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마흔세 살인 바니 시뷸스키에게서 짧은 헤어스타일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녀는 적갈색의 긴 웨이브 헤어를 지녔고, 부드러운 인상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은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를 보는 듯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탠 컬러에 토글 단추가 돋보이는 코트와 짙은 컬러의 스웨터, 데님 팬츠를 입고 브라운 컬러 켈리 백을 들고 나타났다. 우리가 마주한 그녀의 모습은 ‘신비로운 테크노’와는 거리가 멀었다. 런웨이에서 그녀는 섬세하고 절제된 미학을 선보인다. 크리스토프 르메르가 에르메스를 떠난 2014년, 바니 시뷸스키는 에르메스의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가 되었다. 그녀의 임명은 당시 에르메스의 신임 회장 악셀 뒤마(Axel Dumas)의 첫 주요 인사 발탁이었으며, 그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사업으로 기성복 라인을 언급했다. 그로부터 8년여간 바니 시뷸스키는 절제되고 모던한 에르메스 제품에 세련된 디자인을 결합한 그녀만의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로 1백85주년을 맞이한 에르메스처럼 유서 깊은 브랜드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큰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바니 시뷸스키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브랜드의 역사를 쪼개어 분석한다. “유전학자는 아니지만 레고는 할 수 있죠.” 그녀는 아티스틱 디렉터를 맡게 된 순간을 기억한다. “에르메스는 대중에게 클래식하고 정교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열정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또한 그녀는 에르메스를 둘러싼 오라가 존재한다면서 마침내 그 마법의 근원을 알아낼 수 있는 숨겨진 영역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각각의 컬렉션이 동일한 빌딩 블록을 가지고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정체되지 않도록 스스로 건축가가 되어 계속 쌓아가야 해요. 굉장히 다이내믹하죠.”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호화스러운 칼라일(Carlyle) 호텔 내부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바니 시뷸스키는 우리와의 저녁식사를 위해 뉴욕에 머물렀지만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저녁 약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바니 시뷸스키는 미술작품과 사진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참고로 그녀의 남편 피터 시뷸스키는 파리의 갤러리스트이다. 때문에 우리는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서 만나 선구적인 추상 아티스트인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의 작품을 감상했다. 몇 가지의 수채화 작품으로 구성된 하나의 전시관으로 10분 안에 모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곤 한 블록 아래에 위치한 카페로 향했으나 지나치게 시끄러운 탓에 여덟 블록이나 걸어 칼라일 호텔로 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비교적 조용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우리의 대화를 녹음하기 위해 소금과 후추통, QR 코드 기기로 작은 받침대를 만들었고 나는 그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았다.

바니 시뷸스키는 높은 위치에 자리한 사람이지만 다른 이에 비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럭셔리 브랜드의 아트 디렉터는 셀러브리티로 간주되어 호위를 받지만, 우리는 12월 초 추운 날씨임에도 대화할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거리 곳곳을 누비며 단둘이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만든 상황이라며 “1:1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회사에 말해두었죠.”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에르메스가 대중적인 브랜드로 거듭나길 바라며, 대중 또한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란다. 나는 파리의 16번가 부유층부터 가수 제니퍼 로페즈까지 애용하는 버킨 백의 광범위한 문화적 영향력에 대해 언급했다. 제니퍼 로페즈는 헬스장을 이용할 때조차 버킨 백을 들거나 수많은 곡을 통해 그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곤 했으니. “버킨은 팝 같죠. 에르메스를 대중적이라 말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쉽사리 구매할 생각조차 어려울 만큼 에르메스는 값비싸다. 기성복은 보통 수백만원대고, 버킨이나 켈리 백은 기본적으로 1천만원을 호가한다. “좋은 취향은 모두를 위한 거예요. 구매를 하는 고객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좋아, 평생 들고 다닐 수 있을 테니 이 백을 사겠어.’ 이 백을 사용하는 총 기간을 연도별로 나누어 계산한다면 사실 아주 좋은 가격이에요. 팔찌나 화장품, 스카프 등 접근 가능성을 높인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도 구비하고 있고요.”


아울러 그녀는 본인이 여성이거나 엄마라는 사실이 자신의 커리어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왜 사생활과 업무에 대한 열정의 균형을 정당화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팬데믹 사태로 락다운이 된 기간에 아이를 출산한 것이 커리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자 “출산도 락다운도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 함께 처리할 수밖에 없었죠.”라 답했다. 우리 사회는 성공한 남성이 어떻게 모든 것을 가졌는지에 대해 크게 관심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디자인이 개인적이면서도 여성성이 투영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한다. “여성이란 이유로 특정한 옷을 입어선 안 된다거나 이 옷을 입는다면 성공할 거란 말 따위를 듣는 게 지겨워요. 그건 대부분의 남성들이 만들어낸 일방적인 시선이죠.”

바니 시뷸스키의 디자인을 관통하는 공통적 맥락이 있다면 지적인 관능미일 것이다. 지난해 11월, 에르메스 2022 S/S 컬렉션을 기념하기 위해 배우 프랭크 시나트라의 저택이었던 로스앤젤레스 외곽에서 ‘그랑 수아(Grand Soir)’를 열었다. 팬데믹 이후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첫 파티였다. 모델들은 스커트와 뷔스티에, 부드러운 레더 드레스를 입고 수영장 주변을 무대 삼아 활보했고 Z세대에게 영감을 받아 재해석한 크롭트 톱과 와이드한 하이웨이스트 팬츠도 볼 수 있었다. 영화 제작자인 미란다 줄라이(Miranda July)가 유머러스한 내레이션으로 분위기를 띄웠고, 배우 레슬리 만(Leslie Mann)과 그녀의 열아홉 살 딸 아이리스 앱패토(Iris Apatow)는 에르메스의 컬렉션 의상을 입고 자리를 빛냈다.
다음 세대를 에르메스의 고객으로 유입시키는 것에 대해 그녀는 “젊은 여성과 남성이 들어와 ‘이거 멋지네’라고 한다는 건 우리의 고객이 될 수 있다는 긍정의 신호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녀는 결코 특정 목표나 연령대를 타깃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전략이나 알고리즘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그건 더 이상 작품이 아닌 공산품에 불과합니다. 작품이라면 상상과 욕망, 즐거움이 담겨 있어야 해요.” 또한 그녀는 에르메스가 역사적 근간을 통해 ‘모두를 위한’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인정신은 단순히 뛰어난 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은 지식이기도, 어머니로부터 자식에게 전달되는 유산이기도 하죠.”
※ 화보에 소개된 의상과 액세서리는 모두 Hermè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