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패션 스타일 23

어떤 옷이 역사에 길이 남을까. 어떤 옷이 우리가 입는 방식에 대한 생각을 바꿨을까. <하퍼스 바자>가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스타일 23가지를 선정하기 위해 저명한 전문가를 모았다.

프로필 by 윤혜연 2024.10.02
한 시즌마다 네 개 도시에서 수백 개의 쇼가 열리고, 각 쇼마다 수십 가지 스타일이 소개된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매년 수천 개의 새로운 런웨이 룩이 탄생하며, 또 수백 개의 룩이 레드 카펫과 거리에 등장해 사진으로 남겨지고 전 세계로 퍼진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수백만 명이 자신의 데일리 룩을 공유하고, 그 게시물에는 수백만 명이 ‘좋아요’와 댓글을 남긴다. 이처럼 우리는 끝없이 등장하는 옷들의 향연에 노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어떤 스타일이 돋보일까. 무엇이 그 스타일을 우리의 집단의식에 각인하고 때로는 우리가 옷을 입는 방식 그 자체를 바꾸기까지 할까.
<하퍼스 바자>의 연례 아이콘 특집호를 위해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스타일을 선정하고자 했다. 첫 번째로 살펴본 것은 1947년 크리스찬 디올이 첫 컬렉션에서 선보인 룩. 허리를 잘록하게 잡아주는 재킷과 스커트 말이다. 이 혁신적인 실루엣은 참혹하고 황폐했던 제2차 세계대전 참화 이후 여성스러움을 되찾는 신호탄이었다. <하퍼스 바자>의 전설적인 편집장 카멜 스노는 이를 처음 보고 ‘뉴 룩(New Look)’이라고 불렀고, 이는 패션계를 영원히 바꿔놓게 된다.
디올의 획기적인 뉴 룩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패션 순간을 선정하기 위해 <하퍼스 바자>가 모은 전문가들을 보라. 뉴욕패션스쿨의 뮤지엄 디렉터이자 패션 역사학자 발레리 스틸(Valerie Steele), 스타일리스트이자 모델 다라(Dara), 비주얼 디렉터 로 로치(Law Roach), 럭셔리 패션 플랫폼 ‘모다 오페란디(Moda Operandi)’ 공동 창립자이자 최고 브랜드 책임자 겸 주얼리 메종 티파니의 아트 디렉터 로렌 산토 도밍고(Lauren Santo Domingo), <에센스(Ssense)> 콘텐츠 디렉터 스테프 요트카(Steff Yotka), 패션 소식 플랫폼 ‘루이스(Lewis’s)’ 창립자이자 에디터 제레미 루이스(Jeremy Lewis), 그리고 <하퍼스 바자> 편집팀 에디터들. 우리는 수백 가지 스타일을 펼쳐두고 논의했다. 각 스타일에 대해 던진 질문은 이렇다. 이 스타일이 문화의 일부가 됐는지, 여전히 회자되는지, 이후 옷 입는 방식에 영향을 줬는지. 그 결과 23가지 스타일을 엄선해 이 기사에 소개한다. <하퍼스 바자> us 웹사이트에선 오십 가지 스타일을 만나볼 수 있다. 지금부터 그 결과를 확인해보라. 순서는 상관없다.

1. 크리스찬 디올의 뉴 룩,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슈 디올이 선보인 ‘바(Bar)’ 수트는 여성이 그들만의 관능미와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도록 고무한다. 이 독특한 실루엣은 전후시대는 물론, 오늘날에도 여성들이 우아함을 되찾는 데 일조하고 있다.” ‐ 로렌 산토 도밍고

2. 그레이스 존스가 그래미 시상식에서 입은 이세이 미야케 룩, 1983년
“그레이스가 영원히 최고의 뮤즈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다. 그녀의 스타일이 많은 이들의 시안으로 등장하는 이유이고.” ‐ 로 로치

3. 미셸 오바마의 제이크루 룩, 2012년
“역대 영부인들이 패션을 통해 전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왔지만, 미셸 오바마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부러 지어내지 않은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통해 개성을 표현했다. 남편이 대통령 재임 중일 때 입은 제이크루 옷이 그 예다. 덕분에 자국 브랜드인 제이크루의 매출은 급증했으며, 그녀 자신이 여전히 평범한 회사원이자 엄마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했다. 물론 그녀는 많은 이들이 따라 입고 싶어할 정도로 타고난 스타일리시함을 지닌 인물이기도 했고.” ‐ <하퍼스 바자> 뉴스 디렉터 브룩 보브(Brooke Bobb)

4. 톰 포드의 구찌, 1996년
“1996년 가을 컬렉션에서 첫선을 보인 이 수트는 완벽하게 재단돼 고급스러움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기네스 팰트로가 1996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입으면서 더욱 유명해졌고.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2021년 ‘아리아(Aria)’ 컬렉션에서 이 수트를 재해석해 선보였는데, 그해 가을 기네스가 이를 다시 입고 등장해 그 의미를 더했다. 톰 포드가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수트를 만들어냈다는 증거다.” ‐ <하퍼스 바자> 패션 디렉터 니콜 프리튼(Nicole Fritton)

5. 비앙카 재거가 선택한 이브 생 로랑 웨딩 수트, 1971년
“그녀의 웨딩 수트는 전통적인 웨딩드레스를 변형한 상징적 스타일이었다.” ‐ 로 로치

6.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복수(revenge)’였던 크리스티나 스탐볼리안 드레스, 1994년
“이 드레스는 다이애나 스펜서의 대표적인 룩 중 하나로, 그녀가 처음으로 시도한 섹시한 스타일이었다. 찰스 왕세자와 헤어진 후 찾은 독립성과 자신감을 상징했으며, 이후 많은 여성에게 자신만의 관능적이고 대담한 스타일을 추구하도록 격려했다.” ‐ 니콜 프리튼

7. 페기 모핏이 입은 루디 건릭의 모노키니, 1964년
“1960년대 아이콘 페기 모핏은 20세기 가장 급진적 의상이라 할 수 있는 루디 건릭의 모노키니를 착용했다. 1964년 <우먼즈 웨어 데일리(Women’s Wear Daily)>가 처음 소개한 이 모노키니 디자인은 1960~70년대에 일어났던 성 혁명을 공론화했고, 1960~80년대에 발생한 ‘제2물결 페미니즘(Second-wave Feminism)’의 작은 서막이 됐다. 페기는 2012년에 이를 회상하며 ‘당시에는 성생활, 여자 가슴 같은 것들이 불결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루디가 이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한다. 여성에게 가슴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했다.” ‐ 제레미 루이스

8. 타미 힐피거를 입은 알리야, 1997년
“알리야는 타미 힐피거를 힙합 패션 역사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승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녀가 입은 실루엣은 오늘날까지도 패션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하퍼스 바자> 편집 총괄 에디터 레아 체르니코프(Leah Chernikoff)

9.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등장한 케이트 모스, 2005년
“이 룩은 단번에 페스티벌 패션의 기준을 정의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기준을 이어오고 있다. 모두가 헌터 부츠를 갖고 싶게 만들었고.” - 레아 체르니코프

10. 샤데이 아두 스타일, 1980년대 중반
“후프 귀고리와 데님 온 데님. 이전에도 지금도 샤데이 아두처럼 자연스럽고 쿨한 스타일을 소화한 사람은 없다. 그녀는 공식을 따르지 않고도 스타일리시할 수 있는 능력을 일찍이 깨우쳤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소유한 이는 드물다.” ‐ 니콜 프리튼

11. 돌체앤가바나를 입고 봉사활동을 마친 나오미 캠벨, 2007년
“이게 왜 아이코닉한지 정말 설명이 필요할까?” ‐ 로 로치

12. 메종 마르지엘라의 봄 컬렉션, 1993년
“이 룩은 마르지엘라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모두 담고 있다. 타비 부츠와 해체주의적 미니멀리즘,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고 독특한 아름다움은 오직 그만 보여줄 수 있다.” ‐ 브룩 보브

13. 메트 갈라에서 밥 매키의 드레스를 입은 셰어, 1974년
“셰어와 밥 매키는 레드 카펫 의상을 일종의 퍼포먼스 아트로 승화시켰다. 깃털이 달린 시스루 의상은 이후 등장할 네이키드 드레스 트렌드의 포문을 열었고, 예술로서의 패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 디지털 총괄 디렉터 리네트 나이랜더(Lynette Nylander)

14. 리아나가 입은 아담 셀만 크리스털 드레스, 2014년
“투명한 아담 셀만의 크리스털 드레스를 입은 리아나를 능가할 패션은 한동안 없을 것 같다. 이 드레스는 네이키드 드레스 트렌드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극소수 드레스만이 가능한 놀라운 일을 해냈기 때문. 그건 바로 그 드레스 입은 사람을 스타로 만들기. 이 옷과 함께한 리아나는 진정한 아이콘이 됐다.” ‐ 스테프 요트카

15. 엘리자베스 헐리가 착용한 지아니 베르사체의 옷핀 모티프 드레스, 1994년
“엘리자베스 헐리가 베르사체의 옷핀 모티프 드레스를 입었을 때 그 모습은 즉시 아이코닉한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펑키하고 도전적이며, 강렬했다.” ‐ 발레리 스틸

16. 비요크가 착용한 마르잔 페요스키의 스완 드레스, 2001년
“이 드레스는 ‘위키피디아’에도 기재돼 있다. 알 소품을 같이 활용한 이 드레스는 큰 화제를 모아 밈까지 됐다. 핼러윈 의상으로도 유명하다. ‘최악의 드레서’와 ‘최고의 드레서’를 동시에 지명받은 룩.” - 스테프 요트카

17. 요지 야마모토를 입은 캐롤린 베셋 케네디, 1999년
“캐롤린 베셋 케네디는 캘빈 클라인과 요지 야마모토의 상반된 미적 스타일을 뛰어나게 조화시켰다. 그녀의 절제되고 세련된 미학은 1990년대 미니멀리즘을 정의했으며 피비 파일로, 더 로우, 토리 버치 등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와 브랜드에게 영감을 줬다.” ‐ 제레미 루이스

18. 월리스 심슨이 선택한 스키아파렐리의 랍스터 드레스, 1937년
“당대 파격적이었던 랍스터 드레스는 고상한 왕실에는 외설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그 화제성 덕분에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패션계 초현실주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 드레스는 교양 있는 패션에 장난기 넘치는 코미디를 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이 룩이 회자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 스테프 요트카

19. 이브 생 로랑을 입은 베티 카트루, 1969년
“사파리 재킷, 일명 ‘사하리엔느(Saharienne)’ 열풍을 일으킨 재킷이다. 생 로랑의 사파리 룩은 여성들에게 시크한 실용주의 룩을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 ‐ 니콜 프리튼

20. 그레이스 켈리의 웨딩드레스, 1956년
“헬렌 로즈가 디자인한 이 드레스는 이후 탄생한 수많은 웨딩드레스의 원조다. 전통적인 신부 스타일의 전형을 제시했으며, 일반적인 웨딩 룩의 기준이 됐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대적으로 보인다.” ‐ 리네트 나이랜더

21. 도나텔라 베르사체를 입은 제니퍼 로페즈, 2000년
“제니퍼 로페즈가 2000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르사체 드레스를 입었을 때 수백만 명이 주목했고, 그 드레스는 패션계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았다. 이는 과거 옷핀 모티프 드레스처럼 큰 명성을 얻었으며, 이 드레스가 어떤 제품인지 찾기 위한 사람들의 수요가 구글 이미지 검색의 영감이 되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 발레리 스틸

22. 셀린느 런웨이 피날레에 등장한 피비 파일로, 2011년
“한 디자이너의 시그너처 유니폼이 스타일리시한 여성들 사이에서 워너비가 되며 큰 인기를 끈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주인공은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 스니커즈를 유니폼으로 착용한 피비. 그녀의 스타일은 시크하면서도 약간 흐트러진 모습이었으며, 편안하면서도 날카롭고, 쿨하면서도 결코 꾸미려 하지 않았다.” ‐ 니콜 프리튼

23. 포르투니를 입은 티나 초우, 1987년
“모델이자 주얼리 디자이너였던 티나 초우는 스페인 패션 디자이너 마리아노 포르투니의 빈티지 실크 드레스를 여러 벌 소장하고 있었는데, 특히 이 드레스가 당대를 대표하는 룩 중 하나로 꼽힌다. 패션 아이콘이 역사적 의상에서 영감받아 완벽하게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낸 초기 사례로 여겨지기 때문.” ‐ 다라

Credit

  • 글/ Brooke Bobb
  • 번역/ 채원식
  • 사진/ⓒ Shutterstock, Kevin Winter,NBCUniversal,Getty Images, Chris Walter/WireImage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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