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부부 작가 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가 글쓰기를 가리켜 “진정한 나만의 장소”라고 했듯이 부부이자 예술적 동지인 네오 라우흐(Neo Rauch)와 로사 로이(Rosa Loy)에게도 그림 그리기는 자신들만의 장소가 되어주었다. 라이프치히를 떠나지 않고 매일 아침 함께 스튜디오에 출근해 각자의 작업에 몰두해온 30년 동안 그들에게 물질적으로, 또 비물질적으로 다른 장소는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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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슬로건과 자본주의적 물질에 둘러싸여 살고 있잖아요. 저에게 페인팅은 완전히 다른 장소(site)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열린 눈으로, 열린 심장으로 그림을 보면….
2인전 «경계에 핀 꽃(Flowers on the Border)»이 개막하기 며칠 전 스페이스K의 강의실. 가을 햇살이 투과하는 통창을 등지고 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는 스무 명 남짓한 기자들을 앞에 두고 앉았다. “지난 몇 년간 영어를 연습할 기회가 없었”기에 이 자리가 다소 긴장됐을 두 사람은 점심식사에 ‘화요’를 곁들였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전시는 이번이 다섯 번째쯤 된다. 이번 전시에는 특별하게 둘이 함께 그린 <경계(Am Saum)>(2018)가 들머리에 걸려 있다. “우리 둘 다 작업 과정을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핑퐁게임과 같은 작업이었죠.” 블루 계열 재킷, 셔츠, 팬츠 차림의 네오가 말문을 열자 올 블랙의 로사가 뒤를 이었다. “종이 위에 새로운 기호를 그리는 것은 매번 도전이었죠. 제가 네오에게 질문을 던지면 네오는 저에게 답을 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종이가 왔다갔다하면서 독특한 캐릭터들이 생겨나는 것에 놀라움과 재미를 느끼며 작업했어요.” 정체불명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한 화면에 모여 각자의 역할에 몰두하고 있지만 인과관계나 선명한 주제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이 작품은 이후 만나게 될 두 사람의 작품 세계의 특징을 함축한다.

Neo Rauch, <악한 환자(Der bose Kranke)>, Oil on canvas, 300x500cm, 2012.
한편 사이즈가 대폭 커지는 네오 라우흐의 그림들은 모호함의 측면에서 더 나아갔다. 숙련된 테크닉으로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지만 마치 평행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인 양 이질적인 요소가 혼재돼 미스터리 그 자체다. 역사와 전설, 초현실과 신학이 안개처럼 드리워진 그림 속에는 기괴하게 자라나는 식물,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십자가를 지고 지나가는 남자의 핑크 컬러 캔버스, SF 영화에서 곧잘 등장하는 포털을 연상케 하는 가시 달린 녹색 물체 등이 병치되고 융합되어 기이하고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Neo Rauch & Rosa Loy, <경계(Am Saum)>, Pencil, ink, acrylic, gouache on paper, 39x53cm, 2018.
로사 로이의 그림 속 쌍둥이 혹은 도플갱어 역시 그녀의 유년 시절로부터 왔다. “저는 작센주의 츠비카우에서 태어났어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여섯 살 때 라이프치히라는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그러면서 친구들을 다 잃게 되었죠. 그래서 상상 속의 친구를 만들었고, 그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랬어요. 제 그림 속에도 쌍둥이가 등장하는데 그들이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아요.“ 프로이트의 빙산 이론에 빗대어 말하면 무의식이 활성화되는 의식의 수면 아래서 기억과 감정의 퇴적물을 길어 올리는 두 사람에게는 공통적으로 어시스턴트가 없다. “무의식에서 캔버스로 이어지는 통로가 막히는 느낌일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끼게 되면 아주 미묘하게라도 의도가 변하지 않을까요?” 네오의 말에 로사가 동의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스튜디오에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Rosa Loy, <팽이(Kreisel)>, Casein on canvas, 190x110cm, 1999.
사진을 찍으려 전시장 밖으로 나오자 건물 사이로 단풍이 울긋불긋하다. “참 아름다워요!” 정원사 집안에서 태어나 원예로 학위를 취득한 로사가 시원스럽게 감탄했다. 그녀는 네오를 만난 이후로 (어릴 때부터 늘 즐겨온) 그림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게 원예보다 좋은 한 가지는 내 스튜디오에서 나 혼자 재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카세인 물감을 쓸 때 칠하기 용이하도록 터펜타인 오일을 섞는데 그렇게 준비하는 과정이 연금술 같기도 하고요.” 두 사람에겐 이번 여행이 꽤나 오랜만의 회유이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셈이에요.” 네오가 검지를 유연하게 돌리며 말했다. 11월 4일부터 12월 18일까지 열리는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의 개인전을 위해 라이프치히에 가기 전에 뉴욕에 들르기 때문이다. 로사와 함께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주자로 불리며 컬렉터들의 위시 리스트 상단에 놓인 작가. 하지만 네오는 “글로벌 아트 마켓에서 최대한 멀리 있고 싶다”고 말한다. “그림을 그릴 때 작품의 가격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해요. 그래야 내 안에 있는 무의식적인 영감이 자연스럽게 풀려나올 수 있으니까요. 캔버스와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기를 바라요.”

Neo Rauch, <베르그페스트(Bergfest)>, Oil on canvas, 300x250cm, 2010.
가치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세상에서 회화는 안정감을 주는 일종의 표지판 역할을 해줍니다. 우리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중심으로 이끄는 표지판 말이에요. 이 길을 따라가며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두 사람에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그 자체로 명상이고 그들이 “코워커(co-worker)”로서 따로 또 같이 일구어낸 예술은 코어이다. Credit
- 글/ 안동선(컨트리뷰팅 에디터)
- 에디터/ 박의령
- 사진 제공/ 이현준,Space K
-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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