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잇백으로 떠오른 안나 백. 2 디자이너 라울 로페즈. 3 2023 S/S 시즌 공개 된 아이웨어 라인. 4 성별을 뛰어넘는 루아르의 캠페인 비주얼.
먼저 2022 CFDA 어워즈 올해 최고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 소감은?
패션학교에 진학하는 꿈이 있었지만, 이룰 수 없었다. 왜냐면 남성성이 강한 라틴계의 게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컬렉션 준비에 참고할 오래된 책과 자료를 래퍼런스로 찾기 위해 종종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도서관에 몰래 들어가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상은 마치 패션스쿨의 졸업장 같은 느낌을 준다. 이제서야 내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알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2005년 HBA를 공동 론칭한 뒤, 2017년 독자노선을 걷기로 했다. 그 계기는 무엇인가?
2011년 후드 바이 에어(HBA, Hood by Air)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몇 년간 공백기를 거친 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스스로 모험을 떠났다. 그 결과물이 루아르(Luar)다.
“루아르는 내 자신을 반영한다”라는 인터뷰를 봤다.
‘루아르=라울 로페즈’라 해도 무방하다. 컬렉션은 나와 나의 이야기, 내 인생의 챕터를 담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구체화해준다고 생각한다. 브루클린에서 자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라틴계를 대변하는 퀴어 디자이너 같은 정체성 말이다. 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패션으로 표현할 뿐이다.
‘La Alta Gamma(영어로 The High End)’를 테마로 한 2023 S/S 컬렉션은 1980년대를 연상시키는 오버사이즈 숄더, 드롭 웨이스트 드레스로 가득한데 말 그대로 루아르의 가장 고급스러운 컬렉션으로 기록되었다. 1980년대 무렵 어린 시절 가족 모임을 떠올리면서 컬렉션을 준비했다. 당시 멋쟁이 이모와 삼촌이 입었던 룩에서 영감받았다.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과장된 어깨는 그 공간에 있을 당시 내가 짊어진 세상의 무게에 대한 표현이다. 가족들이 모인 날, 삼촌이 캠코더를 켰다. 그 당시에도 난 너무 화려했고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당시 라틴계 남자들에게 화려함, 여성스러움은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인기 만큼이나 쇼장이 떠들썩했다고 들었다.
마치 브루클린의 인기 있는 클럽 같았다. 예정은 오후 9시였지만,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쇼를 시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앉아주세요”를 계속 외쳤지만 한쪽에서는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대혼란이랄까.(웃음) 하지만 사람들의 웃음을 보니 이상하게도 사랑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2023 S/S 컬렉션 공개 후 받은 코멘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쇼가 끝난 뒤 우는 관객을 봤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말 한마디보다 더 큰 울림이었다. 감히 예상해보지만 내 컬렉션이 그들(LGBT 퀴어 커뮤니티)을 대변해서가 아닐까?
모든 룩이 챕터의 한 문장 같기 때문에 하나를 꼽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작업물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 18개월을 쉬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나?
한동안 나는 끝이 없는 쳇바퀴에 올라가 있는 햄스터가 된 기분이었다. 그동안 쉬지 못했다. 우울했고, 정신이 악화되었다. 그래서 카리브해에 있는 케이맨제도에 숨어 지냈다.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와 생각을 나만의 속도로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도피의 시간이었다.
컴백과 함께 공개한 안나(Ana) 백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두아 리파, 트로이 시반이 즐겨 들며 잇백 대열에 올랐다. 어디서 영감받았는가?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영감받아 만들었다. 작은 서류 가방 형태인데 1950년대와 60년대, 그리고 80년대와 90년대 패션을 조합한 듯한 실루엣이다. 안나라는 이름은 어머니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요즘 루아르의 ‘친구’라면 누구를 얘기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내게 진정한 친구는 없다.(웃음) 대신 아주 끈끈하게 이어진 가족이 있다.
당신의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도미니카 이민자이자 재봉사였던 어머니와 할머니. 당신이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 추억이 있다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재봉 일을 하실 때 옆에 앉아 있기를 좋아했다. 그들은 베개나 커튼은 물론 홀리데이를 위한 옷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 순수하고 깊은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또 커밍아웃 후 나를 지원해주는 가족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그리고 패션에 빠져든 건 크리스찬 라크루아의 오트 쿠튀르 쇼를 처음 접하고였다. 그때 이렇게 외쳤다. “오 마이 갓,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잖아!”
캠페인을 보면 모델 같지 않은 다양한 인종과 연령, 성별의 모델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더 힙한 느낌이다. 이들은 주로 어떻게 캐스팅되며, 당신만의 어떤 기준이 있을까?
보통 스트리트나 온라인에서 캐스팅을 한다. 파티에서 만난 사람도 있다. 내가 영감을 주는 이라면 누구든지 환영이다. 공식은 따로 없다.
제2의 안나 백 혹은 다음 시즌을 살짝 공개해줄 수 있을까?
나는 자칭 ‘액세서리의 여왕’이다. 2023 S/S 시즌에 공개한 새로운 실루엣의 가방과 투박하지만 미래적인 안경, 벨트를 주목해달라.
최근 가장 잘 샀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무엇인가?
인스타그램(@raulzepol)을 보니 굉장한 멋쟁이다. 당신의 퍼스널 스타일을 정의하자면?
생각나는 단어는 할머니지만, 사실 내 퍼스널 스타일에 대해 정의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