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이 정원으로 변신! 서울가드닝클럽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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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이 정원으로 변신! 서울가드닝클럽

서울의 옥상을 점유하는 서울가드닝클럽은 ‘1인 1정원’을 가꾸는 삶을 제안한다.

BAZAAR BY BAZAAR 2023.04.05
 
오래된 주거 단지가 자리한 성동구 송정동의 조용한 골목 사이, 한 건물 안에 제각기 다른 개성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유기농 식재료점과 비건 제품을 파는 편집숍, 쿠킹 스튜디오까지. ‘1유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올해 1월부터 건축가 그룹 ‘오래된미래공간연구소’의 기획 하에 시작된 도시 공생 프로젝트다. 3년여간 지속가능한 가치를 추구하는 브랜드들이 이 공간을 꾸려갈 계획이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초봄을 맞아 식재를 기다리는 식물들이 줄 서있다. ‘그린라이프플랫폼’을 표방하는 서울가드닝클럽의 아지트다. 서울가드닝클럽의 이가영 대표를 만나, 정원이 있는 삶을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펼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송정동 코끼리빌라의 맨 꼭대기층에 자리한 서울가드닝클럽의 공유정원.

송정동 코끼리빌라의 맨 꼭대기층에 자리한 서울가드닝클럽의 공유정원.

 
서울과 가드닝, 그리고 클럽. 직관적인 이름의 플랫폼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광고업계에서 일하며 공간 관련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점점 관심사가 도시와 식물로 나아갔다. “에어비앤비처럼 정원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퇴사 후 환경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작업실 옥상에서 식물을 기르다가 이 생각이 떠올랐고, ‘공유정원’을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SNS에 꾸준히 업로드하며 함께 키울 멤버를 모집한다고 글을 올리자, 신기하게 모르는 사람만 15명이 모였다. 심지어 유료였는데도. 이렇게 각종 허브와 야생화를 소개한 것이 서울가드닝클럽의 시작이었다. 현재는 조경 전문가, 가드너, 브랜드 마케터 등 직원들과 함께 크게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 멤버십을 운영하며 이곳 1유로프로젝트와 상도동 핸드픽트호텔 옥상에 공유정원을 운영하고, 기업이나 학교 등의 공간에 단지 조경디자인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정원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을 컨설팅한다. 때때로 자연과 관련된 업을 이어가는 전문가들을 모아 ‘그린 칼라(Green Collar)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컨퍼런스도 열고 있다.
서울가드닝클럽의 멤버가 되면 어떤 활동을 하나?
번호가 쓰인 포트를 하나씩 배정받고 3개월 동안 식물을 키우는 법을 배우게 된다. 꽃나무를 분갈이하는 법부터 로메인, 타임, 핑크세이지 같은 허브를 심고 수확하기까지. 이따금 이곳에서 수확한 허브로 아래층 쿠킹 스튜디오에서 클래스를 열기도 하고, 옥상에서 다 같이 요가를 하는 프로그램도 열 계획이다. 또한 ‘컴패니언 플랜팅’에 대해서도 연구하는데, 한 포트 안에 서로 생장에 상호보완적인 식물을 함께 심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토마토와 바질을 같이 심으면 따로 약을 쓰지 않고도 둘 다 맛이 좋아지고 잘 자란다. 무와 시금치를 가까이 심으면, 시금치에 꼬이는 벌레가 쓸모없는 무잎을 먹는 식이다. 화학 약품을 쓰지 않고도, 자연과 가까운 농법으로 작물을 키울 수 있는 과학적인 개념이다.
정원을 가꾸는 건 많은 노동이 드는 일인데, 멤버들은 어떤 반응인지 궁금하다.
조그마한 공간도 자기 소유가 되면 지나갈 때마다 들여다보게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가드닝 클래스를 열면 사람들이 원데이 클래스를 선호했는데, 요즘에는 3개월이 지나도 더 깊이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관점에서 가드닝을 바라볼 때 과거에는 ‘스타일’에 방점이 찍힌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라이프’에 집중하는 느낌이랄까. ‘삶에 필요한 요소이고, 직접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느끼며 평생 취미로 배우겠다는 이들이 늘어났다. 연령층도 동물권을 공부하는 20대, 제2의 직업을 찾기 위한 30대, 소유한 땅을 제대로 가꾸고 싶어하는 40~50대까지 다양하다.
 
멤버들의 가드닝 도구. 물망초 꽃을 심고 있는 이가영 대표의 손. 겨우내 바싹 마른 잎을 잘라주면 푸릇한 새순이 돋아난다.멤버들이 무스카리, 잉글리시 라벤더 등 봄꽃을 틔운 식물을 옮겨 심을 준비를 하고 있다.
 
흔히 가드닝을 두고 ‘출구 없는 취미’ 라고 말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식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보니,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아이가 한국의 실내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수십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 어떤 환경에 놓이냐에 따라 적응 과정과 성장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도 식물의 생장에 대해 다 안다고 단언할 수 없다.
서울은 주거 형태 가운데 특히 주택이 부족하기에 정원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이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나?
서울에 아파트, 오피스텔, 다세대 주택 등 공동 주거가 발달한 이유는 모든 공간이 공급자 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거주자들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거리가 먼, 만족스럽지 않은 주거 환경이어도 ‘참다 보면 값이 오를 거야’ 하면서 문제의식 없이 살아간다. 하지만 삶에 더 많은 녹지가 필요하다는 걸 몸소 경험해보면, 조그마한 파장이 생긴다. 그 파장이 지속되면 공급자에게 닿을 것이고, 결국 다른 형태의 주거 환경을 요구하는 흐름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그린 디벨롭먼트’의 개념인 걸까?
자연을 중심에 두고 도시를 개발하는 일, 이는 결국 건물주가 방치된 건물의 가치를 올리는 데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도시 전체의 가치를 바꾼다는 것이 ‘그린 디벨롭먼트’의 지향점이다. 1백 살까지 사는 시대에 한 가지 형태의 주거 환경에 사는 일은 너무 단조롭지 않을까? 우리가 나이 들고 나면, 지금과 다른 니즈가 도시 계획에 반영되길 상상하며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멤버 중 한 명은 가드닝에 빠져 얼마 전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고, 나 역시 서울 근교의 주택으로 이사해 정원을 가꾸고 있다. 또 이 공간을 오픈한 뒤 공유 오피스나 주거 브랜드, 스타트업에서 협업 제안이 이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일일이 건물주분들을 찾아다니며 공유정원에 대해 설명한 적도 있지만 크게 공감을 얻진 못했는데, 이제 사람들이 이 가치에 더 관심을 갖게 됐구나 체감하고 있다.
공유정원 이외에도 학교와 은행 등 다양한 공간의 조경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하고 잘할 수 있는 건 통합적인 플래닝이다. 그래서 식재 종류를 정할 때,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까지 고민한다. 얼마 전 경남 진주의 봉원중학교에 생태 교육 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다. 학생 수가 줄어 학교에 빈 공간이 많이 생기다 보니, 운동장과 중정은 물론 교실을 식물을 위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맡았다. 모든 아이들과 선생님을 인터뷰해 식물 관리는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지, 아이들이 식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묻고 그 결과를 반영해 건축가와 함께 디자인했다. 또, 이전에 학교 한편에 자리한 텃밭에는 선생님의 기호대로 식물이 심겨 있었는데, 그곳에 바질이나 당근을 심어 아이들이 피자를 만드는 클래스를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는 식으로 방법을 제안했다. 우리가 진주에 내려가 공간을 관리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역에서 식물 관련 교육을 할 수 있는 활동가들을 모집해 이 프로젝트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
 
 왼쪽부터 김현아 가드너, 이가영 대표, 양재호 브랜딩 전문가, 권오은 조경가.

왼쪽부터 김현아 가드너, 이가영 대표, 양재호 브랜딩 전문가, 권오은 조경가.

 
도시 전문 미디어 ‘요즘 도시’를 선보이며 두 권의 매거진을 냈다.
해마다 1권, 매년 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해까지 두 권을 냈다. 첫 번째 주제는 팬데믹 기간 동안 달라진 도시 환경을 담은 ‘뉴노멀 시티’, 두 번째는 앞으로 살아갈 다음 세대를 위한 ‘넥스트 제너레이션 시티’. 저희가 기획하고 서울대학교 산학협력프로젝트로 일부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도시의 변화를 주도하는 체인지 메이커들을 소개해왔다. 세 번째 책의 주제는 ‘스몰 시티’로 정했다. 팬데믹 이후 사람들이 집에서 15분거리 안팎, 동네 생활권을 도시의 범주로 여기는 현상을 담을 예정이다. 노키즈존 대신 아이들을 환영하는 사례처럼 ‘스몰’이라는 관점을 다층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아직 기획만 해두고 진행을 못하고 있다. (웃음)
당신의 사적 정원은 어떤 모습인가?
집 앞에 아주 작은 숲을 만들고자 했다. 진달래, 산딸기나무처럼 작은 키의 관목을 좋아해 심었는데, 이 나무들은 오랜 시간 천천히 자라기에 차분히 성장 과정을 지켜보기 좋다. 수선화, 무스카리처럼 봄에 꽃이 피는 구근 식물도 심고 싶은데, 반려견을 기르게 되어서 올해는 심기 어려울 것 같다. 개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정원을 연구 중이다.
오늘은 멤버들과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갈대, 산억새 등 한겨울에 잎이 얼어붙고 말라버린 식물들의 잎을 잘랐다. 초봄에 마른 잎을 잘라줘야 머지않아 새순이 푸릇하게 올라온다. 또, 촬영 날이 마침 국제 여성의 날이기에 곧 크루들과 기념하려고 한다. 빵과 참정권을 뜻하는 꽃 대신, 라넌큘러스를 화분에 심어 나눠주려고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정원은 식물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를 이어줄 수 있고, 식물 곁에서 운동을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등 다양한 활동의 기반이 된다. 도시인들에게 필요한 형태의 공간이라 생각한다. 모두 작지만 자신만의 정원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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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안서경
    사진/ 신동훈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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