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찬 라크루아의 2007년 봄 컬렉션 칵테일 드레스를 착용한 크리스틴 서피스. 팔로 알토에 있는 자신의 집 지하실 패션 아카이브에서 포즈를 취했다.
하지만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메트)부터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이하 V&A), 샌프란시스코의 드영 등 대표적인 대형 미술관들이 잇따라 패션 전시를 열고 기록적인 숫자의 방문객을 불러모았다. 이는 박물관 관람객들이 패션을 인식하는 방식을 바꾸게 했고 하나의 역사적인 블록버스터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물론 1858년 하우스 오브 워스(The House of Worth, 파리에서 활동한 영국 디자이너 찰스 워스가 설립한 최초의 프랑스 쿠튀르 레이블)가 설립되었지만, 박물관과 같은 재단의 영구적인 컬렉션에 의류가 포함된 것은 1970년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수집하고 전시할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패션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패션 하우스의 많은 고객과 더불어 재력을 갖고 있으면서 역사를 보는 방법으로 패션을 바라보고 소비하며 보존하는 개인 컬렉터에게 의존했다.
드영 박물관은 2024년 1월, 잔 매그닌(Jeanne Magnin), 엘리너 드 기뉴(Eleanor de Guigne), 낸 켐프너(Nan Kempner), 도디 로즈크란스(Dodie Rosekrans), 크리스틴 서피스(Christine Suppes) 등 20~21세기 가장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의 유산을 기리는 전시를 열 계획이다. 이번 기획은 부분적으로는 샌프란시스코의 파인 아트 뮤지엄에 5백 피스 이상을 기증한 크리스틴 서피스 여사로 인해 가능했다. 최초의 온라인 패션 간행물인 〈패션라인(Fashionlines)〉을 설립한 서피스는 수집에 있어 지성적으로 접근한다. “저는 단지 옷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그것들에 대해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의상을 수집하게 됐고 그것들에 대해 글을 쓰게 됐고, 전시회를 돕는 삶을 살아온 거예요.”
서피스의 기부 피스를 들여다보면 1990년대와 2000년대 구입한 크리스찬 라크루아의 룩, 조각가 니키 드 생 팔(Niki de Saint Phalle)을 위해 만들어진 이브 생 로랑의 1969년 봄 컬렉션의 패치워크 스커트수트, 1950년대 제작된 밝은 분홍색 발렌시아가 이브닝드레스를 포함해 몇 가지 빈티지 피스도 있다. “서피스의 기부가 특별한 건 그것들을 수집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걸 스스로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코스튬과 직물 예술을 담당하는 큐레이터 질 달렌산드로의 말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전체 앙상블 세트를 구입하는 건 매우 중요했고, 특정 컬렉션에 대한 디자이너의 비전을 보여주는 피스를 구매하는 데 정말 관심이 많았죠.” 서피스는 1904년에 지어진 역사적인 집(마치 장인의 집 같다)에 살고 있는데, 실제로 이 집은 패션 아카이브를 위해 선택한 것이라고. “팔로 알토에 집을 산 건 지하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그곳에 페르고(Pergo) 강화마루를 깔았고, 곰팡이 방지 페인트로 칠한 후에 제습기를 들여놓았어요.”





“제가 본 첫 번째 패션 전시회였어요. 제가 수집한 모든 것들이 대형 뮤지엄에 디스플레이된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치원에 다니기도 전에 마리아노 포르투니의 쿠튀르 드레스를 소유한 아주 특이한 이력을 가진 그녀다. 1930년대 어린 소녀였던 슈라이어는 러섹(Russeks) 백화점의 디트로이트 지점에 일하던 아버지와 동행하며 아버지가 모피 살롱에서 일하는 동안 〈바자〉와 같은 잡지를 들여다보며 놀았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제가 어린 셜리 템플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아빠의 고객들은 대부분 자동차 업계의 아내들이었고, 자신들이 입지 않는 쿠튀르를 가지고 놀라고 제게 선물하곤 했어요.” 슈라이어는 자신에게 온 화려한 선물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가 그것들을 잘라서 할로윈 코스튬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저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바닥에 앉아서 다리를 막 걷어차면서 소리를 질러댔고 결국엔 제가 이겼죠.”
성인이 되자 그녀는 옥션과 부동산 매매를 통해 컬렉션을 늘려갔다. 남편의 출장길에 따라나서며 패션 보호 전도사를 자처한 것이다. “우리가 가는 모든 지역의 주요 미술관을 항상 찾았고, 미리 전화를 걸어서 디렉터를 만날 수 있을지 약속을 잡곤 했어요. 저는 그들에게 패션은 예술의 한 형태이고 그림과 조각과 마찬가지로 모든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죠.” 그녀는 자신의 컬렉션 작품들을 코스튬 인스티튜트가 개최한 15번의 전시회에 빌려주었고 2019년에는 1백65개에 달하는 작품을 기증했다. 그리고 그 중 다수가 그 해 «In Pursuit of Fashion» 전시에 등장하게 된다.





2010년 맥시멀리스트의 아이콘 아이리스 아펠은 매사추세츠 세일럼에 있는 피보디 에섹스 뮤지엄이 연 «Rare Bird of Fashion» 전시에 자신의 것을 내어주었다. 이 전시는 2005년 메트에서 시작된 것으로 디올과 니나 리치의 시그너처 코트를 비롯, 풍성한 랑방 가운 등이 포함되었다. 그녀는 이후 해마다 자신의 광범위한 옷장에서 2백 벌 이상의 피스를 기부하고 있다. “샌디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걸 기억해요. ‘갖고 있는 컬렉션을 입지 않네요.’ 그러면 안 된다는 듯요.” 1백1살이 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말한다. “아마도 우리는 수집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저는 옷을 산 후에 박스에 넣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모든 걸 잘 입었어요.”
“아이리스가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한 부분 중의 하나는 옷을 잘 입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에요.” 피보디 에섹스 박물관의 낸시 B. 퍼트넘(Nancy B. Putnam) 큐레이터 페트라 스링카드(Petra Slinkard)의 말이다. “그녀는 패션을 예술의 형태로 바라봤어요.” 아이리스는 벼룩시장에서 가져온 액세서리와 쿠튀르를 믹스하는 등 밝은 컬러와 건축적인 형태, 그래픽 패턴을 결합하는 자신만의 감각을 갖고 있었다. “저는 흥분되고 재미있는 의상을 좋아해요.” 그녀가 1950년대 쿠튀르 의상을 어떻게 수집하게 됐는지 설명하며 말했다. “저는 오트 쿠튀르를 지불할 돈이 없었지만 대신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일 때문에 파리에 자주 가 있었는데, 아틀리에를 찾아가 ‘버릴 샘플이 있나요?’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때는 아무도 아카이브를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제게 파는 걸 오히려 기뻐했죠. 운 좋게도 제 몸은 샘플 사이즈에 딱 맞았고요. 저는 키가 173cm이었고 그때는 매우 높은 하이힐을 신었어요. 성격도 꽤 뾰족했죠. 키가 줄기 전에는 그랬어요.”

V&A의 1971년 세실 비튼 전시. 리 라지윌이 기부한 1967년 이브 생 로랑의 칵테일 드레스가 디스플레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