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 성공을 맛본 이후 결정적 순간을 앞둔 프리즈 서울 디렉터 패트릭 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고 말했다.
프리즈 서울 제1회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 우한나의 수상작 〈The Great Ballroo〉. 신작 시리즈 〈Milk and Honey〉(2023)의 연장선상에 있는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프리즈 서울 기간 코엑스 천장에 설치될 예정이다.
떨릴까? 자신만만할까? 뻔할지 몰라도 두 번째 프리즈 서울을 앞두고 당신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나 역시 프리즈 서울의 첫 해는 가능성으로 평가받아 어느 정도 가점이 있었던 걸 알고 있다. 한국의 음악, 영화, 음식, 패션 모든 게 너무 탄탄하다는 반응이 많았고, 그 덕에 아트 신도 더욱 부각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년이 모두에게 “프리즈라는 아트페어가 이런 행사다” 하고 보여주는 해였다면, 올해는 “프리즈 서울은 국제 아트 캘린더에 추가해야 할 페어다”라고 느낄 거다.
개인적으로 프리즈 서울이 많은 한국인에게 모종의 자부심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인이 이 도시에 열광하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었으니.
가장 자부심을 느꼈던 점은 프리즈가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들 한국 미술계를 ‘뉴 월드’라 여겼지만 그게 아니란 걸 증명한 거다. 한국 미술은 오랜 시간 발전해왔는데, 이제서야 발굴되었을 뿐이다. 프리즈를 통해 한국 예술가들이 세계와 연결될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트 월드의 누구를 만나든 “거기 무슨 일 일어나고 있어?” 하고 먼저 한국을 주시한다. 일례로 현재 MMCA와 협업으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한국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실시간으로 한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을 큐레이터들의 맥락화 작업을 통해 주목받는 게 무척 기쁘다. 또, 양혜규 다음으로 이미래 같은 다음 세대 작가가 베니스 비엔날레나 뉴뮤지엄 등에서 떠오르며 국제적인 작가의 길을 걷는 것도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프리즈 위크 동안 열리는 이벤트가 대거 늘어났다.
작년에는 “프리즈가 뭔데?” 묻던 이들이 이젠 다 호의적이다. 올해 갤러리와 미술관 관계자들을 수없이 만났다. 협업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면 늘 열려있었고, 이는 더 많은 이벤트를 열게 된 이유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준비했다. 우선 두 명의 젊은 큐레이터를 통해 프리즈 필름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 큐레이터들과의 토크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만들고 싶었고, 한남 나이트와 삼청 나이트에 이어 올해 청담 나이트를 추가해 서울이라는 세련된 도시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려고 했다. 페어에 온 이들이 머무는 시간 동안 서울을 최대한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비단 우리가 주관한 행사뿐 아니라 갤러리와 기관들이 맞춰 여는 전시는 또 얼마나 놀라운지! 오늘 아침에도 일민미술관에서 프리즈 기간 동안 열릴 전시 얘기를 듣고 왔는데, 기대해도 좋을 거다.
페어장 내부의 메인 섹션과 프리즈 마스터스, 포커스 아시아 프로그램 중 특히 눈여겨봐야 할 점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이성자 작가처럼 한국 미술사에서 기억해야 할 여성 작가를 다루는 점도 반갑다.
작년에 사람들이 가장 붐볐던 곳이 프리즈 마스터스인데, 올해는 갤러리 수가 2개 늘어났고 작품의 퀄리티가 더 좋다. 피카소, 에곤 실레 등 유럽 작가의 마스터피스들이 눈길을 끌었다면 올해는 중국 고미술 컬렉션도 볼 수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섹션은 ‘포커스 아시아’다. 2011년 이후 설립된 신생 갤러리를 지지하고 싶은 바람이 담긴 프로그램이고, 프리즈 같은 메이저 페어에서 선보일 기회가 적은 갤러리들을 주목하고자 했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을 이끈 장혜정 큐레이터와 더불어 올해 마닐라를 베이스로 한 조셀리나 크루즈(Joselina Cruz)를 영입했다. 그녀는 57회 베니스 비엔날레 필리핀 전시관을 맡았고, 아시아 미술계에 정말 영리한 시각을 갖고 있는 큐레이터다. 솔로 부스를 선보이는 10인의 작가 중 단 한 명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상반기 아트 바젤 홍콩은 물론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서 수많은 오프라인 아트페어가 열렸다. 방문해보니 어떤 차이가 있던가?
싱가포르, 홍콩, 도쿄를 방문했는데 아트 바젤 홍콩에서는 모두가 반가워하며 행복해했고, 아트 싱가포르는 상대적으로 동남아시아 미술계의 특성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도쿄 겐다이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로컬 페어라 프리즈 서울과 다르지만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아시아는 무척 큰 지역이고, 사실 경쟁을 언급하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1백20개의 갤러리가 참여하는 프리즈 서울보다 아트 바젤 홍콩과 상하이 웨스트 번드 같은 페어는 두 배에 달하는 훨씬 큰 규모의 페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다양한 규모의 수많은 페어가 도시마다 열리는데, 우리끼리 경쟁하기보다 각 페어의 매력을 더 많은 이들이 경험하길 바란다.
과거 영 컬렉터들은 떠오르는 신진 작가의 신작을 몇 년씩 기다리면서 구매하고, 기성 컬렉터들은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모으는 컬렉팅 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최근에는 어떤 갤러리를 가든 다양한 세대의 컬렉터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연령대가 있는 한국 컬렉터들은 몇몇 한국 갤러리에서만 작품을 구입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기성 세대도 작품을 사기 위해 여행을 가고, 갤러리와 페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젊은 컬렉터들은 작가와 더 많이 상호작용하길 원하고, 이벤트에 참석하기를 좋아한다. 프리즈가 ‘프리즈91’라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출범한 이유 또한 스튜디오에 방문하거나 수준 높은 갤러리 토크를 개최하면서 개방적인 컬렉팅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당신은 미국에서 자라고 한국 미술계에서 갤러리스트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이런 배경이 어떤 도움을 주었나? 흔히 갤러리스트는 대중에게 까다롭거나 고고한이미지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직접 만나보니 꽤 소탈한 인상이다. 미술계에서 일할 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우선 나는 한국인처럼 열심히 일하는 게, 잘 맞는다(웃음). 미국인의 개인적인 태도와 한국인의 친밀한 관계를 오가는 것이 다양한 오디언스 앞에서 소통할 때 큰 도움이 된다. 편한 세팅을 맞출 수 있거든. 어떤 때는 아주 미국적인 태도로, 때로는 한국적인 태도로 타인을 대하게 되는데 내 태도에 진정성만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업인으로서 가장 중시하는 태도는 늘 관대하고 존중을 잃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누가 날 싫어하든 개의치 않는다. 모두를 기쁘게 할 순 없으니까. 아트월드에선 더욱이!
15년간 당신을 이 세계에서 일하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항상 놀라운 작가를 만날 수 있고 늘 새로운 문화에 노출되어 있는, 이 복잡미묘한 지점들을 사랑한다.
수많은 아트페어에 참여했는데, 아트 페어를 즐길 수 있는 당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준다면?
내리는 순간부터 잠잘 시간을 줄여서라도 그 도시를 탐험할 것! 페어장 바깥의 장소를 최대한 많이 방문하려고 발품을 판다. 저녁에 참여할 수 있는 모임도 빠짐없이 간다. 사실 내 나이쯤 되면 클럽 파티에 갈 기회가 줄어드는데 페어의 파티는 소중하다. (웃음)
프리즈 서울이라는 한국 미술 역사상 중요한 순간을 이끌고 있는 일원으로서, 당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그 질문은 좋은 페어의 역할이 무엇이냐로 갈음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세일즈 성과를 거두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진정 바라는 건 놀라운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아트페어라는 현장은 갤러리와 컬렉터가 작품을 사고 파는 곳만이 아니다. 관람객, 프레스, 비평가, 매거진, 큐레이터와 미술 기관 담당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들이 이제껏 발화되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순간이 발생하는 장소다. 그런 대화를 잘 이끌어내는 페어가 진짜 사람들이 가고 싶은 페어이고, 우리의 도전 과제다.
※ 제2회 프리즈 서울은 2023년 9월 6일부터 9월 9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