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프레피는 늘 옳다

90년대 코드의 변주, 올드머니 같은 패션 키워드는 내 옷장을 아메리칸 클래식으로 바꿔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바로 프레피 룩이다.

프로필 by 윤혜영 2025.03.07

NEW PREPPY


90년대 코드의 변주, 올드머니 같은 패션 키워드는 내 옷장을 아메리칸 클래식으로 바꿔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바로 프레피 룩이다.



Miu Miu 지수 Chanel 켄들 제너 리아나 헤일리 비버 Tommy Hilfiger Kent Curwen Hodakova 조이 킹 벨라 하디드 테일러 스위프트와 트래비스 켈시.

지난해 기네스 팰트로가 법정에 출두했을 때 입었던 더 로우의 슬릭한 코트 룩, G라벨 바이 구프의 크림색 벨티드 니트 룩, 프라다의 폴로 니트 셔츠와 플레어스커트 룩, 그리고 여기에 매치한 레이밴 에비베이터 선글라스와 청키한 골드 액세서리는 단숨에 패션 트렌드를 세계적인 이슈로 만들었다. 이름도 멋진 올드머니 룩. 유난히 올드머니라는 키워드가 주목을 받은 건 단순히 고급스러운 패션으로서가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를 막론하고 ‘미국’과 ‘머니’를 빼고는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는 요즘의 시대적 모멘트를 상징하는 이미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켄들 제너, 소피아 리치, 헤일리 비버 등 젊은 셀러브리티들 역시 언제부턴가 인스타그래머블한 패션 인플루언서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정석의 아메리칸 클래식으로 부유하고 엘리트적인 상징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는 추세. 요즘 그들이 즐기는 건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는 심플한 미니 드레스, 테일러드 재킷과 팬츠, 헤어밴드, 로퍼 등으로 곱게 자란 슈퍼리치의 클리셰로 가득하다. 자연스럽게 프레피 룩이 올드머니 패션과 유스컬처 트렌드를 잇는 가교처럼 패션계를 장악하게 된 건 당연한 이야기다.


프레피 룩이라는 말은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명문 사립 예비학교(프렙) 학생들이 입던 스타일에서 유래했다. 단정한 셔츠와 니트, 클래식한 스프라이프와 체크 패턴, 치노 팬츠 같은 시그너처는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전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몇 달 전 테일러 스위프트가 남자친구 트래비스 켈시와 데이트하며 입었던 프라다 플리츠 미니스커트에 로퍼를 매치한 프레피 룩을 떠올려보라. 그녀는 이 사진 한장으로 영화 <금발이 너무해> 시대 이후로 잊혀져가던 아메리칸 스위트 하트에 대한 판타지를 소환했다. 다만 오랫동안 스트리트 시크에 빠져 있던 우리가 갑자기 영화 <가십걸> 블레어처럼 플리츠 스커트를 입거나 세레나처럼 보디콘 드레스에 양말을 신기란 버거운 것이 사실. 다행히도 우리에겐 올드머니에 뿌리를 두고 프레피의 위켄드 느낌 정도로 소화할 수 있는 중성적인 럭비 셔츠나 니트 베스트 같은 캐주얼 아이템과 존재감 있는 컬러(화이트, 네이비, 레드) 그리고 패턴(스트라이프와 체크)이 있다! 콘셉트부터‘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캐시미어’인 지지 하디드의 게스트 인 레지던스가 좋은 예다. 볼드한 스트라이프 패턴의 럭비 셔츠, 클린한 케이블 니트, 피케셔츠 등 고급스럽지만 유난하지 않고 단정하지만 세련된 프레피 룩은 마치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현실적인 스타일링도 매력적이다. 그중에서도 피케셔츠와 럭비 셔츠는 이번 시즌의 ‘잇’ 아이템. 작년 초 리아나와 헤일리 비버가 로에베의 똑같은 피케셔츠를 서로 다른 느낌으로 스타일링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임신 중이던 리아나는 피케셔츠를 크롭트 톱처럼 연출하고 배기핏 청바지, 워커에 매치해 힙한 스트리트 스타일을 연출했고, 헤일리 비버는 오버사이즈 가죽 재킷을 레이어드해서 90년대 뉴욕 스타일을 환기시켰다. 패션위크를 찾은 이들의 룩을 봐도 럭비 셔츠와 스커트를 믹스한 스포티한 스쿨 걸 스타일이 유독 눈에 띈다. 미우미우의 컬렉션을 참고하자.


그런가 하면 이번 시즌 많은 브랜드에서 다양한 스타일로 선보이는 심플 셔츠와 니트의 조합은 가장 무난하게 프레피 룩을 연출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니트는 크루넥 니트 톱과 카디건이라면 페미닌하게 활용하기 좋고, 트렌디하게 즐기기에는 V네크라인이 깊게 파인 루스한 니트 베스트를 추천한다. 청바지와 스니커즈와 매치하거나 블레이저 안에 레이어드하면 벨라 하디드나 빌리 아일리시 같은 ‘긱시크’를 연출할 수 있고 미우미우처럼 발레코어와 믹스한 걸리시 룩도 매력적이다.


한편 프레피 룩과 마린 모티프의 랑데부는 이번 시즌 가장 드레시한 프레피 코드이다. <바자> 미국판은 ‘프레피가 돌아왔다(Preppy is back)’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프레피 룩을 “마치 석양이 내리는 뉴포트 해안가의 작은 요트에 모여 진과 토닉이 담긴 피크닉 바구니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묘사했다. 여기에 이번 시즌 한 편의 <가십걸> 쇼를 보는 듯했던 타미 힐피거 컬렉션을 빼놓을 수 없다. 뉴욕 맨해튼과 스태튼아일랜드를 오갔던 유서 깊은 페리에서 열린 쇼는 브랜드 특유의 프레피 코드를 마린 스타일로 풀어냈다. “타미 힐피거가 시작된 1985년 이래로 브랜드를 정의해온 해양과 선박에서 받은 영감을 재탐색하고 이를 2025년 스타일로 새롭게 업데이트하고 재해석했습니다. 이번 컬렉션은 여유로운 서머 룩의 편안함을 유지하면서도 페리에서 내려 도심으로 돌아갈 준비가 된 듯한 자신감을 담고 있습니다”라는 노트처럼 바시티 재킷, 피케셔츠, 클럽 블레이저 등 전통적인 프레피 요소와 로고이기도 한 화이트와 네이비 컬러, 레드 포인트의 노련한 변주는 그 어느 때보다 인상적인 컬렉션을 완성했다. 여유 있고 세련된 아이템과 스타일링은 이번 시즌의 모던 프레피를 정의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패션의 역사>를 쓴 준 마시(June Marsh)는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이름을 올린 ‘아메리칸 룩’에 대해 (유럽의 정통 쿠튀르 패션과 달리) 라이프스타일을 패션적으로 해석하고 누구나 소유할 수 있게 만든 패션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라이프스타일이라 함은 건강하고 멋진 모습, 좋은 몸매, 단정함을 말하며 무엇보다 캐주얼한 편안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백과 자신감이 특징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지금 패션계가 열광하는 것도 그때 그 풍요로웠던 아메리칸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여유 있는 기백과 자신감, 이번 시즌 프레피 룩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표현도 없을 것 같다.


Credit

  • 글/ 홍현경(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Getty Images, launchmetrics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