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ILITY
4번 달걀의 비밀
달걀 껍질 위 마지막 한 자리 숫자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살충제 달걀 파동의 시작에는 밀집 사육 시스템이 있다. 달걀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닭을 몰아 넣어 키우는 방식. A4 용지 한 장만 한 공간 안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닭들은 흙이나 모래에 몸을 문질러 몸에 붙은 해충을 없애는 대신 살충제를 흠뻑 맞는 수밖에 없다. 한 차례의 떠들썩한 파동 뒤, 정부는 살충제나 항생제 같은 약품 관리를 강화하고 달걀 껍질에 농장의 사육 환경을 번호로 매겨 표시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문제는 지금껏 그 이상의 단계를 밟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기획팀의 유지우 활동가가 문제 삼는 지점은 바로 이 대목이다.
올해 2월 글로벌 케이지 프리 운동 연합단체인 OWA(Open Wing Alliance)는 산란계 복지와 관련한 아시아 17개국 정부의 추진 상황을 평가해 보고서 형태로 발표했다. 한국을 대표해 이 작업에 참여한 멤버 중 한 명인 유지우 활동가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내세웠다. 평가점수 140점 만점에 한국이 받은 점수는 34점. 한국은 여전히 심각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머물러 있으며, 동물복지 인증제 역시 세부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형식적 단계에 그친다는 것을 뜻한다. 유지우 활동가는 말한다. 농장보다 공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곳에서 평생 땅 한번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채 알만 낳다 죽음을 맞이하는 닭들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다고.

유지우 2018년부터 달걀 껍질에 생산 정보를 알려주는 난각표시제를 도입한 결과다. 첫 네 자리는 산란일을, 이어지는 문자와 숫자 5자리는 달걀이 생산되는 농장의 고유 번호를 뜻한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건 맨 마지막 숫자다. 이 숫자로 닭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알 수 있다. 1부터 4까지 숫자가 있는데 1, 2번은 동물복지 달걀로 인정받는다. 각각 자연방목, 실내방목 평사사육 환경에서 사육된 닭이 낳은 달걀을 뜻한다. 주로 문제 삼는 건 케이지에서 생산되는 3, 4번 달걀이다. 닭 한 마리당 사육 밀도가 0.075㎡ 이상이면 3번, 0.05㎡ 이상이면 4번이 된다. A4 용지 한 장이 0.06㎡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충 어떤 환경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퍼스 바자 3, 4번 환경에서 사육되는 닭은 어떤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되는 건가?
유지우 케이지 사육 시스템을 갖춘 농가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소한의 관리만 하기 때문에 분변으로 인한 악취를 비롯해 기본적인 위생 관리가 엉망인 경우가 많다. 닭들은 본능적으로 횃대에 올라가는 걸 좋아한다. 날개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케이지 안의 닭들에겐 꿈도 꿀 수 없는 얘기다. 모래 목욕을 할 수 없어 온몸에 해충이 그득한 채로 고통스럽게 사는 닭도 태반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얼마나 오래 살 수 있겠나. 닭의 평균 수명이 20년인 것에 비해 산란계의 수명은 2년 정도로 본다. 2년간 알만 죽어라 낳다가 산란율이 낮아지면 도살을 당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닭은 생명체가 아닌 알 낳는 기계일 뿐이다. 닭의 입장에서 보자면 농장이 아니 공장이 맞다.
하퍼스 바자 1등급, 무항생제, 유기농, 목초란 같은 수식어를 달고 있는 4번 달걀도 많더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이렇듯 달걀의 품질이 동물복지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지우 공감한다. 우리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1등급’은 달걀의 청결성과 모양, 빛에 비췄을 때 노른자의 상태처럼 달걀 자체를 판정한 결과값이다. 열악한 케이지에서 사육되었다 해도 나이가 어린 닭이 좋은 사료를 먹고 낳은 달걀이라면 높은 등급을 받기도 한다. 목초란은 사료에 목초액을 조금이라도 섞으면 붙일 수 있는 말이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혼선을 막기 위해 포장재에도 사육 환경 번호를 기재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이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동물복지 인증 마크를 확인하는 것이 달걀 껍질을 보지 않고도 1, 2번 달걀을 선택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동물복지를 인증한 농가만 받을 수 있는 마크다.
하퍼스 바자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달걀 중에서도 케이지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사육 환경을 갖춘 사례도 있다던데.
유지우 에이비어리 케이지(Aviary Cage, 유럽형 개방형 케이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층층이 쌓은 아파트 같은 케이지 형태를 고수하는 건 똑같지만 틀에 감금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유럽에서는 케이지 사육이 금지되면서 과도기 단계에서 에이비어리가 도입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케이지 시스템을 고수하면서도 에이비어리를 들여와 2번, 즉 동물복지 농장으로 인정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공장식과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생산되는 달걀에 버젓이 2번이 찍힌 채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유통되고 있으니, 기존 동물복지 기준을 지키며 평사에서 닭을 키우는 개인 농가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진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하퍼스 바자 그렇다면 국내 산란계 중 온전한 방목 환경에서 자란 닭의 비율은 얼마 정도인가?
유지우 2023년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에서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산란계 총 7천15만 마리 중 자유방목으로 키운 닭은 37만 마리로 집계된다. 비율로 따지면 0.5% 정도다. 동물복지 농장에서 사육된 닭의 비율은 7.6%이지만, 여기엔 에이비어리 케이지 사육도 포함이다. 결국 케이지에 갇힌 닭이 90%를 훌쩍 넘는 셈이다. 그 전년도에도 수치는 비슷했다.
하퍼스 바자 축산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2025년 9월부터 산란계 한 마리 당 사육 면적이 최소 0.05㎡에서 0.075㎡로 상향된다. 4번 달걀을 없앤다는 얘긴데, 동물복지 측면에서 체감할 만한 변화를 기대해봐도 되는 것일까?
유지우 최소한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공간 정도는 확보가 되는 건데 사실상 큰 의미는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닭장 안에 갇힌 닭이 전체 산란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니까. 한국은 아직 케이지 철폐와 관련한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고 있고, 단계적인 로드맵 역시 전무하다. 올해 2월 OWA가 발표한 아시아 케이지 프리 벤치마크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씁쓸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닭의 평균 수명이 20년인 것에 비해 케이지에 사는 산란계의 수명은 2년 정도로 본다. 평생 알만 낳다 산란율이 낮아지면 도살을 당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닭은 생명체가 아닌 알 낳는 기계일 뿐이다.
하퍼스 바자 한국이 140점 만점에 34점을 받았다는 그 보고서 말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출된 점수인가?
유지우 보고서는 케이지 철폐, 정책의 틀, 복지 기준이라는 세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난각 표시를 하고 있고, 동물복지 인증 기준이 수립되어 있으니 정책의 틀, 복지 기준 항목에서는 점수를 받았다.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항목이라 볼 수 있는 케이지 철폐 부문에서 0점을 맞았다는 것이다. 케이지를 없애기 위한 어떤 목표나 계획도 없다는 걸 의미한다.
하퍼스 바자 전 세계적으로도 케이지를 완전히 없앤 국가는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벤치마크 보고서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뉴질랜드는 케이지 철폐 법안을 마련하고도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유지우 정부의 로드맵이 시급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논의가 시작된 시점부터 완전한 케이지 철폐까지 최소 10년에서 15년은 소요된다. 영국은 1998년 산란계 복지를 공론화하기 시작해 2003년에는 새로운 케이지 생산을 금지시켰다. 이후 2012년에 이르러 케이지 시스템을 완전히 철폐했다. 공론화 이후 실질적으로 케이지를 없애기까지 14년이 걸린 것이다. 농가와 기업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규모가 큰 산업인 데다가 누군가에게는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해외의 사례들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한국도 이행의 의무를 갖고 첫발이라도 떼는 것이 먼저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하퍼스 바자 현 상황에서 한국이 완전한 케이지 프리로 가는 데 있어 해결해야 할 급선무는 무엇일까?
유지우 가장 먼저 정부가 케이지 프리 원년 선포 후 단계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본다. 두 번째는 동물복지 농장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그 필요성을 홍보하는 것이다. 기업과 소비자가 케이지 프리 달걀을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기업 차원의 관심을 강조하고 싶다. OWA가 2023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케이지 프리 달걀만 사용하겠다고 발표한 기업의 수가 크게 늘었고, 실제 대다수 기업이 거짓 없이 약속을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들의 인식이 점차 변화하고 있는 만큼 기업도 더 나은 선택을 위해 노력하는 선순환이 일어나길 바란다.
Credit
-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Celeb's BIG News
#스트레이 키즈, #BTS, #엔믹스, #블랙핑크, #에스파, #세븐틴, #올데이 프로젝트, #지 프룩 파닛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하퍼스 바자의 최신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