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의 살아있는 전설, 거장 알렉스 카츠와 나눈 인터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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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의 살아있는 전설, 거장 알렉스 카츠와 나눈 인터뷰

지난여름 미국 메인주에 위치한 여름 별장에서 매일 꽃을 그리며 알렉스 카츠는 희망했다. 작품을 마주한 사람들이 실제 꽃을 보는 듯한 찬란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를.

BAZAAR BY BAZAAR 2022.01.07
알렉스 카츠, 2021. Photo: ⓒ Isaac Katz

알렉스 카츠, 2021. Photo: ⓒ Isaac Katz

알렉스 카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 들어서면 때아닌 꽃밭이 펼쳐진다. 미묘한 하얀색 바탕에 주황색, 레몬색, 연보라색의 야생화가 초록 이파리들과 리드미컬하게 부유하고, 군데군데 양감이 도드라지는 화면에 귤색 금잔화가 떠오르고, 아이리스의 꽃봉오리는 마치 먹물을 머금은 붓과 같이 탐스러운 형태를 뽐낸다. 보는 순간 몸과 마음이 동하는 그림들. 따뜻한 햇살이 살갗을 간질이고 꽃향기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 같다.
 
팬데믹이 강타한 올여름, 알렉스 카츠는 메인주 스튜디오에 머물며 꽃을 그렸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빛과 공기, 자연 속에서 생명력을 뿜어내는 꽃들을 바라보다 섬광처럼 영감이 스치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돌아와 사진을 프린트해 자르고 붙이며 화면을 구성한 다음, 나무 보드에 습작을 하고 최종적으로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을 반복했다. 지난 20년간 작가가 작업해온 꽃 시리즈 중 이전에 소개된 적 없는 작품들과 최신작을 하나의 주제로 엮은 이번 전시 «Alex Katz: Flowers»에는 꽃들 사이 녹색 배경에 밀짚모자를 쓴 인물을 그린 신작 초상화가 배치돼 있다. 느긋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인물의 이중 초상화와 무언가를 응시하는 인물의 크롭트된 화면은 영화적 효과를 자아내며 여름 꽃밭을 거니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카츠가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거대한 초상화에 밀짚모자 디테일을 그려 넣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본다. 카츠의 모든 작품은 현재를 진행형으로 담아내려는 시각 언어이며 이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창작되고 있다. 2022년 뉴욕 구겐하임에서 열릴, 전 작품을 망라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있는 94세의 살아 있는 전설,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날아갈 시간에 한 작품이라도 더 그리고 싶다며 주말도 없이 매일 스튜디오를 지키는 근면성실한 작가. 그에게 서신으로 10여 개의 질문을 보냈더니 지체없이 담담하고 단단한 답이 날아왔다.
 
질문지에 답변을 적는 지금 이 순간 무얼 하고 계셨나요?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드넓은 풀밭을 그릴 겁니다.
 
이번 개인전을 앞두고 “한국은 꽃을 주제로 한 회화에 관한 훌륭한 전통을 가졌다”라고 하셨다고요. 
한국 전통 꽃 회화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지만, 많은 작품들에 국화의 정서를 담았다고 알아요. 국화는 여름의 끝자락을 의미하잖아요. 우린 꽃의 형상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는 거죠.
 
전시장을 둘러보니 최근 2~3년 사이에 제작한 작품도 있고 10여 전 전에 그린 것도 있더군요. 다른 점이 있을까요? 
제가 근래 작업한 새로운 꽃 회화들은 이전의 작품보다 더 묘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 하나하나의 형상에 더 집중하였고 부피 자체를 강조하기 위해 강한 음영을 사용했습니다. 색감도 더 밝고요. 내일은 풀밭과 다섯 송이의 꽃을 그릴 겁니다. 꽃들은 바람에 날리고 있고요. 바로 이런 작품에서 바람에 날리는 꽃의 움직임을 잡아내려고 하죠.
 
풍경과 장면은 다릅니다. 풍경 속에서 장면으로 구성하고 싶은 순간은 어떻게 선택합니까? 
저는 언제나 장면(scene)이 절 선택한다고 느껴요.
 
색채 감각이 타고난 듯 보여요. 색채의 마법을 부리는 작품들은 물론, 얼마 전 메인주에 계실 때 찍은 사진에서 네이비 셔츠, 쑥색 니트, 자줏빛 모자의 조화가 어찌나 근사하던지요!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유독 그 색채감이 발랄하게 표현된 듯합니다. 
꽃은 여러모로 그리기 어려운 대상이죠. 특히 꽃의 색감은 유화 물감으로 온전히 묘사하기가 쉽지 않는데, 이는 물감을 섞는 과정에서 기름에 의해 선명했던 안료가 탁해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색상의 명도를 높이기 위해 보색을 사용해 신중하게 색의 균형을 맞췄어요. 그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일 겁니다.
 
〈밀짚모자 3〉를 작업 중인 알렉스 카츠, 2021. Photo: ⓒ Juan Eduardo

〈밀짚모자 3〉를 작업 중인 알렉스 카츠, 2021. Photo: ⓒ Juan Eduardo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의 경우 재능의 근원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어린 시절 접했던 강렬한 인상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최초의 시각적 기억은 무엇인가요?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기억이 나네요. 아버지도 그림을 그리고, 저도 그렸죠. 우리 둘의 그림은 매우 아마추어적으로 보였어요. 아버지 그림은 성인이 그린 서툰 그림 같았고, 제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았죠. 그 기억이 꽤나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일상적인 순간을 작품으로 남겼습니다. 일상을 회화로 옮겨내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 작품은 지금 여기, 현재에 관한 것입니다. 영원(eternity)은 현재(present tense)라는 선상에 존재합니다. 현재의 시간에서 작품을 만드는 거죠. 작품의 서사는 차치하고요.
 
2020년에 카르마 출판사(Karma Publications)와 허먼 멜빌의 〈모비딕〉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13살 때쯤 〈모비딕〉을 읽었던 것 같아요. 뉴욕의 쿠퍼 유니온 미술학교에 재학할 당시에 삽화와 관련된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때 학교 과제의 일환으로 〈모비딕〉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선택했어요. 그러니까 이 일련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한 60~70년 뒤에 카르마를 통해 출판이 된 것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모비딕〉은 기승전결이 딱 나누어진 소설이기보다는 하나의 큰 덩어리나 형태(form)에 가까워요.
 
몇몇 훌륭한 미술가들은 그들이 한창 작업 세계를 발전시킬 때 당시 시대의 조류와 너무 다른 방향이어서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매우 힘겨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카츠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1950년대 뉴욕 미술계는 잭슨 폴록과 빌럼 데 쿠닝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몇 십 년이 지나면 그가 고수했던 방식이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것이 판명나죠. 너무 많은 가치가 충돌하고 표류하듯 살아가는 세상인데요, 얼마 전 만난 한 페인터는 회화가 안정감을 주는 일종의 표지판 역할을 해줬다고 하더군요. 작가님에게도 그림이 그러한 역할을 해주었나요? 
작품(painting)을 하는 행위는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분히 이질적(disparate)인데, 작품에 그 중 한 면을 담아 보여주는 것이죠. 어쩌면, 작품 너머 반대편의 세상이 우리를 덮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알렉스 카츠, 〈아이리스〉, 2011, Oil on linen, 101.6x127cm. Photo: Todd-White Art Photography

알렉스 카츠, 〈아이리스〉, 2011, Oil on linen, 101.6x127cm. Photo: Todd-White Art Photography

1927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쿠퍼 유니온 미술학교를 다니고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작업하십니다. 뉴욕은 많은 아티스트, 미술애호가들에게 여전히 성지와도 같은 곳이죠. 
뉴욕은 굉장히 불안한 도시이고, 또 늘 변화합니다. 변화한다는 사실만이 뉴욕이 지닌 지속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전에 좋아하던 식당이라는 것은 이미 지난 말이에요. 뉴욕의 미술계도 그런 것 같아요. 계속해서 변화하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고…. 그 흐름을 그냥 따르는 수밖에 없어요.
 
롯데뮤지엄(2018)과 대구미술관(2019)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그와 관련해 한국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를 읽으며 저 혼자 작가님이 어떤 사람일 거라고 상상해보았습니다. 어쩐지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글쎄, 약간 복잡하네요…. 제 생각에는, 적어도 저에게는, 작업이란(painting) 일주일에 7일인 것 같아요. 저는 매일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무언가를 합니다. 그리고 영감은 또 그것과는 별개로 마치 플래시처럼 ‘반짝!’ 하고 찾아오죠. 무언가를 보았을 때, 갑자기 ‘반짝!’ 할 때가 있어요. 그럼 그것을 그립니다. 여섯 달이 걸릴 수도 있고, 일 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요즘 새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새를 그린 작품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아, 작년 봄에 영감을 받아 시작한 작품들입니다. 야외에 위치한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어요. 사람들이 눈 쌓인 길에 부스러기를 던져주고, 그걸 참새들이 주워먹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쉽게 만날 수 있는 순간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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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안동선(컨트리뷰팅 에디터)
    에디터/ 박의령
    사진/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London?Paris?Salzburg?Seoul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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