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ILITY

음원 스트리밍이 환경을 파괴한다고?

반복 재생하는 음원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놀라운 사실. 케이팝 문화가 정점에 있는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크나큰 화두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4.04.02
케이팝 문화에 무던한 이들에게도 케이팝 팬덤의 생태계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아이돌과 만나는 팬사인회에 응모하려면 앨범에 동봉된 응모권이 필요하다는 것. 팬사인회 커트라인인 ‘팬싸컷’을 넘기려면 응모권의 갯수가 수십 장에서 수백 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앨범의 구성품 중 하나인 랜덤 포토 카드를 전부 모으는 걸 ‘드래곤볼’이라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량 구매인 ‘앨범깡’을 해야 한다는 것. 그들만의 용어는 잘 몰라도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덕질’을 위해 대량의 앨범 구매가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길거리에 수백 장씩 나뒹구는 아이돌 앨범의 사진이 심심치 않게 뉴스를 채우곤 했으니 말이다. 이런 현상에 위기를 느낀 케이팝 팬들의 주도로 탄생한 플랫폼이 바로 ‘Kpop4Planet(케이팝포플래닛)’이다. 이들은 환경을 지키며 올바른 팬덤 문화를 이끌어가자는 캠페인을 지속해서 벌이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플라스틱 쓰레기 남용의 일부였던 사재기를 제재하는 제도가 생겨나고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앨범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케이팝포플래닛이 다음으로 주목하는 것은 스트리밍 문제다. 일명 ‘스밍’은 응원하는 아이돌의 음원을 음원 사이트 순위권에 올리기 위해 스트리밍을 반복해 청취량을 늘리는 행위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환경이 파괴된다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저장하지 않고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로 재생하는 동안 발생되는 탄소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멜론은 탄소맛’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스트리밍 문제를 알리고 있는 케이팝포플래닛의 이다연 캠페이너는 진정한 ‘덕질의 맛’을 즐기기 위한 대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퍼스 바자 2021년 3월 케이팝포플래닛이 탄생한 이래 목소리를 높여온 것이 플라스틱 앨범 소비에 대한 캠페인이었다. 가장 큰 성과는?
이다연 케이팝 팬들의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산업계에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주된 활동이다. 처음엔 보수적이고 철옹성 같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도 기후행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SM은 친환경 소재의 앨범을 발매하고, JYP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한국형 RE100를 이행하였으며, HYBE는 제이홉의 솔로 앨범을 디지털 플랫폼 앨범으로 발매해 실물 앨범 쓰레기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JYP, YG, SM, HYBE 메이저 4대 엔터사 모두가 지속가능한 기업 경영을 의미하는 ESG 리포트를 발간했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하퍼스 바자 현재는 스트리밍 탄소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이다연 대부분의 케이팝 팬들이 ‘스밍’을 위해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을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다. 설문조사를 진행해보니 약 1천1백 명의 케이팝 팬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컴백할 경우 하루에 5시간 이상 스밍을 한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의 데이터센터는 대부분 화석 연료로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노래를 송출하기 위해서는 탄소가 배출된다. 스트리밍 탄소 배출 문제는 앨범 문제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많은 이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널리 알리고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퍼스 바자 좀 더 구체적으로 스트리밍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다연 영국 킬(Keele) 대학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5시간 이상 음악을 듣는 것이 CD 앨범 하나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탄소보다 더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시킨다고 한다.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인 과정에서 이 문제를 팬들에게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1시간의 스밍이 플라스틱 빨대 2백 개를 쓰는 것과 같다(1시간의 음악 스트리밍에 55g의 탄소를 배출한다고 가정)’는 식의 비교 데이터를 만들어 심각성을 알렸다.
하퍼스 바자 ‘멜론은 탄소맛’이라는 캠페인 문구가 눈에 띈다.
이다연 캠페인을 준비할 때 케이팝 팬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항상 재밌는 캐치프레이즈와 제목을 지으려고 많은 고민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스트리밍 플랫폼이 ‘멜론’이었고 마침 레드벨벳의 ‘빨간맛’이라는 노래가 크게 히트해서 이를 패러디했다. 우리가 멜론에서 듣는 노래가 사실 데이터센터에서 화석 연료를 사용해 듣는 ‘탄소맛’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도 하고.
하퍼스 바자 스트리밍을 통한 탄소 배출 줄이기 제안과 그 대답은?
이다연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화석 연료를 쓰지 않는 데이터센터를 사용하는 것이다. 해외 스트리밍 플랫폼의 경우 재생에너지 센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활용을 준비하고 있다. 멜론에도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데이터센터를 사용해달라는 요구를 전달했다. 케이팝 팬들과 약 6개월간 지속적으로 요구를 전달한 결과, 마침내 멜론이 응답하였고 2030년까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클라우드로 데이터를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퍼스 바자 음악 팬과 일반 유저들이 환경을 지키며 좋아하는 것을 향유하기 위한 팁을 하나 알려준다면.
이다연 탄소 배출을 해결하기 위해 음악을 안 들을 수는 없다. 물론 과도한 경쟁이 문제이긴 하지만 필연적인 구조에서 가장 큰 해결의 열쇠는 기업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케이팝 팬들이 케이팝을 오래오래 지속가능하게 즐길 수 있도록 기후 문제를 해결하고자 활동을 시작했다. 케이팝 팬이 아니더라도 기후행동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캠페인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참여하길 바란다. 캠페인에 서명을 하는 것만으로 기업에게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퍼스 바자 팬덤과 산업도 변화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새롭게 주시하는 환경 문제가 있는지.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의 활동 초반에는 주로 케이팝 산업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진행했지만 최근에는 다른 산업에도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면 BTS와 협업한 현대차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알루미늄 대신 깨끗한 재생에너지로 만든 알루미늄을 사용해 그린워싱을 하지 않도록 요구한 현대차 캠페인이 있다. 또 케이팝 아이돌과 협업하는 명품 패션 브랜드가 공급망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다.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박의령
  • 사진/ 김래영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