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태싯그룹 가재발이 직조하는 소리의 세계
최첨단 기술이 난무하는 시대, 아날로그의 방식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가재발의 작업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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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레코딩 엔지니어로 음악을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와 방시혁과 댄스음악 프로젝트 ‘바나나걸’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등 케이팝 프로듀싱을 맡았다. 이후 오디오 비주얼 그룹 ‘태싯그룹(Tacit Group)’을 결성했고 사운드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레코딩 엔지니어로 시작해 전자음악의 선구자, ‘바나나걸’의 히트 프로듀서, 사운드 아티스트로 변모를 거쳤다. 1990년대 말까지 미국에서 믹싱과 레코딩 엔지니어를 하다 2000년대 초반에 한국에 들어와 케이팝 작곡가들과 함께 리믹스, 편곡 작업을 했다. 바나나걸의 ‘엉덩이’라는 곡이 히트를 치면서 삶이 윤택해지다 보니 계속 자기복제를 하고 있더라. 상업적인 것을 내려놓고 음악 공부에 더 파고들다 자연스럽게 실험적인 쪽으로 관심이 흘러갔다. 몇 천, 몇만 명이 오는 공연만 생각하다 다양한 공간에 음악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동길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기를 들면 기괴한 전자음악이 나오는 작업이 내 첫 전시였다.
2008년부터 태싯그룹으로 미디어 아트 활동을 해왔다. 가재발과 태싯그룹의 정체성은 어떻게 다른지. 올해는 가재발 솔로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얼마 전 영국으로 솔로 투어 갔을 때 태싯과 가재발 두 공연을 다 본 런던 극장 디렉터가 이렇게 말했다. “태싯은 머리로 만든 것 같다면 가재발은 가슴으로 만든 것 같다.” 사운드를 만드는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걸 하고 싶어서 이상한 걸 찾는다. 모차르트가 주사위를 던져 곡의 체계를 만든 것처럼 태싯은 새로운 시스템에 집중했다. 작년 열었던 ‘WeSA 페스티벌’의 슬로건인 ‘Sound is the new music(사운드가 새로운 음악이다)’이 가재발의 키워드다.
지난 2월 오랜 공백을 깨고 신작 공연 <언리더블 사운드 (UN/Readable Sound)>를 선보였다. 60분 동안 밀도 높은 사운드와 그에 감응하는 영상 속으로 한없이 몰입하는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소리의 텍스처가 좋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 보통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라 그 느낌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어떤 음악들은 비어 있을 때 멋있기도 하지만 나는 스펙트럼 안에 밸런스가 잘 짜여져 묵직하게 다가오는 소리를 선호하더라. 관객에게 좋은 환경에서 소리의 여러 단계 곳곳까지 세세하게 들을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화성이나 가사를 전달하지 않는 소리 자체이기에 몸으로 진동을 느끼고 주파수를 캐치하면서 신체로 맞닥뜨리고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도시, 현대인, 해와 달, 기계’라는 네 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소리와 영상이 얽힌다. 사운드와 비주얼을 송출하는 과정은? 네 가지의 키워드는 모두 내 삶 속에서 나왔다. 태어난 도시인 대구와 오랜 시간을 보낸 뉴욕과 서울. 이집트 홍해에서 배를 타고 다니다 너무 심심해서 음악을 만들었던 기억 등이 녹아 있다. 기계를 이고 지고 매주 금요일 홍대 조커레드에 공연하러 다니던 내 모습, 휴대폰 속에 있던 황사 속 빨갛게 빛나던 해 등을 모티프로 삼았다. 영상을 쉽게 구현하기에 제격인 언리얼 엔진이라는 게임 엔진을 사용했다. 오디오 신호가 언리얼 엔진을 통해 매핑되어 비주얼이 출력되는 방식이다. 태싯을 할 때는 영상 효과를 직접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있는 걸 충분히 활용하고자 했다. 사운드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사람과 소리와 영상을 하나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물론 소리만 듣는 시간이 버거운 사람은 영상으로 흥미를 가질 수 있었으면 했고.
수많은 기술이 난무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적으로 소리를 직조한다. 사운드의 매력을 무엇이라 생각하나? 물리적으로도 귀가 눈보다 빠르다. 예를 들어 공포영화에서 두려움에 반응하는 리액션을 더 빨리 끌어내는 건 확실히 소리다. 영상은 1초에 60 프레임을 담을 수 있는데 사운드는 1초에 9만 개도 다룰 수 있다. 그만큼 주의를 요하는 작업의 묘미가 있다.
선이 주렁주렁 달린 장비가 대중에게는 생소하다. 주로 사용하는 장비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되는지. 공연을 본 어떤 사람이 인스타그램에 공연 사진과 함께 “One Man, Many Electronics”고 적었더라. 악기가 아닌 기계처럼 보였나 보다. 유로랙(Eurorack)이라는 모듈러 신시사이저다. 효과를 내는 여러 이펙터를 조립해 케이블을 서로 연결해주면 원하는 소리와 효과를 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차를 조립하듯 미쉐린 타이어를 살 것인가 금호타이어를 살 것인가, 여러 브랜드에서 원하는 걸 사서 끼우는 것과 같다. 다음에 휠을 사고 시트를 사고. 아까 사진 찍을 때 목에 케이블을 걸었는데 결코 설정이 아니다. 이펙터끼리 연결하기 위해 수많은 케이블이 필요하기 때문에 색과 길이가 다 다르다. 기억하기 쉬운 표식 같은 것이다. 어떤 아티스트들은 한두 가지 색깔을 고집하기도 한다. 케이블 하나에도 철학이 있다. (웃음) 목에 거는 것은 가장 중요한 케이블이다. 메인 기계와 기계를 연결해주는 거라 몸에 걸어둔다. 퍼포먼스로 움직이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소리를 내기 위한 연주를 한다.
해외 투어를 마치고 며칠 전에 돌아왔다. 공연은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영국에서는 나와 컴퓨터 플레이어가 반씩 공연했다. 스위스에서는 학생들과 1:1로 프라이빗 레슨을 하는 렉처 퍼포먼스를 했고 프랑스에서는 솔로 공연을 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옷을 사 입을 것 같은 젊은 관객이 공연을 보러 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여름에 미국과 캐나다 공연이 잡혀 있다. 올해는 솔로 공연으로 다양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세 아티스트를 만나 ‘사운드’의 정체성에 한 발짝 다가섰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김연제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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