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시즌 색 중의 색은 단연 핑크다. 거대한 레드 제국 발렌티노마저 핑크로 물들었다. 베이비핑크도, 더스티 핑크도 아닌, 짜릿한 핫 핑크로만 꽉 채워진 쇼는 강렬함 그 자체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 파올로 피촐리는 작정이라도 한 듯 인비테이션부터 81개 중 48개의 룩, 쇼 장까지 모든 것을 핑크로 중무장했다. 모든 이들의 시신경을 자극한 이 핑크의 이름은 ‘핑크 PP’다. 이는 창립자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찬란한 유산, 즉 ‘발렌티노 레드’를 현대적이고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피촐리의 바람에 따라 펜톤 컬러 연구소와 협업한 결과물이다. 중첩된 핑크. 오로지 하나의 색에만 집중해 그 어떤 요소보다 모델의 캐릭터(분위기, 신체 움직임)와 룩의 조형적 요소(실루엣, 소재, 장식)를 부각시키며 쇼를 한층 드라마틱하게 연출했다. 이는 모든 이들에게 ‘가라바니의 레드, 피촐리의 핑크’라는 공식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컬렉션을 한 가지 색으로 채색한 후폭풍은 실로 굉장했다. 쇼 직후 젠데이아, 앤 해서웨이, 두아 리파, 글렌 클로스 등의 할리우드 셀럽들이 핑크 PP를 입고 멧 갈라와 칸 영화제 등에서 핑크빛 아름다움을 뽐냈으니.
이번 시즌 런웨이는 소심한 핑크부터 대범한 핑크까지 ‘핑크의 물결’로 넘쳐난다. 프라다의 가죽 코트, 베르사체의 뷔스티에 드레스, 로에베의 오프숄더 드레스, 리처드 퀸의 트렌치코트, 마이클 코어스의 베스트 수트, 돌체 앤 가바나의 파워 숄더 재킷, 아미의 테일러링 팬츠, 록산다의 윈드브레이커 등. 심지어 디젤과 액트 N°1은 보디페인팅을 더해 파격적인 핑크 인간을 완성했다.







한편 Y2K 패션 흐름과 맞물리며 인기를 끌고 있는 바비 인형, 일명 바비코어의 시그니처 컬러인 ‘바비 핑크’ 역시 핑크 물결을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2023년 개봉 예정인 영화 〈바비〉를 촬영 중인 마고 로비. 인간 바비라도 된 듯 완벽 싱크로율을 자랑하는데, 특히 올 핑크 디스코 룩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틱톡에서 #barbiecore를 검색해보자. 수만 건의 핑크빛 피드가 당신을 반겨줄 테니.
이렇듯 이번 시즌만큼은 핑크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전망이다. 핑크가 런웨이와 스트리트를 구분하지 않고 회색 도시와 건조한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으니까. 피촐리는 누구나 핑크가 잘 어울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핑크를 입으면 근사해 보입니다.” 런웨이에서 보듯 이번 시즌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담한 올 핑크 룩이 대세다. 단, 리얼웨이에서 토털 룩은 꽤 위험한 선택. 이때는 베이비핑크와 마젠타, 바이올렛처럼 채도가 다른 핑크를 톤온톤 조합하거나(샤넬, 톰포드) 그레이나 블랙 같은 톤 다운된 컬러와 매치하면 된다(오프화이트와 돌체 앤 가바나). 여전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여러 브랜드에서 자그마한 아이템으로도 준비했으니 뒷걸음치지 않아도 된다. 베르사체의 체인 백은 어떤 룩에든 산뜻한 포인트가 되어줄 테고, 미우 미우의 발레리나슈즈는 미니스커트와 완벽한 짝을 이룬다. 우아한 손짓을 연상시키는 발렌티노 장갑도 있다.
준이치 노무라의 책 〈색의 비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핑크는 젊어지는 색이다. 핑크 블라우스를 입고 핑크 커튼을 친 방에서 생활했더니 용모와 몸이 젊어지고 성격까지 밝고 명랑해져 눈이 부실 만큼 미인이 되었다.” 명심하자. 지금은 그야말로 핑크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