜던트가 중심을 이루고, 그 아래로 페어 셰이프 다이아몬드가 한층 더 깊은 반짝임을 더한다. 보일 듯 말 듯 이어진 디테일은 마치 미세한 거미줄을 따라 빛이 흐르는 듯하고, 그 섬세함의 끝에는 ‘히알라’라는 이름에 걸맞은 메종 주얼러들의 노하우가 응축되어 있다. 하이주얼리에 대한 까르띠에의 비전을 반영해 스톤을 중심으로 디자인된 ‘쉬토(Shito)’ 네크리스 역시 과하지 않은 것(Nothing in Excess)이라는 까르띠에의 균형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총 49.37캐럿의 잠비아산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로 구성된 이 네크리스는 정교함의 바탕이 정제된 소재와 기술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차강(Tsagaan)’ 네크리스는 설원의 눈표범(Snow Leopard)처럼 드러나지 않고 감지되는 존재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겨울 눈밭에서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보호색을 지닌 눈표범처럼 시선을 정면으로 끌기보다 시야의 방향과 각도에 따라 반짝이며 자신을 드러낸다. 트롱프뢰유 기법을 활용한 구조는 서로 다른 라인들이 반응하며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팬더의 머리가 드러나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연속된 기하학적 모티프는 카이트(방패), 로장주(마름모), 트라이앵글 컷 다이아몬드로 구성되며, 여기에 오닉스가 더해져 블랙과 화이트, 블루와 투명한 스톤의 컬러 듀오를 형성한다. 또한 가득 찬 면과 비어 있는 공간의 리듬은 조형성과 리듬감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낸다. 이어지는 ‘파보셀(Pavocelle)’ 네크리스에서는 까르띠에가 형상과 움직임, 그리고 생명에 대한 상상력을 어떻게 엮어내는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중심에 놓인 58.08캐럿의 스리랑카산 카보숑 사파이어는 공작새의 꼬리를 닮은 오픈워크 구조 안에서 깊이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레이스처럼 얇게 세팅된 다이아몬드와 함께 시선의 흐름을 유도한다. 또한 중심부는 따로 떼어 브로치로, 페어 셰이프 다이아몬드는 펜던트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이 네크리스만의 특징. 마지막으로 ‘팬더 오르비탈(Panthère Orbitale)’ 네크리스는 역동성과 조형감, 그리고 색채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강렬함에서 한눈에 까르띠에임을 읽을 수 있다. 팬더는 마치 산호빛 행성 위에 가볍게 내려앉은 듯하고, 그 아래로는 아메시스트와 산호가 층층이 배치되어 원형 궤도를 그린다. 에메랄드 눈동자에 다이아몬드와 오닉스를 입은 팬더 역시 정적인 동시에 살아 있는 듯한 긴장감을 표현한다.

균형에 대한 실험은 반지로도 이어진다. 이번 컬렉션 중 하나인 ‘모투(Motu)’ 링은 색채와 구조, 전통성과 유희의 감각이 공존한다. 중심에는 7.80캐럿의 페어 셰이프 투르말린이 자리하고, 그 아래로 블루와 그린 스톤이 한 단씩 겹쳐지며 쌓인다. 미장아빔(Mise En Abyme) 기법을 통해 중심 스톤의 볼륨이 극대화되고, 다층적인 구성이 깊이를 더한다. 포트레이트 컷 다이아몬드가 중앙을 감싸며, 이를 터키석과 크리소프레이즈 비즈가 둘러싼다. 블루와 그린 컬러의 대비는 루이 까르띠에 시기의 피콕 모티프(Peacock Motif)를 다시 불러오며, 메종의 상징적인 색채 유산을 현재형으로 번역한다. ‘타테야(Tateya)’ 링은 기모노를 감싸는 전통 오비 매듭에서 영감을 받은 구조로, 6.98캐럿의 베트남산 카보숑 루비를 중심에 두고 이를 부드럽게 감싸는 듯한 리본 형태의 곡선이 돋보인다. 모든 면이 곡선으로 처리된 이 링은 각을 지우고 부드러움만 남긴 구조 속에서 조용한 기품을 드러낸다. 돔 형태의 오픈워크 모티프는 곡선의 흐름을 따라 연결되며, 이 정제된 유연함이 까르띠에가 말하는 고요한 정교함에 가까워진다. ‘스쿠도(Skudo)’ 링 역시 두 개의 실드 컷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반복되는 기하학 구조를 쌓아올린 형태다. 작고 정교한 실드 컷 다이아몬드와 오닉스가 만들어내는 흑백 대비는 시각적 깊이를 더한다.

레이스처럼 얇게 세팅된 다이아몬드가 돋보이는 ‘파보셀’ 네크리스. 마치 미세한 거미줄처럼 반짝이는 ‘히알라’ 네크리스. 13.35캐럿 스리랑카산 사파이어가 중심을 이루는 ‘아줄레주’ 링.  눈표범을 떠올리게 하는 ‘차강’ 이어링.

구조적 밀도와 감정의 미묘한 기울기, 그리고 손의 기억으로 번역된 기술은 앙 에킬리브르 컬렉션의 모든 조형을 지탱하는 힘이다. 까르띠에가 이야기하는 균형은 과정이고, 끊임없는 조율이며,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유기적인 상태다. 그리고 그 조율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과 감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까르띠에는 보석을 통해 말하고 있다.

까르띠에의 이 모든 철학은 스톡홀름 외곽, 베름되(Värmdö)의 아트 갤러리 아티펠라그(Artipelag)에서 열린 갈라 디너로 이어졌다.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이동한 게스트들은 북유럽의 투명한 저녁 햇살 아래, 하이주얼리와 그 정신을 오롯이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델들은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구조적인 드레스를 입고 타블로 비방(tableaux vivant) 퍼포먼스를 펼쳤다. 타블로 비방은 ‘살아 있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연극적 구성과 회화적 정지 기법을 활용한 퍼포먼스 기법이다. 모델들이 마치 정지된 것처럼 포즈를 유지하며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냈고, 까르띠에는 이 멈춰 있는 몸짓 안에 각 주얼리의 감정과 균형을 담았다. 조 샐다나,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디피카 파두콘, 안나 사웨이 등 까르띠에의 프렌즈가 함께한 이 자리에서 까르띠에는 과시가 아닌 감각과 감정 사이를 잇는 언어로 하이주얼리를 선보였다.

앙 에킬리브르는 단순히 새로운 하이주얼리 컬렉션이 아니다. 그것은 까르띠에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시대적 질문이자 응답이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중심에 맞추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내면에서 균형을 만들어가는 일. 혼돈 속에서도 감정의 수직을 세우는 일.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존재의 방식. 그것이야말로 까르띠에가 하이주얼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진정한 가치였다.

Credit

  •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Cartier ⓒ Julien Thomas Hamon(장소) ⓒ Agnes Lloyd-Platt
  • Vanessa Tryde(인물)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