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웰컴투 연니버스, ‘계시록’의 류준열과 신현빈

연상호와 알폰소 쿠아론이 협업한 그 영화.

프로필 by 고영진 2025.03.26

어떤 믿음


감독에 연상호,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알폰소 쿠아론, 그리고 류준열과 신현빈. 영화 <계시록>은 믿음이 의롭고 숭고하며 아름답다는 명제에 반문한다.


드레스는 Bottega Veneta. 귀고리는 Portrait Report.


코트는 Our Legacy. 니트 톱은 Ferragamo.


류준열이 착용한 코트는 Our Legacy. 이너 니트 톱은 Ferragamo. 신현빈이 착용한 드레스는 Bottega Veneta. 귀고리는 Portrait Report.


트렌치코트, 수트는 Ferragamo. 부츠는 Lemaire.


류준열


하퍼스 바자 <계시록>으로 연상호 감독과 처음 만났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 이번 작업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나?

류준열 평소 연 감독님 작품을 즐겨 봤다. 대중적이면서도 독특한 소재로 이야기를 만드시는 분이지 않나. 제안을 받았을 때 무척 기뻤다. 효율적으로 진행해 촬영에 시간을 많이 안 쓰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라 걱정이긴 했다. 근데 작업을 해보니 알겠더라. 순간적인 기지가 대단하신 분이다. 가끔 답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일단 촬영을 진행하고 볼 때가 있다. 그런데 갑자기 감독님이 막 뛰어오셔서 부연 설명을 해주신다. 한순간에 다른 국면에 접어든다. 우리가 찾던 정답이 이거였구나, 하고. 틈틈이 감탄하며 촬영했다.

하퍼스 바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제작을 총괄했다. 그의 작품 <그래비티>와 <로마>를 좋아하는 영화로 꼽으며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평소 동경하던 영화인과 함께 작업한 경험은 어땠나?

류준열 알폰소 쿠아론 감독님이 내가 연기한 작품을 보셨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가 제작에 함께했다는 것은 이 이야기가 한국의 정서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재와 죽음이라는 범우주적 소재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기대된다.

하퍼스 바자 당신이 연기한 ‘성민찬’은 신의 계시라는 명분으로 교회 신도를 단죄하려는 목사다. ‘광기’로 설명할 수 있는데, 사실 전작 <더 에이트 쇼>나 <돈>, <독전>에서도 어느 정도는 미쳐 있는 연기를 보여줬었다. 성민찬의 광기는 무엇이 다른가?

류준열 광기는 주관적인 영역이니 누군가에게는 과해 보이는 연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상황 자체가 극적이니 더 표현하려고 했다. 언급된 전작에 비해 감정적으로나 표현의 강도 측면에서 더 두드러지게 말이다.

하퍼스 바자 동갑내기 친구인 배우 신현빈이 함께했다. 두 사람은 현장에서 어떤 대화를 많이 나눴나?

류준열 이제 어느 현장을 가도 후배와 선배 사이 어딘가에 껴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럴 무렵 친구랑 같이 하니 너무 편해서 좋았다. 극중에서 내내 붙어 있진 않아서 만나면 서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브리핑하기 바빴고.

하퍼스 바자 “긴장 속에 가벼움이 있고, 가벼움 속에 무거움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과거 당신이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배우 류준열의 연기를 정의 내린 문장이라고도 생각했다. 어떤 상황이든 살짝 비틀어 재미와 변주를 주는 스타일 말이다. 여전히 지향하는 방향인가?

류준열 어쩔 수 없는 내 성격인 것 같다. 남들이 심각할 때 조금은 가볍게 접근하고, 남들이 가벼울 땐 괜히 조금 더 진지해지려는 성격이 연기에도 묻어나는 것이다. <계시록>에서도 살짝씩 비튼 지점이 있다. 원작을 본 사람들이라면 차이를 비교하면서 봐도 재밌을 거다.

하퍼스 바자 연기를 제외하고 당신을 설명할 키워드를 찾는다면 취미가 아닐까. 이를테면 러닝, 사진, 축구 같은.

류준열 분명 취미였는데 점점 진지해지고 있다. 이것도 성격 탓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꼭 누군가를 넘어서고 기록을 세워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뭐든 제대로 하고 싶어하는 쪽이다. 발을 담갔으면 끝까지 가본다는 생각으로. 뛸 때는 ‘완주’라는 목표만으로도 충분해서 재미있다.

하퍼스 바자 사진 찍는 일은 어떤가? 최근 몇 년은 적어도 1년에 한 번 꼬박꼬박 사진전을 열 정도로 부지런했는데.

류준열 작년에 휴식기를 가졌는데, 사진 작업으로 할 일이 많았다. 올해도 전시를 한 번 해야 할 것 같아서. 보통 휴가라고 함은 촬영이 없을 때를 말하는데, 난 그럴 때 다른 할 일이 많아서 더 바쁜 것 같다.

하퍼스 바자 여행도 뜸해진 것 같다. 2016년 <꽃보다 청춘>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길 가다 침을 뱉지 말아야지’ ‘질서를 지켜야지’ 같은 뜬금없는 생각들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런 것들이 모여 인생을 바꿔놓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최근 일상이나 여행지에서도 그렇게 불현듯 정립한 생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류준열 이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때의 여행과 지금의 여행이 좀 달라졌다. 요즘 여행은 사진 찍으러 가는 일이 된 것 같다. 이 인터뷰를 계기로 다시 한 번 그런 여행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 없이 몸만 가는 여행. 근데 막상 카메라가 없으면 아쉽겠지?(웃음)

하퍼스 바자 ‘이럴 거면 가져올걸’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 찍고 싶은 장면만 눈에 밟히고.

류준열 정확하다. 근데 요즘 내 삶이 다 그런 식이다. 내가 지키려던 루틴이나 습관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고 스트레스가 되는 순간 내려놓게 되는데, 지금은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애매하게 붙들고 있는 느낌이다. 시험은 다가오는데 공부는 하나도 안 해놓은 느낌. 심지어 시간도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 그래서 딴짓만 하면서 굉장히 찝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느낌. 으. 말하는 데 소름 돋는다.(웃음) 새해부터 3개월째 그렇게 살고 있다.

하퍼스 바자 올해는 데뷔 10년 차를 맞은 해가 아닌가. 변화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류준열 맞다.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지만, 힘들어도 변화는 필요한 것이니까. 연기를 시작할 때가 서른 초반이었는데, 이제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 꼿꼿한 심지 같았던 고집이 한풀 꺾인 것을 보면 이미 변화를 마친 부분도 있는 것 같고.

하퍼스 바자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당신이 꼭 붙들고 있는 믿음이 있다면.

류준열 언젠가는 모두가 알아줄 거라는 믿음. 아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몰라주는 사람을 욕하자는 마음이 아니라 마음을 편히 먹고 미래에 기대를 거는 쪽이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의 속성이 그런 것 아니겠나.

하퍼스 바자 변화도, 적응도, 혼란의 소용돌이도 ‘언젠가 지나가겠지’ 하고?

류준열 그럼 소용돌이 속에서 생각지 못한 무언가 튀어 나올 수도 있겠지. 4월부터 새 작품 촬영을 시작하는데, 그전에 일본으로 잠깐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그때 또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아무래도 카메라는 들고 가면 안 될 것 같다.(웃음)




톱, 귀고리, 팔찌, 반지는 모두 Ferragamo. 스커트는 Eenk.


신현빈


하퍼스 바자 촬영에 오기 직전 기사를 봤다. 연상호 감독의 새 작품 <군체>에도 함께한다고.

신현빈 <계시록>은 작년 6월 말쯤, 아주 더워지기 전에 촬영을 마쳤고 뒤이어 영화 <얼굴>과 <군체>까지 찍게 됐다. <군체>는 어제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전지현, 구교환 선배랑 같이 한다. 작품 끝날 때마다 잠깐 여행 가고, 작년 하반기에 드라마 <새벽 2시의 신데렐라> 홍보 활동 했던 거 빼면 계속 연 감독님과 함께하고 있다.(웃음)

하퍼스 바자 <계시록> 전에는 3년 전의 <괴이>도 있었다.

신현빈 사실 <괴이> 때는 감독님이 크리에이터 겸 글도 쓰셨지만 현장에서는 못 뵈었으니 느낄 만한 접점은 없었다. <계시록>이 제대로 된 첫 작업이었는데, 세 번째 작품을 함께하는 지금까지도 감독님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파악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어제만 해도 촬영 내내 ‘이게 맞나?’ 했거든.(웃음) 분명한 건 배우와 소통이 잘 되는 연출가라는 점이다. 연 감독님과의 현장에서 나는 늘 자유롭다.

하퍼스 바자 제작 총괄에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 작품에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해준 건가?

신현빈 쿠아론 감독님이 연 감독님 전작들을 굉장히 좋게 보셨던 것 같다. <계시록>에 먼저 관심을 갖고 같이 해보자는 얘기가 오갔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대면한 적은 없었지만, 대본 단계부터 촬영 중에도 현장 편집본을 공유하면서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하퍼스 바자 인상 깊었던 피드백이 있나?

신현빈 그래 봤자 다 칭찬에 가까운 말이었으니 굳이 내 입으로 이야기하진 않겠다.(웃음)

하퍼스 바자 관객들이 그러하듯, 배우로서 연상호와 알폰소 쿠아론의 협업이라는 점만으로도 기대가 있었을 것 같다.

신현빈 개인적으로는 대본이 특히 흥미로웠다. 장르물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사람은 종교를 떠나 저마다 굳게 믿는 것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지 않나. 신념 같은 것 말이다. 그게 완전히 틀렸다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맹목적인 믿음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갖고 사는 믿음은 무엇인지 돌아봤고, 타인의 믿음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짓지 않게 됐다.

하퍼스 바자 지금 신현빈은 어떤 것을 굳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나?

신현빈 말하자면 나를 믿는다. 나답게 살아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다. 나도 아직 나를 완벽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다운 것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 떳떳할 수 있는 선택을 하려 한다. 일을 할 땐 함께하는 사람들을 많이 믿는다. 단순히 어떤 신에서 합을 맞출 때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계시록>은 준열, 민재 배우가 함께했기에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 담아준 스태프들이 있어 내가 부족한 점이 보완되었을 것이고. 그런 작은 믿음들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한다.

하퍼스 바자 팬들은 당신이 고생스럽고 괴로운 역할을 그만했으면 한다지만, 또 한 번 그런 캐릭터와 만났다. <계시록>의 이연희는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실종 사건 담당 형사다.

신현빈 연희는 5년째 죽은 동생의 환영을 본다.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어떤 마음일까, 어쩌다 환영까지 보게 됐을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덧 연희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사연 있는 역할에 공감을 잘하는 편이다. 내가 잘 챙겨서 이해받게 해주고 싶다.

하퍼스 바자 비슷한 분위기의 역할을 자주 만나다 보면 고민하는 지점이 생길 것 같다. 그런 캐릭터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있나?

신현빈 그냥 ‘내가 사연이 있어 보이나 보다’ 한다.(웃음) 흔히 ‘사연캐’라고 하지. 그런데 과연 슬픈, 힘들고 어려운 사연이 없는 주인공이 있을까? 대중이 무탈하게 행복하기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 할지는 모르겠다.

하퍼스 바자 그럼에도 내게 ‘신현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장겨울이다. 대표하듯 남아 있는 캐릭터가 있다는 건 당신에게 기분 좋은 일인가? 깨야 할 벽이라고 느끼는가?

신현빈 너무나도 감사하고 기쁜 일. 걔가 뭘 잘못했다고 깨기까지 하겠나. 그 이후로 그만큼의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겠지만,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내 작품 중에 <변산>이라는 영화가 있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이 안 됐는데, 최근에 쇼츠 영상으로 좀 뜬 것 같더라. 내가 욕하는 신이 짤로 돌아다니는데 조회수가 꽤 높아서 놀랐다. 이제는 작품이 언제 어떻게 소비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퍼스 바자 배우 류준열과는 첫 호흡이었다.

신현빈 나이가 같아 빨리 친구하기로 하고 편하게 지냈다. 이야기하다 보면 확실히 아이 같은 면이 있다. 장난기 많은. 그리고 생각보다 아주 바른 생활 스타일이다. 밤 9시에 잔다니까? 놀랍지 않나?(웃음)

하퍼스 바자 당신 역시 바른 생활에 가깝지 않나? 4년 전 <바자> 인터뷰에서 일기 쓰는 일을 일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꼽는 것을 보고 막연히 갖고 있던 인상이다.

신현빈 일기는 지금도 쓰지만, 바른 생활 스타일은 전혀 아니다.(웃음) 4년 전과 달라진 거라면 올해부터는 일기를 손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거다. 한번쯤 책처럼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휴대폰 메모와는 감각이 좀 다르다.

하퍼스 바자 스스로 운명론자라고 말한 적도 있다.

신현빈 삶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은 분명히 존재한다. 일도, 관계도 애쓰는 방향과 무관하게 벌어지는 일들이 있지 않나. ‘어쩔 수 없음’을 나는 운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종교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뜻이 될 수도 있겠지. 그게 무엇이든 거스르겠다는 마음보단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하퍼스 바자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연기는 그야말로 우연히 시작했다. 종종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해보기도 하나?

신현빈 그런 상상은 딱히 해본 적 없지만, 그때부터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지금까지 왔다는 생각은 한다. 줄곧 해오던 미술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막연히 먼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배우 일이 덜컥 가까워졌던 대학 때 말이다. 졸업 후 태어나서 처음 본 오디션에 붙어 데뷔를 했다. 그렇게 찍은 영화가 <방가, 방가>인데 사실 말이 안 된다. 프로필을 처음 제출한 오디션에 붙어서 지금까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이건 운명이라고밖에.


신현빈이 착용한 스팽글 톱, 스커트는 Akris. 부츠 힐은 Ferragamo. 귀고리, 반지는 Tom Wood. 류준열이 착용한 레더 재킷, 팬츠, 부츠는 모두 Bottega Veneta. 슬리브리스는 Dries Van Noten.


Credit

  • 사진/ 안주영
  • 헤어/ 류동호(류준열), 소피아(신현빈)
  • 메이크업/ 안성희(류준열),한나(신현빈)
  • 스타일리스트/ 이혜영(류준열), 김미현(신현빈)
  • 세트 스타일리스트/ 이다인(ONDOH)
  • 어시스턴트/ 정지윤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