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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세실리아 알레마니 인터뷰

베니스의 추억 세실리아 알레마니

프로필 by 손안나 2023.09.27
 
Photo: Andrea Avezzù, © Archivio Storico della Biennale di Venezia-ASAC

Photo: Andrea Avezzù, © Archivio Storico della Biennale di Venezia-ASAC

뉴욕 하이라인의 예술감독 겸 수석 큐레이터 세실리아 알레마니는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를 이끌었다. 참여 작가진을 90%의 여성과 젠더 비순응 성향으로 꾸린 것, 5m에 달하는 <브릭 하우스(Brick House)>를 위시한 모뉴멘탈 조각을 적극적으로 선보인 것, ‘마녀의 요람’이라 명명한 섹션을 통해 동시대 바깥의 여성 예술가를 소개한 것. 모두 총감독인 그녀의 경험과 통찰에서 비롯한 역사적 결정이었다. 그 결과는? 사람들은 베니스비엔날레 1백27년 역사상 여성 작가가 남성 작가보다 많은 적이 처음이란 사실에 놀랐고, 그사이 시몬 리(Simone Leigh)는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으며, 마야 데렌(Maya Deren), 이다 카르(Ida Kar), 조지아나 하우튼(Georgiana Houghton)까지 역사 속 잊힌 여성 예술가의 흔적 위로 플래시가 터졌다.
혹자는 아트페어의 활약으로 비엔날레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베니스비엔날레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이며 동시대 예술에서 가장 현대적인 경향을 제시하는 장이다. 그녀의 성취는 베니스비엔날레라는 무거운 성배를 들고서 선언적인 구호나 다큐멘터리 언어를 배제하고 꿈과 무의식과 상상력에 기반한 대안적 우주를 보였다는 데 있다. 그것은 세상에 등을 돌리는 방식의 도피나 회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명징하게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될 뿐.
 
Photo: Thomas Adank. © A Practice for Everyday Life

Photo: Thomas Adank. © A Practice for Everyday Life

지난해 열린 59회 베니스비엔날레를 추억하면, 바포레토 정거장에서 출렁거리던 ‘눈(eye)’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물결처럼 출렁이는 ‘The Milk of Dreams’ 네 단어가 세기를 아우르는 지난 비엔날레의 타임라인을 형상화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죠. 베니스의 추억을 상기하기 위해 도록을 뒤적이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디자인 스튜디오 APFEL(A Practice for Everyday Life)와 협업한 ‘꿈의 우유’의 아이덴티티는 어떤 과정을 통해 시각화되었나요? 
APFEL은 ‘꿈의 우유’의 정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픽의 정체성이 과거에 그래 왔던 것처럼 중립적이거나 포괄적인 것이 아닌 실제 예술작품에 무게를 두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많은 작품을 함께 관람했고 관객의 시선을 모으기 위한 방법으로, 전시에 나타난 몇 개의 눈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기타 줄 혹은 감옥의 창살 같아 보이는 무언가 뒤에 존재하는 세실리아 비쿠냐와 그녀 어머니의 눈을 마주할 수 있게 된 거죠. 벨키스 아욘과 펠리페 바에자의 눈 역시 그렇게 콜라주되었고, 이케다 타츠오의 흐릿한 전구들이 뒤따라 왔습니다. 저는 ‘눈’이라는 일종의 열린 창문들이 ‘꿈의 우유’의 정신을 품은 채 도시 곳곳을 관통하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어요.  
베니스비엔날레 1백27년 역사상 여성 작가가 남성 작가보다 많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죠. 본전시에 참가한 58개국 2백13명의 작가 중에 여성이 1백88명이었습니다. 거의 철저하게 여성과 젠더 비순응 작가 중심이었고 작가 선정에 있어서 이토록 강경한 탈-남성-중심주의적 결정은 애초에 의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 궁금합니다. 
그것은 결코 반남성적인 접근에서 나온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이 점이 이 전시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흔히 오해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차별과 성적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런 양극화되고 이원화된 관점을 포기하는 게 나을 겁니다. 저는 우리가 남성 예술가의 대응점으로서가 아닌, 단지 그들 자신이 훌륭한 예술가이기에 전시를 채워갈 많은 여성 예술가들을 곧 만나게 될 거라 믿습니다. 
저에겐 ‘마녀의 요람(The Witch's Cradle)’ 섹션이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마야 데렌이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뒤샹과 함께 만들었다는 오컬트 영화를 감상했고, 심령술을 통해 초자연적 힘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조지아나 하우튼의 드로잉도 허겁지겁 구경했습니다. 이다 카르가 찍은 여성의 손바닥을 보고 정신의 전이를 경험했고요. 이 아이디어는 2020년 중앙 파빌리온에서 열린 비엔날레 아카이브 전시인 «불안한 뮤즈»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미술 부문 디렉터였죠. 괴짜 아마추어 예술가의 신묘한 그림 정도로 치부되던 작품들을 ‘마녀의 요람’으로 명명하고 다섯 개의 캡슐로 나누어 소개한 근본적인 의도가 무엇이었나요? 
캡슐 전시는 비엔날레 바깥 세대의 작가들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비엔날레는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아가 과거의 렌즈를 통해 현대적인 것을 읽어내려는 시도였죠. 저는 이 다섯 개의 캡슐을 다른 세대의 예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련의 운율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소외되어 왔지만, 그들은 동시대 작가들이 주목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일찍이 이야기를 펼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예술가 그룹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역사를 재해석하고자 했어요. 다섯 개의 캡슐은 각각의 온도와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을 목표로, 다른 영감을 품고 디자인되었습니다. 
 
Simone Leigh, <Cupboard>, 2022, Bronze, 225x216x114cm. Photo: Roberto Marossi, © La Biennale di Venezia

Simone Leigh, <Cupboard>, 2022, Bronze, 225x216x114cm. Photo: Roberto Marossi, © La Biennale di Venezia

당신은 ‘꿈의 우유’에 조지아나 하우튼을 소개했고 당신의 남편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를 선보였죠. 잊혀져간 여성 예술가들을 복원하고 그들의 위대한 유산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왜냐하면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 안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던 예술가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힐마 아프 클린트와 조지아나 하우튼은 신지학적 신념을 기반으로 작업했는데 이들을 현대미술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살아있다면 자신들이 오늘날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소비되는 걸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문득 궁금할 때가 있어요. 
예술가는 그들 작품이 오늘날의 선입견과 불안과 더불어 반향을 불러일으킬 때 비로소 현대적이 되는 것이니, 네, 그 두 분을 현대미술가로 정의할 수 있겠네요.
뉴욕 하이라인 아트 디렉터로 일해온 경험이 ‘꿈의 우유’에서 기념비적 조각작품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나요? 
하이라인 같은 매우 독특한 공공 공간에서 일한 경험은 확실히 전시를 꾸리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르세날레는 하이라인의 긴 선형적 공간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하이라인이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반면, 아르세날레는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기둥으로 끝없이 이어지지만요. 가장 큰 차이점은 베니스에서는 머리를 덮는 지붕이 있었다는 거죠.
 
Georgiana Houghton, <The Flower of William Stringer>, 1866, Watercolour on paper and ink on mount board, recto and verso, 49x42cm. Photo: Marco Cappelletti © La Biennale di Venezia

Georgiana Houghton, <The Flower of William Stringer>, 1866, Watercolour on paper and ink on mount board, recto and verso, 49x42cm. Photo: Marco Cappelletti © La Biennale di Venezia

이번 전시를 통해 시몬 리가 커다란 주목을 받은 것은 당신에게도 남다른 의미일 것 같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시몬은 지금 그 자질에 합당한 관심을 받고 있지만,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 여러 해 전부터 열심히 작업해온 훌륭한 예술가입니다. 몇 주간의 지연과 불확실성을 끝으로 개막 이틀 전, <브릭 하우스>가 마침내 아르세날레에 도착했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기나긴 항해를 마치고 배에서 내린 작품을 전시 공간으로 밀어 넣고서 포장을 풀던 순간은 정말이지 감동적이었어요.
‘꿈의 우유’는 20세기 초현실주의 작가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이 자신의 두 아들을 위해 쓴 동화책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전시의 이면에 영향을 끼친 또 다른 문학적 텍스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가 있습니다. 레오노라 캐링턴의 다른 장단편 소설도 그렇죠. 저는 예술가들이 쓰는 글에 매료되는 편입니다.
 
손안나는 <바자>의 피처 디렉터다. 내년에 열릴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Foreigners Everywhere’를 기대하며 이 주제의 모티프가 된 예술가 그룹 클레어 폰타인을 팔로하기 시작했다. 작년만큼 파격적일 것 같다.

Credit

  • 글/ 손안나
  • 사진/ ⓒ La Biennale Di Venezia
  • 사진/ he Practice of Everyday Life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