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에서 쇼를 선보인 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는 축하의 의미를 담고 싶었죠.” 웨딩을 테마로 쇼를 진행한 요니 요한슨. 드레이프된 레이스 가운과 톱, 코르사주, 새틴 보 장식 등 로맨틱하고 펑키한 신랑신부가 핑크빛으로 물든 런웨이를 자유롭게 행진했다.

이탈리아의 부라노(Burano) 레이스를 프랑스에 처음으로 전파하고 코르셋과 플랫폼 하이힐을 즐겨 신던 16세기 피렌체 출신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치. 그녀에게서 영감을 얻은 디올은 섬세한 레이스 장식의 후프 스커트와 블루머 등 고전적인 아이템을 재해석했고 탱크톱, 카고 팬츠, 고글 등으로 모던함을 더했다.

커다란 모래 언덕의 런웨이 위로 걸어 나온 소녀들. 사막에서 하이킹을 즐기고 일몰 아래 캠핑을 하기 위한 아웃도어와 트레킹 룩! 보다 실용적이고 테크니컬한 소재와 디테일은 에르메스식 여행자를 꿈꾸기에 충분했다. 형이상학적인 프린트, 베이지에서 캐멀, 레드로 이어지는 컬러 팔레트 또한 이국적인 정취로 가득했다.

퐁피두센터 앞에서 열린 스텔라 매카트니의 2023 S/S 컬렉션은 2000년대 초반을 향하고 있었다. 테일러드 팬츠수트, 골드 체인 탱크톱, 슬립 드레스, 비대칭 스커트, 로 라이딩 팬츠 등 Y2K 무드로 가득했다. 이 화려한 컬렉션이 87%의 지속가능성에 도달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할 메시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듯 하늘에서 모래가 떨어지는 초현실적인 해변을 배경으로 쇼를 선보인 니콜라 디 펠리체. 서핑과 스쿠버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으로 지퍼 드레스, 웨트수트 등 브랜드의 1970년대와 80년대 아카이브를 컷아웃 디테일과 3차원 레진 프린팅, 스쿠버 패브릭 등으로 모던하게 재해석했다.

알랭 레네 감독의 영화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와 같은 누벨바그 고전에서 영감을 가져왔다는 버지니 비아르. 세련된 수트, 카디건 재킷, 보이시한 니트와 티니 탭 쇼츠, 이브닝드레스 등 소란스럽지 않게 세련된 피스들은 지금 당장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사했다.

“별과 우주에서부터 온 에너지입니다. 옷을 만드는 데도 결국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쇼장에는 미래의 대체 에너지인 핵융합 연료의 원천 토카막을 모티프로 한 파빌리온 방돔이 설치되었다. 토카막 모양으로 뜨개질한 가죽 드레스, 리사이클 캐시미어로 만든 컷아웃 니트웨어, 무농약 수확으로 제조된 리넨 소재의 블레이저 등 런웨이의 모든 것은 미래를 향한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파리 식물원을 흠뻑 적시던 소나기가 거짓말처럼 멈췄고, 쇼가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위베르 드 지방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는 매튜 윌리엄스의 말처럼, 하우스의 근간인 우아한 블랙 테일러링과 드레스에 후디, 보머 재킷, 카고 팬츠 등 미국적인 워크웨어와 Y2K 트렌드가 결합된 대담한 룩이 등장했다. 이번 시즌부터 합류한 카린 로이펠트의 스타일링도 눈여겨보길.

‘비이성적인 시각’이라 이번 쇼를 정의한 디자이너 황록. 디자이너로서 현실과 창조성 사이에서의 내적 갈등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고. 셔츠, 트렌치코트, 블레이저 같은 베이식 아이템을 풍부한 상상력과 독창적인 디테일로 재해석해 선보였다.

팔레 드 도쿄의 중앙 분수가 하늘 높이 치솟자 릭 오웬스의 전사들이 등장했다. ‘이드푸(Edfu, 이집트의 룩소르 남쪽에 있는 도시)’라 명명한 이번 컬렉션은 고대 조각상이 연상되는 어깨를 강조한 전위적인 피스, 다양하게 변주된 보머 재킷, 투명한 젤라틴 가죽 소재가 장엄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