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가객 최백호의 첫 에세이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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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가객 최백호의 첫 에세이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잃어버린 줄로 알았던 시간이 도리어 얻기 위해 견뎌낸 시간이었음을.

BAZAAR BY BAZAAR 2023.04.10
 
인터뷰가 끝나면 라디오 〈최백호의 낭만시대〉 생방송을 가실 예정이죠?
새벽 3~4시쯤 자는 편이라, 밤 10시 일정이 잘 맞아요. 하루를 정돈하고 마무리하는 기분이죠. 라디오를 하면서 생활이 정리됐어요. 주기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책도 낼 수 있었죠.
시간을 정해두고 글을 쓰시는 편인가요?
여의도에 조그마한 작업실이 있는데, 가운데에 캔버스가 있고 그 맞은편에 피아노와 기타가 놓여있어요. 마음 가는 대로 그림 그리고 몸을 돌려 앉아 곡을 쓰다가, 그 옆 테이블에서 그날그날 좋은 생각이 들면 글을 쓰죠. 매일 아침 출근하듯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 라디오를 가요.
자유분방한 영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네요.
이 생활을 유지한 지 15년이 넘었어요. 원래는 그 시간에 술을 마셨죠. 이제는 끊었고요.
첫 에세이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는 마치 인간 최백호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만화책과 노래같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잔뜩 이야기하다가, 우리 사회의 학력지상주의와 음악계의 표절 등에 대해 직언하기도 하죠.
오랜 기간 써온 글을 모았어요. 전에도 출간 제안을 받은 적 있지만, 부족하더라도 제가 쓴 글을 솔직하게, 그대로 낼 수 있는지가 중요했어요. 누군가 내용에 손대면 하지 않겠다고 마다했어요. 시인이신 마음의숲 출판사 대표님이 ‘무슨 마음인지 알겠다’ 하고 이해해주었죠. 
많은 후배들이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활발하게 작업을 이어가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요. 음반 작업은 물론 회화, 글까지 성실하게 작업하시니까요.
성실하다는 말과 제 삶은 어울리지 않아요. 매니저가 없기 때문에, 제 일정을 컨트롤할 수 있거든요. 스스로 ‘삶을 바꿔보자’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고, 자연스레 바빠졌어요. 40대에 낸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여전히 사랑해주시는데, 그 덕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오히려 젊은 시절 방황을 많이 했고, 딸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매일 5~6개의 클럽을 돌며 노래해야 했어요. 이제는 욕심내지 않고, 제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됐어요.
책을 통해 지난 세월을 성찰하면서 나이 듦이 기대되는 일이라고 말하셨죠.
나이 든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많이 알게 되고, 그만큼 얻게 돼요. 겪어보니 60대도 좋았지만, 70대인 지금 훨씬 좋아요. 60대는 삶에 대한 결론이 안 나와요.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게 힘들기도 하고, 죽음은 아직 먼 일 같죠. 하지만 70대가 되면 모든 게 선명해져요. 내 삶이 얼마나 남았을지 가늠해볼 수 있어요. 그러면 삶을 속이지 않고 직시하게 되죠. 과거에는 지난 일들이 후회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되돌아보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결국 잃어버린 게 아니더라, 책을 통해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후배 가수들과 자주 협업해오셨죠. 지난 연말 발표한 〈찰나〉라는 앨범은 지코, 콜드, 타이거JK 등 다양한 피처링으로 주목받았어요.
후배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동료라고 생각해요. 만나면 새로운 얘기를 들으니까 얻을 게 많아요. 내가 모르던, 내가 살아온 기억과 다른 세계를 사니까요. 기타리스트 박주원 씨와는 10여 년 전 작업을 같이 한 뒤로 종종 만나요. 제가 기타에 기초 지식이 없기 때문에 끝없이 질문하고, 그 친구가 잘 가르쳐주죠. 구박을 받기도 하지만.(웃음)
“책을 읽으면 머리카락 몇 올이 돋아나는 것 같아. 아주 큰 무엇은 아니고 딱 그만큼만. 아주 작은 그만큼만. 그래도 옷에 묻은 흙을 털고 신발 끈을 조여매는 힘은 생기지.” 〈찰나〉의 수록곡 중 ‘책’이라는 곡의 가사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직접 작사한 시적인 가사로도 사랑받아왔는데, 제일 마음에 드는 곡의 구절은 무엇인가요?
그 가사는 누님이 던져주신 구절이에요. 글을 잘 쓰세요. 우스갯소리지만 스스로도 ‘잘 썼다’ 생각하는 곡은 ‘낭만에 대하여’죠.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첫 소절을 쓰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레 살이 붙었어요.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라는 가사가 그 시절 다방에 가서 시시한 얘기나 던지는 남자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 같아요.
다방, 도라지 위스키, 뱃고동 소리…. 사실 그 곡은 30대 여성인 제가 깊이 공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곡이거든요.
동의해요.(웃음) 청춘을 지난, 스스로 나이가 들어간다고 느끼는 남자들이 많이 공감하죠.
앞서 후배들에 대해 겸손하게 말하셨지만 과거 ‘뮤지스땅스’라는, 인디 밴드를 지원하는 공간의 수장을 맡을 만큼 애정이 남다르시죠.
문화체육관광부가 인디 밴드를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 중인데 해보겠냐고 제안해서 하게 됐어요. 의미 있는 일이었죠. ‘뮤직’과 ‘레지스탕스’를 조합해 이름을 내걸고 연습실, 레코딩 스튜디오, 공연장을 만들었어요. 무소속 프로젝트라고, 소속이 없는 친구들을 모아 공연도 올리고 밴드를 끌어 모으는 역할을 열심히 했어요. 정책이 바뀌면서 잡음이 생겨 그만두게 되었지만.
음악 이외에 좋아하는 것들을 얘기해볼까요. 책과 인터뷰에서 ‘인생 만화’로 꼽은 나가노 마모루의 〈파이브 스타 스토리〉를 찾아봤는데, 로봇 이야기더라고요.
단순히 로봇 이야기가 아니에요. 스케일이 엄청나요. 시공간을 넘어서면서 몇 만 년을 오가죠. 1987년에 연재되기 시작했는데 지금 16권이 나왔어요. 작가도 자신이 넓혀놓은 세계관을 감당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웃음) 도쿄의 패션과 음식을 소개해 소소한 재미도 있어요. 한번은 만화책방에 갔는데 우연히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팬클럽이 모여 상당히 진지하게 토론하는 걸 재미있게 듣기도 했어요. 간혹 지나가다 팬들이 저를 알아보고 “16권 나왔어요” 이런 식으로 정보를 주기도 해요.
덕후들의 정모 현장에 참석하신 거네요. 축구, 만화, 독서까지 ‘덕질’에 뛰어나신 것 같아요.
한 작가에 관심이 생기면 그 작가의 작품을 다 찾아보려고 해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부터 읽었는데, 〈기사단장 죽이기〉 즈음 갈수록 재미가 없어져 그만뒀죠. 기형도 시인의 전집은 곁에 두고 자주 봐요. 시인을 뒤늦게 접하게 되어 2년 전 처음 시집을 사봤는데 시들이 외롭고, 쓸쓸하고, 달콤해요. 아주 새로운 단어, 순수하고 싱싱한 단어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만화는 워낙 좋아해 웹툰도 챙겨 봐요. 〈호랑이 형님〉은 쿠키를 구매해 읽다가 요즘은 일주일씩 기다리며 읽어요.
선생님께서 ‘소년미’를 잃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그 풍부한 감수성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부터 예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어요.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고, 누님 둘, 교사였던 어머니와 사택에 살았죠. 내 집이 아니니 항상 불안했고 머릿속에 걱정이 많았어요. 지금도 한없이 생각으로 가득 차요. 눈앞에 컵이 하나 보이면, ‘컵이구나’ 하고 생각을 멈춰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둘까 생각하며 끊임없이 잔 생각을 이어가요. 글을 쓰거나 노래할 땐 긍정적인 면도 있죠.  
그렇게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호기심과도 연관될 것 같아요.
아마도. 전기차도 궁금해서 국내에 테슬라가 출시되자마자 사서 타고 다니고 있거든요. 배철수 씨가 저보고 생각을 어떻게 실행에 그렇게 잘 옮길 수 있냐고 말하기도 했는데, 궁금한 건 그냥 저질러보는 편이에요.
과거 일화 중 선생님의 음색과 발성에 대해 평가하는 이들을 두고 “그 정도면 칭찬 아닌가” 하고 여기며, 타인의 기준에 초연한 점이 인상 깊었어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애초에 열등감이 없었어요. 어릴 적부터 항상 1등, 2등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둘이 싸우는 걸 보면 재밌으니까, 난 그냥 3등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되겠다 싶었죠. 다만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제 스스로 부족함을 자각할 때가 많아요. 요즘 미술학원을 다니며 데생을 배우고 있어요. 원뿔은 끝냈고, 곧 아그리파 석고상을 그리지 않을까 싶어요.
어릴 적부터 미술 교사가 되길 꿈꾸다가 환갑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죠. 미술계도 말이 많은 분야인데 거기서도 선생님은 초연하시겠어요.
그림을 그릴 땐 마음이 평온해요.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리는 거긴 한데 정식 화가들에게 미안하긴 해요. 가수가 그린다고 해서 특별한 혜택을 받고 있으니까. 그래서 못지않은 공부를 하고 있어요. 계속하다 보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어린 시절, 집 앞 풍경의 나무를 주로 그렸는데 이제 벗어나려고 해요.
창작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매일 감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루 중 하나라도 감동할 대상을 찾아야 해요.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할 일이 없으면 가만히 풀이라도 들여다봐라, 그것도 안 되면 당장 음악이나 영화를 틀어라”라고 강조하죠. 감동 없는 삶은 의미가 없어요.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는 삶처럼 보이시지만, 그래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언젠가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벌써 시나리오는 써놨죠. 그래도 하나만 꼽으라면 대답은 항상 같아요. 축구감독! 젊은 시절부터 연예인 축구팀에 속하며 얻은 저만의 노하우가 있거든요. 다들 비법을 알려달라고 하는데, “공이 사람보다 빠르다”는 사실만 알면 돼요. 그걸 인정하고 예측해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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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안서경
    사진/ 하태민
    헤어&메이크업/ 장하준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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