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탈출한 란제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밖으로 탈출한 란제리

긍정주의의 물결은 ‘가볍고 단순하게’를 지나 ‘섹시하게’를 외치며 란제리 룩에 안착했다.

BAZAAR BY BAZAAR 2023.03.03
 (왼쪽부터) Bottega Veneta,Christopher Kane,Burberry,N°21,Prada,Versace,Ferragamo

(왼쪽부터) Bottega Veneta,Christopher Kane,Burberry,N°21,Prada,Versace,Ferragamo

 
인간은 항상 가지지 못한 걸 갈망하는 존재라고 했던가. 임신 7개월 차, 점점 커져가는 ‘D라인 소유자’로서 이번 시즌 런웨이를 휩쓴 갖가지 란제리 룩을 살펴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흥분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지난 9월, 2023 S/S 밀라노패션위크 현장에서 직접 목도한 란제리 행렬, 특히 N°21의 컬렉션은 반드시 도전해보리라 위시 리스트에도 넣지 않았던가. 끝까지 올리다 만 펜슬 스커트의 지퍼와 비대칭으로 엮은 셔츠 단추, 다 풀어 헤친 시어한 소재 사이로 새틴 브라와 브리프를 슬쩍 노출했는데 어찌나 야릇하고 세련돼 보이던지!
오랜만에 란제리 열풍이 불어닥친 건, 정확히 1년 전. 2022년 2월 US 〈바자〉에 게재된 노출에 관해 논한 ‘The Body Politic’ 칼럼은 란제리의 등장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 이야기한다. “팬데믹은 우리의 삶을 급격하게 바꿔놓았다.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두려움 탓에 우리는 스웨트수트와 마스크 속에 꽁꽁 숨어 살았다. 이제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패션 역사가들 역시 란제리의 등장이 팬데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1920년대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1918년 세계 전역을 휩쓸었던 스페인독감 이후 사람들은 무겁고 숨 쉬기 어려운 패션 대신 가볍고 헐렁한 옷을 찾기 시작했죠. 란제리 룩은 코비드에서 벗어나는 무의식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에이나브 라비노비치-폭스(Einav Rabinovitch-Fox)의 말이다. 격동의 시기, 답답한 몸과 마음을 해방해줄 돌파구로서 란제리의 등장은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더 설득력 있다고 말한다. “과감한 옷은 사회적 소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죠. 여성의 권리(특히 신체에 대한 기본적이고 개인적인 결정)가 점점 심각한 위협에 처해있는 전 세계 분위기를 통렬하게 공감한 디자이너들의 반발적인 움직임입니다.” 한 패션 평론가의 말이다. 즉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내 몸을 온전히 표현할 때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느낄 수 있다는 강한 의지라는 것.
그래서일까? 나체의 마지막 장벽인 란제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모습으로 황금시대를 맞았다. 패션 검색 엔진 태그워크에 따르면 2023 S/S 컬렉션 가운데 무려 59%가 란제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니 결코 과언이 아니다. 먼저 킴 카다시안을 스페셜 큐레이터로 발탁한 돌체&가바나는 그녀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코르셋과 보디수트로 카다시안의 시그너처인 ‘슴부심’과 ‘엉부심’을 하기 딱 좋은 룩을 줄지어 선보였다. 네온 컬러의 슬립(베스사체), 반짝임이 가미된 브라 톱(페라가모), 몸을 옥죄는 투명 소재에 가릴 곳만 가린 톱(크리스토퍼 케인) 등 몸의 라인을 적나라게 드러내는 레이스와 시스루 소재로 도발적인 욕망을 표현했다. 앞서 언급한 브랜드가 침대 위 관능적인 부두아르(Boudoir, 여인의 침실) 룩을 강조했다면 네글리제(여성용 실내복이나 잠옷)로 순수한 소녀의 면모를 떠올린 디자이너도 있다. 1960년대 베이비돌 잠옷을 입은 호러퀸을 등장시킨 프라다를 비롯해 보테가 베네타, 샤넬이 대표적. 이들은 화이트, 파스텔 등 차분한 컬러를 베이스로 박시한 드레스, 파자마 세트업을 선보이며 란제리 대열에 합류했다. 또 킴 존스는 2023 S/S 펜디 오트 쿠튀르 쇼를 통해 란제리의 가벼움을 찬양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죠. 요즘 시기에 대해 고민했어요.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문제 해결방식 말이죠.” 거대한 드레스 대신 몸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는 실크 드레스를 선보이는 데에는 ‘삶을 가볍게 대하자’라는 킴 존스의 메시지가 들어있는게 아닐까?
사실 란제리 룩은 꽤나 오래된 이야기다. 뉴욕패션미술관의 2014년 전시 «노출: 란제리의 역사»에 따르면 ‘속옷의 겉옷화’는 198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는 영원한 섹시 퀸 마돈나가 있다. ‘블론드 엠비션(Blonde Ambition)’ 월드 투어에 나선 마돈나를 위해 오랜 파트너 장 폴 고티에는 팔을 걷어붙였다. 그 유명한 ‘콘 브라(원추형 브라가 달린 코르셋)’의 탄생!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도전적이고 강력한 여성성을 재정의하는 역할을 했고, 란제리를 침실 밖으로 끄집어내어 하이패션에 진입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미니멀한 란제리 룩으로 지적인 관능미를 뽐낸 케이트 모스와 캐롤린 버셋 케네디, 실제 란제리를 입고 온갖 파티와 행사를 섭렵했던 세기말의 패리스 힐튼도 란제리 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노골적인 것은 결코 유행에 뒤처지는 법이 없다. 자, 이제 침실에서의 사적인 취향마저 과감하게 공개하며 거리로 나서야 할 때다. 단, 외출을 위해선 좀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태생 자체가 섹시하고 사적인 만큼 고급스러운 소재와 무난한 컬러로 우아함을 주입하도록. 미니멀한 속옷 취향을 가진 나는 지난가을 피자를 들고 뉴욕 거리를 활보하던 벨라 하디드에게서 힌트를 찾았다. 하의 실종을 넘어선 노 팬츠 룩! 바이커 재킷과 피트되는 티셔츠, 그 아래 매치한 단출한 화이트 브리프(마이크로 쇼츠로 대체해도 좋을 듯)가 포인트다. 그동안 실내의 은은한 조명 아래가 더 익숙했던 란제리들은 봄의 시작과 함께 햇빛을 머금고 바람을 맞으며 일상부터 이브닝까지, 도시부터 여행지까지 관능미의 지수를 높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바야흐로 침실에서처럼 당당하게 란제리를 입고 세상에 나가는, 짜릿한 해방감을 느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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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윤혜영
    사진/ Imaxtree(런웨이),Getty Images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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