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21세의 나이에 소더비 경매 역사상 최연소 디렉터 자리에 오른 케리 테일러 (Kerry Taylor)와 나눈 패션 경매 이야기.
패션을 사랑하지 않은 이유가 없는 소녀가 아닌가! (웃음) 앤틱 숍에서 구입한 1930년대 세퀸 드레스를 보고 흑백 영화 속 여배우 진 할로우가 입었을 것 같은 감성에 남다른 감동을 받았다. 내가 처음 산 세퀸 드레스는 1929년 경으로 추정되는 블랙 쉬폰 소재에 솔기가 아름답게 마무리된 매칭 재킷과 함께 한 룩이었다. 둘 다 아직도 갖고 있다. 패션 역사에 무척 끌리는데 예를 들어 1930년대에 코코 샤넬이 디자인한 긴 장갑은 당시 신문물인 자동차를 탈 때 착용하라고 만든 것이었다. 제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끌린다. 영국 보그 컬렉션을 회사에 소장 중인데 당시 매거진을 보면 자가 비행기 구입 광고는 물론 자동차 광고도 엄청나게 많다. 이에 맞춰 패션 하우스들이 디자인한 룩들이 화보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말 흥미진진한 역사의 한 기록이다.
빈티지 컬렉터인 알렉산더 퍼리는 크리스토퍼 케인의 얘기를 하며 그의 옷을 보면 그가 시대 의상을 직접 보고 패션 역사를 깊게 파고 들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디자이너에게도 패션 역사를 직접 볼 수 있는 일이 귀한데, 당신의 컬렉션을 디자이너들에게 오픈하기도 하는지?
그들에게 경매에 참여하길 권장한다. 크리스토퍼 케인은 무척 특별한 디자이너다. 그는 빈티지 아카이브의 노예가 아니다. 한번은 60년대 룩의 비즈 달린 밑단에 영감 받아 그걸 확대하고 재해석한 온전한 그만의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아자딘 알라이야도 놀라운 디자이너였다. 그도 컬렉터였는데 그만의 해석과 재창조가 돋보였다! 때론 오지 클락인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 옷이고 게다가 라벨도 달린 걸 보며 실망하는 순간이 있다. 하나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겨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린 옷을 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경매에 참여하지 않고 카메라를 꺼내 리서치하는 건 곤란하다.
존 갈리아노가 크리스챤 디올을 위해 디자인한 풍성한 드레스는 오뜨 쿠틔르 제품으로 8만5천 파운드에 낙찰되었고 1925년 경의 샤넬의 자수 놓은 코트는 속옷 상자 아래에서 발견된 룩인데 6만 파운드에 낙찰됐다. 존 갈리아노에 대한 책을 쓴 적도 있는데, 그가 1984년 졸업 작품 쇼에 선보인 코트는 7만 파운드에 팔기도 했다. 정말 다양한 하이라이트들이 있다. 소더비 시절 17세기 초에 만들어져 19세기에 수선을 거친 걸로 여겨진 벨벳 소재의 데보레 바디스가 있었는데 90년대 당시로는 세계 최고가인 3만8천 파운드에 낙찰됐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서 스튜어트 왕조로 넘어가는 정말 오래전 시대의 의상으로 무척 특별했다. 패션과 스타일은 영원하다.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나 어떤 특정 시대의 옷이 아니어도 사랑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당대나 당시의 가장 대표적인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걸 박물관에서 구입한다. 예를 들어 이번주에 진행 중인 경매에 스티븐 존스가 장 폴 고티에를 위해 디자인한 이 모자가 포함된다. 정말 멋진 디자인이고 책은 물론 매거진 화보에도 등장해 비교적 많이 알려진 모자다. 기록이 잘 된 제품들은 가치가 높을 수 밖에 없다. 그게 제품의 역사가 된다. 이 제품은 박물관에서 선호할만한 것이다.
Gianni Versace mens printed silk shirt circa 1992
아시아 시장에서 더 많은 바이어들이 경매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새로운 보물은 늘 찾고 있는 중이다. 지난 경매보다 다음 경매가 항상 더 흥미롭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가방을 들고 와 모두를 흥분케 할 경매품을 꺼내길 나 역시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점점 더 진짜 보물을 접하기 어려워졌고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에는 젊은 남자들이 경매에 많이 참여한다. 펑키한 남성복 컬렉션이 인기가 많다. 이들은 대부분 독특한 제품을 선호한다. 길 가다가 사람들이 멈춰서 어디서 샀냐고 물을 만한 제품들이다! 예를 들어 베르사체, 몬타나, 비비안 웨스트우드 남성복이 다음 경매에 나오는데 이런 제품들이 인기가 많다.
1977년에 만들어진 마담 그레의 블랙 실크 저지 이브닝 가운
타고난 선천적인 창의성이다. 과거나 현재 미래 언제라도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예를 들어 마담 그레이의 옷들은 대부분 네오 클래식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그녀는 옷의 구조에 집중했다. 그녀는 패셔너블한 옷을 디자인하지 않았고 그녀는 자신이 만족할 옷을 만들었다. 엘자 스키아파렐리도 그런 디자이너다. 그녀가 예술가들이나 레사쥐 같은 공예가들과 콜라보레이션한 작업을 무척 특별하다. 마들렌 비오네의 드레스는 공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명작이다! 쟝 랑방 역시 그런 디자이너다. 정교한 아름다움과 우아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다! 그런 옷은 정말 영원불멸하다.