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서울, 과천, 대구에 생긴 새로운 예술 공간
예술을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을 탐구하며 미래를 위한 독창적인 감성을 빚어내는 새로운 공간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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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Kim Yongkwan. Photo: 대구간송미술관
지난 5월, 보수 복원 공사를 마친 후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이 재개관했다. 1938년에 설립한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는 막을 내렸지만 감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9월 공개되는 대구간송미술관이 전형필 선생의 유지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기 때문이다. 2011년 개관한 대구미술관 옆에 위치해 수성구 ‘미술관로’가 더욱 빛나도록 힘을 보태고 있다. 간송(澗松)의 의미, 맑은 계곡의 고고한 소나무를 떠올려보면 미술관이 어떤 모습을 형상화했을지 가늠이 된다. 진입로부터 소나무가 반기는 미술관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규모에 6개의 전시 공간과 아카이브, 보이는 수리복원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문규 교수와 가아건축사사무소는 입지의 특성이 안동 도산서원과 유사한 점에 착안해 자연의 일부가 되는 미술관을 지향했다. 즉 지형에 맞춰 계단형 건축물로 층층이 나눠져 있다. 계단식 기단이나 터의 분절 같은 한국 전통 건축 요소를 현대적인 건축에 접목한 방식이다. 지하 1층의 전시실 외부에 작은 정자와 수공간을 배치했고 2층에는 넓은 박석 마당이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건물 내부와 야외 공간의 유연한 연결을 통해 건축과 자연의 공생 관계를 추구한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간송의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미술관 입구에 세운 아름드리나무 기둥이다. 미술관 2층 앞 입구에 세워진 대형 나무 기둥 11개는 멀리서 보아도 도드라진다. 하늘로 치솟듯 곧게 뻗은 나무의 자태가 고풍스러운 멋을 더한다. 이 웅장한 나무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2층 내부로 들어가면 아카이브가 기다리고 있다. 9월 3일, 개관전 «여세동보(與世同寶)‐세상 함께 보배 삼아»에서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국보와 보물, 간송 유품을 선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 신윤복의 <미인도> 등 국보급 문화유산과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전시다. 이제 우리의 문화유산을 품은 간송미술관이 대구의 문화예술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성장할 일만 남았다.

Installation view of «Super Segment», Whistle, 2024. Photo: Ian Yang. ⓒ Jung Sungyoon and Whistle
작지만 경쾌한 울림이 있는 공간, 휘슬 갤러리가 확장 이후 다양한 전시를 진행 중이다. 경리단길 부근의 작은 상가 건물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휘슬은 패션 브랜드가 팝업 스토어와 카페로 사용하던 1층과 지하 1층을 갤러리로 탈바꿈시켰다. 6월 초 재개관 이후 건물 사이에 있는 중정을 전시 공간으로 적극 활용한 점도 눈길을 끈다. 8월 24일까지 진행하는 정성윤 개인전 «Super Segment»의 경우, 총 6점의 설치 작업을 1층에서만 선보였다. 특히 두 개의 작은 전시실과 중정 공간을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함으로써 감상의 재미를 배가했다. 소소하지만 세 개의 공간을 사용해 작품이 지닌 특색(작가가 추구한 순환의 경로)을 효과적으로 표출한 셈이다. 작은 공간을 전시의 특성에 맞춰 적절히 활용한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미술관 외부에서 보면 PVC 볼을 사용해 제작한 작품 <무거운 점들>이 중정에 위치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전시장 1층이 독특한 것은 갤러리의 투명한 전면 유리창을 통해 길을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잠시 머물면서 갤러리 안쪽에서 창을 향해 바라보면 아티스트의 작품과 동네 사람들이 하나로 맞물리거나 병치되는 순간이 있다. 이런 장소적 특성이 작품에 영감을 주는 우발성도 충분히 가능할 만하다. 그럼에도 휘슬의 히든 카드는 지하 1층 공간이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고요한 침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다. 지하라고 하면 으레 창문 없는 밀폐된 공간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이곳은 지하의 중정을 통해 은은한 빛이 쏟아진다. 전시실 내부의 편안함이 작품에 몰입하기 좋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2017년부터 동시대 작가들과 미술의 다양한 방향성을 탐구해온 휘슬은 상상력이란 거대한 갤러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운다. “정확한 소리를 내기 위해선 한 곳에 집중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휘슬의 정신이 담긴 공간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Photo: 푸투라 서울
푸투라 서울은 한옥과 서양 건축의 만남을 실험했다고 평가 받는 가회동성당과 이웃하고 있다. 성당의 이웃사촌이 된 새로운 예술 공간은 외형이나 형태가 딱히 돋보이진 않는다. ‘푸투라(미래)’라는 이름을 내세운 건물의 첫인상은 어우러짐이다. 성당의 한옥 돌담 방향에서 바라보거나 두 건물 사이에서 함께 응시해도 서로 담소를 나누듯 절묘하게 어울린다. 푸투라의 회색빛 콘크리트 외벽은 성당뿐만 아니라 북촌로를 지키는 푸르른 가로수(소나무)와 조용히 호응하고 있다. 3백50평 규모에 대형 전시장과 옥상정원을 갖춘 3층 건물이 크게 뽐내지 않으면서 주위와 더불어 호흡하는 모양새다. 놀라운 것은 높지 않은 건물 입구가 마치 한옥 처마 아래 있는 것 같은 정취를 선사한다는 점이다. 주변 한옥과의 조화를 추구하듯 소박하고 담백한 분위기다. 하지만 곧장 안으로 향하면 건물 내부가 다양한 인상을 지닌 채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면으로 들어가면 공간을 부드럽게 확장하는 물결 같은 곡선 천장과 자연을 품은 뒷마당이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드러내는 진풍경에 바로 시선을 빼앗긴다. 반면 입구 정면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공간, 즉 메인 작품이 위치하는 전시 공간으로 이동하면 10.8미터 높이의 웅대함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높은 천장의 유리창을 통해 벽에 빛이 깃드는 모습이나 대형작품이 내뿜는 에너지를 함께 호흡할 전시장을 상상만 해도 즐거워진다. 2층 전시장과는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3층의 테라스와 옥상정원에서 북촌의 예스러움에 취하는 특별한 순간도 놓칠 순 없다. 북촌의 전통과 미래를 연결하는 공간을 빚어낸 주인공은 다크 매터를 주제로 준지 도산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계한 WGNB의 백종환 대표다. 푸투라 서울은 전시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고 상상하는 실험의 터전으로 손색이 없다. 개관전으로 9월 5일,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의 «대지의 메아리: 살아 있는 아카이브»가 열린다.

ⓒ William Mulvihill. Photo: K&L Museum
과천에 자리 잡은 K&L 뮤지엄은 주변 건물과 대비되는 육중한 형체를 자랑한다. 거리에서 보면 누구나 화강석 외벽의 강렬함에 사로잡히거나 압도되겠지만, 정작 정문 앞에 서면 커다란 유리창과 중앙의 마당이 제공하는 편안함에 이끌린다. 자칫 무겁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표출할 수 있는 건물이지만 뮤지엄의 기능을 잊지 않은 채 개방성을 추구하고 있다. 우측에 위치한 아담한 유리 부스나 정면의 전면 유리를 통해 보이는 모습은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디귿(ㄷ)자 모양의 뮤지엄이 관람객을 수용하는 방식은 한마디로 투명한 단단함이다. 미술관 내부는 스킵 플로어(바닥을 반 층 차 높이로 다르게 설계) 구조라서 정형화된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나 있다. 부드러운 감각의 원목 계단은 2층 갤러리로 향한다. 바닥의 높낮이에 따라 미술작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게 유도하거나 1층과 2층의 열린 공간을 통해 다각도로 갤러리를 응시하면서 공간을 향유하도록 만드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아기자기한 전시 공간도 흥미롭지만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는 것은 3층에 있는 아트숍과 카페 L이다. 반드시 1층부터 차례대로 전시실을 즐기면서 3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갈 것을 권한다. 전시를 감상한 후 미술 도록을 살펴보거나 잠시 여유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이곳처럼 관람 행위가 카페의 안락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예술적 감흥이나 여운을 뮤지엄에 머무는 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을 쓴다는 방증이다. 묵직한 외관을 지닌 매혹적인 뮤지엄은 관람객과 작품의 소통을 담는 섬세한 그릇으로 기능한다. 9월 2일부터는 스위스 아티스트 클라우디아 콤테의 «재로부터의 부활: 재생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조각과 흙을 재료로 한 벽화가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예정이다.
전종혁은 프리랜스 에디터다. 새로운 미술관에 집착하듯, 개관 전부터 주위를 맴돌며 미술관의 에너지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Credit
- 글/ 전종혁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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