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낙태법이 파기된 미국, 우리의 현주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에겐 더 많은 낙태 이야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새삼스레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건 미국판 <바자> 9월호를 통해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파기되고 2년이 흐른 지금, 여성들의 달라진 삶을 다룬 기사를 읽고 난 직후였다. 믿기 어렵지만 어떤 권리는 쟁취되었다가 다시 박탈되기도 한다. 2년 전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3년 제정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 판결은 강간을 당해 임신했다고 주장하는 제인 로(가명)가 낙태 수술을 요청했지만, 생명이 위독하지 않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하자 댈러스 카운티 지방 검사 헨리 웨이드에게 소송을 제기해 연방대법원의 위헌 결정을 받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49년 동안 헌법상의 권리로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던 현실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미국 여성들의 삶은 변화했다. 산모의 건강과 직결된 생명권, 폭력으로부터 대응하고 보장할 수 있는 인권에 관한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누군가는 태아가 심각한 장애를 앓고 있는 걸 알고 임신을 중단하고 싶었지만 출산을 감행해야 했고, 결국 태어난 지 수일 만에 자녀를 떠나보내야 했다. 여성 인권 활동가이자 산부인과 전문의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출산해야 하는 상황이 수십 년 전의 불합리한 현실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걸 매일 목격하는 괴로움에 관해 이야기했다.
임신이든 낙태든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내 기준에 따라 결정하고 싶고, 무엇보다 어떤 결정을 앞두었을 때 타인의 혼란스러운 갑론을박이나 변칙적인 의료 기준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절박한 심정에 탄식하다가 절로 의문이 생겼다. 우리 현실은 얼마나 같고 또 다를까? 낙태는 트럼프와 해리스의 정책 논쟁 가운데 이민, 환경만큼 주요한 의제다. 반면 우리나라 대선에선 이 주제에 대한 첨예한 논의는커녕 언급도 보기 드물다. 2019년 이후 우리나라는 1년여간의 대체 입법 권고 기간을 두고, 2021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낙태죄 처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개선된 입법은 요원한 상태. 생면부지 여성들이 사연을 이야기하는 미국판 기사를 읽고 내 머릿속에 든 문장은 하나였다. 거칠게 빗대면, 모든 여성이 성추행에 대한 자기만의 경험이 있듯 ‘낙태’에 관한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친구, 선배, 동생의 고백을 숱하게 들은 밤이 떠올랐다. 약국에서 멋쩍어하며 임신 테스트기를 구매하던 스무 살 무렵, 피임약을 먹고 몇 달째 호르몬 이상에 시달린 일, 파트너에게 결과를 말해주고 난 이후의 갖가지 반응들, 나아가 헤어진 상태에서 수술대에 올랐다는 이야기까지. 그런 대화는 주로 조용한 자취방에서 고해성사처럼 이루어지곤 했다.
불법도 합법도 규정되지 않은 사이, 낙태는 무엇보다 산모의 주관에 붙들린 문제가 됐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 낙태를 합법화한 대다수 국가에서는 명백히 낙태가 가능한 주 수(대체로 12~20주)와 상황을 법으로 밝히고, 지정 클리닉 센터를 관리한다. 우리나라는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병원 추천 글이 뜨는 것도 잠시, 수술비 또한 병원과 주수에 따라 수백에서 수천만원까지 천차만별 달라진다고 한다. “남자 친구가 알아본 병원에서 했어.” 낙태 경험이 있는 내 지인들은 덤덤히 이렇게 말했지만 그 과정 아래 얼마나 무거운 불안이 깔려 있었을지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유튜브에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시술이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 부작용에 대해 말하는 영상이 주를 이룬다. 최근까지 논란이 된 어느 유튜버의 ‘36주 낙태 브이로그’는 해당 병원의 압수수색으로까지 이어져 사회적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 모든 현실은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앞둔 이들에게 불안이라는 화약에 달린 기폭장치에 불을 붙일 뿐이다. 어떠한 사려 깊은 목소리도 듣기 어려운 채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어쩐지 유구한 이 논쟁이 시술을 결심하는 것처럼 가볍게도 느껴져서 씁쓸하다.
그래픽 노블 <나의 임신중지 이야기>에는 저자 오드 메르미오가 24살에 확신에 가득한 채 낙태 시술을 받았지만 이후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마주하고 내면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과정이 담겼다. 나아가 임신중지 시술을 해온 의사 마크 조프란이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를 벗어나 어떻게 여성에게 공감하는지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에겐 더 많은, 내밀한 낙태 이야기가 필요하다. “내가 부모가 될 것인지 아닌지, 언제 부모가 될 것인지는 스스로 통제하고 싶다. (…) 인간으로서 신체에 대한 폭력인 강간에 반대하는 것처럼, 이건 본능적인 문제이다.” 한국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유럽의 낙태 관련 단체 운동가들을 만나고 쓴 에세이 <유럽 낙태 여행>에서 발견한 한 프랑스 활동가의 말이다. 서울에 혼자 사는 33세 가임기 여성인 나는 임신 계획에 관해 유보 상태이지만, 정확히 같은 입장에서 목소리를 보태고 싶다. 임신이든 낙태든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내 기준에 따라 결정하고 싶고, 무엇보다 어떤 결정을 앞두었을 때 타인의 혼란스러운 갑론을박이나 변칙적인 의료 기준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내 일의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환자들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도록 허락된 점이라는 거죠. 사회가 당신이 저지르는 행동이 잘못됐다고 말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이 병원 밖을 나가면 당신은 완전히 독립된 감각을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다시 미국판 <바자> 기사로 돌아가보면,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에서 다섯 군데의 낙태 클리닉을 운영하는 켈리 플린은 자신의 일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보고 나는 문득 50여 년 전, 프랑스 파리의 343 선언이 기억났다. ‘여성과 사회’ 교양 수업 시간이었다. “나는 낙태했다.” 1971년 파리에서는 3백43명의 여성이 연이어 서명을 발표했다. 현장에는 활동가뿐만 아니라 당시 수술을 집도한 의사, 그리고 낙태를 하지 않았음에도 지지를 보탠 여성들이 있었다.(시몬 드 보부아르 또한 낙태한 적이 없음에도 함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선언은 이후 ‘베유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진 결정적 사건이었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 나는 이제 생리에 대해서 우리가 말하는 꼭 그만큼만이라도 임신을 중단한 경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수면 위로 목소리가 드러날 때, 보다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Credit
- 콜라주/ 나승준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Celeb's BIG News
#스트레이 키즈, #BTS, #엔믹스, #블랙핑크, #에스파, #세븐틴, #올데이 프로젝트, #지 프룩 파닛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하퍼스 바자의 최신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