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귀고리, 반지는 Stephen Webster. 보디수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번 화보는 엄정화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며 특별히 빛났던 12가지 순간을 오마주한 작업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본인에게 남다른 촬영이었을 텐데요.
일단 <바자>에서 이런 특별한 화보를 기획해 감동적이었어요. 마치 <바자>와 저의 생일파티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예전 작업을 하나하나 다시 보면서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울컥하기도 했고 에너지도 얻었어요. 작업할 당시에는 힘들고 괴로운 순간도 많았는데 결국은 결과물이 남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면서 해온 작업들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참 좋구나. 더 고민하고 더 괴로워해도 되겠다. 앞으로 무얼 해볼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2020년 영화 <오케이 마담> 보디수트, 쇼츠, 사이하이부츠는 모두 Rick Owens. 선글라스는 MonclerxGentle Monster. 망사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993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데뷔했습니다. 영화 속 ‘혜진’은 가수와 배우를 꿈꾸는 연예인 지망생이에요. 당시 신인 배우이자 ‘눈동자’라는 곡으로 가수를 준비하던 본인과 중첩되는 캐릭터였죠.
합창단에 있었고 노래를 부르는 건 저에게 익숙한 일이었지만 가수로 나 혼자 무대에 서는 건 거대한 사건이었죠. 그런데 심지어 영화까지 찍는다니. 최민수 선배님, 홍학표 선배님은 최고의 아이돌 스타였거든요. 겁이 없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유하 감독님을 만나서 “감독님, 저 시골에서 갓 올라왔어요. 압구정동을 잘 몰라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저 보고 압구정동에 가면 있을 것같이 생겼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웃음) 마침 노래도 할 수 있으니 혜진 역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캐스팅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끼워 맞추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운명적이었던 것 같아요.
2009년 영화 <인사동 스캔들> 퍼 재킷은 Valentino.
당시 스무 살 엄정화는 가수로서, 배우로서 어떤 미래를 그렸나요?
모든 20대가 그런 것처럼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걸 해나가기 바빴죠. 늘 꾸던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 미래까지는 그리지도 못했고 그저 막연하게 유명해지고 싶었죠.
영화 속에서 영훈이 “내가 보기에 혜진인 한국의 샤론 스톤이 될 거야”라고 하거든요. 혜진은 오히려 “난 있잖아요. 메릴 스트립 같은 연기파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죠. 혜진의 다짐이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신기한 게, 제가 롤모델로 꼽는 배우가 메릴 스트립이거든요. 어떤 작품에서도 존재감이 있는 배우, 작은 배역을 맡아도 커 보이는 배우. 자기의 배역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배우. 지금에 와서야 그런 꿈을 꿔요. 연기는 너무 괴로운데 또 그만큼 너무 좋아요. 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지고 무거워져요. 30~40대에는 끊임없이 작품이 주어졌지만, 지금은 한 발 뒤에서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 더 소중히 대하게 된달까요.
1998년 4집 앨범 <초대> 벨벳 보디수트, 팬츠, 장갑은 모두 Alaïa. 샌들 힐은 Michael Michael Kors.
1998년 ‘초대’로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했어요. ‘배반의 장미’에서 번개 머리를 선보였다면 ‘초대’에선 긴 생머리에 부채를 드는 등 비주얼 콘셉트도 강화되었고요. 당시 한국에선 이렇게 확실한 콘셉트로 무대를 꾸미는 가수가 전무했잖아요. 어떻게 이런 시도가 가능했나요?
저는 무대에서 퍼포먼스 하는 걸 너무 너무 좋아하는 가수예요.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이 곡의 어떤 ‘이미지’를 듣는 사람에게 바로 각인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요. 연기를 같이 하다 보니까 배우로서의 내 모습과 철저히 분리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여러모로 어려서 용감했죠.(웃음) 남들이 안 해본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는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이게 더 재미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1998년 4집 앨범 <초대> 드레스는 Off-White.
1999년 앨범 <몰라> 작업 당시에는 이미 톱가수였어요. 그런데 김창환 작곡가에게 곡을 받으려고 2년 동안 삼고초려를 한다든가 무명 가수 김태영에게 찾아가 보컬 레슨을 받기도 했다죠.
태영 언니의 노래 스타일이 이 곡에 어울린다고 하는데 찾아가서 배워야죠. 제 성격이 그래요. 나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즐기기보단 항상 모자란 게 먼저 보여요. 그런 성격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친구들은 저한테 자신감을 좀 가지라고 걱정하지만요.(웃음)
2001년 <화(花)>를 준비하면서 깊은 슬럼프가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몰라’ 이후에 실연도 있었고 약간 에너지가 떨어져서 그랬는지 그 다음 앨범이 성과가 좋지 않았어요. 나이도 막 서른을 넘어가는 시점이었고. 만약 이 다음 앨범이 또 실패한다면 가수로서 존폐의 기로에 설 것 같았죠.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다행히 ‘다가라’라는 곡이 저를 다시 살려주었죠.
1993년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레더 재킷, 브라 톱, 브리프는 모두 Tod’s.
당시엔 이제 30대가 됐으니 댄스 말고 발라드 가수로 전향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있었다면서요. 지금 생각해보면 여전히 어린 나이인데.
웃기죠? 그때는 서른 넘는 댄스 가수가 없었어요. 여자가 서른 넘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였죠. 그런데 전 계속 댄스 가수 하고 싶었거든요. 너무 좋아서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난 춤을 출 수 있는데. 서른이 되면 어느 날 갑자기 춤을 못 추게 되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해버릴 거야’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2012년 영화 <댄싱퀸> 스팽글 보디수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서울체크인>에서 이효리 씨가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라고 물으니까 “몰라. 술 마셨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찡하더라고요. 외로웠나요?
살다 보면 ‘이게 끝일까?’ ‘이번이 마지막일까?’ ‘이럴 때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순간이 오잖아요. 그럴 때 선배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가면 되겠구나’ 하고 큰 힘을 얻거든요. 단 한 사람만 있어도요. 그런데 항상 제가 맨 앞에 있었거든요. 너무, 너무 외로웠어요. 항상 ‘나는 늙었다’ ‘난 나이가 많다’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고작 서른 몇 살에, 어린 나이에 이런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목소리가 나가고 나서 유독 안타까웠던 것 중에 하나는 더 이상 앨범을 낼 수 없다는 거였어요. 마흔이 넘어도 나는 계속 나아가야 하는데. 그게 후배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일 텐데 그걸 못 하니까….
2009년 영화 <인사동 스캔들> 언밸런스 전신 수트는 Alaïa. 펌프스는 Valentino Garavani.
2002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데뷔작 이후 10년 만에 첫 주연을 맡은 영화였죠.
가수로서는 인기 절정이었지만 배우로서는 오랫동안 시나리오에 목말라 있었거든요. 그때 유하 감독님이 이 시나리오를 주셨죠. 저한테는 굉장한 모험이었어요. 수위 높은 장면들이 두렵긴 했어요. 사실 주변에서 많이 말렸거든요. 저는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고 대중의 인기를 얻고 사는 사람인데, 만약 잘못되면 그 모든 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유하 감독님을 믿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 흥미로웠어요. 결혼에 대해서, 여자에 대해서 지금의 내가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거든요.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예요.
2008년 미니 앨범 <D.I.S.C.O> 드레스, 스커트는 Dohye Yun. 브라 톱은 Jacquemus. 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요즘 세대에겐 시대를 앞서간 영화로 회자되더라고요.
결혼에 대해서 저도 그런 생각이었거든요. 왜 서른이 넘으면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거야? 왜 모든 사람이 맞춰놓은 시계처럼 때 되면 결혼하고 때 되면 애 낳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물론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도 계시지만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VIP 시사회로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그날 밤새도록 결혼에 대해서 떠들었던 기억이 나요.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동이 트도록 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잖아요.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한 단계 넘었구나’ ‘다행이다’.
2004년 8집 앨범 <Self Control> 컷아웃 보디수트는 Lacage.
2004년 <Self Control>은 달파란, 롤러코스터, 정재형 같은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면서 음악적 저변을 넓힌 앨범이었어요. 배우로 한창 주목받던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은 음악적 욕심이 있었나요?
배우로 자리를 잡고 작품을 해나가면서 ‘이제는 나이가 들었으니 가수는 안 할 거야’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당시에 느낀 건 생각보다 사람들이 절 그렇게 나이 든 여자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확신이었어요.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난 언제든지 무대 위에서 섹시해질 수 있고 멋있어질 수 있다는.
2020년 영화 <오케이 마담> 레더 드레스는 Lacage. 장갑은 Rick Owens.
마돈나도 1990대 후반 당대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과 작업하면서 엔터테이너에서 아티스트로 격상됐죠.
저도 마돈나를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화> 이후에 한 번 더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죠. 아주 과감하게요. 실패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실패했죠. 대중적으로는 완전히 전멸이었거든요. ‘Eternity’라는 곡으로 첫 무대에 올라갔는데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사실 준비할 때부터 회사에서 반대가 컸어요. 매니저들도 힘들었을 거예요. 행사도 잘 다닐 수 있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곡은 놔두고 제가 자꾸 “아니야, 난 새로운 거 할 거야”라고 하니까.(웃음)
이 앨범이 있었기 때문에 2017년 <Ending Credit>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이 앨범을 만들면서 자아가 확고해진 것 같아요. 제가 비록 싱어송라이터는 아니지만 다음 앨범의 방향을 정하고 프로듀서를 찾고 아티스트를 모으고. 이런 작업들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어요.
1993년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레더 재킷, 브라 톱, 브리프는 모두 Tod’s.
2008년 <D.I.S.C.O.>를 발매하면서 “지난 두 앨범 활동이 미비해 엄정화라는 가수가 없어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쉽게 기억하는 엄정화 쪽으로 생각했다”고 말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댄스 가수, 엔터테이너로서의 위상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가요?
<Self Control> 다음엔 조금 더 대중적인 걸 건드리고 싶더라고요. 테디를 만나서 그랬어요. 사람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멋있는 곡을 갖고 싶다고요. 사실 ‘D.I.S.C.O.’는 듣기엔 쉽고 재밌지만 무대에 올리기 참 어려운 곡이에요. 하지만 그걸 채워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1999년 5집 앨범 <몰라> 드레스는 Paco Rabanne by Mue. 뮬은 Gianvito Rossi.
그해 연말 시상식에서 선보였던 레전드 무대도 큰 화제였어요. 무대라는 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침에 눈뜨면 어느새 무대 위에 서 있고. 십 몇 년은 그렇게 살았잖아요. 무대가 너무 익숙했는데 지금은 열 발자국, 아니 그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느낌이에요. 그런데도 언제든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고. 올라가고 싶고. 저에게 무대는 ‘꿈’이에요.
2012년 영화 <댄싱퀸>의 극중 이름은 ‘정화’죠. 이전까지는 배우와 가수의 정체성을 철저히 분리했다면 이 영화에서 그 빗장을 푼 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처음부터 두 가지로 시작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가수와 배우를 분리해서 활동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연기할 땐 배우, 무대할 땐 가수라고만 생각해요. 그런데 이 영화가 신기한 게, 처음 받아본 시나리오에서부터 두 인물의 이름이 황정민과 엄정화로 쓰여 있었어요. 실제로 황정민은 너무 황정민 같은 캐릭터였고 엄정화도 그랬죠. 나중에 극중 이름을 바꾸면 어색할 것 같아서 그대로 가게 되었어요. 가수 엄정화처럼 보일 것 같다는 걱정은 없었어요. 잘 되었다고 생각했죠. 춤을 출 수 있고 무대를 아니까 오히려 도움이 되었죠.
2001년 7집 앨범 <화(花)> 컷아웃 보디수트는 Rick Owens. 비즈 드레스는 Ganni.
이 영화에서 “네 꿈만 꿈이고 내 꿈은 개똥이야?”라는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죠. 이 대사가 내포하듯 관객에게 개똥처럼 버려진 꿈을 다시 찾아내 도전하라고 말하는 영화잖아요. 지금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괴로운데 즐거운 거 있잖아요. 슬픈데 좋은 거요. 오늘 화보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연기할 때 그런 열정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느껴요. 그리고 그런 제 자신이 좋아요. 이제 제발 좀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가 끝일 것 같아요. 배우로서 앞으로 만나볼 수 있는 인물이 무궁무진하잖아요. 지금처럼 열망이 넘치는 채로 오래 연기하고 싶어요. 그게 제 바람이에요.
2013년 영화 <몽타주> 레더 드레스는 Valentino by Yoox.
2020년 <오케이 마담>에선 원톱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돋보였어요. 이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 올의 성향이 그렇기도 하고 당시 소셜미디어에는 엄정화표 여성 서사 액션물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가상 캐스팅 리스트가 돌아다닐 정도였죠.
제 영화 중에 <싱글즈>도 있잖아요. 지금 그걸 보면 참 어려요. 그렇게 어린데 서른 살이라고 고민하다니 얼마나 안타까워요. 거기 이런 대사가 나와요. “난 서른이 되면 모든 게 안정될 줄 알았어. 그런데 쥐뿔. 아무것도 없어.”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서른이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너무 미리 나이를 먹었었구나. 그런 맥락에서 지금 제 나이 대 여자들의 다양한 인생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나오면 좋겠어요.
언니로서 이제 겨우 서른인 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남들 시선에 자신의 인생을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나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걸 두고 남들 눈치를 보면서 따라간 시간들은 인생의 낭비였더라고요. 좀 더 자신의 감을 믿으세요.
지금의 정화가 1993년의 정화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도 들리네요.
어휴, 안타깝다.(웃음) 격려해주고 싶어요. 그땐 어느 누구에게도 칭찬을 못 들었거든요.(웃음) 잘하고 있어, 잘할 거야.
엄정화는 ‘가보지 않은 발자국’ 같은 존재예요. 여전히 저 앞에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고요. 그렇게 계속 가다 보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별로 대단한 걸 기대하지는 않아요. 끝에는 늙은 엄정화가 있겠지만(웃음) 그래도 여전히 두 눈을 반짝이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반짝이는 눈으로 ‘와, 그거 재미있겠다’고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