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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클리프 아펠의 새로운 보물섬

문학은 말로 그림을 그리고, 보석은 빛으로 이야기를 쓴다. 반클리프 아펠이 빛으로 완성한 새로운 보물섬을 탐험할 시간이다.

프로필 by 김경후 2024.12.29
바다색을 연상케하는 튀르쿠아즈와 31.99캐럿의 콜롬비아산 에메랄드를 조합한 ‘뇌 마린’ 네크리스. 마이애미 파에나 호텔에서 진행한 ‘챕터 2: 섬의 탐험’ 디스플레이.

CEO 캐서린 레니에. ‘챕터 1: 바다에서 펼쳐지는 모험’ 디스플레이.
인간은 타고난 스토리텔러다. 성경의 심오한 우화와 각국의 신비로운 건국신화처럼, 인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야기를 통해 영혼을 울리는 공감의 언어를 나누어왔다. 때로는 강렬한 외침으로, 때로는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이렇듯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삶을 변화시키는 마법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이야기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매혹적인 발명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이야기의 마력은 끝없이 확장된다. 한 권의 책이 열어주는 새로운 차원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예술적 영감의 무한한 우주로 우리를 인도한다. 반클리프 아펠의 2024 하이주얼리 컬렉션 ‘트레저 아일랜드(Treasure Island)’는 바로 이러한 문학적 상상력이 빚어낸 찬란한 걸작이다.
19세기 문학의 황금기를 수놓은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불멸의 명작 <보물섬>은 이번 컬렉션의 영감이 되었다. 1883년, 한 천재적인 작가가 의붓아들을 위해 펼쳐낸 모험 이야기는 2백여 년의 시간을 건너 이제 눈부신 보석들로 다시 태어났다. “사실 메종이 고전 문학작품에 경의를 표하고 하이주얼리 컬렉션의 영감으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는 과거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 선사하는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 <로미오와 줄리엣>의 영원한 사랑의 메시지, 그리고 쥘 베른의 ‘아름다운 모험’이 불러일으키는 경이로운 상상력을 주얼리로 표현해왔다.” 반클리프 아펠 CEO 캐서린 레니에의 말처럼 반클리프 아펠은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주얼리 컬렉션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특히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 올릴 수 있는 <보물섬>을 주제로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하이주얼리를 탄생시켰다. “가끔 ‘왜 항상 고전 문학으로 돌아가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우리가 고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단순히 그 문장의 우아함 때문만이 아니다. 고전에는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이 깃든 강렬한 상징들이 살아 숨 쉰다. 그래서 문화도, 성별도, 세대도 뛰어넘는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보물섬>이 지닌 모험과 발견의 정신, 그리고 숨겨진 보물을 찾아가는 여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영원한 테마다.” 마치 이야기의 토막토막을 시각적으로 변환한 듯한 주얼리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시킨다.
한 편의 서사시처럼 세 개의 챕터로 펼쳐지는 ‘트레저 아일랜드’ 컬렉션은 각각이 독립된 이야기이자 하나의 웅장한 서사를 완성하는 조화로운 구성을 이룬다. 다이아몬드의 차가운 불꽃, 사파이어의 깊은 바다색, 에메랄드의 신비로운 초록빛은 마치 보물섬의 한 장면을 포착한 듯 생생하게 빛난다. 이제 반클리프 아펠이 새롭게 써내려가는 보물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이아몬드 세팅으로 눈·코·입을 형상화한 ‘피규라’ 브레이슬릿. 야자수 옆 보물상자 모티프를 보트·태양 모티프로 교체할 수 있는 ‘팔미에 미스테리유’ 클립. 등가죽을 따라 사파이어를 장식한 ‘토르뒤 드 코코 블루’ 클립. ‘코키야쥬 미스테리유’ 클립이 돋보이는 캠페인. ‘뤼미에르 드 위다이푸르’ 이어링과 ‘캅 코모린’ 네크리스.
Chapter 1
바다에서 펼쳐지는 모험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 달이 떠오르고 있었고 돛대 꼭대기는 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보물섬> 中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등장인물, 배경에 관한 묘사다. 트레저 아일랜드 컬렉션의 서막을 여는 첫 번째 챕터는 해적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번 컬렉션의 주제를 가장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대담한 해적을 엉뚱한 발상과 위트가 돋보이는 스타일로 표현한 피라트(Pirate) 클립은 보물섬의 주인공들을 영롱한 빛의 보석으로 재탄생시켰다. 존(John), 다비드(David), 짐(Jim)이라는 보물섬 속 해적들의 이름을 딴 클립은 정교하게 가공된 세 가지 컬러의 골드 소재와 프레셔스 스톤을 통해 인물의 옷부터 손동작, 신발의 광택, 머리 장식까지 치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치 붓으로 그려낸 듯 섬세한 디테일들은 반클리프 아펠이 가진 세공 기술의 극치라 할 만하다. 또한 바다를 정복하기 위해 항해에 나선 메종은 항해의 기술을 상징하는 다양한 도구들과 선원의 매듭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으로 표현한다. 거친 바다를 헤치며 항해하도록 용기를 선사한 배인 히스파뇰라호에 경의를 표하는 히스파뇰라(Hispaniola) 클립을 비롯해, 끊임없이 찾아오는 해류와 소용돌이를 표현하며 바다의 힘을 묘사한 에퀴메 미스테리유즈(Ecume Mysterieuse) 네크리스와 마치 로프를 엮은 듯 라운드 다이아몬드로 이어진 2개 라인과 바게트 컷 사파이어로 이어진 1개 라인이 서로 얽힌 코르다쥬 앙피니(Cordage Infini) 네크리스는 매듭을 묶는 선원들의 기술에 찬사를 보낸다. 바다를 주제로 한 컬렉션에서 빠질 수 없는 건 바다의 빛을 담은 블루 주얼리다. 튀르쿠아즈와 32캐럿의 콜롬비아산 에메랄드 컷 에메랄드의 조합으로 깊고 신비로운 바다의 색을 완성한 뇌 마린(Noeud Marine) 네크리스는 메종의 컬러 스톤 선별과 조화롭게 구성한 작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어 반클리프 아펠의 CEO 캐서린 레니에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피스로 꼽는 무사이용(Moussaillon) 네크리스는 메종이 하이주얼리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가치를 담고 있다. “이 피스에서 흥미로운 점은 많은 스톤이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멋지고 특별한 가닛이 센터 스톤으로 세팅되어 있다. 이 네크리스의 진정한 매력은 골드 세공에 있는데, 이는 메종이 네크리스에서 조금 이례적으로 표현한 방식이기도 하다. 구아슈에서도 골드 세공법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지만, 실제 피스에는 정말 패브릭 같아 보이고 착용감이 편해서 마치 옷을 입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메종은 그린 왁스 조각 기술을 사용했다. 직물이 접히는 각도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주얼리 전문가와 디자이너들이 지속적인 토의를 거치면서 실제 천이 접히는 것처럼 완벽하게 보이도록 완성했다.” 보석이 아니라 이를 다루는 기술이 더 중점이 된 무사이용 네크리스는 반클리프 아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반클리프 아펠이 배 혹은 바다 생물에 대한 스토리를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바다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다룬 애틀랜틱(Atlantic) 컬렉션을 비롯해 바다는 언제나 그들에게 신비와 미지의 세계이자 그들의 상상력을 자유로이 펼쳐놓을 수 있는 무대였다. 이번 컬렉션은 바다에 대한 메종의 갈망이 폭발하는 지점임에 분명하다.

‘앙 오뜨 메르’ 네크리스의 골드 구조 조립 작업. ‘히스파뇰라’ 클립 제작 과정. 파도를 형상화한 ‘코키유 미스테리유즈’ 브레이슬릿.
Chapter 2
섬의 탐험
“하늘을 배경으로 물결치듯 솟아오르는 광채의 존재를 발견했어요. 이 섬에서 남자가 활활 치솟는 불 앞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보물섬> 中

두 번째 챕터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찬미하는 반클리프 아펠의 시선을 담아냈다. 황금빛 해변에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꿈결 같은 섬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 장은 메종의 상징적인 플로라와 파우나 컬렉션을 확장하여 나비와 거북 같은 새로운 생명체로 그들만의 자연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나간다. 화이트 골드, 사파이어, 에메랄드, 다이아몬드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토르튀 드 코코 블루(Tortue de Cocos Bleue) 클립이 그 대표작이다. 열대 섬의 정취를 담아낸 코키야쥬 미스테리유(Coquillage Mysterieux) 클립과 브레이슬릿은 조개껍질을 모티프로 한 새로운 바다 생물 시리즈를 선보인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메종의 탁월한 미스터리 세팅 기법이 돋보이는 팔므레 메르베유스(Palmeraie Merveilleuse)다. 네크리스와 클립으로 변형 가능한 이 작품은 그야말로 매혹적인 변신의 미학을 보여준다. 팔미에 미스테리유(Palmier Mysterieux) 클립 역시 탈부착이 가능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컬렉션의 정수를 담아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보트와 태양, 프레셔스 스톤이 가득한 보물상자는 옐로 골드와 어우러져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다.
1933년 특허를 받은 메종의 시그너처 미스터리 세팅 기법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메탈 마운트를 감춘 정교한 젬스톤 세팅으로, 에메랄드로 표현된 야자수 잎사귀는 마치 벨벳처럼 부드럽게 펼쳐진다. 줄기는 로즈 골드에 섬세한 조각 기법으로 새겨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폴리싱, 해머링, 가드룬 작업을 거쳐 탄생한 반짝이는 골드 비즈는 메종 장인들의 탁월한 기술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핑크 사파이어와 퍼플 사파이어를 각각 교차로 장식한 ‘옹뒬라시옹 마린’ 이어링. 13.87캐럿의 옐로 사파이어를 중심으로 핑크 사파이어·스페사르타이트 가닛·다이아몬드가 조화로운 ‘도르스타드’ 링.
Chapter 3
트레저 헌터
“해골섬 동남동 방향의 동쪽에 위치한 곳에 있는 키 큰 나무에서 망원경 등성이처럼 생긴 한 가지가 가리키는 북북동쪽의 북쪽으로 10피트 떨어진 곳에 보물이 있다.” <보물섬> 中

세 번째 챕터, ‘트레저 헌터’에서는 상상의 한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반클리프 아펠의 상상력은 가장 흔한 보물의 상징인 골드와 스톤, 주얼리가 가득한 보물상자에 닿았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코프르 프레시유(Coffre Precieux) 칵테일 링에는 골드를 중심으로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가 세팅되어 있다. 보다시피 클래식하면서도 강렬하다. 이어 옐로 사파이어를 주제로 한 도르스타드(Dorestad) 링을 비롯해 인도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링들이 이번 챕터를 아우른다. 또한 보물섬의 핵심인 지도를 표현한 카르트 오 트레저(Carte au Tresor) 클립은 방금 돌돌 말아 놓은 듯한 생생한 형상과 자연스러운 주름이 돋보이는 태슬이 메종의 세공 기술을 강렬하게 뽐내고 있다.
반클리프 아펠의 항해의 역사는 콜럼버스가 등장하기 이전으로 돌아간다. 미지의 동양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이어링과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신과 여신을 형상화한 클립 같은 다양한 문화적 기원을 반영한 작품들이 선보였다. 이를 통해 메종이 이야기하는 보석의 세계는 단순히 금과 스톤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문화적 기원의 보물로 컬렉션을 확장하고자 한다. 랑테르네 미스테리유즈(Lanternes Mysterieuses) 네크리스는 변형 가능한 형태로 중국의 등불을 연상시키는 타원 형태의 볼이 이 미스터리한 주얼리를 확장시키는 키다. 그중 하나는 클래스프이며, 이 메커니즘은 미스터리 세팅 루비들이 적용된 표면 아래에 숨겨져 있다. 한 면에 버프 톱 루비, 다른 면에 다이아몬드와 버프 톱 사파이어가 장식되어 있어 네크리스에 펜던트를 걸거나 목 뒤로 넘겨 연출할 수 있다. 프리랜스 에디터/ 김민정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김민정
  • 사진/ © Van Cleef & Arpels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