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많은 슬로건과 자본주의적 물질에 둘러싸여 살고 있잖아요. 저에게 페인팅은 완전히 다른 장소(site)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열린 눈으로, 열린 심장으로 그림을 보면….
2인전 «경계에 핀 꽃(Flowers on the Border)»이 개막하기 며칠 전 스페이스K의 강의실. 가을 햇살이 투과하는 통창을 등지고 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는 스무 명 남짓한 기자들을 앞에 두고 앉았다. “지난 몇 년간 영어를 연습할 기회가 없었”기에 이 자리가 다소 긴장됐을 두 사람은 점심식사에 ‘화요’를 곁들였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전시는 이번이 다섯 번째쯤 된다. 이번 전시에는 특별하게 둘이 함께 그린 〈경계(Am Saum)〉(2018)가 들머리에 걸려 있다. “우리 둘 다 작업 과정을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핑퐁게임과 같은 작업이었죠.” 블루 계열 재킷, 셔츠, 팬츠 차림의 네오가 말문을 열자 올 블랙의 로사가 뒤를 이었다. “종이 위에 새로운 기호를 그리는 것은 매번 도전이었죠. 제가 네오에게 질문을 던지면 네오는 저에게 답을 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종이가 왔다갔다하면서 독특한 캐릭터들이 생겨나는 것에 놀라움과 재미를 느끼며 작업했어요.” 정체불명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한 화면에 모여 각자의 역할에 몰두하고 있지만 인과관계나 선명한 주제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이 작품은 이후 만나게 될 두 사람의 작품 세계의 특징을 함축한다.
Neo Rauch, 〈악한 환자(Der bose Kranke)〉, Oil on canvas, 300x500cm, 2012.
뒤를 돌면 로사 로이의 그림들 속 여자들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놀이나 노동에 몰두하고 있다. 화면을 꽉 채운 빨간 부츠의 두 여인이 팽이를 치고, 남자 얼굴이 주렁주렁 달린 식물을 앞에 두고 은근한 미소를 띠며 화장을 하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 청량한 물방울을 신나게 튀어 올리며 물고기를 잡는다. “가식적이고 인위적인 느낌이 나는” 아크릴 물감 대신 “피렌체의 한 성당을 가득 채운 그림을 본 후”로 사용하기 시작한 카세인 물감으로 창조해낸 여성들의 공통점은 사는 게 참 흥미진진하다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태도. 꿈과 역사, 혼재된 내러티브, 환상을 넘나드는 로사 로이의 작품 세계 안에서 이러한 여성 형상은 시그너처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몸과 마음의 근육을 기분 좋게 펌핑해준다. “저는 집안의 여성들 모두가 각자의 직업을 갖고 있는 환경에서 자랐어요. 예전에 동독에서는 여성들이 지금보다 사회적으로 평등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 저에게 오늘날 세계의 여성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어요.” 그녀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려야 할 이유가 있는 많은 여자들이 있습니다. 여성 그리고 여성성은 지난 세기 동안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특별한 수수께끼이고, 나는 것을 교정할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사이즈가 대폭 커지는 네오 라우흐의 그림들은 모호함의 측면에서 더 나아갔다. 숙련된 테크닉으로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지만 마치 평행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인 양 이질적인 요소가 혼재돼 미스터리 그 자체다. 역사와 전설, 초현실과 신학이 안개처럼 드리워진 그림 속에는 기괴하게 자라나는 식물,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십자가를 지고 지나가는 남자의 핑크 컬러 캔버스, SF 영화에서 곧잘 등장하는 포털을 연상케 하는 가시 달린 녹색 물체 등이 병치되고 융합되어 기이하고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Neo Rauch & Rosa Loy, 〈경계(Am Saum)〉, Pencil, ink, acrylic, gouache on paper, 39x53cm, 2018.
도대체 이런 장면은 어디서 온 걸까? 2017년 〈바자 아트〉와의 인터뷰에서 네오는 그림 속 장면들이 “대부분 내 유년시절의 일상에서 겪은 시각적 경험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며 “수십 년 후에 그것들이 마침내 의식의 표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마치 땅속의 보물처럼 발굴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밤의 수호자(Hüter der Nacht)〉(2017)를 보자. 집게 모양의 장갑을 낀 여자와 빗자루를 든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있는 이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병에 걸렸는지 그저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그들은 밤새 어두운 표정의 남자를 돌보다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길을 떠난다. 병상에 누워 있는 남자는 네오 라우흐를 닮았고 그를 보필하는 남녀는 부모가 아닐까 예상하게 된다. 그는 이전에도 비슷한 해석을 하게 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네오에게 자신이 태어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기차 사고로 사망한 부모의 존재는 끊임없는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훗날 네오가 수학하며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에 함께 재학 중이던 20대 초반의 엄마와 아빠. 네오는 그 시절 부모가 그렸던 작품들을 모아 직접 전시를 열기도 하고 기억에 없는 부모의 모습을 상상으로 되살리기도 했다. 늙은 아이가 젊은 부모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로사 로이의 그림 속 쌍둥이 혹은 도플갱어 역시 그녀의 유년 시절로부터 왔다. “저는 작센주의 츠비카우에서 태어났어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여섯 살 때 라이프치히라는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그러면서 친구들을 다 잃게 되었죠. 그래서 상상 속의 친구를 만들었고, 그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랬어요. 제 그림 속에도 쌍둥이가 등장하는데 그들이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아요.“ 프로이트의 빙산 이론에 빗대어 말하면 무의식이 활성화되는 의식의 수면 아래서 기억과 감정의 퇴적물을 길어 올리는 두 사람에게는 공통적으로 어시스턴트가 없다. “무의식에서 캔버스로 이어지는 통로가 막히는 느낌일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끼게 되면 아주 미묘하게라도 의도가 변하지 않을까요?” 네오의 말에 로사가 동의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스튜디오에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Rosa Loy, 〈팽이(Kreisel)〉, Casein on canvas, 190x110cm, 1999.
두 사람의 그림을 보고 나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을 꾼 것 같다. 분명 총천연색의 생생한 꿈, 꿈이라는 것을 인식할 정도의 자각몽이었는데 깨고 나면 스토리는 뒤죽박죽이고 왜 그런 꿈을 꿨는지 되짚어볼수록 오리무중에 빠져드는 느낌.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채 가시지 않은 긴장을 추스르기 위해 차 한잔을 마시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자신들의 그림을 선형적 플롯으로 꿰려는 나의 노력에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림을 그릴 때 특별한 서사를 만들지 않아요. 그림을 그리는 일은 꿈속을 걷는 듯한 과정일 뿐이에요. 캔버스가 살아 있는 생물인 것처럼 캔버스가 원하는 것을 먹여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고 할까요. 만일 제가 잘해냈다면 서사는 따라오게 돼 있어요.” 평생 느긋한 피로감에 휩싸여 살아왔을 것 같은 네오가 섬세하게 단어를 골라 얘기한다면 로사는 오래 다져온 생각을 활기차게 쏟아내며 주위를 환기시킨다. “네오와 저는 구상회화를 그리는 작가로 분류되지만 실은 모든 작품이 추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림 속 구상적인 존재(figure)는 보는 이가 어떤 시대와 문화권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거예요. 팬데믹 와중인 지금 보는 것과 미래에 보는 것, 전혀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죠. 그러니 구상적인 피겨가 구체성을 띠진 않는 거예요. 안 그래, 네오?” 네오가 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관람객들이 제 작품을 아름다움의 한 가지 예시로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뜻이나 의미를 찾지 않았으면 해요. 그림을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어려워 말고 아름다움을 즐기는 자세. 그것이면 충분하죠.”
사진을 찍으려 전시장 밖으로 나오자 건물 사이로 단풍이 울긋불긋하다. “참 아름다워요!” 정원사 집안에서 태어나 원예로 학위를 취득한 로사가 시원스럽게 감탄했다. 그녀는 네오를 만난 이후로 (어릴 때부터 늘 즐겨온) 그림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게 원예보다 좋은 한 가지는 내 스튜디오에서 나 혼자 재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카세인 물감을 쓸 때 칠하기 용이하도록 터펜타인 오일을 섞는데 그렇게 준비하는 과정이 연금술 같기도 하고요.” 두 사람에겐 이번 여행이 꽤나 오랜만의 회유이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셈이에요.” 네오가 검지를 유연하게 돌리며 말했다. 11월 4일부터 12월 18일까지 열리는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의 개인전을 위해 라이프치히에 가기 전에 뉴욕에 들르기 때문이다. 로사와 함께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주자로 불리며 컬렉터들의 위시 리스트 상단에 놓인 작가. 하지만 네오는 “글로벌 아트 마켓에서 최대한 멀리 있고 싶다”고 말한다. “그림을 그릴 때 작품의 가격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해요. 그래야 내 안에 있는 무의식적인 영감이 자연스럽게 풀려나올 수 있으니까요. 캔버스와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기를 바라요.”
Neo Rauch, 〈베르그페스트(Bergfest)〉, Oil on canvas, 300x250cm, 2010.
지금쯤 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는 라이프치히로 돌아갔을 것이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여러 도시에 스튜디오를 마련해 놓고 노매드로 살아가는 반면 두 사람은 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을 살기 원한다. “저는 태어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신비한 에너지가 있다고 믿어요.” 나는 그들의 하루 일과를 알고 있다. 오전 9시,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스튜디오로 출발한다.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너무나 편안한 나머지 큰 소리로 코를 골며 잠이 드는, 올가을 11번째 생일을 맞이한 퍼그는 자전거의 속도에 맞춰 뛰다가 지치면 바스켓 안으로 옮겨진다. 방직공장으로 사용하던 건물 꼭대기층에 자리 잡은 스튜디오는 로자의 작업실이 먼저 나오고 거기를 통해야만 네오의 작업실에 갈 수 있다. 점심은 스튜디오에서 해결하고 6시가 되면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두 사람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렇게 함께 일하고 금요일 밤이 되면 동네의 콘서트홀에 가서 라이프치히의 유구한 예술 전통을 보여주는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연주를 즐긴다. 주말에는 집에 머물며 정원을 돌보고 휴식을 취한다.
가치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세상에서 회화는 안정감을 주는 일종의 표지판 역할을 해줍니다. 우리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중심으로 이끄는 표지판 말이에요. 이 길을 따라가며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두 사람에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그 자체로 명상이고 그들이 “코워커(co-worker)”로서 따로 또 같이 일구어낸 예술은 코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