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베니스에서 펼쳐진 막스마라의 2025 리조트 컬렉션

정의와 조화, 진보를 상징하는 ‘라 세레니시마(La Serenissima)’의 기품이 깃든 막스마라의 2025 리조트 컬렉션. 패션을 빌려 펼쳐진 베니스의 스토리를 감상할 시간이다.

프로필 by 서동범 2024.11.26
두칼레 궁전에서 펼쳐진 막스마라의 2025 리조트 컬렉션.

“평범한 삶은 당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모험은 당신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의 상인이자 여행가였던 마르코 폴로는 모험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낯선 새로움을 마주할 때 인간은 묘한 에너지를 느낀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길 꿈꾸는 것, 이는 인간 본연의 갈망일지 모른다. 이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여행과 패션이다. 둘은 평범한 일상 속 우리에게 환상을 선사한다. 더 나은 삶이, 더 멋진 내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7백여 년 전 마르코 폴로가 말했듯이, 그러한 모험이 우리를 진정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든다.

컬렉션에 영감을 준 무드 보드.

“우리의 임무는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이다.” 막스마라는 1951년 처음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의 임무에서 어긋난 적이 없었다. 막스마라는 여성에게 모험 같은 삶은 선물했다. 유리 천장을 두드리던 여성들에게 ‘파워 드레싱’이라 불리는 드레스 코드를 선사했고 변호사의 부인이 아닌, 스스로가 변호사가 된 여성들에게 걸맞는 옷들을 선보였다. 막스마라는 그야말로 여성에게 또 다른 내일이라는 환상을 보여준 하우스였다.
지난 6월, 막스마라는 마르코 폴로의 베니스에서 2025 리조트 컬렉션을 선보였다. 마르코 폴로의 호기심과 편견 없는 시선에서 영감을 받은 막스마라의 리조트 컬렉션에는 트렌드를 넘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바느질 한 땀, 단추 구멍의 위치에도 의미와 이유가 있는 막스마라가 베니스를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 역시 남다르다. 베니스는 중세시대 유럽의 해상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마법 같은 도시 중 하나로 명성을 떨치며 많은 작가들의 모티프가 되었다. 현대의 베니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관광객과 짝퉁이 넘쳐나는 여전히 소란스러운 관광도시의 모습과 함께, 골목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느리고 로맨틱한 도시의 풍경.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낙차가 이 도시의 매력이다. 온갖 진귀한 것들이 오가는 상업도시 베니스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도 갈라졌다. 새로운 것과 깊은 것. 그건 마치 요즘 패션계를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로고와 셀럽 마케팅을 내세우며 트렌드의 활기찬 파도를 열심히 타는 브랜드와 조용하게 자신의 깊이를 탐구하는 브랜드. 후자의 길을 걷는 막스마라가 매력적으로 본 베니스의 모습 역시 골목길 사이마다 스며 있는 오래된 도시의 중후함이었다.

날렵한 튜닉과 터번에서 영감을 받은 헤드피스, 태슬 장식 그리고 화려한 직조 패턴의 룩이 이국적인 풍광의 베니스와 어우러진다.

베니스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라 세레니시마 리퍼블리카 디 베네치아’라 불렸다. ‘세레니시마(Serenissima)’는 ‘가장 고요한’ 또는 ‘가장 평온한’이라는 뜻으로, 당시 베니스공화국의 힘과 안정, 위대함을 반영하는 용어다. 동서양을 잇는 교역지로서 서로 다른 예술과 건축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베니스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영원한 평온함으로 빛을 발하는 곳이었다. 베니스, 그중에서도 세계의 중심 건물이라고 불리는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에서 막스마라 2025 리조트 컬렉션 런웨이가 펼쳐졌다. 고딕 예술의 걸작인 두칼레 궁전은 건물의 뼈대와 장식 요소의 장엄한 레이어링이 돋보이는 디자인으로 설계되었다. 이곳은 고대부터 내려온 건물 토대를 기반으로 해 14~15세기에 완성된 건물 전체의 배치 등 주목할 만한 르네상스 디자인과 화려한 매너리스트의 특징을 만나볼 수 있다. 궁전 내부는 수많은 대가들의 그림이 장식하고 있다. 정치적 논의가 오가던 거대한 회의실, 총독의 방, 내부에 위치한 감옥, 광장과 석호가 내려다보이는 빛나는 로지아에 이르기까지 티치아노(Titian), 베로네세(Veronese), 티에폴로(Tiepolo), 틴토레토(Tintoretto), 비토리아(Vittoria) 등의 작품들이 두루 전시되어 있어 1996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 펼쳐진 막스마라 2025 리조트 컬렉션은 중세시대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상인인 마르코 폴로와 그의 여행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르코 폴로는 개방적이고 호기심 많은 성격으로, 여행기 <동방견문록(Il Milione)>을 통해 여러 지역 여성들의 삶을 편견 없이 담아내 초기 페미니스트로 불리기도 했다. 무역상들이 교역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주요 업무를 여성들이 맡아온 베네치아의 역사적 배경은 이 도시의 여성들이 특권을 누리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라 세레니시마’는 정의, 조화, 권력, 진보, 충성, 우아함을 상징하는 여성으로 자주 표현되기도 한다. 럭셔리 비즈니스가 시작된 배경을 가진 베니스야말로 막스마라 2025 리조트 컬렉션을 선보이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다.

2024 F/W 아틀리에 컬렉션을 선보인 올리베티 부티크의 내부 전경과 룩의 디테일.

이번 컬렉션은 캐멀, 블랙, 화이트, 탠 컬러로 시작하여 마르코 폴로가 카타이 지역 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왔을 법한 세밀한 음영의 실크로 이어진다. 또한, ‘로브 드 샹브르(Robes De Chamber)’부터 트렌치와 타바리(Tabarri)를 거쳐 파카까지 막스마라의 우아한 코트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특별한 날을 위한 가운은 물론, 날렵한 튜닉과 섬세하게 재단된 테일러드 수트, 일상의 우아함이 돋보이는 깔끔한 올인원까지 여자의 일상 모든 순간에 필요한 옷들로 채워졌다. 여기에 오버사이즈 태슬, 청키한 드로스트링, 화려한 손수건 커프스, 벨벳 패널 패니어 스커트 또한 이번 컬렉션의 주요한 아이템들. 컬렉션의 절정은 터번에서 영감을 받은 헤드피스 시리즈로, 전설적인 모자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와의 협업으로 완성되었다. 특히 컬렉션의 배경과 어우러진 프린트들은 베니스에 대한 환상을 더 깊고 진하게 만들었다. 꽃무늬를 특징으로 하는 화려한 직조 패턴은 베네치아 고딕 양식 스타일과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중국의 철학적 개념인 음양과 관련된 모티프 등 다양한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한편, 막스마라는 리조트 컬렉션이 열린 산마르코 광장의 올리베티 막스마라 부티크에서 막스마라 아틀리에 2024 가을/겨울 컬렉션도 함께 선보였다. ‘콘크리트의 시인’이라 일컫는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가 디자인한 올리베티 부티크의 모던한 건축물을 배경으로 공개된 이번 컬렉션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의 정수이자 자신만의 스타일에 자신감을 가진 여성들에게 바치는 헌정이었다. “그 어떤 옷보다도 코트와의 관계는 특별합니다. 코트와는 일종의 정서적 유대감을 구축하게 됩니다. 코트는 일생의 동반자, 일종의 친구가 되어줍니다. 몇 번 입고는 옷장 뒤편에 방치된 채 잊혀지는 그런 옷이 아닙니다. 코트는 쉼터이자 은신처이며, 거리에서 여러분이 머무는 집입니다.” 막스마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안 그리피스(Ian Griffiths)의 말처럼 막스마라와 코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틀리에 컬렉션은 브랜드의 철학과 함께 혁신적인 소재와 스타일을 기념하며 브랜드의 핵심적인 코트를 현대적인 쿠튀르로 재해석한다. 이번 시즌 아틀리에 컬렉션에서는 1950년대 막스마라의 초기 일러스트, 특히 코트의 컬러에서 영감을 받아 섬세한 붉은색의 시그너처 레드를 만나볼 수 있다. 당시 장인들은 시침질이나 가봉 시 붉은색 실을 사용했는데, 이번 컬렉션에서는 이 붉은 실이 유산과 미래, 전통과 혁신을 하나로 연결하는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풍부한 브론즈 컬러의 안감과 대비되는 포켓 내부의 붉은 실은 살짝 보일 때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독특한 수공예 자수와 세련된 마감 처리에도 이 붉은 실이 사용되었으며, 코트 칼라 아래 부분에 ‘M’ 모노그램이 정교한 레드 스티치로 완성됐다. 또한 이번 컬렉션에서는 1950년대 남성 외투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실루엣의 코트를 선보인다. 부드러운 캐시미어와 캐멀 색상의 남성 망토 스타일 코트부터 가죽 소재로 정교하게 만든 트렌치코트, 강렬한 레드 색상의 더블 캐시미어 코트까지, 막스마라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곡선형 실루엣의 코트와 반짝이는 크리스털 자수로 장식된 망토 스타일의 코트 등 이번 컬렉션을 통해 막스마라 코트는 우리에게 또 다른 모험을 꿈꾸게 만든다.

Credit

  •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Max Mara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