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윈의 유리 잉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롭윈의 유리 잉크

롭 윈(Rob Wynne)은 뜨겁게 녹인 유리를 잉크 삼아 글을 짓고 물감 삼아 그림을 그린다. 거울처럼 빛나는 유리 결정을 통해 우리는 명백함과 모호함 사이의 그 어딘가를 본다.

BAZAAR BY BAZAAR 2022.10.12
 
Courtesy of The Page Gallery and the artist. Photo by Joel Moritz.

Courtesy of The Page Gallery and the artist. Photo by Joel Moritz.

이 인터뷰가 서울에서 대면으로 이루어졌다면 작가님의 손을 유심히 봤을 것 같아요. 이번 전시는 예술로서의 모던함과 수작업의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저에게 예술을 행하는 아름다움은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수작업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작업의 재료로 유리를 사용하는 건 자주 봐왔지만 금형을 사용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그리는 방식이 독특해요. 우연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뜨거운 유리를 국자로 퍼내다 바닥에 놓치는 사건 이후 작가님만의 스타일이 시작되었다고요.
예상치 못한 일이었던 만큼 일종의 황홀감을 느꼈습니다. 당시 저는 유리 작업실에 들어간 것이 처음이었고 경험도 부족했으며 질문에서 언급했듯이 녹인 유리를 금형에 넣는 전형적인 주조 방식에서 탈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실수로 국자가 제 손에서 미끄러졌을 때 유리를 사용하는 다른 방법을 계속 탐색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문구를 쓸 때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그 중에 하이쿠가 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예를 들면 바쇼의 “서리 맞은 채 울적하게 피었네 가을 들꽃”이라는 하이쿠에는 문장 그대로의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동시에 계절의 제시어와 당시의 유행어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니까요.
하이쿠의 특징은 레이저 같은 언어의 명료함이라 생각해요. 하이쿠는 각각의 단어나 문장의 무게 또는 무중력 상태를 증대시킵니다. 저는 하이쿠에서 이런 특성을 보고 있어요.
 
〈I Have Been Looking for Myself〉, 2015, 31x27cm, Glitter on mylar.

〈I Have Been Looking for Myself〉, 2015, 31x27cm, Glitter on mylar.

또한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판을 수집할 만큼 상징주의 시를 사랑하고 보들레르의 저서 〈인공낙원(Artificial Paradises)〉을 전시 제목으로 사용할 만큼 문학에 관한 관심과 이해가 폭넓습니다. 이런 문학들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스타인의 글은 겉보기엔 아무렇게나 쓰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보들레르의 글에서는 그의 불안한 상상력의 범위가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지죠. 저 두 작가의 글에서 발견한 무작위성과 상상력은 수작업의 불완전성과 마주 닿아 있어요. 문학에서 얻는 이 모든 것들을 작업에 받아들입니다.  
작업에 수많은 단어와 문구가 녹아 있지만 ‘Yes!’라는 경쾌한 문구에 더욱 눈길이 갑니다.
어릴 때 ‘안 돼(No)’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그 말이 항상 저를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기억합니다. 그래서 지난 수년간 ‘허락(Permission)’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작품과 매체를 통해 ‘Yes’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Radiate(발산)’와 ‘Stillness(정적)’. 상반된 단어가 전시장 벽에 대립하듯 걸려 있습니다. 이번 서울 전시 제목 역시 «After Before»인데요.
언어 뒤에 숨어 있는 추상적인 개념을 항상 염두에 둡니다. 의미, 즉 단어 순서의 아주 작은 변화로도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시할 수 있거든요.
 
〈Yes!〉, 2022, 21x25cm, Poured and mirrored glass. Courtesy of The Page Gallery and the artist.

〈Yes!〉, 2022, 21x25cm, Poured and mirrored glass. Courtesy of The Page Gallery and the artist.

글과 글자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연금술사 같은 작업을 하지만 어릴 때 난독증을 앓았다고요.
난독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저도 읽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움은 저에게 선물이었습니다. 읽으려고 하는 것에 진정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거든요. 또 무작위로 변경되거나 단어가 뒤집혀 보이던 경험은 그 의미에 대해서 비틀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뒤로는 용광로가 보이고 튀는 불똥을 막아줄 은색의 보호복과 마스크, 크록스 슬리퍼를 신은 사진 속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떠올리는 아틀리에와 작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거든요.(웃음)
사진 속 작업실은 유리주물공장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주 시끄럽고 뜨겁죠. 유리주물공장은 제가 유리 조각들을 붙이며 실제 작업을 하는 저의 다른 작업실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릅니다. 제 원래 작업실은 아주 조용하답니다.(웃음)
말 그대로 틀에서 벗어나 리듬을 타며 완성해나간 것 같은 결과물은 다양한 형상처럼 보여요. 아주 작은 조각들까지 모든 전시장에서 같은 모습을 유지하려면 조립식 장난감에 동봉된 설명서처럼 정교한 가이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제가 하고 있는 자유로운 형태의 주조 작업은 유리 작품 세계에서 이례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저는 유리 예술가로 교육받지 않았기 때문에 유리를 뜨거운 페인트처럼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저에게 규칙을 어길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저는 제 작업에서 완벽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과 작품의 느낌을 목표로 합니다.  
 
〈Blue Day〉, 2017, 102x78cm, Poured & mirrored glass. Courtesy of The Page Gallery and the artist.

〈Blue Day〉, 2017, 102x78cm, Poured & mirrored glass. Courtesy of The Page Gallery and the artist.

비금형 작업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를 것 같습니다. 뒷면에 은 도금을 입히는 과정도 더해지고요. 그럼에도 오랫동안 손이 가는 방법으로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있을 테죠.
은 도금을 사용하면 작품을 보는 사람이 텍스트를 읽는 행위를 통해 그것에 반사된 자신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현실은 훨씬 더 흥미로웠습니다. 글씨가 완벽하게 매끄럽지 않아서 반사가 약간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현상은 작품 관람 경험에 또 다른 분위기를 더하더군요.
그런데 이례적으로 ‘Blue Composure’ 시리즈는 파란빛이 도네요.
유리를 재료로 사용하는 방식의 매혹적인 부분이 담겼다고 볼 수 있어요. 색을 입히려고 해도 도자기 유약이 그런 것처럼 유리 작업 역시 정확한 색을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시 한 번 제가 좋아하는 우연과 불완전함이 공존합니다.  
작은 조각들이 모인 형상을 멀리서 바라보게 만드는 와중에 몇 조각들은 나비 모양처럼 보입니다. 이 조각들이 뚜렷한 모습을 지니는 이유가 있을까요?
나비는 자유로움입니다! 나비는 제가 그들과 교류할 때마다 무한한 기쁨의 감정을 구현해줍니다. 제 작품에 나비를 사용함으로써 제가 그 자유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요.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by Marco Anelli.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by Marco Anelli.

전시장에는 유리 작품 외에도 마일라 필름과 글리터, 실과 비즈를 재료로 사용한 작품들도 있어요. 이런 다양한 재료들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듭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는 전통적인 유리 예술가가 아닙니다. 드로잉이나 회화 같은 스튜디오 아트 경력을 가지고 유리를 접했기 때문에 마일라 필름, 실, 비즈 드로잉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리 작업을 할 때는 엄청난 체력과 여러 명의 조수가 필요해요. 다른 재료를 써서 작업할 때는 제 상황에 맞춰 조용히 저만의 그림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죠. 그렇게 상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서울 하우스 오브 디올에서 ‘자도르(J’adore)’ 텍스트 조각을 선보인 이후 첫 개인전입니다.
저는 예술이 보편적인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 역시 작품 수는 늘었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떠오르는 단어나 〈바자 아트〉 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단어가 있다면요?
Peace.
 
박의령은 〈바자〉의 피처 디렉터다. 학창 시절 소설을 전공했으나 시 점수를 더 높게 받았다. 롭 윈의 전시를 다녀온 후 책장 속에 묻어두었던 온갖 책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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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박의령
    사진/ 더페이지 갤러리 제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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