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바자전과 함께한 아티스트 허수연
회화와 설치를 선보이는 작가 허수연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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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연의 작업은 모든 현상이 다면적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일상에 산재한 모순과 양면성을 꼬집는 작품으로 전시장을 채웠다.
인터뷰를 하는 지금, ≪바자전: UNDER/STAND≫ 작업은 60% 정도 진행된 상태라고 들었다. 잠시 작업의 시작을 돌이켜볼 때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나?
평소 뉴스 기사나 영화,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다. 이번에는 어느 칼럼을 읽다 ‘방 안의 코끼리’라는 개념을 접한 것이 시작이었다. 명백한 문제임을 알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얘기하려 들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뜻한다. 이 개념을 파고들다가 한 가지에 집중해 다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도 접하게 됐다. 두 개념에 공통점이 있다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많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왜곡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인간의 모습도 겹쳐 보였다.
나란히 붙어 있는 백조와 흑조, 영화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 등. 조각은 회화에 비해 현실에 발 붙인 꽤 구체적인 대상을 묘사하고 있어서인지 관객에게 더 직관적으로 말을 걸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언급한 작품들의 이미지는 영화 <블랙 스완>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반대되는 속성을 지닌 두 가지를 하나로 붙여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혼합된 조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의 물꼬를 터줬다. 영화를 본다는 건, 현실에서 잠시 멀어져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겠다는 선언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관 의자를 또 다른 조각 작업에 사용한 이유다. 현실과의 괴리와 그에 억눌린 인간을 보여주고 싶어 묶여 있는 형태로 만들 예정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이번 작품 역시 수많은 현상의 이면을 궁금해하는 데서 시작한 셈이다.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벽 한 면을 가득 메운 페인팅 작품이 눈에 띈다. 종이가 바닥에 끌릴 정도로 크기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페인팅 신작의 주제는 ‘모래성’이다. 지금 보이는 그림 앞에 조그만 모래성을 만들 거다. 그림 속 모래성이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라면, 그 앞에 놓인 모래성은 믿고 싶은 아름다운 환상이다. 이를 대립해 보여주고 싶어서 두 작품의 크기도 극명히 대비되게 만들었다. 가끔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하고 싶을 때 미싱으로 한지를 이어 붙이는데, 이번 회화작품이 그런 케이스다.
작업의 시작이 꼭 한지 위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지를 밀가루 풀로 접착시키면 딱딱해진다. 유약한 존재가 순식간에 단단해지는 이중적인 면은 내가 원하는 재료의 모습이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덧칠할 때 색이 계속 쌓이는 느낌이라면, 한지는 물감을 쓰는 족족 흡수한다. 색을 머금고 있는 것인데, 그로 인해 생기는 톤다운된 차분한 색감이 마음에 든다. 색을 덧입힐수록 자연스럽게 생기는 부스럼도 좋다. 무엇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재봉실로 잇거나 밀가루 풀로 붙여가며 볼륨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작업의 마무리 단계를 책임지는 재료인 종이죽은 종이를 밀가루 풀과 섞어 만든다. 이 단계에서 사용하는 종이를 선별하는 기준도 있나?
작업 초반에는 영수증이나 티켓도 사용했는데 지금은 거의 잡지만 쓴다. 어떤 의미를 담은 종이를 골라 사용하진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건 풀과 물감을 섞었을 때 물성이 달라지는 재료로서 종이를 쓴다는 점이다.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한 호기심’은 당신을 움직이는 동력인 듯하다. 어떤 경험이 이러한 작업관을 갖는 데 큰 영향을 미쳤나?
한지 위에 수채화와 유화, 종이죽까지. 레이어를 쌓는다는 건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작업을 이끄는 힘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내 기질의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불안도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다. 늘 긴장 상태에 있는데,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A를 택하면 B는 영영 모른다는 생각이 날 불안하게 만드는데, 삶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대부분 이런 식이라는 게 문제다.(웃음) 막연한 불안은 늘 나와 함께하는 요소이고, 내 작업의 근간이 된다. 나는 불안한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창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닳지 않은 채로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회화와 조각을 나누지 않고 매체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듯 성큼 발을 내딛어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
아직은 내 색을 계속 구축해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해오던 방식을 유지하겠지만, 언젠가 키네틱 아트에 도전해보고 싶긴 하다. 나는 작업을 구상할 때 어떻게 그릴지보다 어떻게 만들지가 먼저 떠오른다. 평면보다 입체가 먼저 떠오른다는 말인데, 그래서인지 페인팅 위주의 작업 초반에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한정된 지면을 넘어서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다. 입체로 넘어오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몸을 많이 써야 하니 체력적으로 더 힘들지만 그만큼 재밌다.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이 흐름의 연장선이 아닐까.
※ ≪바자전: UNDER/STAND≫는 8월 23일부터 9월 14일까지 프로세스 이태원에서 열린다.
고영진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기사를 만드는 동안 완성된 작품이 함께할 프로세스 이태원의 전경을 몇 번이고 상상했다. 전시를 관람한 뒤에는 이태원을 거닐며 전시장 안팎의 풍경을 곱씹어볼 생각이다.
Credit
- 사진/ 김형상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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