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죽음 감수성'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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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죽음 감수성'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죽음의 실존을 통해 삶의 상징을 찾는 미술가다. 그들의 거대한 역사적 죽음은 나의 가장 가까운 죽음과 이어져 있다.

BAZAAR BY BAZAAR 2022.01.08
〈기념비(Monument, M002TER)〉, 1986, 금속 프레임, 전구, 300x127cm, 작가 소장.

〈기념비(Monument, M002TER)〉, 1986, 금속 프레임, 전구, 300x127cm, 작가 소장.

살아생전 건축가 정기용은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 묘를 만들어야 한다고, 삶과 죽음이 유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적어도 나의 친정아버지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지난해 이사한 친정 집 부엌에는 작은 창문이 있다. 부엌에 동향의 빛을 들이고, 설거지를 할 때도 사시사철 풍경을 볼 수 있는 귀한 창문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느 날 유리에 반투명 시트지를 붙여버리셨다. 야산을 깎아 지은 아파트인 탓에 문제의 창문으로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묘가 너무 잘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그 묘가 자꾸 당신을 주시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직 건강하신 데다 미신과도 거리가 먼 분이 왜 유난을 떠시냐는 나의 핀잔에 그가 말했다. “아직 네 일이 아니라 그렇지.” 나는 그날 아버지가 죽음을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두려운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해간다는 사실을 극렬히 부인해서 두렵거나, 온전히 인정해서 두렵거나. 딸의 무성의한 잔소리가, 죽음이 당장 현실이 된(그렇다 믿는) 입장에서는 오만하게 들렸을 게 분명했다.
 
개념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의 작품 〈황혼〉을 보면서, 1백65개의 전구가 매일 하나씩 꺼져서 전시 마지막 날 암흑이 될 그 방에서, 아마도 생의 불이 하나씩 꺼짐을 체감하고 있을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작은 불빛은 나도, 우리도, 평생 죽음을 다루어온 볼탕스키도 마찬가지의 처지임을 일깨웠다. 볼탕스키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앞둔 2021년 7월 14일 세상을 떠났고, ‘회고전’으로 준비에 돌입한 전시는 결국 ‘유고전’으로 막을 열었다. ‘전시를 본다’는 게 작가가 혼을 불어넣은 후 홀연히 사라진 그 자리에서 관객이 다시 그의 흔적을 만나는 행위라면, 이번에는 작가의 심령이라도 나타나 그 존재와 부재 간의 긴장감을 심화한 것 같다. 전시를 보는 데 유독 시간이 걸렸고, 다녀온 후에는 몸살을 앓았다. 어쨌든 “늙은 광대처럼, 여행하다 길 위에서” 죽을 거라 스스로 예측한 그의 죽음이야말로, 43점의 작품으로 채워진 전시의 44번째 작업이자 예술적 장송곡, 혹은 역설적으로 지난 60여 년 동안 선보여온 모든 ‘죽음의 작품’에 신뢰를 더하는 마침표인 셈이다.
 
생의 마지막 길, 4(死)라는 숫자를 향한 한국적 인식에 흥미를 느낀 볼탕스키가 제목을 지은 전시 «Christian Boltanski 4.4»는 죽음의 묵시록이다. 작가가 디자인한 ‘출발’ ‘도착’ ‘Apr`es(그 이후)’라는 단어가 곳곳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는 와중에, 해골과 유령이 〈그림자 연극〉처럼 일렁이거나 〈유령의 복도〉를 만들고, 1백 개의 사진을 모은 〈기사〉는 비극과 죽음의 중첩을 상상하게 한다. 입던 옷을 수천 벌 걸어둔 〈저장소: 카나다〉와 검은 옷을 산처럼 쌓은 〈탄광〉은, 몸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물이 그 자체로 죽음의 메타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탄광〉 위에서는 각양각색 인물들의 이미지를 얇은 천에 인쇄해 걸어둔 〈인간〉이 영혼처럼 부유하고, 맞은편에서는 수많은 이들의 유해가 묻히고 사라진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울려 퍼지는 ‘작은 영혼’들의 방울 소리가 하염없이 발길을 붙잡는다(〈아니미타스)〉). 평화로운 자연 풍경 영상 사이에 참혹한 장면을 섬광처럼 심어둔 〈잠재의식〉은 특정 역사적 재앙을 인류의 화두인 죽음으로 확장해 나를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들어 버렸고, 코로나 시국을 시사하는 무덤 같은 하얀 천무더기 위에 생체 신호를 연상시키는 LED 조명을 배치한 〈설국〉은 재앙의 현재성으로 나를 압도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대표적인 쇼아(Shoah) 작가다. 쇼아란 유태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다. 그는 1944년 전쟁 직후에 태어났고, 이 사실이 그의 유년기를 지배했다. 자라면서 듣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것이었고, 지인은 거의 모두 유족이었으며, 죽음과 얽힌 상황들은 소년이 맨 먼저 마주한 충격적 현실이자 세상 그 자체였다. 어떤 죽음을 가까이서 직접 겪는 것과 죽음의 그림자와 재앙의 불안이 공기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삶을 사는 건,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삶과 죽음이 샴쌍둥이처럼 한 몸을 공유하고 있음을 날마다 체득했을 그에게, 삶과 죽음은 동의어였을지도 모르겠다. ‘죽음과 삶,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작가’로서의 역량, 즉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끝내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이란 개념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하는 그의 능력은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길어 올린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의 연산작용에서 비롯된다.
 
〈황혼(Crepuscule)〉, 2015(2021년 재제작), 전구, 가변크기, 작가 소장.

〈황혼(Crepuscule)〉, 2015(2021년 재제작), 전구, 가변크기, 작가 소장.

현대미술계의 전문가들은 특히 볼탕스키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린 〈기념비〉 같은 작품을 두고 그의 사적 역사와 그 핵심의 홀로코스트를 언급했다. 어린이들 얼굴 사진을 주석 액자에 끼우고 사진마다 백열등을 비추어 상징성을 부여한 이 작업은, 충분히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이들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구성의 작품 〈저장소: 퓨림 축제〉 〈샤즈 고등학교〉 〈함부르크 거리 제단〉 등에도 아이들의 얼굴은 공히 등장한다. 이에 ‘추모’의 성격을 부여하는 건 바로 사진의 주된 역할이다. 알랭 플래셔가 수십 년 간 볼탕스키를 좇으며 촬영한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사진의 효용에 대해 고백한다. “사진에서 분명한 건 죽음, 그리고 과거와 연관 있다는 점입니다. 사진을 찍고 3분 후가 지나면 이미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간직할 때마다 그것을 죽게 하는 꼴이 되어버리지요. 마치 오브제를 박물관 진열장 안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오브제의 이미지일 뿐 더 이상 오브제가 아닌 것이지요.” 그의 말대로 사진은 보전하는 동시에 소멸하게 되고, 무언가를 보전한다는 행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기시킨다.
 
존재를 통해 부재를 증명하는 일련의 사진들이 이름 없는 자들의 존재감을 되살리고자 한 건 분명해 보이지만, 이들을 각각 호명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모든 사진을 의도적으로 확대한 탓에 실루엣은 흐릿하고, 이목구비는 뭉개져 있으며, 그래서 전혀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볼탕스키는 “사람들이 더 잘 알아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이미지의 윤곽을 지웠다고 했다. 실제로 섬뜩하기까지 한 이 사진들은 존재, 삶, 죽음을 추상적으로 연결시킨다. 각자의 입장에서 기억을 이끌어 내고,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정체성을 지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는 역사적 사건의 구체성까지 희석한다. 그렇다 해도, 엄중한 역사를 도외시한 예술가의 직무유기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비극이라는 특수한 이야기를, 죽음에 대한 불가해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의 보편적 이야기로 대치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보르도 현대조형예술센터 도록 인터뷰 中)
 
볼탕스키가 〈기념비〉 시리즈를 구성할 때 비극에 연루된 아이들뿐만 아니라 작가의 반 친구들 사진까지 포함시켰다는 정보가 아니더라도, 그런 점에서 나는 이것이 ‘홀로코스트’ 희생자보다는 ‘어린 시절의 죽음’을 은유한다는 일각의 해석에 매우 동의한다. 볼탕스키의 작업이 ‘죽음을 기억하라’는 대전제에 기반한다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죽음은 바로 나의 ‘어린 시절의 죽음’이니까. 누구나 어른이 되기 위해서 내 안의 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고, 단순히 ‘목격’하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유일한 죽음이다. 나의 의식이 기억하지는 못할지언정 나의 시간이, 몸이 기억하는 가장 가깝고도 실제적인 죽음이다. 어린 시절의 나를 죽이고 싶었든, 결별하고 싶었든, 지키고 싶었든, 잊고 싶었든, 어른이 된 인간은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상실감, 우울하지 않은 그리움을 통해 죽음의 필연성을 이미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다. 짐짓 엄숙해 보이는 이 작품 제목이 ‘제단’이 아니라 ‘기념비’인 건, 설사 스스로의 존재를 시간에, 세월에 제물로 바치고도 꿋꿋하게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을 향한 작가의 예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예전 모습과 달라지면서 어떤 존재가 사라지는 과정이다. 자기 존재의 사라짐,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숱한 죽음에 일찍부터 관심이 많았던 볼탕스키는 7세 때부터 65세 때까지의 본인 얼굴 사진을 모아 그 변화하는 모습을 반투명 천에 투영하고는 〈그 동안〉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는 이 작업을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담은 작업 〈심장〉과 함께 선보였다. 서서히 변화하는 그의 얼굴이 사방에 빽빽하게 걸린 검은 거울에 비치고 힘찬 심장 소리에 맞춰 전구가 깜빡이는 그 공감각적 공간에서, 볼탕스키의 죽음과 삶을 증거하는 영적인 무대 한가운데서, 나의 어린 시절에, 잊고 있던 나의 ‘그 동안’에 애도를 보냈다. 매일 죽으면서도, 죽음이 현실임을, 삶의 상수임을 무시하고 사는 어리석은 자에게 볼탕스키가 선사한 ‘죽음 감수성’의 순간이었다. 미술관을 나오는 길, 나는 아버지에게 안부를 빙자한 사과의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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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윤혜정(국제갤러리 이사,<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저자)
    에디터/ 손안나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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